소설리스트

2회차 기사가 살아가는 법-150화 (150/248)
  • 150. 보급의 중요성에 대해

    전쟁 초기부터 뱅트손 공작을 보좌했던 보급관의 머리통은 야전 천막의 입구까지 굴러가 있었다.

    그러나 주변에 있던 참모들 중 누구도 죽은 사람에 대해서는 신경쓰지 않았다.

    뱅트손 공작의 분노가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해할 수 없다. 보급품을 나르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가? 식량도 무기도 충분히 생산해서 쌓아 두었잖은가? 왜 보급품이 계속 부족하다는 말이 나오나? 아니면 림케가 내게 거짓말이라도 했다는 것인가? 도대체 뭐가 문제야!”

    나중에는 거의 포효하듯 내지르는 뱅트손 공작의 분노에 주변의 참모들은 정자세를 한 채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이럴 때 엉뚱한 실수라도 한다면 자신의 머리통이 다음 순서로 잘릴 머리통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다들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러나 뱅트손의 성정이 독선적이라고 해도 그 정도로 막 나가는 사람은 아니었다.

    아무리 부하라고 해도 책임이 없는 자를 함부로 죽이는 것은 결국 자신의 목을 조르는 것과 같다는 것은 상식이다.

    잠을 자다가 영원히 잠이 들어버리는 사태를 겪고 싶지 않다면 어느 정도에서 풀어주어야 한다.

    뱅트손 역시 다른 귀족들과 다르지 않게 어느 선에서 풀어주어야 할지 잘 아는 사람이었다.

    이 정도면 전쟁에도 불구하고 안일하게 굴던 자들에게 충분히 긴장을 불어넣었다고 생각한 뱅트손은 실질적인 해결책을 의논하기 위해 참모장을 불렀다.

    “참모장. 정말 보급관의 말대로 방법이 없었나?”

    “일단 현재 상황에 대해서는 보급관의 말 중에 틀린 것은 없습니다. 공작 전하. 출발할 때야 충분한 양의 보급품을 준비해서 보냈겠지만 중간에 유실되는 양이 너무 많습니다. 일선 부대에서는 이런 식이면 더 이상 전투를 할 수가 없다는 탄원서가 계속 올라오고 있습니다. 약탈로 보충하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더 이상은 무리라는 것이 일선 지휘관들의 한결같은 보고입니다.”

    뱅트손 공작은 스케티 공작을 상대로 공세를 취하는 중이었다.

    이미 상당한 거리를 진군하여 전투를 벌이는 중이었다.

    그래서 보급에 대한 문제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모두 총 4만.

    뱅트손이 동원한 병력의 숫자였다.

    뱅트손 공작의 군대는 네 갈래로 나누어서 각각 1만씩의 병력으로 진군하고 있었다.

    4만 명에 대한 보급은 뱅트손의 보좌관들에게도 처음 겪는 경험이었다.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닐 것이라고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예상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에 부딪혀서 고생하는 중이었다.

    강을 끼고 있는 두 갈래의 병력에 대한 보급은 약간 문제가 된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나머지 두 갈래의 병력에 대한 보급은 정말 심각한 상태였다.

    사방에서 출몰하는 스케티 군 때문에 너무 혼란스럽고 피해가 심해서 종군상인조차 따라오는 것을 기피할 정도였다.

    “왜 그렇게 유실되는 것이 많은 거야? 호송 부대는 충분히 붙여주었잖은가?”

    “아무래도 미숙련병이 대부분이라서 기습을 당하면 도망치기 바쁩니다. 게다가 일선에서 벌어지는 전투도 너무 혼란스럽습니다. 부대의 주둔지가 계속 바뀌고 있어서 목적지에 도착해도 보급품을 가져다줘야 할 부대를 찾는 것조차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래서 심지어 적에게 보급품을 가져다 바치는 경우까지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대안이 있어야지. 보급관처럼 어렵다 안된다 그러고만 있으면 어떻게 하나.”

    뱅트손은 짜증스럽다는 듯이 말하며 의자에 앉았다.

    이유가 어떻게 되었든 보급에 문제가 생겼으니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했다.

    그것이 그가 보급관의 목을 친 이유였다.

    그러나 처벌을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제대로 보급이 되는 것이 더 중요했다.

    빠르게 보급이 정상화되지 않으면 병사들의 사기가 걷잡을 수 없게 무너질 것이다.

    지금도 위태위태한데 그것은 절대로 안 될 말이었다.

    “부대를 합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참모장은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그것은 이미 불가능하다고 결론이 난 문제 아니었나?”

    몇십 명이나 몇백 명 수준의 병력이 이동할 때는 별다른 제약이 없다.

    보급품을 실은 마차를 끌고 길을 따라 걸어가면 그만이다.

    멀쩡한 길이 없다면 짐말에 짐을 싣고 나머지는 등짐을 지고 가도 된다.

    그러나 이동해야 할 병력이 몇천 명 수준이 넘어가면 이동에 따르는 제약이 심해진다.

    가장 심각한 것은 물이다.

    식량은 어떻게 가져간다고 해도 물까지 싣고 갈 수는 없으니 현지에서 구해야 하는 것이다.

    강이 있다면 최고이지만, 강이 없다면 충분한 우물이나 샘을 미리 확보해야 한다.

    그뿐 아니다.

    좁고 구불구불한 길로 대규모의 병력이 이동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안전하게 야영을 할 장소를 확보하는 것 역시 만만한 일이 아니다.

    단순히 이동만 생각해서는 안 되고 적의 습격까지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뱅트손의 군대가 네 갈래로 나뉘어서 진군하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4만의 군대를 감당할만한 마땅한 진군로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케티를 압도하지 못한 채 지지부진한 전투를 이어가는 중이기도 했다.

    “강을 끼고 가면 4만이라고 해도 물은 부족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부족한 군량은 현지에서 징발하는 것으로 하시지요.”

    “징발은 지금도 하고 있지 않은가?”

    “지금 하고 있는 징발은 촌락을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작은 영주성이라면 모를까 큰 규모의 영주성이나 자유도시는 건드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1만 남짓 되는 병력으로 적을 배후에 두고 공성전까지 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으니까요. 그러나 4만이 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성 앞에 진을 치는 것만으로도 도시를 굴복시킬 수 있습니다. 다들 이야기만 들었지 이렇게 많은 병력은 구경도 해보지 못했으니까요. 이 정도의 숫자라면 들판을 비우고 성에 틀어박힌 대도시를 상대할만할 겁니다.”

    “대도시를 상대로 징발이든 약탈이든 하면서 진군을 하자?”

    “그렇습니다.”

    참모장의 제안에 뱅트손은 고개를 외로 꼬았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참모장에게 시선을 돌렸다.

    “역시 너무 위험해. 자네도 알겠지만 우리가 1만에 달하는 병력을 움직여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야. 그런데 4만을 한곳에 모으자고? 그리고 그 병력을 몽땅 몰아서 대도시를 점령하자고? 그러다가 뭔가 꼬이면 그냥 무너지는 거야. 공성전은 더더욱 그렇지. 작정하고 성안에서 버티는 놈들을 어떻게 무너뜨리나? 우리는 변변한 공성무기도 가져오지 않았어. 약탈은커녕 우리가 먼저 말라죽을 거야.”

    “실제로 공성전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협박으로 충분합니다. 누구라도 4만 명의 병사가 성벽 앞에 진을 치면 싸우기보다는 협상을 하고 싶어질 겁니다. 약탈은 무리겠지만 징발은 가능합니다.”

    그러나 뱅트손은 여전히 부정적이었다.

    모든 병력을 모아서 단숨에 한판의 승부를 건다는 것은 멋지게 들리지만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더구나 그 상대가 스케티도 아니고 보급을 위해 징발을 하려는 대도시라면 더더욱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가 보기에 이것은 도박이나 다름없는 짓이다.

    한 번만 실패하면 판돈을 다 날리는 그런 도박 말이다.

    “너무 낙관적으로 생각하는군. 자네도 알겠지만 군대를 움직일 때는 낙관적인 기대를 가지고 움직이면 안 돼.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것이 전쟁이지. 나는 스케티의 부하들이 자네들 못지않게 유능하다고 생각해. 우리가 유리한 것은 오랫동안 준비해 온 특별한 도구뿐이라고 생각하네. 아무래도 자네 의견에 동의하기는 어렵군.”

    “그렇다면 보급 문제를 해결하기 전까지 더 이상 진군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뱅트손은 황도에서의 전투 이후로 자신의 마음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에 답답함을 느꼈다.

    그 존재를 알고 제거하기 위해 준비할 때는 불안한 가운데서도 일이 하나하나 진행된다는 느낌이 있었다.

    마침내 그 존재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확신을 가졌을 때는 해방감을 느끼기까지 했다.

    오랫동안 자신이 준비해온 병력으로 황도를 장악할 때는 당장이라도 제국의 새로운 주인이 될 것만 같았다.

    그러나 스케티와의 전쟁을 시작하면서 그 모든 것은 꿈처럼 사라져버렸다.

    이전과 달리 한계를 느끼게 된 것이다.

    마치 늪에라도 빠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병사를 하나 움직이려고 해도 돈과 보급품이 뭉텅이로 들어갔다.

    이런 식으로 낭비를 한다면 과연 언제까지 전쟁을 감당할 수 있을지 두려울 정도였다.

    그나마도 병사들을 마음대로 움직이지도 못했다.

    휘하의 귀족들은 봉사하는 기간이 지나면 멋대로 병영을 이탈해서 자신의 영지로 돌아갔고, 그것은 영지군도 다르지 않았다.

    전쟁터에 계속 붙잡고 있으려면 돈을 지불해야 했다.

    아니면 다른 특권이라도 약속해 주어야 했다.

    훈련받지 않은 병사는 신뢰할 수 없었고, 놀랍게도 숙련된 병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훈련받지 않은 병사는 싸우는 법을 몰랐고 숙련된 병사는 열심히 싸우기보다는 적당히 싸우려고 했다.

    그리고 둘 다 전투보다는 전리품에 훨씬 큰 관심을 가졌다.

    그나마 믿을 수 있는 자들은 개인적인 충성을 맹세한 기사들과 자신이 오랜 시간 공들여 양성해온 여러 수단들이었다.

    스케티와 벌이게 될 결정적인 전투를 위해 아껴두고 있었는데, 보급 문제 때문에 진군 자체가 막히게 되면 언제 전투에 투입해야 할지 애매해진다.

    뱅트손은 전쟁을 치르면서 이론으로만 알고 있었던 보급의 중요성을 실감하는 중이었다.

    “공작 전하. 성에서 보고서가 도착했습니다.”

    잠시 대화를 멈추고 쉬는 사이에 전령이 들어와서 보고서를 전달하고 돌아갔다.

    “웬만하면 나중에 처리한다고 했는데, 왜 여기까지······”

    잠시도 쉴 틈을 주지 않고 따라다니는 문서의 공격에 대해 질색을 하던 뱅트손 공작은 이 보고서가 웬만한 일이 아님을 깨달았다.

    보고서에는 칼마르에서 벌어진 참사에 대한 상세한 전말이 기록되어 있었다.

    칼마르의 턱밑에 숨겨두었던 천인대 하나가 박살이 났고, 자신의 특별한 수단 중의 하나였던 강화인으로 구성된 기사단도 몰살당했다.

    무엇보다 심각한 일은 칼마르에서 자신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라는 점이었다.

    제국 동부에 자리잡고 있었던 선제후들이 모두 죽은 이상, 칼마르의 가치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커졌다고 봐야 했다.

    고만고만한 귀족들의 영지로 복잡하게 얽혀있는 그곳에서 칼마르 정도의 덩치라면 한 지역의 패자를 자처하기 부족함이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칼마르가 선제후들을 대신하겠다고 나설 수도 있다.

    그런데 칼마르와 척을 졌으니 일이 골치 아파진 것이다.

    사실 뱅트손에게 칼마르는 멀리 있는 상대였다.

    우선순위가 한참 밀리는 적이었고, 만약 자신이 황제위에 오르면 자연스럽게 고개를 숙이고 충성을 맹세하러 오리라고 생각할 정도로 가볍게 보는 자들이었다.

    결국 그는 칼마르에 대한 문제를 일단은 림케에게 맡기기로 했다.

    후방에서 보급품을 모으고 보내느라고 바쁜 사람이지만, 원래 유능한 사람에게는 일을 더 얹어주는 법이다.

    뱅트손이 림케에게 칼마르에 대한 전권을 맡긴다는 편지를 쓰고 있을 때, 윌리엄은 귀족연합자치령에 속하기를 거부하는 자들을 설득하는 중이었다.

    물론 설득의 수단은 폭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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