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회차 기사가 살아가는 법-147화 (147/248)

147. 리네아의 회복

리네아가 있는 방으로 달려가자 방 밖에서 대기하던 시종이 다급하게 나를 막아섰다.

“윌리엄 백작 각하! 안에 전갈을 넣어야 합니다!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러나 나는 기다릴 생각이 없었다.

예의? 관례?

그런 것을 따지기에는 내 마음이 너무 급했다.

전쟁터에서는 약간의 어긋남 때문에 이길 전쟁도 지는 경우가 생긴다.

당장 얼마 전에 있었던 펠트리아에서의 전투에서 우리가 조금만 더 일찍 도착할 수 있었다면 펠트리아와 포를라의 연합함대는 그렇게 엉망으로 패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번에도 그렇다.

신비와 관련된 어떤 기운에 리네아가 노출되어서 저렇게 쓰러져 있는 것이라면 되도록 빨리 그 원인을 제거해야 한다.

조금 늦었다는 것 때문에 후회할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나는 방문 앞의 시종을 밀치고 리네아가 누워있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리네아가 있는 방에는 시녀 3명이 상시 대기 중이다.

모두 작위가 있는 집안의 여식들이고, 사라 남작 부인의 제자이기도 하다.

사라 남작 부인의 설명에 의하면 이들만으로도 실력있는 기사 한둘 정도는 무리 없이 막아낼 정도는 된다고 한다.

시녀들은 내가 들어오자 자연스럽게 리네아의 침대 주위를 둘러싸고 나에게 해명을 요구하는 시선을 보냈다.

리네아와 내가 부부 사이라고 해도 첫날을 보낸 것도 아니니 아직은 내외를 해야 하는데, 이런 식으로 무례하게 개인실로 들어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태도였다.

“윌리엄 백작 각하. 귀족의 개인실에 들어올 때는 미리 알려 주셔야 합니다. 급한 일이 생겨서 미리 전갈을 보내지 못했다고 해도, 안에 들어오시기 전에 허락을 요청하는 것은 기본적인 예의입니다. 밖에서 대기하는 시종은 장식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 주십시오.”

깐깐하게 생긴 시녀 하나가 대표로 나서서 내게 타박했다.

백번 옳은 말이기는 하지만, 지금 내 신경은 온통 다른 곳으로 향해 있었다.

자신의 말에 대답도 없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나를 본 시녀는 다시 한번 내게 말을 걸려고 했다.

그러나 나는 한 손을 들어 그녀가 조용히 있을 것을 요청했다.

무엇인가가 내 감각을 거슬렸다.

하지만 그것이 불편하거나 위험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차라리 편안한 느낌?

어디선가 느꼈던 감각이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나를 부르는 감각에 집중했다.

한 걸음. 두 걸음.

그리고 손을 내밀었다.

손끝에 느껴지는 부드러움.

나는 눈을 뜨고 내 손에 무엇이 닿았는지 확인했다.

그것은 의자에 놓여있던 쿠션이었다.

의자에 앉을 때 등에 대기도 하고, 눕거나 기댈 때도 사용하지만 대부분 패션의 의미가 더 강한 물건이다.

나는 쿠션을 집어들고, 강제로 찢었다.

팽팽하게 집어넣었던 솜이 터져 나오면서 그 안에 숨겨져 있던 작은 원통이 하나 떨어졌다.

검은색 가죽으로 표면을 정교하게 감싸놓은 원통은 성인의 검지 손가락 정도 되는 크기였다.

나는 직감했다.

이게 원흉이구나!

“이 쿠션은 언제부터 여기에 있었나?”

시녀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시선을 나누었지만 답은 금방 나오지 않았다.

결국 내게 예의를 말했던 시녀가 다시 나서야 했다.

“내부의 장식이나 가구는 정기적으로 교체하는터라 확실하지 않습니다만, 아마 한 달을 넘은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마?”

“죄송합니다. 즉시 담당 하녀를 불러서 확인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니야. 이것은 담당 하녀를 불러올 일이 아니지.”

나는 리네아의 개인실에서 나가면서 즉시 시종장과 경호 기사장을 호출했다.

그들은 내 지시에 따라 리네아의 개인실에 최근 한두달 내에 들어온 소품은 모두 끄집어 냈고, 청소와 소품 담당자들은 일단 감옥으로 직행시켰다.

그동안 나는 발견한 원통을 가지고 발드리에게 돌아갔다.

사제들 역시 그대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쩌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진짜 있었다니 놀랍군요.”

수석 사서였던 발드리는 탁자 위에 놓인 작은 원통을 보며 자신의 추측이 맞아 떨어진 것에 대해 자신이 더 놀라고 있었다.

그리고 이것을 함부로 다루는 것이 얼마나 위험할지 알지 못하겠다면서 자신은 이것을 만질 생각도 없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나는 이 원통이 다른 사람의 경우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위험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원통에게서 느꼈던 감각 이랄까 느낌이 무엇인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빛의 기둥이었다.

지금 원통에게서 느껴지는 감각은 내가 에시스칼리 산의 동굴에서 발견했던 빛의 기둥을 통해 경험했던 감각과 정말 흡사했다.

그렇다면 이 상황이 이해되기는 한다.

그 당시에 빛의 기둥에서 밀려오는 기운을 감당하지 못했던 거인들은 그대로 분해되어 빛 속으로 사라졌다.

파괴된 것인지 아니면 흡수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빛의 기둥에서 나오는 기운은 함부로 대하기에 위험한 것이라는 점은 분명했다.

그러나 내게는 아니었다.

나는 빛의 기둥에서 나온 기운을 별 무리없이 흡수할 수 있었다.

오히려 기분좋은 상쾌함을 느낄 정도였다.

그런 내게 이런 작은 원통에서 나오는 기운은 별로 걱정도 되지 않았다.

나는 섬세하게 바느질해놓은 검은 가죽의 실을 끊고 가죽을 벗겨냈다.

본래의 모습을 드러낸 작은 원통형 나무 기둥의 겉에는 아무 장식도 없었다.

그냥 밋밋한 나무표면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눈으로 보는 것과 느끼는 것은 달랐다.

빛의 기둥에서 느꼈던 그런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제법 강력한 기운이 나무 기둥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흥미로운 것은 같이 있던 사제들에게 이 기운이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원통에서 가죽을 벗기고 나무가 드러나자 트렌스 상태에 빠져 버렸다.

일종의 종교적 황홀경에 빠져서 정신은 저 멀리 안드로메다로 날아가 버렸고, 입에서는 알 수 없는 말을 웅얼거리기 시작했다.

세르게티의 사제들은 특별한 힘이 없는 자들이다.

사제라고는 하지만 따지고 보면 의술을 잘 알고 있는 일반인에 지나지 않는다.

그냥 지구의 의사와 다를 바가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런 신기한 반응이라니!

일반적인 상식과 달리 사제와 신비 사이에는 뭔가 특별한 관계가 있는 것임에 틀림없다.

나는 나무로 된 원통을 손으로 감싸 잡고 조용하게 심호흡을 했다.

만약 이 원통에 기운이라는 것이 있다면 내가 흡수한다는 생각으로 신경을 집중했다.

과연 에시스칼리 산에서 겪은 경험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약하기는 했지만 비슷한 감각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세포 하나하나까지 씻어내고 힘을 불어넣는 것 같은 느낌.

더 이상 그런 느낌을 느끼지 못할 때까지 계속 흡수한다는 생각에 집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런 느낌은 사라졌다.

그리고 사제들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제 정신을 차렸다.

그들은 매우 상실감이 큰 표정으로 조용히 돌아갔다.

그 후로 나는 리네아가 정신을 차리기를 기다리며 그녀의 옆에 있었다.

조리장을 비롯한 부엌 식구들이 풀려나고, 대신 청소쪽 식구들이 잡혀가고 하는 일은 내 관심 밖이었다.

누가 어떤 일을 했는지 조사하고 처벌하는 것도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맡겨두고 나는 리네아 옆을 지켰다.

그렇게 3일을 지났을 때 어떤 예고나 전조도 없이 리네아가 정신을 차렸다.

“윌리엄?”

할 말은 많았던 것 같은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냥 다행이라는 생각에 리네아의 손을 잡고 그녀의 얼굴을 보기만 했다.

“아! 나 쓰러졌었는데. 그래서 온 거군요. 별로 무리한 것도 없는데 기절씩이나 하다니. 괜히 걱정을 끼쳐 드렸네요.”

리네아는 자신이 기절을 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담백하게 사실을 전해 주었다.

“기절한 것이 아니라 암살 미수였어요. 그리고 그사이를 틈타서 백작령의 실권을 장악하기 위해 움직인 자들도 있었구요. 멜러하고 고프리가 주동이었지요..”

“멜러와 고프리라고요?”

리네아는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는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고 내게 물었다.

“그 둘은 어떻게 되었나요?

“멜러는 수감 중이고, 고프리는 도주 중입니다. 그대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지요.”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그녀가 의식을 잃고 있는 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다.

리네아가 정신을 차리고 일어남으로서 칼마르 백작령의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리네아는 일부 가신에게 영지의 운영을 지나치게 의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지적받고 자신의 실수에 대해 반성을 했다.

그녀는 곧장 시의회의 의원과 영지의 유력자들을 자문위원으로 끌어들이는 것으로 자신의 반성이 단순히 말로 떠들다가 끝나는 것이 아님을 증명했다.

심지어 그중 영향력이 큰 사람 몇 명은 백작성의 이너서클까지 끌어올렸다.

나 역시 체계없이 돌아가던 여러 직책에 대해 원칙적으로 겸직을 금지하고 관리의 숫자를 늘리는 조치를 건의해서 관철했다.

우리가 영지의 전반을 일신하며 권력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 때 북쪽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자들이 도착했다.

뱅트손 공작이 보낸 사신단이었다.

“뱅트손 공작 전하께서 리네아 백작님의 완쾌를 축하드리며 보내는 선물을 가져왔습니다. 부디 가납해 주시기를 엎드려 청원합니다.”

지나치게 저자세였다.

엎드려서 청원한다니, 이 정도의 미사여구면 제국의 황제에게나 할 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저 자세라는 것은 뭔가 원하는 것이 있다는 이야기이다.

아니면 켕기는 것이 있든가.

아니, 잠깐 이거 시간적으로 말이 안되는데.

리네아가 깨어난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축하사절이 오나.

저 놈 저거 켕기는 것이 있는 쪽이군.

나는 리네아의 앞에서 굽실거리고 있는 사절단의 대표를 노려보았다.

*

뱅크손의 사신단을 이끌고 있는 자는 캘로라는 자였다.

지금까지는 주로 영지 관리를 해왔는데, 내전 이후 외부와의 교섭이 폭증하면서 담당 업무를 옮긴 자다.

그는 지금 움직이는 것도 정상이고, 말하는 것도 정상인 리네아 여백작을 보며 자신을 칼마르로 보낸 그의 상관을 향해 속으로나마 온갖 욕설을 퍼부었다.

가 보면 여백작이 쓰러져 있을 거라고?

적어도 정신이 정상은 아닐 것이라고?

시의회를 장악한 우리 편과 의논해서 여백작의 회복을 위한 방법이 있다면서 칼마르의 유력자를 유인해 오라고?

이왕이면 마스터 요한이나 윌리엄 백작이면 좋겠다고?

그런데 리네아 여백작이 멀쩡하네.

젠장 예물이라도 미리 준비 안 했으면 어쩔 뻔 했어!

그는 자신이 축하 사절로 왔다며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었다.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믿어 주기를 바랬다.

만약 얼마 전 벌어진 반역 사건에 뱅트손이 관여되어 있다는 사실을 여기 있는 자들이 알게되면 당장에 목이 달아나도 이상하지 않다.

특히, 자신을 살기어린 눈빛으로 째려보고 있는 리네아 여백작의 남편이 알게되면 진짜 위험하다.

그의 상관은 리네아 여백작의 남편에 대해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방법을 안가리는 자라면서 최우선적으로 제거해야 할 적이라고 말한 적도 있었다.

캘로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건강회복을 축하하고 돌아가는 것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그러나 돌아가는 상황은 그를 내버려 두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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