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 독은 독이 아니었다.
리네아에 대한 공격 수단은 독이었다.
성분을 알 수 없는 독을 먹고 의식을 잃은 것이다.
먹고 곧장 죽는 즉효성 독은 아니었다.
언제 먹었는지는 모르지만 독이 작용을 해서 의식을 잃고 쓰러질 때 주변에 시녀가 있었던 것이 천운이었다.
만약 혼자 있을 때 쓰러졌다면 진짜 위험할 수도 있었다는 것이 응급조치를 취한 사제의 전언이었다.
아직 의식이 있을 때 해독제를 먹여서 생명은 건졌지만, 그게 한계였다.
리네아는 곧 의식을 잃었고 아직까지도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독살은 귀족이라는 계급에 존재하는 풍토병이라고 할 수 있다.
풍토병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보편적인 일이니, 그에 대한 원인도, 대처법도 널리 알려져 있다.
믿을 만한 사람을 요리사로 고용하고, 독을 감지할 수 있는 수단을 가까이 한다.
그리고 다양한 종류의 해독약을 언제나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여기까지는 귀족이라면 누구나 하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여기서 좀 더 조심성이 많은 귀족은 먼저 음식을 먹는 사람을 두기도 한다.
심지어 독에 대한 내성을 키운답시고 약한 독을 장복하는 귀족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살로 죽는 귀족은 꾸준히 나왔다.
아무리 보호조치를 강화해도 가까운 사람, 이를테면 가족까지 막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리네아에 대한 보호 조치는 꽤나 강력한 편이었다.
그것은 암살 미수가 벌어진 후 관련자들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면서 더 확실해졌다.
선대 백작을 의심스러운 사고로 잃었던 마스터 요한이 편집증적인 열의를 가지고 몇 차례나 백작성의 내부를 뒤엎었기 때문에 외부와 연결된 자들은, 적어도 노골적으로 외부와 연결이 있는 자들은 백작성에 존재하지도 않았다.
낯선 자는 물론이고, 사전에 허가받지 못한 자가 백작성에 들어온다는 것 역시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독살은 벌어졌고, 리네아 여백작은 쓰러졌다.
사건이 벌어졌으니 우리의 경호 체계가 아무리 뛰어나다고 주장해봐야 욕이나 안 먹으면 다행일까 설득력이 없을 수밖에.
듣기로는 그날, 백작성의 분위기는 정말 살벌했다고 한다.
즉결 처형이 없었던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니, 어떤 분위기일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리네아의 호위를 담당했던 기사들은 모조리 감옥으로 직행했고, 조리장은 물론 시종들까지도 예외없이 감옥행이었다.
그리고 강도높은 조사가 이어졌다.
그러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암살 시도와 연결된 자를 찾는 것은 불가능했다.
결국 칼마르로 돌아온 내게 제출된 보고서는 범인 색출에 실패했다는 내용이었다.
동시에 평소의 경호체계가 얼마나 체계적이었고, 강력했는지에 대해 탄원 섞인 설명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처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칼마르의 경호 기사들은 강력한 경호 시스템에도 불구하고 경호에 실패하고 범인 색출에도 실패하는 무능을 보였다.
그러나 나는 그들을 문책할 기분이 들지 않았다.
그들이 실패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이 일을 저지른 것은 아크후 였으니까.
역사가 오래된 강력한 암살 단체.
이런 종류의 독살은 우리에게나 당황스러운 일이지 저들에게는 쉬운 일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우리와 그들과의 관계가 꽤나 험악하다는 것이다.
글렌 공작에게 고용되었던 그들은 칼마르를 먼저 건드렸고, 우리는 정당한 복수를 했다.
그러나 복수는 복수를 부르는 법.
이번에 우리는 아크후를 완전히 말살하지 못했던 대가를 치른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다른 생각이 들기도 했다.
우리에게 보란 듯이 남겨놓은 문서의 내용을 보면 아크후가 관여한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적어도 우리와 아크후와의 악연을 아는 자가 포함된 것은 틀림없다.
그렇지만 아크후가 범인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심을 버리기가 너무 어렵다.
과연 아크후의 단독 범행일까?
글렌 공작가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으니까 아예 다른 세력에서 아크후에게 청부를 맡긴 것이라면?
어쩌면 아크후가 아니라 아예 다른 단체일 수도 있지 않을까
칼마르의 권력은, 그리고 통치의 정당성은 리네아에게 집중되어 있다.
리네아가 죽는다면 칼마르는 자중지란에 빠질 수 밖에 없는 구조다.
리네아를 떠받치던 기존의 이너서클의 상당수가 외지인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이번 일을 겪으면서 칼마르의 권력 구조가 매우 취약하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이전 생에서 칼마르의 위기를 앞장서서 해결해 나가던 리네아의 모습을 기억하기에, 이런 깨달음은 내게도 충격이었다.
이러면 이번 암살 미수 사건의 범인을 억지로라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보복해야 한다.
이왕이면 참수작전으로 양 쪽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가장 좋겠다.
실패도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괜찮다.
왜냐하면 리네아 백작에 대한 암살 시도를 대충 뭉개고 지나가면 다시 암살을 시도하는 자가 나올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곤란하다.
한 번, 두 번. 세 번.
계속 시도하다보면 한 번쯤은 성공할 수밖에 없으니까.
그러니까 확실하게 경고해야 한다.
암살을 수단으로 쓰려면 네 놈의 목숨도 걸어야 한다는 메시지가 확실하게 주변에 퍼져야 한다.
다행인 것은 범인으로 만들기 딱 좋은 후보도 하나 있다는 점이다.
뱅트손 공작.
그는 지금 의심이 갈 수 밖에 없도록 처신하고 있다.
실제로 그가 배후일 가능성이 가장 높기도 하고.
나는 참수작전을 다시 한번 해야 하나하고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보고서를 다 읽고 치운 나는 이번에는 사제들을 불러들였다.
치유와 풍요를 의미하는 세르케티를 모신다는 자들이었다.
사제들은 3명이었다.
모두 여자였고, 중년에서 노년으로 넘어가는 나이였다.
그리고 이상할 정도로 친근감이 느껴지는 자들이었다.
“백작님께 신의 축복이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그대들에게도 신의 축복이 함께 하길.”
제국에서 종교의 힘은 미약하기 그지없다.
과거 지구에서 했던 것처럼 종교가 정치와 행정까지 관여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종교를 권하는 것조차 비웃음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일종의 사기꾼 비슷한 취급을 받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세계는 신비가 존재하는 세계다.
뭔가 논리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 것은 신비를 탓하면 대게 정답이다
평범한 인간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이상한 일도 신비에 기대어 설명하면 된다.
그러나 이 세계의 종교는 사람들에게 특별한 것을 보여주지 못한다.
기적도 없고, 신성력도 없다.
어떤 의미에서는 신이 일으킨 기적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지구의 종교보다도 못한 처지다.
단지, 아주 오래 전 신이 인간의 기도에 응답하던 시기가 있었고, 조만간 다시 그 때가 오리라고 말하는 자들이 있기는 하다.
그래서 이 세계의 종교는 종교 단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의료 단체와 자선 단체의 표피를 쓰고 있는 경우가 흔하다.
심지어 일부는 용병대나 비밀 결사의 모습을 하고 있기도 하다.
세르케티를 모신다는 이들은 일종의 의료 기관을 역할을 한다.
병원이 그들의 신전이고, 사제들은 의사인 것이다.
영향력을 높이기위해 이렇게 귀족가에 상주하면서 주치의 노릇을 하기도 한다.
“사제분들 덕분에 리네아 백작이 생명을 구했다고 들었습니다. 거듭 감사드리며, 이에 대한 보답은 확실하게 할 것임을 제 명예를 걸고 약속드립니다.”
“감사한 말씀입니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위한 백작님의 자비로운 처사에 대해 신께 기도하겠습니다.”
응급처치에 대한 감사는 이정도로 충분하다.
문제는 앞으로의 치료였다.
“그런데 리네아 백작이 아직 깨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언제쯤 깨어날 수 있겠습니까?”
“리네아 백작님께서는 외부에서 들어온 기운을 이겨내기 위한 투쟁을 하고 계시는 중입니다. 시간이 좀 필요할 것 같습니다.”
“따로 치료 방법이 없다는 이야기입니까? 그냥 기도만 하면서 방치하고 있다는 말로 들립니다만?”
내 말의 온도가 살짝 낮아졌다.
추궁하는 듯한 내 질문에 사제들의 안색도 굳어버렸다.
“인간에게는 질병에 저항할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독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지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힘을 믿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치료를 한답시고 함부로 관여하는 것이 더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사제의 설득은 오히려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이거 전형적인 사이비 의학의 멘트 아닌가?
나는 좀 더 차가운 어조로 물어보았다.
“어떤 독인지는 파악이 됐습니까?”
“확신할 수는 없지만, 독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이건 또 무슨 소리지?
“독이 아니라고요?”
“뭔가 이질적인 기운이라고 생각되는데 사람에 따라 반응이 다르게 나오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군요. 발드리 수석 사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 분들이 하는 말을 이해 할 수 있습니까?”
“대충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습니다.”
반쯤 열려있던 문 앞에서 우리의 대화를 흥미있게 듣고 있던 황궁 도서관의 수석사서는 내가 그를 부르자 반색을 하고 안으로 들어왔다.
“이분은 칼마르 도서관의 건립을 위해 오신 발드리 수석 사서입니다.”
“새로 도착한 장서의 분류에 대해 보고하려고 왔던 참인데 재미있는 말씀들을 나누시고 계시던구요.”
황도가 불에 탄 이상 황궁도서관의 재건은 요원하다.
제국이 다시 세워지기 전에는 황궁도서관도 재건될 수 있다는 기대를 버리는 것이 맞다.
발드리는 칼마르를 제 2의 고향으로 삼고 도서관을 지어야 할 것이다.
그도 이런 자신의 처지를 인정하는지 칼마르에 도착한 후로는 사방에 얼굴을 들이밀며 도서관 건립에 대해 역설하고 다닌다고 한다.
지역의 중심도시에는 반드시 도서관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과 우리가 주변 지역에 비해 꿇릴 것이 뭐냐 있느냐는 도발이 먹혀서 제법 많은 기부금을 거둬들이는 모양이었다.
“사제분이 말한 이질적인 기운이라는 것은 신비와 관련된 것입니다. 선제후였던 자들이 신비의 비밀을 풀어보려고 노력했다는 것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때 나온 말 중에서 신비는 매우 위험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제들의 표정이 불편해졌다.
한마디 끼어들고 싶은데 억지로 참는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신비와 접한 인간은 특별한 능력을 발휘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잘 안 알려져 있지만 그들 중 일부는 나중에 미치거나 죽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신비를 감당하지 못해서 그런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신비를 죽은 신이 남긴 유해나 흔적 같은 것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불경한 말은 삼가해 주십시오.”
그러나 사제의 항의에도 발드리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것같았다.
오히려 그는 남들이 알 수 없는 비밀스러운 일을 입에 올렸다.
“신비를 만지작 거리다가 자꾸 사람이 죽으니까 그렇다면 신비로 적을 죽이는 것이 어떨까라고 생각한 자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신비를 특정한 기체나 기운이라고 생각하고 다양한 시도 끝에 상자에 모으는 것을 성공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죽었지요.”
신비가 어떤 기운이라는 주장은 일면 일리가 있다.
상태창은 에시스칼리 산의 지하동굴 안에 있던 빛의 기둥을 통해 알 수 없는 기운을 흡수한 후 많이 변했다.
심지어 미니맵은 3D로 변하기까지 했다.
그러니까 발드리는 리네아가 신비를 접하고 부작용으로 쓰러져 있다는 이야기인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독이 아니라?
“리네아 백작님께서 주로 거주하시던 곳을 살펴보면 뭔가 발견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잠시 실례하겠네.”
나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서 리네아에게 갔다.
그리고 발드리의 예상이 맞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