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회차 기사가 살아가는 법-140화 (140/248)

140. 칼마르에 돌아왔다.

칼마르의 백작성은 흉험한 분위기였다.

리네아 여백작에 대한 암살 시도는 백작성의 사람들을 분노로 몰아넣었다.

특히, 리네아 여백작을 가족이나 다름없게 생각하고 있던 마스터 요한의 경우는 배신자들의 목을 반드시 매달고 말 것이라고 공공연하게 말할 정도였다.

그가 누구를 배신자로 생각하고 있는지는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조력자가 있지 않고서야 어떻게 백작성 내부까지 암살자가 들어와서 돌아다닐 수 있겠느냐는 그의 질문이 바로 그의 생각이었다.

시의회의 의원들도 격앙되어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암살 미수의 조력자로 자신들의 이름이 오르내렸다는 사실에 경악하며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경호를 실패한 자가 자신의 책임을 모면하기 위해 모함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냐며 당장이라도 마스터 요한의 직책을 박탈하고 새로운 사람에게 영지군을 맡겨야 한다는 주장이 들끓었다.

또한 시의회의 의원들은 외지에서 온 자들이 선대 백작의 사후에 백작성을 장악하고 칼마르의 정권을 전횡해왔다면서 오래 묵은 불만을 새삼스럽게 쏟아냈다.

게다가 아직 어린 리네아 여백작의 주변을 자신들의 사람으로 채워서 외부와 소통을 막았다면서 그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그리고 그 모든 불만, 분노 그리고 책임 추궁을 넘어서는 것은 리네아 여백작의 결혼에 대한 부분이었다.

외지에서 온 근본없는 자를 리네아 여백작의 부군으로 내정했다는 사실에 대해 본격적으로 이의를 제기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이것은 시의회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다른 어떤 문제보다도 중요한 쟁점이었다.

만약 리네아 여백작이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 이대로 영영 깨어나지 못한다면 칼마르의 초기 시절부터 지금까지, 수백 년에 걸쳐 칼마르를 지배해 온 가문이 단절되는 것이다.

정통성 있는 지배자의 부재가 대혼란을 불러일으키리라는 것은 누구라도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당연히 누가 칼마르를 통치해야 하는가에 관한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러나.

황제가 사라지고, 귀족들의 각자도생이 현실이 된 지금.

과거에 선제후였던 자들조차 자신의 영지는 커녕 자신의 생명도 장담하지 못하는 지금.

그에 대한 정답은 감히 누구도 말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있다.

어떤 식으로든 시의회가 새로운 권력의 중요한 축을, 어쩌면 중심 그 자체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의회가 새로운 권력자로 등장하는 데 있어서 이런저런 걸림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여러 걸림돌 중 가장 위협이 되는 존재는 리네아 여백작의 부군, 윌리엄 백작의 존재 그 자체였다.

그에게는 칼마르의 구성원 모두가 동의하는 새로운 통치자가 등장하기 전까지 임시로나마 칼마르를 통치할 수 있는 명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임시 통치자가 정당한 통치자로 자신의 위치를 바꾸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물론 리네아 여백작의 부군이라는 명분만으로는 통치의 정당성을 주장하기에는 불충분하다.

그러나 힘으로 강요하기에는 그 정도의 명분으로도 충분하다.

만약 그에게 그럴 만한 힘이 있다면 말이다.

시의회의 의원들 중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는 축은 자신들이 미래의 권력자가 되기 위해서는 누구를 가장 먼저 공격해야 하는지 이해했다.

그래서 그들은 이심전심으로 윌리엄의 지위를 날려버린 것이다.

물론 이러한 시의회의 결의는 리네아 여백작의 추인이 있기 전에는 정치적인 선언에 불과하다.

그러나 충분히 의미있는 선언이었다.

만약 리네아 여백작이 이대로 사망하게 되면 윌리엄이 칼마르를 임시로라도 통치하겠다고 나설 명분에 심각한 타격을 입혀 버렸기 때문이다.

이 모든 일이 벌어지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이틀이었다.

리네아 여백작이 의식을 잃고 쓰러지고,

가신들이 영주성을 통제하여 외부의 출입을 막고,

암살자의 배후를 거론하면서 정치적 논란이 벌어지고,

그에 따른 시의회의 반격으로 윌리엄의 지위를 박탈하는 결의안을 채택하는데까지 걸린 시간이 불과 이틀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암살 미수 사건이 자아낸 초기의 충격이 지나자 정세를 보는 눈이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은 지금 돌아가는 꼴이 보통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대로라면 내전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의 판단이었다.

물론 승패의 추는 한쪽에 크게 기울어져 있다.

가신 집단 쪽으로.

영지군을 장악하고 있는 가신집단의 무력이 월등히 강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시의회의 무력이라고 할 만한 것은 치안을 맡는 경비대와 의원들 개인이 가진 상단의 용병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로 영지군을 상대한다는 것은 자살을 하고 싶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

그러나 마스터 요한을 필두로 하는 가신 집단은 숫자도 적었고, 그 자신부터가 칼마르 출신이 아니다.

심지어 제국 출신조차 아니었다.

이래서는 사람들이 한 가지 의문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만약 리네아 여백작의 유고가 현실이 된다면 과연 영지군이 끝까지 마스터 요한을 따를까?

그에 대한 결론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유리해 지는 쪽은 시의회가 분명했다.

다들 그렇게 생각했다.

*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당장 리네아 백작님을 우리가 모셔야 합니다. 늦추면 안 됩니다. 만약 우리가 먼저 공격당한다면 우리에게 다음 기회는 없습니다.”

리네아 백작님을 모셔야 한다고 하고 있지만, 그 말이 영주성을 공격하자라는 의미임을 모르는 사람은 여기에 한 사람도 없었다.

하지만 시의회에 모여 있는 자들은 그 의견에 동의하기 힘들었다.

“고프리 의원. 경의 말이 일리가 있기는 하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당장, 칼마르에 있는 용병 부대들부터가 중립을 선언하고 주둔지에서 꼼짝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경비대만으로 일을 치르기에는 부족합니다. 많이 부족해요.”

당장이라도 병력을 동원해서 서로를 공격할 것 같은 날선 분위기가 그동안 계속 칼마르 시를 메우고 있었지만 아직까지는 노골적인 충돌이 벌어지지 않았다.

그것은 가신 집단과 시의회의 양쪽에 발을 걸친 사람들이 나서서 위기의 수준을 낮추고자 노력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강경한 의견을 가진 사람이라고 해도 리네아 여백작이 의식을 잃고 쓰러진 채 깨어나지 않는 지금, 전투를 벌이는 것에 대해 부담감을 느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래서 지금까지 모두가 리네아 여백작의 근황에 신경을 곤두세운 채 서로를 노려보고만 있었다.

그런데 윌리엄의 작위 박탈을 주도했던 고프리 의원이 다시 한 번 전면에 나서서 영주성에 대한 공격을 주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밝히기는 어렵지만 충분한 병력을 확보했습니다. 병력이 부족해서 행동에 나서지 못하는 일은 없다고 자신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고프리 의원은 남작가의 가주이고, 보험업계에서는 제법 이름이 있는 사람이라고는 하지만 아직 젊은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노회한 정치가들조차 함부로 손대기 어려워하는 군부의 포섭을 해냈다는 것은 믿기 어려웠다.

분명 뒤에 다른 자들이 있다고 봐야 했다.

“고프리 의원. 내전은 정말 위험합니다. 우리는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뭉친 것이었지, 파괴하기 위해 모인 것이 아닙니다. 외지인들이 우리의 정당한 권한을 침해했기 때문에 항의한 것 뿐입니다. 여기서 더 나가면 안 됩니다. 칼마르 주변에 있는 자들이 누구인지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 자들, 다 죽지 않았습니까? 선제후인지 공작인지는 모르겠지만 다들 죽어서 이름도 남기지 못했습니다. 칼마르에서 신경써야 할 자들은 이제 없는 것 아니었습니까?”

고프리의 말에 다른 의원들은 마땅히 반박할 말이 없었다.

황도에서 시작된 내전은 제국 전체로 번졌다.

선제후였던 자들이 연달아 죽어나갔을 정도의 혼란이었다.

그러나 칼마르는 오히려 전쟁 특수로 인한 호황을 구가하고 있었다.

분명 난세이고, 내전이 벌어졌다고는 하지만 그 횡액은 칼마르가 아닌 다른 자들에게 갔고, 칼마르는 어제처럼 오늘도 장사나 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윌리엄이 오고 있습니다. 저는 그가 며칠 내에 도착하리라는 전언을 얼마 전에 받았습니다. 모두들 기억하실 겁니다. 윌리엄이 칼마르 시의 유력자들을 어떻게 숙청했는지를. 그가 얼마나 유능하고 잔인했는지를. 지금 그의 손에는 전쟁을 경험한 정예 용병 1천 명이 들려 있습니다. 지금 병영에서 대기하고 있는 영지병의 절반에 달하는 숫자입니다. 힘을 가진 그가 우리를 어떻게 대할 것 같습니까? 여러분도 그게 궁금하신 것입니까? 그래서 뱀과 늑대의 심장을 가진 그가 우리를 상대로 어떤 일을 벌이고 어떤 새로운 칭호를 따내는지 알고 싶어서 이렇게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그냥 앉아 계신 것입니까?”

열정적으로 외쳐대는 고프리의 연설에 동의하는 기색을 보이는 의원이 점점 늘기 시작했다.

고프리 의원의 주장이 지나치다고 생각하는 의원조차도 자기 목에 칼날을 들이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모두의 생각이 한 방향으로 향하기 시작할 때 강당문을 때려 부수는 것처럼 열면서 뛰어 들어온 사람이 있었다.

연설을 방해받은 고프리 의원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고함을 질렀다.

“예의를 갖춰라! 이곳은 시의회의 의원들께서 계신 곳이다.”

그러나 강당으로 뛰어들어온 자는 예의같은 것을 차릴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그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외쳤다.

“윌리엄 경이 돌아왔습니다!”

“뭐! 어디로?”

“항구로, 항구에 배를 대고 있는 것을 봤습니다!”

우당탕탕 소리를 내며 시의회의 의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금전까지만 해도 위험하고 잔인하다면서 한참 공격을 당하던 자가 돌아온 것이다.

몇몇 의원들의 얼굴은 완전히 죽어버려서 시체를 보는 것 같았다.

고프리는 겁을 집어먹은 의원들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의 예상보다 윌리엄이 너무 빨리 온 것이다.

그는 탈출 여부를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

바람이 좋아서 예상보다 빨리 돌아올 수 있었다.

예상하지 못한 등장이었는지 놀란 사람들이 소란을 피우기는 했지만 살기등등한 용병들이 하선을 하기 시작하자 다들 조용해졌다.

나도 용병들과 함께 칼마르 시의 부두에 내렸다.

“영주성으로 간다.”

내 명령에 용병들은 오와 열을 맞춘 후 행군하기 시작했다.

주변을 위압하는 절도있는 모습이 용병 보다는 고위 귀족의 직속 군대같았다.

영주성으로 가는 길에서 주변을 둘러 보니 어디에도 파괴의 흔적은 없었다.

사람들 역시 두려워할망정 우리를 보고 도망치거나 하지는 않았다.

가장 우려하던 내전은 벌어지지 않은 모양이다.

한참 후 영주성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미 내가 오고 있다는 소식을 전달받았는지 사라 남작 부인이 나를 맞이하기 위해 나와 있었다.

나는 그녀의 안내를 받아 곧장 리네아에게로 향했다.

리네아는 잠을 자는 것과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을 뿐 호흡도 고르고 안색도 나쁘지 않았다.

피부가 창백해 보이기는 했지만 어두워 보일 정도는 아니었다.

아파서 잠이 든 모습.

그렇게 보였다.

“아직 의식이 돌아오지는 않으셨습니다.”

“자고 있는 것 같군요.”

“사제들이 많은 노력을 했으니까요.”

“그렇습니까? 그러면 여러분들은 어떤 노력을 했습니까?”

사라 남작 부인의 호흡이 멈췄다.

조용하게 말하고 있지만, 그 안에 서린 살기를 눈치챈 모양이다.

유감이라든가,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는 따위의 엉뚱한 소리가 나온다면 적이 아니라 태만한 자들에게 향할 살기였다.

그러나 그녀는 첩보 부분을 맡아온 사람답게 확실한 결과를 내놓았다.

“의심가는 자들을 조사했고, 몇 명은 확정적입니다.”

내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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