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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차 기사가 살아가는 법-131화 (131/248)

131화. 두 가지 문제의 해결

프리시오 공작의 호출에 따라 일제히 들어온 가신들에게 방금 전까지 자비를 구걸하던 리딕슨은 안중에도 없었다.

이미 정리가 끝난 리딕슨은 그들에게도 관심밖의 존재가 되어 버렸다.

프리시오 공작의 가신들에게 지금 가장 중요한 안건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국경을 맞대고 있는 왕국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 하는 문제였고,

다른 하나는 제국 남부의 바다에 위치한 큰 섬들을 확보하는 문제였다.

다른 공작들에 대한 문제는 일단 밀쳐두었다.

지금 당장은 큰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가장 큰 위협이 될 수 있는 뱅트손과 스케티는 사생결단의 기세로 전쟁 중이었고, 제국 동부는 공작들이 연이어 죽어나가는 대혼란의 와중이었다.

아직 확인된 내용은 아니지만 아르보그 공작이 죽었다는 첩보가 들어왔을 정도니, 그 혼란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덕분에 프리시오 공작은 주변 정리를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회의장에는 제국 전체를 그려놓은 커다란 지도가 놓여졌다.

신성 마르스홀롬 제국의 지형은 반달이 되기 직전의 초승달처럼 생겼다.

정확히는 엎어놓은 초승달처럼 생겼고, 초승달의 양끝은 동부와 서부에 해당한다.

그중 서부에는 프리시오와 리딕슨이 있고, 동부에는 막시밀리안, 글렌, 지슬리, 아르보그가 있다.

중앙에는 뱅트손과 스케티가 황도를 중심으로 전쟁 중이다.

지도를 펼쳐놓은 공작의 보좌관이 제국의 서부, 프리시오 공작령 일대를 가리켰다.

지도에는 프리시오 공작령 뿐 아니라 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왕국들도 표시되어 있었다.

지도를 보는 가신들의 시선이 복잡해졌다.

프리시오 공작령이 차고 있는 족쇄가 느껴진 것이다.

*

프리시오 공작령과 그를 따르는 귀족들의 영지는 주로 제국 서부와 서남부 지역에 몰려 있다.

제국의 일각을 차지하는 세력으로서 그 규모나 중요성은 다른 세력과 비교해도 절대 뒤지지 않는다.

괜히 가장 강력한 4명의 선제후들 중 하나로 불리는 것이 아니다.

인구와 경제력을 보면 나라를 세워도 될만하다는 평이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3백년 전의 내전에서도, 그리고 선제후 시절에도 역대 프리시오 공작은 자신의 힘을 온전히 쓸 수 없었다.

마치 한쪽 팔을 묶고 다른 선제후들을 상대하는 느낌으로 지내왔다.

이유는 간단했다.

제국의 서부는 다른 지역과 달리 여러 왕국들과 국경을 접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국의 동부나 남부는 주로 바다를 인접하고 있기에 외부 세력과의 교류도 바다를 통해서 한다.

사람이 걸어서 바다를 건널 수 없으니 교류 수단은 선박일 수밖에 없다.

당연하겠지만 이동할 수 있는 사람의 수도, 물품의 양도 선박의 크기에 따라 한계가 생기게 된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동의하는 것은 현재의 선박으로는 대규모 병력을 이동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어떻게 무리를 해서 병력은 억지로 옮길 수 있다고 해도, 필요한 보급품까지 옮기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하다는 것이 모든 군사전문가들의 일치된 결론이었다.

바다 건너 외부에서 작정을 하고 공격해 온다고 해도 기껏해야 도시를 약탈하고 한 지역을 잠시 점거하는 정도가 한계인 것이다.

그래서 제국 동부와 남부 지역은 외국의 본격적인 침공을 걱정해 본 적이 없다.

그들은 교역로에서 날뛰는 해적의 토벌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래도 미래는 모른다면서 바다로부터 오는 공격을 대비하는 자들은 본토의 방위를 위해 주변의 섬을 점령하여 자치시를 세우거나 원주민과 협력하여 아예 섬국가를 세워버리기도 했다.

제국과 비교하면 도시 하나만도 못한 섬이 태연하게 국가를 자칭하고 왕을 내세우는 것이다.

그렇게 세운 자치시와 섬국가들이 해적과 외국의 공격을 막는 가장 외곽의 방어선이 되어 주었다.

그러나 제국 서부와 서남부의 상황은 동부와는 많이 달랐다.

이쪽은 여러 왕국들과 국경을 바로 접하고 있다.

제국 전체에 비하면 규모나 국력이 댈 것도 없지만 영지 몇 개 정도는 충분히 상대하고도 남을 만한 국력을 가진 왕국들이 연이어 국경을 맞대고 있는 것이다.

물론 길고 긴 국경선의 대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자들은 변경백들이다.

그러나 프리시오 공작이 담당해야 하는 국경선도 결코 짧지 않았다.

거기다 프리시오 공작은 변경백이 방어에 실패했을 때 뒤를 받쳐줘야 하는 역할도 해야 했다.

그래서 프리시오 공작은 언제든 외국의 대규모 군대가 육로를 통해 밀고 들어올 수도 있다는 것을 상정하고 움직였다.

만약 프리시오 공작이 제 역할을 못한다면 국경이 무너질 수도 있는 것이다.

실제로 역대의 프리시오 공작이 제국 내부의 정치 다툼에 끼어들면 거의 반드시라고 할 정도로 프리시오 공작이 직접 담당하는 국경에서 문제가 일어났다.

특히 프리시오 공작가에서 황제를 배출했을 때는 통치에 신경을 쓰지 못할 정도로 국경이 어지러워지기도 했다.

밀수를 핑계삼아 국경을 넘나드는 상인들에 대한 중과세와 압수를 남발하는 것은 기본이었다.

강도와 약탈자가 갑자기 급증하고 행방불명되는 상인이 늘어나는 것도 흔하게 발생하는 일이었다.

왕국군이 위장한 것이 분명한 ‘잘 무장한’ 도적떼가 국경을 넘어서 약탈을 자행하는 사태 역시 드물기는 하지만 종종 벌어졌다.

이런 사태까지 벌어지면 정치적인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다시 공작령으로 돌아와야 했다.

그러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국경이 조용해진다.

그럴 때마다 프리시오 공작은 뭔가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했다.

그러나 국경을 걸어 잠그는 것은 곤란했다.

애초에 프리시오 공작령의 땅 자체가 척박한 편이라서 외부와의 교역은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원체 땅이 넓고, 인구가 많아서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지 풍요로운 곳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눈을 돌린 것이 남쪽에 있는 리딕슨 공작의 세력이었다.

남부 해안 지대를 점유하는 리딕슨 공작의 세력은 규모는 작지만 외부와의 교역을 통해 쌓은 부는 절대 작지 않았다.

특히, 돈으로 운영하는 용병대의 힘은 프리시오 공작이라고 해도 만만히 볼 수 없었다.

그러나 바로 붙어있는 두 세력 간의 체급차이가 너무도 명명백백했기 때문에 시간이 흐름에 따라 우열이 생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리딕슨은 자연스럽게 프리시오 공작의 뒤에 섰고, 언제나 프리시오 공작 편을 들어야 했다.

리딕슨 파벌의 귀족들 역시 자신이 리딕슨에게 속한 것인지 프리시오 공작에게 속한 것인지 헷갈려 했다.

아니, 일부로 헷갈리는 척했다.

몇 대를 이어서 끈질기게 회유하는 프리시오 공작의 손길을 쳐내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결국에는 남부의 귀족들 중에서 양다리를 걸치지 않은 귀족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가 되었다.

리딕슨 공작이 전사한 후 정통성 있는 후계자가 연달아 죽어나가고, 결국에는 리딕슨이라는 성을 쓴다는 것 이외에는 별 볼 것도 없는 방계의 친척이 공작위에 올랐다가 숙청을 당해도 리딕슨을 위해 목소리를 내주는 귀족이 없을 정도로 말이다.

그리고 프리시오 공작의 가신들은 너무 늦지 않게 리딕슨 공작의 세력권을 흡수한 것에 대해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프리시오 공작령의 힘을 온전히 문제 해결에만 쓸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프리시오 공작령에게 채워진 족쇄, 즉 주변 왕국과의 관계 설정에 대한 것 말이다.

*

“일단 주변 왕국들과 외교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제국의 선제후로서 외국과의 외교 관계를 맺지 못하는 제한이 있었지만 앞으로는 교류뿐 아니라 외교 관계까지 신경을 써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뒤를 안전하게 하자면 내줘야 할 것이 있을 텐데? 빈손으로 하는 약속은 지켜지지 않아.”

“결혼 동맹을 제안합니다.”

외교의 기본 중의 기본인 결혼 동맹이다.

서로 공격을 하지 않고 잘 지내보자는 약속의 담보로 인질을 보내는 것이다.

만약, 예고도 없이 결혼 동맹을 깬다면?

그러면 다시는 외교라는 것을 하지 못하게 된다.

기본적인 약속조차 지키지 않는 세력을 믿어 줄 국가는 없으니까.

결혼 동맹을 깨고 싶다면, 이혼을 선언하고 인질을 다시 되돌려 주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서로 전쟁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벌면서 최후의 협상을 하기도 하는 것이다.

“결혼 동맹. 나쁘지 않은 선택이지. 그러면 누구를 보내는 것이 좋을까?”

“대공자를 제외한 분들은 다 고려해야 합니다. 우리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왕국만 해도 셋입니다.”

“둘째는 제외하게. 만약을 대비할 필요가 있으니까.”

“돌아올 일이 생기면 돌아오게 하시면 되지 않습니까?”

갑자기 끼어든 가신의 순진한 의견에 프리시오 공작은 가볍게 눈살을 찌푸렸다.

아무래도 가신들에게 외교는 아직 익숙하지 않는 분야였다.

게다가 저자는 부주의하게도 첫째의 유고를 전제했다.

이제 저자의 출세는 물 건너갔다고 해야 할 것이다.

“처가를 등에 업고 내전을 벌이는 꼴을 보고 싶으면 보내도 괜찮겠지.”

그제서야 결혼 동맹으로 인해 외국에서 참전을 선언할 수 있는 명분이 생긴다는 것을 인식한 일부 가신들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외교에서 이익만 취할 수는 없으니까.

뒤가 안전해지는 것만으로도 결혼 동맹의 가치는 충분했다.

프리시오 공작은 지금의 평온함은 잠깐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조만간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했던 전쟁이 벌어지리라는 것은 프리시오 공작뿐 아니라 이자리에 있는 누구라도 동의하는 사실이었다.

조만간?

아니, 당장 오늘이라도 가능하지.

지금 전쟁터에 있는 귀족들은 정치판에서 굴러먹던 자들이다.

적도 아군도 없는 정치판에서 서로의 뒤통수를 쳐대던 자들이란 말이다.

과연 그들이 전쟁터에서는 어떻게 행동할까?

이를테면 뱅트손과 스케티가 사생결단의 기세로 싸우고 있다고 하지만 자신을 내버려 두고 그들이 계속 그런 식으로 싸우리라고는 믿기 힘들었다.

둘이 힘을 합쳐서 서부로 밀고 들어오고 있다는 보고서를 든 전령이 지금 당장 회의실로 뛰어 들어와도 놀라지 않을 자신이 있다.

동부?

선제후였던 공작들이 모조리 죽어 나갔을 정도로 혼란스러운 곳이지만 그만큼 격렬하게 새로운 질서를 세우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전투에 능숙한 자들이 바다를 가로질러서 침입하기라도 하면 골치 아파진다.

적은 줄이고 동료는 늘려야 한다.

나 대신 싸워줄 자들이 있으면 더 좋고.

프리시오 공작은 결혼 동맹에 대해 길게 논의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결혼 동맹은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다.

“결혼 동맹을 위해 교섭한다는 것만으로도 주변 왕국의 도발을 막을 수 있다. 예식이나 격을 맞추는 것도 서로 체면이 손상하지 않을 정도면 돼. 진행시키게.”

“예. 공작 각하.”

“그리고 동부에서의 침입을 선제적으로 막고, 다른 대륙과의 교역을 활성화하기 위해 제국 남부의 섬 몇 군데를 점령한다는 계획. 그것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명령만 내리시면 가능합니다. 리딕슨과 계약했던 용병들의 계약을 승계했고, 최근에 새로운 용병대와도 계약을 맺어서 해상 전투에 관해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합니다.”

“새로운 용병대?”

“예. 에어베드 용병대라고 해전이 전문인 용병대가 있습니다. 제국 출신은 아닙니다.”

“해전 전문이라고? 설마 해적 출신은 아니겠지?”

“이런 경우는 대개 소문이 빠릅니다만, 해적 출신이라는 소문은 없었습니다. 경력도 상선 경호가 주된 경력이었습니다. 그리고 바람을 다루는 신비에 접한 용병도 있다고 하더군요.”

“바람의 신비라니 웃기지도 않는군. 바다에서 부는 바람이 얼마나 무섭고 파괴적인데! 더위나 식히는 바람으로 무슨. 뭐,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 그러면 섬 쪽도 진행하도록 해.”

“예. 공작 각하.”

*

태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항구에 정박한 배들은 파도와 바람에 흔들리다가 자기들끼리 부딪치기까지 했다.

침몰하는 배를 보며 망연자실해하는 선원과 항구의 인부들은 갑자기 잦아지는 바람을 느끼고 어리둥절해했다.

오랜 경험상 아직도 하루는 더 난리를 쳐야 할 태풍이 갑자기 잦아든 것이다.

그때 몇 척의 배가 항구로 들어왔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손바닥이 그려진 깃발, 에버베드 용병대의 깃발을 매달고 있는 배였다.

배에서 한 무리의 용병들이 하선을 했다.

아직 여인이라고 하기에는 아직 어려보이는 소녀까지 포함된 일행이었다.

그들이 하선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시 태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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