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회차 기사가 살아가는 법-128화 (128/248)

128. 빛의 기둥의 정체

경악한 표정으로 나를 보는 자들이 있었다.

아르보그 공작, 그리고 그의 거인들 모두가 믿을 수 없는 것을 봤다는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빛의 기둥이 밝아진 일이 그렇게 충격적이었나?

나는 살짝 당황스러운 감정까지 느끼며 적들과 거리를 두기 위해 뒤로 물러섰다.

자연스럽게 빛의 기둥에서 벗어난 것인데, 내가 빛의 기둥에서 벗어나자 그때까지도 주변에 있는 다른 빛의 기둥보다 밝았던 빛의 기둥이 서서히 어두워졌다.

결국 다른 빛의 기둥과 별다른 차이가 없을 정도로 어두워져서야 더 이상의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아르보그 공작은 경악한 얼굴로 나를 보다가 심각한 분위기로 변하며 주변의 거인에게 속삭이듯 몇 마디 했다

별로 멀지도 않은 거리였기에 그가 하는 말은 내게도 다 들렸다.

“저 밝기가 설마 능력을 흡수하는 비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겠지?”

“글쎄요. 확신할 수 없습니다. 족장.”

“안돼. 빛의 기둥은 내 것이야. 다른 자가 내 것에 손을 대는 것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어.”

그리고 그는 나를 가리켰다.

“죽여. 절대 여기서 살아가서는 안 돼.”

살고 싶다면 싸워야 했다.

여기에 있는 자들을 이겨야 살아서 나갈 수 있다.

*

윌리엄이 처음 공동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아르보그 백작은 윌리엄에 대한 기억을 떠올려 보았다.

아르보그 공작이 볼 때, 윌리엄 백작부군은 흥미로운 사람이었다.

백작령의 주인과 결혼하는 평민 기사라니!

연극 아니면 역사서에서나 나올 법한 인물이 현실로 튀어나온 것이다.

게다가 그 실력과 배짱은 태어나면서부터 귀족이고 지배자였던 사람조차 상대하기 버거울 정도였다.

몇 대를 이어가며 가문을 건설하고 시의 유력자로 활동해온 귀족조차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숙청해버렸고 전투에서는 언제나 제일 앞에 섰다.

귀족을 보면 일단 고개를 조아리고 보는 평민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사람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르보그 공작이 윌리엄을 높게 평가하는 것은 그의 개인적인 역량이었다.

칼마르에 정착한 것도, 리네아와 인연이 닿은 것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 칼마르의 군부와 의회 중 일부는 윌리엄의 사람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정도였다.

윌리엄의 사람이 곳곳에 박히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그가 백작부군이라서 가능한 것이 아니었다.

아무리 백작과 결혼한다고 해도 외부에서 굴러들어온 평민 기사 따위를 존중해줄 귀족이 얼마나 되겠나?

결국 이 모든 것은 그의 역량으로 봐야 했다.

심지어 칼마르의 백작 리네아조차 윌리엄의 장악력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바르거 막시밀리안의 계승식에서 만나본 둘은 강한 연대로 묶여 있는 동료이자 부부였다.

지금 당장은 그사이를 비집고 들어갈 틈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결국 훗날을 기약하며 보내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사람이 혼자서 ‘신비의 전당’에 나타나다니!

처음에는 두 눈으로 보면서도 믿어지지 않았다.

자신의 신분이 가지는 중요성에 대한 감각이 있는지 의심스러웠다.

그리고 몇 겹으로 깔아놓은 경계망은 또 어떻게 뚫고 들어왔는지 그의 실력에도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자신의 기사와 병사들이 병신이 아니라는 것은 자신이 더 잘 알았다.

믿을 수 있는 정예병력이고 자신의 실력을 실전으로 증명한 자들이다.

그런데 어떻게?

그러나 동시에 반가운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윌리엄이 가진 모든 것을 알아낼 수 있는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다.

윌리엄이 칼마르에 대해 알고 있는 내밀한 사정, 칼마르가 아르보그 공작령에 뻗어둔 첩보망, 그리고 윌리엄의 비밀까지.

아르보그 공작은 윌리암의 속마음에 숨겨둔 모든 것을 알아 낼 자신이 있었다.

왜냐하면 아르보그 공작은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그의 신비였다.

물론 그는 신비를 깨달은 자는 아니었다.

신비를 깨달을 정도로 괴팍한 자는 공작이 될 수 없으니까.

그런 사람은 신비를 깨닫는 대신 인간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잃어버린다.

애초에 아르보그 공작은 단순히 신비와 맞닿은 자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능력도 별 볼일 없는 것이었다.

그 수준이라는 것은 단순히 눈치가 좋고 머리가 비상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속마음을 유추해내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을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서 아르보그 공작이 모든 조건이 맞아떨어지고 운까지 좋으면 가끔가다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도 있다는 것은 오직 그만이 아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곳, ‘신비의 전당’에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빛의 기둥에 들어가 본 그는 자신의 신비가 몇 단계나 강화되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다른 사람의 속마음을 어쩌다가 슬쩍 엿보는 것이 아니라 그냥 대놓고 읽고 듣는 것이 가능해진 것이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절반.

그의 진정한 가족인 거인족의 전사들도 ‘신비의 전당’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빛의 기둥에 들어가면 능력이 강화된다!

물론 모든 사람이 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급격하게 강해지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세력에 속한 자들 중 많은 자들은 이전에는 감히 바라지도 못할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갖추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충성은 그러한 실력을 하사한 자신에게 향할 것이다.

부하들에게 강해짐을 하사할 수 있는 장소를 확보하는 것만으로도 그의 세력은 과거의 선제후들 중 으뜸이 될 것이다.

과거에는 가장 약했던 자가 미래에는 가장 강한 자가 되는 것이다.

그는 진정으로 미래를 꿈 꿀 수 있게 되었다.

인간은 물론이고 아인종까지 끌어모으며 미래를 대비했고, 심지어 그의 부친은 거인족의 도움을 얻기 위해 거인족의 여자를 후처로 들이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르보그 공작가는 4개의 선제후 가문 중 가장 열세였다.

그러나 이제 그런 과거는 사라지고 자신을 정점으로 하는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윌리엄 백작이 나타났을 때 기대와 달리 자신의 신비가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치 그가 열 새로운 시대를 부정하는 것 같았다.

설마 거리 때문에?

그래서 그를 가까이 오도록 불렀다.

그러나 거리 때문도 아니었다.

윌리엄을 가까이 다가오게 했지만 그의 속마음을 엿볼 수 없는 것은 여전했다.

그래서 이리저리 말을 걸면서 그의 마음을 흔들어 보았다.

그제서야 윌리엄의 속마음을 몇 개의 분절된 단어로 들을 수 있었다.

아주 심한 잡음과 함께.

‘용의 거처’라는 작은 소득이 있었고, 그것을 이용하여 한 번 더 윌리엄을 흔들어보고자 했지만 실패했다.

울화가 치밀었다.

‘신비의 전당’에서 자신의 신비가 강화된 후로 처음 겪는 실패였다.

좀 더 시험을 하고 싶었지만 다급해진 그의 마음이 그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대신 심하게 말을 하며 상대의 마음을 흔들어 보려고 했다. 그러나 아르보그 공작의 의도와 달리 윌리엄의 속마음을 읽는 것은 여전히 불가능했다.

거기까지였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래서 아르보그 공작은 윌리엄 백작을 사로잡기로 했다.

그의 의도를 실행할 자들은 강화된 거인족이었다.

전투는 아르보그 공작의 예상에서 크게 빗나가지 않았다.

윌리엄 백작의 실력이 듣던 것보다 좀 더 뛰어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10명의 거인족을 이길 수 있는 실력은 아니었다.

설사 거인족을 이길만한 비장의 수를 숨기고 있다고 해도 이들을 상대로는 아니다.

절대 불가능하다.

이곳에 있는 10명의 거인족은 빛의 기둥이 제공하는 능력의 강화를 잘 받아들이는 자들이었다.

게다가 이미 몇 달간에 걸쳐 빛의 기둥 안에서 최대한 능력의 강화를 받아들이기까지 했다.

그래서 지금 이곳에 있는 거인족의 신체적인 능력은 일반적인 거인족을 훨씬 상회한다.

일방적으로 한쪽 구석으로 몰리며 곧 생포될 윌리엄 백작을 보니 조만간 제압해 버릴 남부의 귀족들을 보는 것 같았다.

윌리엄의 발악으로 거인 하나가 눈을 잃은 후 분노한 거인이 윌리엄을 잡아서 던질 때까지도 그 기분은 그대로였다.

그러나 윌리엄이 수십미터를 날아가서 땅에 구르더니 빛의 기둥 안까지 들어가 버린 후에는 모든 것이 변해 버렸다.

빛의 기둥은 육안으로 확인하기 어려울 정도로 미약한 빛이 바닥에서 천장까지 기둥처럼 솟아있는 것을 말한다.

직경은 2미터 정도고, 그 숫자도 다 합쳐 봐야 10여 개에 지나지 않았다.

여기까지 내려온 모든 인원이 기둥 하나씩을 차지하면 대충 맞는 정도였다.

빛의 기둥이 제공하는 능력의 강화는 그 안에 들어가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알 수 없는 기운을 조금씩 받아들이는 느낌으로 있다보면 전체적으로 조금씩 몸도 능력도 강화된다는 것을 느낀다.

그러나 받아들이는 양은 각자 달랐다.

가장 많이 받아들인 것은 아르보그 공작이었다.

그다음은 거인족.

수인족은 개인의 편차가 무척 심했다.

그러나 인간은 전혀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 때 알게 된 것이 받아들이는 양에 따라 빛의 기둥이 미세하게 밝아지거나 어두워지기도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윌리엄 백작이 빛의 기둥에 굴러들어간 것을 보면서도 딱히 대처하거나 걱정한 것은 없었다.

아무 영향이 없을 테니까.

그러나 그들의 방관은 예상치 못한 상황을 불러왔다.

윌리엄 백작이 빛의 기둥에서 일어서는 순간 빛의 기둥이 폭발하듯 강렬한 빛을 뿌린 것이다.

눈이 멀 정도로 강력한 빛이 잠깐 공동을 채웠다.

그 순간 광장에 있는 모든 자들은 눈을 가리며 몸을 떨었다.

산란된 빛으로만도 그들의 몸이 흥분되는 것을 막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마치 독한 술이라도 마신 것 같은 느낌이었다.

모두가 멍해서 제대로 반응도 하지 못하고 몇 마디의 말을 나누는 것이 고작일 때, 강력한 명령이 떨어졌다.

“죽여. 절대 여기서 살아가서는 안 돼.”

거인들은 명령을 따라 적을 향해 돌격해 들어갔다.

*

나는 지금까지 몰이꾼에게 몰리는 사슴처럼 이리뛰고 저리뛰면서 적을 피하기만 했다.

이렇게 피하기만 해서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저들보다 약했으니까.

한 번 부딪쳐보니까 지금까지 상대해봤던 거인들과는 다른 수준의 거인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강한 자들이었다.

그래서 가장 효율적으로 도망을 치며 탈출의 기회를 엿봤다.

그런데 지금 나는 눈앞에 몰려오는 거인들을 상대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근거없는 자신감에 당혹스러워하고 있었다.

그래도 그 자신감을 믿고 막 나갈 수는 없어서 일단 한 번에 상대할 적의 숫자를 줄이기 위해 뒤로 몸을 물렸다.

그때 나도 모르게 빛의 기둥 안에 또 들어가 버렸다.

내가 들어간 빛의 기둥은 다시 밝아졌다.

조금 전처럼 강렬한 빛은 아니었다.

눈을 떠서 주변을 볼 수 있을 정도는 됐으니까.

그래서 거인 중 하나가 나를 잡기 위해 달려들 때도 그 거인을 보며 칼을 들이밀 수 있었다.

그러나 내 칼은 목표를 잃었다.

나를 잡기 위해 달려든 거인이 빛의 기둥에 닿았을 때, 그것으로 끝이었다.

빛의 기둥에 닿는 부분이 분해가 되어 사라졌다.

마치 원래부터 미세한 가루를 뭉쳐서 거인의 몸을 만들어 놓은 것인 마냥, 빛에 닿는 순간 거인의 몸은 아주 미세한 가루로 변해 공기 중에 흩어졌다.

그리고 그 미세한 가루조차 미세한 물방울이 공기 중에서 증발하여 사라지듯 허공에서 그대로 사라졌다.

바닥에는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았다.

아니, 남아 있는 것이 있기는 했다.

거인이 걸쳤던 옷이 남아 있기는 했다.

빛의 기둥이 거인을 잡아먹기라도 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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