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회차 기사가 살아가는 법-105화 (105/248)

105. 길을 막는 외다리 암살자

“마을 중앙으로 간다.”

나는 그렇게 선언하며 가장 가까이 있는 자에게 비도를 던졌다.

약간의 심리적 허점을 노린 공격이었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던졌으니까.

그러나 공격을 당한 자는 예상했다는 듯 태연하게 비도를 쳐낸 후 그대로 버티고 섰다.

공격할 생각도, 도망갈 생각도 없다는 태도였다.

그가 들고 있던 도리깨에 달린 휘추리도 여유있게 흔들렸다.

과연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암살단 다웠다.

실력이 어떨지는 상대해 봐야 알겠지만, 태도는 우습게 볼 것이 아니었다.

심지어 다리도 정상이 아닌데.

그러나 암살자는 암살자다.

비겁한 살인을 하는 자들.

그들은 기사와 정면에서 맞붙어서 이기지 못한다.

설사 그런 자가 여기에 있다 하더라도 내가 그냥 두지 않겠다.

그가 내 기사에게 부상을 입힌다면 나는 그를 죽여버리겠다.

나는 양손에 칼을 각각 쥐고 암살자들을 향해 뛰어들었다.

마을 중앙으로 향하는 길을 막고 있던 암살자들은 나를 필두로 한 기사들의 돌격에 각자의 무기를 휘두르며 저항했다.

경보를 듣고 급하게 나왔는지 제대로 갑옷을 입은 사람은 없었지만, 무기를 들고 저항하는 모습에서 두려움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가장 앞에서 공격해 들어가는 내게 커다란 낫을 든 자가 견제하듯 대낫을 휘둘렀다.

더 이상 접근하지 말고 멀찍히 떨어지라고 시위하듯 크게 휘두르는 대낫은 사신이 들고 다닌다는 전승이 있는 무기답게 위협적이었다.

커다란 낫은 사람의 사지 한두개 정도는 단숨에 절단할 수 있을 정도로 날카로웠고, 낫이 달려있는 봉의 길이도 짧은 창보다는 더 길었다.

그는 대낫을 횡으로 길게 휘둘러서 공간을 확보한 후 내 어깨를 향해 대낫을 내리찍었다.

대낫의 봉으로 어깨를 친 후, 대낫의 날로는 어깨를 당겨서 자르거나 슬쩍 날의 방향을 바꿔서 목을 자르려는 속셈이다.

갑옷을 제대로 입지 못하는 일반 농민병에게는 위협적인 공격이겠지만 이 자리에 있는 우리는 모두 기사다.

갑옷도 충실하게 갖춰서 입었고, 저런 뻔한 속임수에 걸려들 정도로 실력이 낮은 자는 없다.

그리고 나는 여기 있는 기사들 중 가장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한다.

나는 긴 무기를 상대할 때의 원칙에 따라 오히려 대낫을 든 자에게 다가가며 대낫을 가볍게 밖으로 쳐냈다.

그러나 암살자는 이 정도는 예상했다는 듯 그대로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며 대낫을 짧게 잡고 위로 휘둘렀다.

날카로운 기운이 턱 아래에서 위로 치솟아 얼굴을 위협하며 지나갔다.

그 순간 나는 작정을 하고 대낫을 봉을 밖으로 후려치면서 앞으로 확 뛰어들었다.

칼에 맞은 봉은 깔끔하게 잘려서 낫 부분은 하늘로 날아갔다.

그리고 나는 공격 수단을 잃은 암살자를 향해 짧은 칼을 창처럼 일직선으로 찔러 넣었다.

한 걸음 더 암살자를 향해 움직인 내 동작,

길게 뻗은 내 팔,

그리고 60cm의 칼.

이 세 가지 요소가 결합된 내 공격은 긴 창으로 찌르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대낫을 들고 우리를 견제하던 암살자는 가슴에 칼에 박힌 채 뒤로 쓰러졌다.

하나를 해치웠다.

그러나 여기에 남아 있는 암살자들은 내 기사보다 숫자가 많았다.

역시나 대낫을 들고 있던 암살자가 쓰러지자마자 우리 둘 사이에서 끼어들 틈을 노리고 있던 다른 암살자 하나가 튀어나왔다.

곤봉을 들고 있는 암살자였다.

곤봉은 몽둥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겼지만, 그냥 몽둥이라고 부르기에는 곤란하다. 제대로 만든다면 아예 종류가 다른 무기가 된다.

알맞은 재료로 제대로 만든 곤봉은 무시무시한 둔기다.

가죽 갑옷을 입었어도 마치 안 입은 것처럼 일격으로 상대의 뼈를 박살 낼 수도 있고, 웬만한 무기 역시 맞상대하는 것이 가능하다.

심지어 칼이나 검 같은 것은 부러뜨릴 수도 있다.

곤봉을 들고 있는 암살자 역시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는 내 머리를 노리고 강하게 곤봉을 휘둘렀다.

휘두르는 곤봉에 실린 기세는 웬만한 도검은 저리 가라고 할 정도로 위협적이었다.

제대로 때리기만 한다면 사람 하나는 확실히 잡을 만했다.

제대로 때리기만 한다면 말이다.

무기를 든 자를 상대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무기로 효과적인 공격을 할 수 있는 적당한 거리를 주지 않는 것이다.

때문에 단검을 쥔 상대로는 간격을 넓히고, 창을 든 상대로는 간격을 줄이는 것이 기본이 된다.

곤봉을 상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곤봉이 효과적으로 사람을 때릴 수 없는 거리에 나를 놓으면 곤봉의 기세가 아무리 강렬해도 막상 타격은 별 게 아니게 된다.

나는 곤봉을 막기 위해 암살자에게 바싹 붙었다.

그리고 목적을 잃고 멈칫하는 곤봉을 잡고 힘으로 눌러 버렸다.

곤봉을 잡은 손을 오히려 내게 잡힌 암살자는 당혹한 눈빛으로 내게 발길질을 했다.

암살자가 신은 신발은 신발 끝에 칼날이 튀어나와 있는 전형적인 전투용 신발이었다.

그러나 전투용 신발이라면 나 역시 신고 있다.

그것도 묵직한 금속덩어리를 넣어 둔 전투용 신발을 말이다.

우리는 서로의 손을 잡고 발길질을 해댔다.

마치 바싹 붙어서 단검으로 서로 칼질하듯 현란한 발길질이 서로의 정강이를 노리고 공방을 벌였다.

그러나 정강이를 부수는 것도 아닌 바에야 이런 공방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서로의 전투용 신발이 몇 번 부딪치다가 정강이를 향해 찔러오는 전투용 신발의 칼날을 피하며 무릎을 올려쳤다.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을 얼굴에 그대로 새기며 굳어버린 암살자의 손을 놓고 완갑 아래에 고정해놓은 단검을 뽑았다.

그리고 단검으로 암살자의 목과 어깨 사이를 찔렀다.

그것으로 곤봉을 들고 버티던 암살자는 끝이 났다.

양손을 다 놓아주고 경동맥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를 피해 슬쩍 뒤로 물러서자 암살자는 뒤로 비틀거리며 두 걸음을 걷더니 곤봉을 놓치고 다리에 힘이 완전히 풀린 사람처럼 무너졌다.

대낫을 들었던 자는 자신의 무기를 잃고 가슴에 칼을 박은 채 땅에 쓰러져서 피웅덩이를 만들고 있었고, 곤봉을 휘두르던 자 역시 곤봉을 떨구고 목에서 피를 뿜어내며 땅에서 꿈틀대고 있었다.

내가 두 명의 암살자를 처리하는 동안 칼마르의 기사들 역시 암살자들을 쓸어버렸다.

거의 일방적으로 암살자들을 몰아붙이던 기사들은 내가 두 명의 암살자를 처리한 지 얼마 안 되어 한 명을 제외한 나머지 암살자들을 처리할 수 있었다.

이제 내 앞에는 한 명의 암살자만이 길을 막고 있었다.

내가 던진 비도를 쳐낸 사람.

도리깨를 든 외다리.

나무로 된 의족을 끼고 있음에도 정상적인 사람보다 더 빠르고 유연하게 움직이던 암살자였다.

*

외다리 암살자를 상대하던 칼마르의 기사는 열이 잔뜩 뻗친 얼굴로 씩씩대로 있었다.

다른 동료들이 길을 막은 암살자들을 처리하는 동안 자신은 제대로 접근도 하지 못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동료들끼리 있었다면 면목이 서지 않는 정도로, 놀림감이 좀 되고 힘든 훈련이 기다리는 정도로 지나갔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윌리엄 백작부군이 같이 있다.

리네아 여백작이 칼마르 백작령의 전반적인 운영을 담당한다면 윌리엄 백작은 군을 이끌고 밖으로 다니면서 전투를 하리라는 것은 모두가 예상하는 바였다.

영지를 가진 귀족들은 다 그렇게 하니까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대처법도 상식이나 다름없다.

영지의 관리들은 백작령의 운영을 담당하는 분께 잘 보여야 하고, 기사들은 같이 손발을 맞춰서 전투를 치러야 하는 분께 잘 보여야 하는 것이다.

더구나 윌리엄 백작부군은 칼마르에 정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영지에 미치는 영향력이 막강했다.

그의 눈 밖에 난다면 영지에서의 미래는 없는 것이다.

앞으로의 출세를 생각하면, 적어도 쓸모있는 기사라는 평가를 원한다면 이번에 제대로 실력을 발휘했어야 했는데!

그런데! 그런데!

복장이 터진 기사는 잔뜩 열을 받아서 다시 한 번의 기회를 노리기로 했다.

기사가 들고 있던 검을 외다리 암살자를 향해 겨누고 천천히 접근하자 모두의 시선이 그들을 향했다.

그것은 윌리엄도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윌리엄은 외다리 암살자가 그리 만만한 자는 아니라는 직감에 아직 거의 쓰지 않은 비도로 다시 손을 옮겼다.

외다리 암살자를 향해 천천히 다가가는 기사를 잃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직 기사의 검이 닿지 않는 거리,

그러나 도리깨의 휘추리가 닿을 만한 거리가 되었을 때 벽력처럼 도리깨가 휘둘러졌다.

예상했다는 듯이 기사가 검을 흔들며 휘추리를 쳐 냈지만 더 이상 다가가지는 못하고 검을 버린 채 뒤로 물러서야만 했다.

지금까지 공격을 그냥 쳐내기만 했던 도리깨의 휘추리가 검을 얽어매버렸기 때문이다.

외다리 암살자가 씩 웃고 도리깨를 흔들어서 휘추리에 얽힌 검을 자신의 뒤로 멀리 던져버리는 것은 일종의 도발이었다.

그러나 그 도발에 걸려서 뛰어든 칼마르의 기사는 없었다.

윌리엄이 가장 먼저 외다리 암살자에게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윌리엄쯤 되는 신분을 가진 귀족이 이렇게 전투의 일선에 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전투의 가장 일선에 서는 것으로 백작령 군부의 충성을 이끌어 내기도 했고, 무엇보다 자신보다 실력이 떨어지는 기사들을 낚아서 시간을 끌어보겠다는 외다리 암살자의 의도가 너무 투명하게 보여서 어쩔 수 없었다.

윌리엄이 회수한 칼까지 해서 양손에 칼을 들고 뛰어가자 외다리 암살자는 윌리엄에게도 같은 수법으로 도리깨를 휘둘렀다.

그리고 휘추리에 윌리엄의 칼 하나가 얽힌 것까지도 조금 전과 똑같았다.

그러나 닮은 꼴은 거기까지였다.

외다리 암살자가 윌리엄의 칼을 빼앗기 위해 도리깨를 흔들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윌리엄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도리깨와 회추리의 연결 부분이 뜯겨져 나갔다.

한순간에 도리깨는 그냥 긴 봉이 되어버렸다.

“휘추리가 나무가지로 되어 있는 것이 아니었군.”

윌리엄은 칼을 휘둘러서 칼몸을 감고 있는 가는 철사와 쇠사슬을 멀리 날려버렸다.

어떻게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가늘고 유연한 철사가 휘추리 대신 붙어 있고, 사이사이에 가는 쇠사슬도 붙어 있기도 했다.

잘 만든 기형병기였다.

그 말인즉슨 저 외다리 암살자가 들고 있는 긴 봉 역시 단순한 나무 장대로 보면 안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것은 윌리엄의 두 칼이 긴 봉을 후려칠 때 확인할 수 있었다.

외다리 암살자는 긴 봉으로 윌리엄을 향해 강하게 내리쳤다.

긴 봉의 길이가 있어서인지 공기를 가르는 소리만 들어도 위협적인 공격임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윌리엄은 칼을 봉에 살짝 갖다 댄 것만으로도 봉의 정체를 알아냈다.

철심이 가운데 박힌 봉이었다.

온전히 철로 된 봉을 사용하기에는 힘이 딸리는 자들이 쓰는 무기다.

윌리엄은 씩 웃으며 칼을 바닥에 던져 버렸다.

그리고 맨손으로 외다리 암살자를 향해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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