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회차 기사가 살아가는 법-79화 (79/248)

79. 해적 토벌 준비

아니, 지휘자를 유력한 귀족으로 해달라면서 나를 그런 표정으로 바라보면 나보고 가라는 소리 아닌가요? 옌센 경?

이 할아버지 너무 하시네.

“유력한 귀족이 윌리엄 경을 의미한다면 곤란합니다. 윌리엄 경은 나와 함께 이제 막 귀환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당분간 휴식이 필요하다는 것은 옌센 경 역시 동의하실 겁니다.”

리네아 여백작은 부드럽지만 단호한 말로 옌센의 의도를 차단했다.

그러나 옌센은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칼마르와 연대를 하고 있는 도시들은 여럿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신뢰할 수 있는 거래 상대이고 폭풍우 칠 때의 피난처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이익을 나누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거래 상대와 이익을 나누는 것이 우리의 원칙이고 우리의 해상교역로가 유지되는 근본입니다. 그러나 순스발, 트롤헤탄은 우리와 연대를 하고 있는 도시들 중에서도 특별합니다. 단순한 거래 상대가 아닙니다. 우리의 조선소와 벌목장이 그 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들의 보호자를 자처하며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입니다. 만약 그들과 우리 사이에 문제가 생긴다면 우리는 상선과 전투함을 건조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게 될 겁니다.”

“설마 다른 곳에서 손을 뻗기라도 한 겁니까?”

리네아 여백작의 말에 옌센은 뭔가 기분 나쁜 생각이 떠오르기라도 한 것처럼 얼굴이 일그러졌다.

“선제후 지슬리 공작의 파벌에 속하는 게스티 백작이 손을 쓰는 것 같습니다.”

“게스티 백작이라면 질이 무척 안 좋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해적들의 짓이라고 알려진 약탈 중 일부는 게스티 백작의 상선단이 저지른 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행방불명된 상선의 경우에도 약탈품이 게스티 백작의 영지에서 발견되었습니다.”

“기억합니다. 그 상선이 옌센 경의 가문 소속이었지요.”

“브롬 연합의 보험에 가입한 덕분에 금전적 손해는 크지 않았습니다. 단지 사람을 좀 잃어서······”

이 곳의 역사도 그렇고, 실시간으로 돌아가는 도시 사이의 이러한 관계에 대해서도 나는 잘 알지 못한다.

아무래도 그런 것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으니까.

지금도 나를 제외한 모두가 동일한 배경지식을 갖추고 논의를 진행해 나가고 있다.

이렇게 내가 알지 못하는 일을, 다른 사람들은 당연히 알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행동할 때 나는 내가 칼마르에 이제 막 얼굴을 들이민 신참자임을 자각하게 된다.

가야 할 길이 멀다.

“어쨌든 조선소가 있는 순스발에 게스티 백작이 해적 토벌을 명분으로 해서 자주 방문하고 있다고 합니다. 순스발의 시장이라고 해봐야 남작으로 예우받는 받는 기사 출신이니 게스티 백작에게 휘둘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만약 용병대 지휘관의 격이라도 맞추지 않는다면 게스티 백작이 끼어들 때 제대로 상대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시의회 의원들 중 관록이 있는 분을 하나 선출해서 용병대를 대표하게 하는 것은 어떨까요?”

“정 방법이 없으면 그렇게라도 해야겠지요. 지금 고용된 용병대장들은 대부분 평민 출신이니까 전체 지휘자는 반드시 귀족으로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게스티 백작이 사사건건 시비를 걸어올 수도 있습니다. 자칫 해적이 토벌대의 머리 위에서 날뛰는 꼴을 보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럴 때면 리네아 여백작이 칼마르의 지배자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녀가 나를 용병대장으로 보내지 않겠다고 명확하게 의사를 표시하자 칼마르 시의 실권자라고 할 수 있는 유력자들이 더 이상 직접적으로 말을 하지 못한다.

그냥 빙빙 말을 돌리면서 내가 갔으면 하는 표시만 내고 있다.

그래도 리네아가 거부한다면 누군가 실전 경험 많고, 강단 있는 시의회 의원 하나가 파견되겠지.

내가 회사에서 일할 때 느낀 것인데,

배경으로 권력자를 두고 있어도 자기 실력을 보이지 못하면 어느 순간 잊혀지기 십상이다.

아니면 배경이었던 권력자의 관심이 사라지는 순간 내쳐지거나.

신참자는 실적으로 증명해야 한다.

그것은 어디서나 마찬가지다.

“리네아. 내가 가겠습니다.”

내 말에 리네아 여백작이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우리는 칼마르로 귀환하게 되면 당분간 몸을 사리면서 영지의 개발에 전념하기로 했다.

그러나 옌센에게 해상교역로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 건은 그냥 내버려두면 분명히 문제가 생긴다.

용병을 모집해서 해적 토벌에 나서야 할 정도로 해상교역로의 상태가 나빠졌고, 해적 토벌에 나서야 할 자들 역시 준비가 부족하다.

더구나 토벌대의 일부가, 그것도 백작이라는 고위 귀족이 해적과 결탁했으리라는 의심까지 받고 있다.

만약 상황이 더 악화되면 칼마르의 이익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칼마르의 용병 고용과 암염 수출, 식량 수입은 해상교역로에 크게 의존하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의 해결을 다른 사람 손에 맡긴다고?

그거 되게 무책임해 보이는데?

“리네아. 백작령의 정비는 내가 없어도 됩니다. 유능하고 충성스러운 가신과 관리들을 믿읍시다. 그러나 순스발과 트롤헤탄에는 아무래도 내가 가야 할 것 같습니다. 해적 토벌이 제대로 진행되어 해상교역로의 안전을 지키는 문제도 중요하겠지만 막상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들과 칼마르와의 연대가 느슨해진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리네아, 그대가 직접 갈 수 없으니 나라도 가서 우리의 연대를 재확인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백작의 정식 약혼자라면 그들의 체면을 세워 줄만한 상대라고 봅니다.”

“그대는 언제나 바쁘군.”

“되도록 빨리 다녀오겠습니다.”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아도 된다. 해상교역로를 점검하는 일이니까 반년은 족히 걸리겠지. 선친께서는 1년을 넘게 걸려서 다녀오시기도 했다.”

조금은 물기가 서린 기색이었다.

나는 별로 안 좋은 기억을 되살린 벌로 꽤나 오랜 시간동안 리네아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어줘야 했다.

두 명의 귀족은 어느 사이엔가 조용히 사라진 후였다.

나는 바로 다음 날부터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

칼마르에 조선소를 두지 않고 순스발에 조선소를 둔 것은 전적으로 나무 때문이다.

배를 만들 수 있는 크고 단단한 나무는 칼마르 근처에서 구하기 어렵다. 가구를 만드는 나무라면 모를까 배를 만드는 나무는 제국 중부보다 더 고위도 지방으로 올라가야만 제대로 된 것으로 구할 수 있다.

설사 나무를 구할 수 있다고 해도 그것을 칼마르까지 끌고 온다는 것을 상상하기 어렵다.

강 상류에서 하류로 강을 타고 내려보내는 것도 아니고 바다를 가로 질러서 끌고 오다니!

가벼운 폭풍이라도 한 번 치면 싸그리 다 잃어버리고 말 거다.

그래서 칼마르는 배 만들기에 좋은 나무를 대량으로 구할 수 있는 적당한 곳에 조선소와 벌목소를 운영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 때 칼마르와 손을 잡은 곳이 순스발과 트롤헤탄이었다.

둘 다 척박한 땅 때문에 가난을 운명처럼 달고 살던 지역이었다.

바다를 끼고 있지만 제대로 된 고깃배도 만들지 못할 정도로 아무 것도 없던 지역이라서 칼마르의 투자 제안은 그들에게 하늘에서 돈비가 퍼붓는 것과 비슷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작은 어촌 마을과 작은 산촌 마을이었던 순스발과 트롤헤탄은 그 이후 칼마르와 함께 무서운 기세로 발전을 거듭했다.

순스발의 작은 조선소는 제국에서도 손꼽아 주는 거대한 조선소로 발전했고, 트롤헤탄은 그 조선소에 나무를 대어주며 성장했다.

결국 그들은 자신들의 영주에게서 자유 도시가 될 권리를 사들이기까지 했다. 거기에 도달하기까지 칼마르는 성실한 계약 상대자이자 투자자로, 그리고 지금은 보호자로 같이 움직여 왔다.

그래서 순스발과 트롤헤탄은 마치 권리를 행사하듯 칼마르에게 보호를 요청하는 것이다.

“선원은 진짜 충분한 건가? 선원이라는 것이 갑자기 하라고 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잖은가? 경험을 좀 쌓아야 될 텐데?”

“선원은 충분하다고 합니다. 최근 1년 사이에 해상교역로에서 해적이 날뛰면서 상선의 운항이 줄어들었습니다. 놀고 있는 선원은 많습니다.”

“선상 전투를 할 용병을 모두 다리클리프에서 모집해야 하나? 중심을 잡아줘야 할 기본 부대는 데려가야 하지 않을까?”

“그것은 크게 상관이 없을 겁니다. 바다에서 싸우는 것은 땅에서 전투하는 것과 다릅니다. 작은 성채를 움직여서 싸운다고 할까요. 어차피 배를 움직이는 것은 선원이고 선원은 모두 칼마르의 명령에 따릅니다. 용병은 소속이 어디든지 전투함 단위로 싸울 수 밖에 없습니다. 용병이 불리하다고 멋대로 도망칠 수 있는 전장이 아닙니다. 직속 부대는 필요하겠지만 그렇게 많은 수는 필요없습니다.”

나는 해상 전투에 대해 잘 모른다.

해전에 대한 내 상식은 상대방의 배가 보이지도 않는 먼 거리에서 미사일을 쏘아대는 현대 지구에 맞춰져 있다.

영화에서조차 가까운 거리에서 대포를 쏘고 백병전을 벌이는 모습을 보았을 뿐이다.

결국 내가 가진 해전의 이미지는 원시적이나마 화약무기가 등장한 이후부터인 셈이다.

처음부터 서로 활을 쏘고 배를 잇댄 후 백병전을 벌여서 상대의 배를 빼앗는다고?

배 하나하나의 전투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해야 해전을 이길 수 있을지 잘 상상이 되지 않는다.

해전에 대해 잘 안다는 용병대장 하나가 내 질문에 대답을 하고 있지만 그래도 해전의 이미지가 잘 잡히지 않았다.

단지 한가지는 분명히 알게 되었다.

불이 필요하다.

공격 수단으로 쓸 불이.

작은 성채를 움직여서 싸우는 것이 해상전투라면 승리하는 법은 의외로 간단할지도 모르겠다.

바로 그 작은 성채를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해서 하나하나 박살을 내거나, 아니면 작은 성채 자체를 아예 통째로 불을 질러 버리면 된다.

그 작은 성채라는 것이 나무로 만들어 진 것이니 불 지르기에도 쉽고 말이다.

물론 나만 그런 생각을 한 것이 아니어서 화약이 없는 이 세상에서도 배를 상대로 해서 불을 무기로 삼는 무기는 여럿 있다.

불화살이라든가 화염병이라든가 하는 무기가 그것이다.

그러나 나는 좀 더 위력적인 무기를 하나 더 떠올릴 수 있었다.

불에 대한 신비.

파웰 상단을 도와 전투를 할 때 피요트르라는 마법사를 본 적이 있다.

불의 신비를 가진 자라고 하는데 눈에 보이는 거리에서 불을 일으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제대로 공격이 먹히면 사람을 태워버릴 수도 있지만 방어가 쉬워서 그렇게 위력적이지는 않다고 들었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 보면 방어가 쉽다는 것도 기사 정도는 되는 사람이니까 하는 말이다.

일반인이라면 당연히 방어가 어려울 것이고, 심지어 상대가 나무나 천이라면 간단하게 불에 휩싸이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내 의문을 풀기 위해 소환된 마법사 피요트르는 정원의 관상목 하나를 불에 휩싸이게 만드는 것으로 내 의문을 풀어주었다.

그리고 내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대뜸 영주성에 있는 관상목에 불을 질러서 신비에 접한 자들은 역시 정상이 아니라는 세간의 평판에 일조했다.

나는 용병대 하나와 간부 선원 몇, 그리고 마법사 피요트르와 함께 칼마르를 떠났다.

목적지는 섬국가 다리클리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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