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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차 기사가 살아가는 법-70화 (70/248)

70. 막시밀리안 공작령에서

막시밀리안 공작령은 일반 남작령이나 백작령과는 비교를 불허하는 거대한 영지다.

작은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곳에 막시밀리안 공작을 정점으로 하는 귀족들이 모여드는 중이었다.

그것은 막시밀리안 공작위를 계승하는 바르거의 작위계승식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행렬이기도 했다.

바로 얼마 전까지도 바르거의 작위 계승에 이의를 제기하며 반항하는 자들이 적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막시밀리안 파벌에 속한 귀족들 사이에서 큰 변화가 일어났다는 말이다.

그것은 대안의 부재였다.

막시밀리안 공작이 급사함에 따라 벌어진 궁중 쿠데타에서 막시밀리안 공작의 아들들이 다 죽어버렸다지만 그래도 바르거와 비슷할 정도의 정통성을 가진 귀족이 몇 명 더 있었다.

그러나 그런 귀족들조차 암살당하거나 망명하면서 바르거 이외에는 막시밀리안 공작위를 주장할만한 귀족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바르거의 계승을 반대하던 귀족들도 내세울 공작 후보가 없어지자 결국 손을 들고 말았다.

바르거는 반항적인 귀족 중 일부는 숙청하고 일부는 받아들이면서 자신이 막시밀리안 공작위의 계승자임을 명확하게 했다.

그 결과가 성대한 작위계승식으로 나타난 것이다.

"모디 경. 오랜만에 봐서 반갑기는 한데 모양이 좀 우습구만."

"욘 경. 별로 좋은 기분이 아니니까 적당히 하게."

"내가 듣기로는 황금이 상자째로 들어갔다는 말이 있던데 기껏 여기에 서 있는 건가?"

"내가 그렇게라도 했으니 여기에 서 있는 것이지. 나처럼 과감하지 못했던 자들 중 몇은 호라빅 강밑에서 후회하고 있을 걸."

바르거 막시밀리안 공작의 측근과 유력한 귀족들이 계승식을 앞두고 모여서 오찬을 나누는 동안 오찬에 끼일 정도는 아닌 욘 같은 중소귀족들은 밖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들 중에는 중소귀족이라고 하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자들도 제법 있었다.

전대 막시밀리안 공작의 측근이었다든가, 정계의 돌아가는 형편에 어두웠던 모디 같은 귀족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그들은 전대 막시밀리안 공작의 장남이었던 비제가 죽은 후에도 태도를 명확하게 하지 않고 있다가 뒤늦게 편을 바꾸기도 하고, 돌아가는 상황을 너무 늦게 파악해서 바르거에게 머리를 수그리고 황금으로 대가를 치르기도 했다.

그마저도 못한 자들은 막시밀리안 공작령의 중심을 흐르는 호라빅 강에 마대에 넣어져서 던져지거나 자신의 저택과 함께 불에 타 버리기도 했다.

이런 서슬 퍼런 시국에 오찬에 초대를 받지 못했으니 점심을 먹고 오겠다고 자리를 비울 정도로 정치감각이 없는 귀족은 없었다.

다들 오찬이 끝나기를 기다리며 공작 저택의 외곽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밖에서 기다리는 귀족들의 바람과 달리 오찬은 빨리 끝나지 않을 모양이었다.

오찬이라고 하지만 도저히 식사를 할 분위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충언인지 아니면 공격인지 애매한 귀족들의 화술 때문에 식사 자리는 점점 날이 선 분위기로 변하고 있었다.

"바르거 공께서 선제후 아르보그 공작을 지지한다고 직접 의중을 밝히신 것은 경솔했습니다."

"맞습니다. 너무 성급한 언급이었습니다. 아무리 아르보그 공작의 도움이 있었다고 해도 이렇게 저자세를 취하는 것은 바르거 공께도 안 좋습니다."

바르거는 작위계승식이 바로 코앞 인데도 불구하고 뻣뻣한 귀족들의 태도에 터지는 울분을 간신히 참아냈다.

이렇게 뻔한 소리로 발목을 걸어대는 귀족들이지만, 그들은 자신의 손을 가장 먼저 들어준 유력자들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나 역시 경들의 조언에 동의합니다. 그러나 아르보그 공작의 요청 역시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물론 그렇습니다만, 이런 식으로 너무 저자세로 나가면 아르보그 공작이 뭔가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설마 그럴 일은 없겠지만 미리 준비를 해 두는 것이 필요합니다."

귀족들의 언어답게 명확하게 이야기 하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냥 에둘러 말하면서 알아듣는 사람만 알아들으라는 식으로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 자리에서 저 말을 못 알아들을 사람은 없었다.

아르보그 공작을 언급하는 것은 그냥 명분에 지나지 않는다.

핵심은 미리 준비를 해 두자는 것이다.

전투를 미리 준비할 수 있을 정도의 이권을 달라는 말을 비비 꼬아서 저렇게 말하는 것이다.

물론 진짜 아르보그 공작을 견제한다는 것도 아니다.

아르보그 공작이 진지하게 나오면 다 도망쳐 버릴 사람들이 견제는 무슨.

그리고 비비 꼬아서 말한 것을 다시 한 번 직설적으로 풀어주면 논공행상을 빨리 하라는 독촉이 된다.

귀족의 언어라는 것이 이렇다.

어릴 때부터 귀족으로 교육을 받지 않으면 같은 말을 듣고도 다른 소리를 하기 십상이다.

이래서 갑자기 귀족이 된 자가 귀족의 일원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겉도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상식에 따르면 적어도 3대는 흘러야 대충 귀족 흉내를 내는 것이 가능해진다고 한다.

바르거의 앞에 있는 자들 중에서 3대를 넘지 않는 귀족은 없었다.

다들 흥미로운 눈으로 바르거의 대답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바르거는 두 손을 들 수 밖에 없었다.

그는 권력 기반이 너무 약했다.

아르보그 공작이 딸려준 기사들이 아니라면 그가 휘두를 만한 직속 병력조차 얼마 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을 지지해준 귀족들과 척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바로 모레 있을 충성 서약식을 망쳐버리기 싫다면 그들의 요구를 들어줘야 한다.

다른 방법은 없다.

바르거는 속으로 다짐했다.

일단 공작위를 계승하고 난 후 천천히 내부를 단속하면 된다.

시간은 많으니까.

천천히.

바르거는 억지로 얼굴을 폈다.

"경들의 조언에 따르겠습니다. 다행히 반역자들에게서 압수한 것이 많으니 재정에 큰 무리가 갈 것 같지는 않습니다. 나는 경들만 믿겠습니다."

그제서야 오찬장의 분위기가 좀 살아났다.

귀족들은 새로운 막시밀리안 공작이 외부와 손을 잡고 자신들을 숙청할 위험성이 낮아졌다는 것에 만족했다.

숙청하고 싶어도 숙청하지 못할 정도로 몸집을 불리는 것이 그들이 목표였다.

일단 첫 발걸음은 잘 뗀 모양이다.

바르거와 귀족들은 각자의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누구의 계획이 올바른 계획인지는 시간이 증명해 줄 것이다.

*

막시밀리안 공작 계열의 귀족들이 모여서 자신들끼리 적당히 야합을 하는 동안 축하를 위해 방문한 귀족들은 각자 연고가 있는 저택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나 역시 축하를 위해 방문한 사절단과 함께 이곳에 연고가 있는 대상인의 저택에서 계승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칼마르를 떠나 다른 지역에 방문하는 것이 처음인 리네아 여백작은 사소한 것에서도 흥미를 느끼고 내게 질문을 하곤 했다.

"그대. 이렇게 파티의 초청장이 쌓이는 것은 처음 본다."

"아무래도 칼마르의 기풍이 상업도시답지 않게 금욕적인 부분이 강해서 이런 것은 좀 낯설 겁니다."

칼마르에 정착한지 이제 겨우 1년을 지난 사람이 칼마르의 기풍을 논하다니!

그런데 칼마르의 기풍은 잘 모르겠지만 칼마르 백작가의 가풍이 금욕적인 부분이 강한 것은 사실이다.

놀고 먹을 시간에 좀 더 열심히 수련을 한다는 분위기라서 그렇다.

백작부터 가까운 가신까지 모두 한 유파에 속한 수련자들이니 어쩔 수 없다고나 할까?

나까지 그 수련에 끼어들어서 지금도 땀에 젖은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보내는 중이다.

"그렇다면 이곳은 파티가 끊이지 않는 것인가?"

"그것은 아닐 것 같습니다. 새로운 막시밀리안 공작이 등장하면서 귀족들간의 서열 정리 같은 것을 하느라고 이럴 겁니다. 겸사겸사 우리같이 외부에서 온 자들과도 친교를 나누면서 거래선을 점검하는 거겠지요."

"음. 그래서 파티를 하는 것이로군."

"예."

"지금이 아니면 이런 파티는 구경하기 힘들겠구나."

나는 대답을 하지 않고 리네아 여백작을 쳐다보았다.

리네아 여백작 역시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귀가 빨갛다.

"사라 남작 부인에게 적당한 파티를 선별해 달라고 하겠습니다. 보호자로 사람 남작 부인이 따라갈 겁니다."

"그대는?"

"백작님의 약혼자는 당연히 동행합니다."

"준비를 하겠다."

리네아 여백작의 귀는 여전히 빨갰다.

사라 남작 부인은 바르거 막시밀리안의 장인인 하키슨 남작이 주최하는 파티를 선택했다.

하키슨 남작은 암염 거래와 관련해서 칼마르와도 연관이 좀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역사가 오래된 유서깊은 가문이지만 권력과는 거리를 두는 편이었는데 이번에 사위가 막시밀리안 공작위를 쟁취해 내면서 갑자기 권력 투쟁의 한복판으로 끌려 들어간 경우다.

갑자기 권력의 실세로 부상했지만 전통있는 집안답게 사위의 뒷받침을 제대로 하면서 자신들의 이권도 착실히 챙기는 중이라고 한다.

파티는 하킨슨 남작가의 정원에서 열렸다.

어깨에 힘을 꽉 쥐고 준비하는 무도회나 만찬회가 아니라 상대적으로 간소한 오찬 모임이었다.

오찬과 함께 하는 음악감상.

그리고 그 이후에는 다과와 함께 하는 간단한 놀이.

중간중간 사교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주류와 장소를 제공하는 센스까지.

알차게 꾸린 사교 모임이었다.

바르거가 경쟁자들을 제거하고 작위계승식까지 도달한 것에는 하킨슨 남작의 지분도 상당하리라고 자신할 수 있다.

칼마르 백작 일행이 파티에 참석한 것은 하킨슨 남작에게도 큰 일이었던 모양이다.

그는 자신의 부인과 딸을 우리에게 딱 붙여서 전담으로 담당하도록 하고 자신도 파티의 주최자로 바쁠 텐데 불편한 점은 없는지 수시로 체크했다.

덕분에 우리는 제대로 파티를 즐길 수 있었다.

"백작님. 이 놀이는 어떠신가요?"

"처음 보는 놀이다."

"그럼 같이 해보시지요. 규칙은 간단합니다. 이 화살을 저기 있는 주둥이가 좁은 항아리에 던져 넣는 것입니다. 다섯 개씩 던져서 많이 넣은 사람이 이기는 것이지요."

"한 번 해보도록 할까?"

"예. 준비하겠습니다."

하킨스 남작의 딸은 타고난 영업사원의 기질이 있었다.

그녀는 리네아 여백작과 함께 놀이를 하며 흥을 돋구고 딱 기분좋을 정도로 추켜세웠다.

어떻게 봐도 사장님 나이스샷을 외치는 영업사원이었다.

놀이의 흥겨움은 다른 사람들도 끼어들게 했다.

곧 몇 명의 영애들이 함께 화살을 던지며 웃고 떠들었다.

리네아 여백작 역시 그들 사이에서 미소를 지으며 화살을 던졌다.

"여신들이 모여 있군요. 보기 좋은 모습입니다."

갑자기 끼어든 남자에게 내 시선이 돌아갔다.

기사 예복을 입은 자였다.

"인사드립니다. 아르보그 공작님께 봉사하고 있는 기사 고디라고 합니다."

"르하베트의 남작 윌리엄이네. 칼마르에서 왔지."

"오! 윌리엄 경. 소문은 많이 들었습니다. 놀라운 무용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더군요."

"소문에는 과장이 많은 법이지."

"절반만 사실이라고 해도 엄청난 무용입니다."

눈동자가 세로로 타원형이다.

아르보그 공작 휘하에 있는 수인족 기사 중 하나인 모양이다.

나는 약간 흥분한 듯한 고디의 말에 그냥 미소를 지어주었다.

나를 칭찬하는데 나쁜 얼굴을 할 수는 없지 않을까?

그러나 곧 나쁜 얼굴을 해야 했다.

"이렇게 아르보그 공작님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함께 친교를 나누며 동맹의 우의를 굳건히 하는 것을 보니 저 역시 이곳에 잘 왔다고 느낌니다. 처음에는 정말 전투가 격렬해서 고생이 많았었지요."

"아니. 고디 경. 칼마르는 이웃의 선의로 축하하러 왔을 뿐, 지지라든가 동맹같은 것과는 상관이 없네."

나는 수인족 기사의 말을 정정해 주었다.

내 말을 들은 수인족 기사 고디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리고 그의 눈동자가 더 날카롭게 가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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