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 첫 번째 목표, 완료.
쓰러져 있는 괴인이 몸을 추스르고 일어나기 전에 두 명의 괴인을 처리해야 했다.
돌이나 철판을 연상케 하는 피부, 일반적이지 않은 몸무게, 비정상적인 펀치력, 그러나 움직임은 평범한 기사만도 못하다.
누비갑옷을 입고 흉갑을 걸쳤을 뿐이지만 피부가 마치 갑옷 같아서 화살을 튕겨내고 칼로 쳐도 끄떡없다.
자신이 가진 무기로는 어떻게 손쓸 수 없는 그 모습에 당황한 마그누손의 병사들이 연달아 쓰러졌다.
마그누손 역시 공포에 질려서 뒤로 물러서는 중이었다.
그런데 이거 따지고 보면 그냥 판금갑옷 입은 기사와 다를 바가 없지 않나?
얼굴이 일그러지고 피부가 갑옷인 인간같지 않는 자들을 전투 중에 갑자기 마주쳐서 당황하니까 그렇지 기사를 상대하듯 대하면 되는 문제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했다.
손에 든 전투망치로 달려드는 괴인의 머리를 노리고 강하게 휘둘렀다.
전투망치의 스파이크, 송곳 부분의 날카로운 기세는 어딘가 둔해 보이는 괴인에게도 위협적으로 느껴진 듯 했다.
괴인이 전투망치를 피해 주춤 뒤로 물러서는 순간 한 걸음 성큼 걸으며 반대편 손바닥으로 괴인의 턱을 밀어서 올려 쳤다.
피부야 돌덩이같이 단단하겠지만 그 안의 목뼈는 고정된 것이 아니다. 밀어서 올려 치는 손바닥으로 무엇인가 어긋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괴인 역시 휘청이며 뒤로 물러서려고 했다.
허점이다!
나는 괴인의 옆을 지나가는 것처럼 확 다가갔다.
그리고 팔로 괴인의 목을 휘감았다.
내 팔에 목을 휘감긴 괴인이 발버둥을 쳤지만 나는 그 상태로 괴인을 흔들었다.
이것은 마치 머리통을 잡고 흔드는 것과 같다.
아무리 단단한 피부라고 해도 목을 지탱하는 것은 목뼈다.
괴인이 어떤 존재인지는 모르겠지만 인간처럼 생겼으니 목뼈도 인간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목뼈와 같이 연약한 조직은 괴인의 체중 같이 무거운 무게를 견뎌낼 수 없다.
괴인은 불과 한두 번 흔드는 것만으로도 축 늘어졌다.
내가 괴인을 바닥에 던졌을 때 목뼈가 부러진 괴인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제 멀쩡한 괴인은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내가 괴인 하나를 처리하는 동안 바스무스가 나머지 괴인 하나를 견제했다.
괴인은 연달아 내리치는 편곤에 위협을 느낀 듯 조심스러운 태도로 간격을 유지했다.
그리고 그 간격 사이에 내가 끼어들었다.
표정을 알기 어려웠던 푸른 피부의 괴인은 순식간에 동료들을 쓰러뜨린 내가 끼어들자 곤란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았지만 풍겨나오는 기색이 겁을 먹은 듯 했다.
나는 기세가 꺾인 적을 향해 달려들었다.
다급하게 내미는 팔을 밀쳐내며 몸통을 감싸 안았다.
그리고 내 다리를 괴인의 다리 뒤쪽으로 밀어 넣었다.
동시에 괴인을 뒤로 넘어뜨렸다.
괴인은 아주 간단하게 넘어갔다.
아예 끌어안은 내게 주먹질을 하지도 못하고 어어하는 순간 바닥에 등을 대고 누워버린 것이다.
나는 쓰러진 괴인을 향해 망치질을 했다.
한 대만 제대로 맞아도 치명상을 입을 만한 곳을 연달아 찍어버리자 괴인은 더 이상 숨을 쉬지 않았다.
전투망치의 스파이크에서 피가 뚝뚝 떨어졌다.
나는 아누트에게 시선을 돌렸다.
아누트는 잠깐 사이에 승패가 갈린 전투를 보며 굳어 있었다.
일렁이는 등불에 비친 아누트의 얼굴이 점점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훈련을 받지 않은 몸이다.
근육도, 손도 힘든 일을 하지 않은 태가 났다.
아누트의 선조는 상단주이자 농장주였는지 몰라도 아누트는 그 어느 쪽도 아니었다.
그는 말로 싸우는 자, 정치가였다.
그러나 지금 이 장소는 원초적인 폭력이 지배하는 곳이다.
말을 무기로 삼은 자는 이곳에서 발언권이 없다.
하물며 그의 무기로 삼은 세 명의 괴인을 잃은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내 손짓에 따라 용병들이 달려들어서 아누트를 묶고 끌어서 끌고 나갔다.
"이러면 목표의 절반은 달성한 겁니까? 마그누손 경."
"절반이 뭐요? 훨씬 더 많이 달성한 겁니다! 그런데 윌리엄 경. 경은 내가 본 기사 중 최고의 실력을 가졌소이다. 나는 당신 같은 사람을 본 적이 없어!"
마그누손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건물 깊숙한 곳까지 데려온 부하 병사들을 거의 다 잃고 죽음이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무력하게 보고 있었는데 구원의 손길이 내려온 것이다.
그 뿐 아니라 미그누손이 가장 원했던 목표였을 의장 아누트까지 생포했다.
이렇게 되면 비스뷔 독립을 위한 첫 번째 고비를 거의 다 넘었다고 해도 된다.
또 다른 목표인 징세관 오스테프는 아누트에 비하면 별 것 아니라고 들었다.
거느리고 있는 사병도, 도시에 대한 영향력도 아누트에 비하면 많이 떨어진다고 한다. 특히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징세관에게 느끼는 특유의 거부감 때문에 시민들의 지지 역시 볼 것 없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이들에게 어느 정도의 요구를 해야 적당할까 하고 생각하며 중앙 정원쪽으로 나왔다.
우리가 건물 내에서 아누트의 부하들을 처리하는 동안 중앙 정원에서의 전투도 대충 마무리가 되어가고 있었다.
발코니에 자리 잡고 있었던 아누트의 병사들 역시 건물 안으로 몰려 들어간 용병들에 의해 정리되었다.
완벽한 승리였다.
아누트 저택의 정문을 봉쇄하고 내부의 적들을 쓸어버렸기 때문에 도망친 자도 없었다.
죽거나 포로가 되거나.
이것으로 아누트는 자신의 세력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자신의 부 역시 빼앗길 것이다.
그리고 그 중 일부는 칼마르에게 대가로 주어질 것이고.
나는 비스뷔에서의 첫 번째 전투가 이렇게 끝나는 줄 알았다.
그러나 끝날 때까지는 안 끝난 것이라더니 과연 그랬다.
새벽 미명이 밝아오기 시작할 때 우리는 별로 안 좋은 소식을 듣게 되었다.
징세관 오스테프의 저택으로 간 의원들이 실패를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것도 전령이 알려온 것이 아니라 패잔병이 알려왔다.
우리가 아누트의 세력을 완벽하게 쓸어버린 것처럼 오스테프는 자신의 저택에 몰려온 의원들의 세력을 완벽하게 박살 낸 것이다.
그나마 저택 내부까지 밀고 들어간 병력이 얼마 안되서 박살 난 것치고는 사망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고 한다.
안으로 들어갔던 의원들이 몰살을 당하는 바람에 병력이 다 흩어져서 그렇지.
우리는 패전 소식을 듣자마자 곧장 오스테프의 저택을 향해 이동했다.
그리고 우리를 향해 오던 오스테프의 병력과 중간에서 마주 부딪쳤다.
원래 있던 병력에다가 경비대와 패잔병까지 끌어 모은 우리측의 규모는 오스테프와 함께 온 병력보다 확실히 더 많았다.
그러나 오스테프의 병력은 정예함이 더 나아 보였다.
글렌 공작군의 정예가 다 어디 가 있었나 했는데 징세관의 저택에 모여 있었던 모양이다.
양 측의 군대가 마차 8대는 나란히 지나갈 정도인 시내의 큰 길에서 마주치자 병사들은 중간에 거마창을 끌어다가 임시 바리케이드로 삼고 살기를 풍기며 대치했다.
양 쪽 다 밤사이에 전투를 치르며 달아오른 피가 아직 식지 않았기에 전투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있었다.
오스테프 군에서 두 사람이 말을 타고 앞으로 나왔다.
나와 마그누손 역시 그들을 맞아 앞으로 나갔다.
한 사람이 멀리서 내게 말을 건넸다.
"이럴 수가! 이런 자리에서 칼마르 백작의 부군이신 윌리엄 남작을 보다니! 왜 아누트가 패배했는지 알겠습니다. 아누트에게 시간을 끌라고 붙여준 돌인간 따위는 단숨에 집어 던졌겠군요. 그렇지 않습니까? 윌리엄 경."
"자네는 누군가?"
"아! 인사드립니다. 선제후이신 글렌 공작님께 봉사하는 자들 중 하나인 바디 바디슨이라고 합니다. 윌리엄 경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일개 기사에 불과합니다."
"사냥개로군."
무시하는 내 말에도 바디슨은 별로 기분 나빠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게 충고해 왔다.
"우리가 이름 없이 일하는 자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명예로운 기사인데, 그렇게 쉽게 우리에 대한 음해를 입에 담다니 백작 부군답지 않은 경솔함입니다."
"너희가 나에 대해 아나?"
"물론입니다. 많은 소문을 들었습니다. 행운의 남자, 칼마르의 여백작을 사로잡은 미남, 오르벤 강체술의 전인, 거인족 혼혈, 늑대와 뱀의 심장을 가진 자, 꿰뚫어 보는 시선의 예언자. 내게 와서 떠들어 댄 유랑 음악가들이 붙여준 명칭입니다. 어떻습니까? 마음에 드십니까?"
어이가 없었다.
계속 칼마르와 그 주변에서 일만 하고 있다 보니 다른 지역에서 나에 대해 뭐라고 하는지 귀가 어두울 수 밖에.
그래도 저런 낯간지러운 별칭이라니.
어째 사람들이 내게 친절하다고 했다.
"나도 모르는 나에 대해 다들 수다를 떨고 있었군. 남자들의 수다가 여자보다 더 심하다고 하더니 정말 그런 것 같아."
"그럴 수 밖에 없습니다. 그거 아십니까? 평기사 신분으로 백작 이상의 고위 귀족과 결혼하는 경우가 3백 년 만입니다. 선제후 제도가 세워지던 혼란기에나 있었던 일이 일어난 겁니다. 윌리엄 경은 우리 시대의 혼란을 상징합니다."
몰랐다.
나같은 케이스가 3백 년 만이라니.
기사 계급이 열광할 만도 하겠다.
그런데 저 놈 뭔가 꿍꿍이가 있다.
말이 많으면 노리는 것이 있는 법이니까.
"혀가 길군. 원하는 것이 있는 모양이지?"
내 말에 바디슨은 활짝 웃었다.
기분이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이상한 놈인데?
"결투! 결투를 합시다. 윌리엄 경. 오스테프 경도 그렇고 마그누손 경도 마찬가지 생각일 겁니다. 이미 죽은 비스뷔 사람이 너무 많다. 더 이상 비스뷔 사람이 죽어나가는 것은 곤란하다. 그러니까 제안드립니다. 윌리엄 경과 제가 결투를 하는 겁니다. 그것으로 모든 것을 결정짓는 것이 어떻습니까?"
바디슨의 두 눈에서 광기가 일렁인다.
질투인지 명예욕인지는 모르겠지만 저 놈 저거 나한테 개인적인 감정이 있다.
나는 내 옆의 마그누손을 보고 다시 주변의 병사들을 보았다.
바디슨이 떠드는 동안 달구어진 피가 어느 정도 식어서 그런지 분위기가 조금 가라앉은 느낌이었다.
이 사람들을 전투에 다시 밀어 넣는 것은 그리 내키지 않았다.
이겨도 피해가 너무 커진다.
나는 마그누손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마그누손 역시 동의한다는 몸짓을 했다.
"좋다. 결투를 받아들이지."
"예. 죽여드리지요."
뭐? 이 놈이.
기분 나쁜 놈 같으니라고.
나와 바디슨은 서로를 노려보며 천천히 말을 몰아갔다.
내 손에는 전투망치가 바디슨의 손에는 짧은 봉이 들려 있었다.
내 전투망치가 닿기에는 아직 멀고,
바디슨의 짧은 봉이 닿기에도 아직 아슬아슬한 거리에서,
바디슨의 공격이 날아왔다.
그가 창을 앞으로 쭉 내미는 순간 짧은 봉의 머리에서 가는 쇠사슬이 주르르 풀려 나오면서 나를 향해 날아왔다.
바디슨의 무기는 그냥 짧은 봉이 아니라 기형 무기의 일종이었던 것이다.
갑자기 날아온 쇠사슬은 마치 올가미 밧줄처럼 나를 칭칭 묶으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쇠사슬에 팔을 집어넣어서 내 팔에 감기도록 했다.
그리고 당겼다.
대충 저 놈이 무슨 짓을 하려고 했는지는 알겠다.
쇠사슬로 나를 묶어서 말에서 떨어뜨린 후 자신의 말로 밟거나 아니면 자신이 직접 공격할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쇠사슬로 묶는 것에 실패한데다가 힘에 큰 차이가 나 버리면 이런 식으로 당겨오는 것이 가능하다.
바디슨은 일단 버텨보려고 했지만 내가 당기는 힘에 당장이라도 말에서 떨어질 것 같자 그냥 자신의 기형 무기를 버렸다.
그리고 곧장 안장 옆에 걸어놓은 작은 쇠뇌를 집어들어서 나를 향해 겨누었다.
이미 재어놓았던 소형 쇠뇌는 방아쇠를 당길 때마다 쇠뇌살을 발사했다.
모두 3개의 쇠뇌살이 연달아 날아왔다.
보고 움직인다는 것에 있어서 나보다 더 뛰어난 인간은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쇠뇌살이 내 앞에 도달했을 때 전투망치의 망치머리로 가볍게 툭 쳤다.
바로 그 뒤의 쇠뇌살도 마찬가지로 쳐 낼 수 있었다.
3번째 쇠뇌살은 아예 손으로 잡아냈다.
3번째 쇠뇌살을 처리하면서 동시에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내 묘기를 보고 있던 바디슨을 향해 전투망치를 던졌다.
전투망치는 쇠뇌살보다 더 빠르게 날아가서 바디슨의 이마에 박혔다.
바디슨은 내게 겨눈 쇠뇌를 치우기도 전에, 나를 향해 쇠뇌를 겨눈 그 자세 그대로, 말에서 떨어졌다.
장내에는 적막만이 감돌았다.
그 모습을 본 나는 적을 향해 고함을 지르며 칼을 뽑아서 높이 들었다.
그리고 그 자세 그대로 적을 향해 돌격해 들어갔다.
마그누손의 병사들이 거대한 함성과 함께 내 뒤를 따라서 일제히 움직였다.
그것으로 비스뷔에서의 내전은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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