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회차 기사가 살아가는 법-65화 (65/248)

65. 내전 발발

비스뷔의 시의회 의원은 모두 24명이다.

그 중 글렌 공작의 가신이나 다름없다는 의원이 2명이다.

시의회의 의장이자 시장을 겸하고 있는 아누트

징세관인 오스테프

모두 막강한 권력과 사병을 거느린 거상이다.

나머지 의원들은 반글렌파와 친글렌파로 나누어져 있다.

다행스러운 점은 친글렌파쪽의 의원들은 단순히 시류를 따르는 사람들이라서 일단 저 두 명이 축출 되기만 한다면 금방 태도를 바꾸리라는 것이다.

그래서 마그누손은 바로 오늘 밤 두 명의 의원을 습격하기로 한 것이다.

그와 함께 하는 의원들이 각자의 집에 사병을 미리 준비해 놓았고, 약속한 시간이 되면 마그누손이 모은 병력과 함께 움직이기로 했다고 한다.

마그누손은 비스뷔 의회의 서열 3위의 실세답게 경비대의 대부분에 그의 손길이 닿아 있었다.  마그누손은 오늘 밤 경비대 역시 동원할 계획이었다.

비스뷔 시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용병과 글렌 공작의 사병에 대해 넌더리를 대고 있던 경비대는 오늘의 행사 때 큰 길을 모두 막기로 했다.

비스뷔 시내 곳곳에 흩어져서 지내고 있는 글렌 공작측의 사람들이 지원을 못하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마그누손이 비스뷔 시에 대한 충성을 저버린 그의 동료 의원들을 공격하는 동안 나는 글렌 공작이 비스뷔 시에 파견해 놓은 병력을 상대하기로 했다.

이렇게 역할 분담을 한 것은 대외적인 명분 때문이었다.

어떤 식으로 포장해도 시의회 의원끼리의 내전에 외부 세력이 끼어드는 것은 안 좋은 선례가 된다.

하물며 외부 세력인 글렌 공작의 축출을 목적으로 들고 일어난 의원들의 병력에 외부 세력이 끼어 있다면 좋은 소리를 듣기 힘들다.

그러니 시의회 의원들끼리 그동안의 묵은 갈등을 해결하는 동안 외부에서 온 자들은 외부에서 온 자들끼리 결판을 내야 했다.

글렌 공작이 파견한 병력은 그의 병사와 용병이 뒤섞인 혼성 부대로 대략 150명 정도가 된다고 한다.

이들이 바로 글렌 공작이 비스뷔의 턱 밑에 들이댄 단검이다.

아누트 또는 오스테프에게 문제가 생기면 이들이 바로 시내로 밀고 들어간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지금 내가 그들을 처리하러 가는 중이다.

"윌리엄 남작님. 준비가 끝났습니다."

나는 하늘을 살펴보았다. 달을 보니 약속한 때와 대략 일치하는 것 같았다.

"좋아. 노렌 경. 도망치는 자들이 없게 잘 부탁하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희 실력 잘 아시지 않습니까? 남작님과 함께 가는 하사관들은 저희 용병대 최고의 실력자들입니다. 믿으셔도 됩니다."

"맞아. 내가 직접 봤지. 그렇다면 기대하겠네. 바스무스. 따라 오게."

내 신분이 계승 남작에 영지까지 가지고 있으니까 가신을 두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래서 원래의 미래에서 안면이 있던 힘센 산적이었던 바스무스는 현재 내 가신 겸 사병이 되어 있었다.

내전 중에 살아 남으려고 바닥에서 구를 때 생긴 독기도 만만하지 않고, 농사꾼 출신답지 않게 무기를 다루고 몸싸움을 하는 것에도 능숙하다.

한 사람 몫은 충분히 하겠고 쉽게 죽지도 않겠다 싶어서 이번 원정에 동행시켰다.

나는 노렌 용병대장의 하사관들과 함께 조심스럽게 글렌 공작군의 주둔지에 접근했다.

주둔지의 외곽에는 나무로 울타리를 쳤지만 방어기능은 전혀 없었다. 그냥 주둔지를 구분하기 위해 울타리를 엉성하게 만들어 놓은 수준이었다.

병사들의 숙영지 역시 급조한 천막이 대부분이었다.

제법 크고 화려한 천막이 중앙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대부분 1인용 또는 2인용의 휴대용 천막이 다였다.

그나마 천막이라도 있는 병사들 말고도 절반 정도는 그냥 외투를 뒤집어 쓰고 잠을 청하는 중이었다.

장교나 용병대의 간부들은 시내에서 주로 지낸다고 하는데 왜 그런지 알 것 같았다.

장교쯤 되는 분들이 지내기에는 환경이 너무 열악하다.

생각해보면 글렌 공작 입장에서 비스뷔는 완전히 후방이다.

서로 기세싸움을 하고 가끔 실전도 뛰어야 하는 다른 지방과 달리 이곳은 말 잘 듣는 부하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 틀림없다.

그러니 제대로된 지원도 없고 군대 역시 군기 빠진 모습을 보이는 거겠지.

실제로 숙영지에 언제나 있어야 할 불침번은 2명이 다였다.

그들은 옆에 피워놓은 화톳불의 온기에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이 정도라면 습격이고 자시고 할 것도 없겠는데?

나는 몸을 일으키며 내 뒤의 병력에게 가만히 있으라는 수신호를 보냈다.

그리고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불침번을 서던 2명의 병사는 내가 그들 근처에까지 가서야 뭔가 이상한 점을 느꼈는지 억지로 잠에서 깨어나려고 고개를 흔들며 흐린 눈으로 두리번 거렸다.

그제서야 그들은 나를 발견하고 기겁을 하고 일어났다.

"누, 누구?"

그들의 질문은 답을 얻지 못했다.

한 달음에 그들에게 다가간 나는 양 팔로 두 사람의 목을 감싸며 비틀었다.

불쾌한 느낌과 함께 둘은 동시에 축 늘어졌다.

아무도 이 작은 소란을 눈치채지 못했는지 글렌 공작군의 숙영지는 여전히 조용했다.

경계에 실패한 군대였다.

경계에 실패한 군대는 이미 패배한 군대다.

나는 손을 들어서 내 뒤의 부하들에게 수신호를 보냈다.

수신호에 따라 글렌 공작군의 숙영지로 쇄도하는 부하들을 보며 나 역시 숙영지 내부로 향했다.

이 별볼일 없는 숙영지에서 유달리 눈에 띄는 크고 화려한 천막이 눈에 거슬렸기 때문이다.

내가 천막의 입구에 도착했을 때 드디어 숙영지 내에서의 전투가 시작되었다.

"적이다! 컥!"

누군가 운 없는 아니 눈치 없는 병사 하나가 고함을 지르다가 칼에 찔렸다.

그러나 그 경고에 호응해서 일어나는 그의 동료는 얼마 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비명을 신호로 칼마르 군은 고함을 지르며 적을 위협했다.

"엎드려라!"

"살고 싶으면 엎드려라!"

"일어서는 자는 죽인다!"

이곳에 주둔하고 있는 병력은 150명 정도가 된다고 했지만 실제로 숙영지에서 잠을 자고 있던 숫자는 100명을 간신히 웃도는 수준으로 보였다.

그런데 두 배의 병력으로 야습을 성공했으니 잠결에 날벼락을 맞은 자들로서는 제대로 대응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몇 군데서 칼부림이 일어났지만 갑옷도 제대로 걸치지 않은 병사가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병사들의 기준에서 보자면 갑옷을 입은 병사는 갑옷을 안 입은 병사보다 원래 실력에 상관없이 뛰어난 실력을 가졌다고 쳐야 한다.

도망치던 자들도 외곽을 포위하고 있던 용병들에 의해 대부분 사로잡혔다.

포위한 용병들을 피해 허술한 공간을 뚫는 것에 성공한 자들은 등에 화살을 맞고 쓰러져야 했다.

밤중의 소란은 예상보다 이른 시간에 제압당했고, 글렌 공작군은 모두 얌전히 밧줄에 묶이는 신세가 되었다.

숙영지 중앙의 크고 화려한 천막 내부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그림자가 보였다.

숙영지에 남은 장교나 기사일까?

나는 크고 화려한 천막을 향해 검을 그었다.

천막의 입구를 막고 있던 천이 떨어지며 내부를 드러냈다.

안에는 2명의 기사와 로브를 입고 있는 중년의 남자가 있었다.

2명의 기사는 내가 천막의 입구에 발을 딛자 그제서야 갑옷을 다 갖추어 입었는지 무기를 들고 로브를 입은 남자의 앞을 막아섰다.

"누구냐! 우리는 글렌 공작님을 따르는 군대다. 당장 물러서라!"

"비스뷔 시의 의뢰를 받은 용병대다. 이곳에 주둔하고 있던 군대는 모두 우리의 포로가 되었다. 지금 내 앞에 있는 너희들도 예외가 아니다. 무기를 버리고 항복하라."

그러나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기사 하나가 나를 향해 칼을 휘둘렀다.

깔끔하고 교과서적인 움직임이었다.

그러나 내게는 너무 느렸다.

칼이 내게 떨어지기도 전에 기사를 향해 바싹 붙었다.

칼을 들고 있는 팔을 잡고 동시에 허리를 잡았다.

그리고 들어서 땅에 내리 박았다.

그의 몸무게와 내가 땅에 내리박는 힘이 합쳐져서 기사의 머리를 강타했다. 그 충격을 견디기에 그의 목은 너무 연약했다.

그 모습을 본 로브 입은 남자가 곧장 몸을 돌려 자신 옆에 있는 천막을 향해 단검을 내리 그었다. 튼튼한 면으로 되어 있는 천막이 크게 갈라지며 사람 하나는 충분히 빠져 나갈만한 구멍이 생겼다.

남아 있는 기사는 나를 가로막고 로브입은 남자가 탈출할 수 있는 잠깐의 시간을 만들어주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헛된 바램이었다.

남아 있는 기사가 나를 견제하는 사이 내 뒤를 따라온 바스무스가 로브입은 남자를 향해 편곤을 휘둘렀다.

도리깨를 닮은 긴 편곤의 자편이 로브입은 남자의 머리를 가격했다.

동시에 나는 내 앞의 기사에게 달려들었다.

옆에서 일어난 갑작스런 공격에 잠깐 시선이 빼앗겼던 기사는 내가 그의 다리를 걷어차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중심을 잃고 넘어지는 기사를 찍어누르며 허벅지에서 뽑은 단검으로 기사의 겨드랑이를 찔렀다.

폐를 비스듬하게 찔린 기사는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

숨도 제대로 못 쉬고, 말도 하지 못 하고, 헐떡이며 고통스러워하다가 질식사 하고 말았다. 폐에 들어찬 자신의 피로 익사한 셈이다.

그것으로 전투는 끝났다.

그러나 나는 전장 정리를 시작한 부하들을 보며 오히려 위화감을 느꼈다.

우리가 해치워버린 글렌 공작군의 상태를 알게 될 수록 불안감이 커졌다.

이유는 간단하다.

전투가 너무 간단하게 끝났기 때문이다.

이상할만큼 쉬웠다.

이게 뭐지?

이렇게 쉽게 이긴다고?

믿을 수 없었다.

상당히 격렬한 전투가 될 것이라고 각오하고 있었다.

희생자도 제법 나오리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자경대를 상대하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명색이 선제후의 군대인데!

병력의 1/3이 미복귀 상태라는 것이 말이 되나?

장교는 아예 없다고?

정보에 의하면 글렌 공작의 군대가 주둔하는 이곳에는 글렌 공작이 부리는 사냥개도 있어야 했다.

자기들끼리는 이름없는 자들이라고 자칭하는 모양이지만 사람들은 그냥 사냥개라고 부르는 그 자들도 분명히 이곳에 있다고 했다.

숙영지 중앙에 있던 큰 천막에 그들이 묵었나 했는데 이 3명을 때려잡고 보니 그것도 아닌 모양이다.

예상보다 훨씬 적은 병력.

사냥개들도 없다.

장교나 기사, 용병대의 간부역시 없거나 수가 매우 적다.

이거 설마?

"노렌 경. 우리, 아무래도 낚인 것 같은데?"

"예?"

"여기에 있는 글렌 공작의 군대는 미끼 같아."

"설마? 아니, 말이 안되는 것은 아닌데. 그래서 이렇게 어이없게 무너진 걸까요?"

"아무래도 진짜는 소수 정예로 저 안에 있는 모양이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윌리엄 경"

"마그누손이 간 쪽이 아누트 의원 쪽이지?"

"그렇습니다."

"정예병으로만 추려. 마그누손이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지. 찔러 봐서 상대방이 너무 강하면 마그누손이라도 구해서 물러나고 상대할만하면 힘을 합쳐서라도 처리해야겠지."

"알겠습니다."

"지금 당장 간다. 신속이 가장 중요해."

이동을 시작할 때 비스뷔 시의 한쪽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우리가 가려던 방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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