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회차 기사가 살아가는 법-49화 (49/248)
  • 49. 나, 진짜 놀라다.

    5개의 용병 백인대가 급한 불을 끄기 위해 출동했었다.

    달라벤 강과 백작령의 경계, 그리고 산으로.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난민의 규모가 크다고는 하지만 파편화된 자들이다.

    조직화되지 않은 난민은 아무리 숫자가 많아도 위험하지 않다.

    이쪽은 중무장을 한 용병들이니까.

    그리고 용병대의 인원 중 숙련병의 비율이 절반을 약간 밑도는 것도 나쁘지는 않은 수준이었다.

    게다가 의뢰금을 선불로 받은 덕에 새로 모병한 미숙련병의 무장도 충실하게 했다.

    난민들 중에서 패잔병이나 탈영병이 섞여 있다고 해도,

    설사 조직화된 강도집단이 있어서 습격을 당한다고 해도,

    약간의 피해라면 모를까 전멸은 상상도 안 된다.

    그런데 전멸이라고?

    나는 당황한 마음을 감추고 대기 중이던 노렌 용병대와 합류했다.

    "어떻게 된 건가?"

    "비스트 용병단이 전멸했다는 소식 말고는 저도 들은 바가 없습니다."

    "주변에 약탈당한 마을도 없다던데."

    "설마 칼마르 시로 직진하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영지군이 지키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게. 칼마르 시에는 마스터 요한이 버티고 있어."

    "그런데 이런 말씀드리기가 부끄럽습니다만, 비스트 용병대의 수준이나 제 용병대나 크게 다를 바가 없습니다. 비스트 용병대가 전멸했다면 저희만으로는 위험합니다."

    "달라벤 강으로 보낸 용병대에게 귀환을 명령하는 전령이 이미 갔네. 중간에 우리와 합류할 거야."

    나는 노렌 용병대와 함께 칼마르 시를 떠났다.

    그러나 보병으로만 구성되어 있는 노렌 용병대만으로는 불안했다.

    정찰도 없이 움직인다는 것은 내 상식으로는 미친 짓에 가까웠다.

    그래서 주콥과 그의 동료들을 임시로 고용해서 정찰 임무를 맡겨 버렸다.

    주콥은 내가 따로 지시하지 않아도 주변을 정찰하며 나의 눈이 되어 주었다.

    우리는 칼마르 시에서 백작령의 외곽까지 잘 닦여 있는 가도를 따라 빠르게 행군을 했다.

    몇 개의 마을을 지나며 탐문을 했지만 난민이 떠도는 것 이외의 특별한 정황은 발견할 수 없었다.

    "외곽에서 충돌을 하고 그쪽도 피해가 막심해서 그냥 돌아가 버린 것이 아닐까요?"

    "패잔병 어쩌면 그냥 영지군일 수도 있는 적들이 약탈을 하러 경계를 넘었던 겁니다. 그런데 약탈을 하기 전에 비스트 용병대와 충돌한 것이죠. 그럼 말이 되지 않을까요?"

    노렌과 주콥은 머리를 맞대고 그럴 듯한 이야기를 계속 만들어냈다.

    일리있는 추론들이었다.

    그러나 나는 계속 불안한 감정으로 혼란스러웠다.

    그 추론들이 틀렸다는 알 수 없는 확신이 들었다.

    "윌리엄 경께서는 뭔가 다른 생각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뭔가 걱정하시는 것이라도?"

    "패트슨 남작을 내가 잡아온 것이 생각이 나는군."

    "예?"

    "자네가 아까 한 이야기도 새삼스럽고."

    "설마 칼마르 시로 오는 것 아니냐고 한 그 거 말입니까?"

    "그래. 그러니까 누가 미친 척하고 한 일이백명쯤 되는 숙련병을 이끌고 칼마르 시를 가로질러서 영주성을 급습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네."

    "자살을 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은 뎁쇼. 더 오래 살 테니까 말입니다."

    "그렇죠. 지금 칼마르 시에는 영지군 천 명이 있습니다. 거기다 영주성에는 기사들이 버티고 있는데요. 다들 마스터 요한이 키운 제자 아닙니까."

    "그렇지. 나도 그렇게 생각은 드는데, 이거 영 불안해서."

    그 때 맹렬하게 달려오는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다급하기 그지없는 리듬이었다.

    "윌리엄 경. 최소 2백명의 낯선 병력이 마을 외곽을 지나갔답니다. 방향은 칼마르 시 쪽입니다."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젠장! 당했어! 칼마르 시로 돌아간다!"

    "낙오병에게는 추가금이 없다. 전원 급속 행군이다!"

    *

    에릭 칼마르는 글렌 공작의 제안에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글렌 공작이 칼마르의 유력자 중 누구와 손을 잡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자신을 리네아의 경쟁자로까지 올려주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던 것이다.

    15년 전에 칼마르를 떠나서 이미 흐려진 기억이 많았지만 한 가지는 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선대 칼마르 백작의 위엄과 그에게 복종하는 칼마르 유력자들의 모습이 아직 어렸던 그의 눈에도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았다.

    비록 선대 칼마르 백작이 죽었다지만 그가 남긴 유산이 그리 간단하지 않으리라는 것은 그도 예상하고 있었다.

    특히 그 놈의 무공광들.

    마스터 요한과 시녀장 사라 남작 부인.

    어릴 때의 악몽으로 남아 있는 자들이었다.

    그냥 에릭 칼마르가 완전히 잊혀진 이름이 아니라 언제든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이름이라는 것 정도만 칼마르의 유력자들에게 알릴 수 있다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기대는 너무 빨리 무너졌다.

    두 명의 베르크가 숙청당하는 순간 가늘게나마 연결되어 있던 칼마르와의 접점이 완전히 끊어진 것이다.

    에릭 칼마르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리네아 칼마르의 지위는 단단해지고 자신이 돌아갈 자리는 없으리라는 것이 명백했다.

    그 때 생각했다.

    리네아 칼마르와 그의 직속 가신들이 없다면 자신에게도 기회가 있지 않겠는가.

    홀로 적지에 들어가서 상대편 영주를 잡아올 만한 능력은 없지만, 자신의 부하들과 함께 밀고 들어간다면 영주 한 명쯤은 죽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래서 모험을 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의 모험은 아직까지는 완전한 실패가 아니었다.

    "씨발! 달려. 달리라고!"

    마차가 거칠게 요동을 쳤다.

    마차에 타고 있던 용병들은 욕설을 내뱉으면서도 달리라고 고함을 질러댔다.

    말을 타고 있던 용병들 역시 장애물을 피하며 영주성을 향해 내달렸다.

    이미 동료 용병 중 절반 이상이 낙오한 후였다.

    칼마르 시의 성문에서부터 영주성까지 오는 중간중간에 계속 죽고, 떨어지고, 잡혀서 남은 것은 지금 미친 듯이 고함을 지르는 자들이 전부였다.

    재수가 없기는 했다.

    만약 칼마르 시에 바로 붙어서 건설 중인 난민촌이 칼마르 시가 아니라 새로 생긴 구역이라는 것을 알았으면 이렇게까지 많은 피해가 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달려! 달려! 영지성의 문이 닫힌다! 마차로 박아버려!"

    영주성을 향해 미친 듯이 마차를 달렸지만 그들이 영주성에 도착하는  것보다 전령이 변고를 알리는 것이 더 빨랐던 모양이었다.

    영주성 외곽의 문이 닫히고 있었다.

    에릭 칼마르는 가장 앞에서 말을 달리며 활을 재었다.

    그리고 쏘았다.

    영주성의 문을 닫는 도르래를 돌리고 있던 2명의 병사 중 1명이 화살에 맞아 쓰러졌다.

    그러나 남은 1명은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듯 홀로 필사적으로 도르래를 돌렸다. 그러나 문이 너무 무거워서 혼자서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에릭 칼마르는 빠르게 다시 화살을 쏘았다.

    남은 1명도 화살에 맞아서 쓰러져 버렸다.

    이제 되었다 싶은 순간 웬 거인 한 명이 안에서 튀어나와서 아예 문에 매달렸다.

    그리고 2명이 도르래를 돌려서 문을 닫을 때 보다 더 빠르게 문을 밀어서 닫아 버렸다 .

    이제 영주성으로 들어가려면 외부에 난 창을 타고 들어가는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에릭 칼마르는 자신이 실패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만약 저 거인이 문을 닫지 않았다면 영주성 안으로 뛰어드는 것이 가능했을 것이다.

    자신과 여기까지 같이 온 부하 용병 30여 명이면 한 번 쯤 운명을 걸어볼 수도 있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다 끝난 일이 되었다.

    "대장! 어쩔 거요?"

    그의 주위로 여기까지 따라붙은 그의 부하들이 모여들었다.

    무리하게 달리던 마차의 말은 혀를 내 빼물고 쓰러져 버렸고, 다른 말들도 당장 쓰러지지만 않았을 뿐 상태가 비슷했다.

    탈출도 만만하지 않을 모양이었다.

    영주성으로 통하는 길에 병사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병사들 뿐 아니라 기사 역시 모습을 드러냈다.

    영주성의 창문을 막고 있던 덧창이 열리면서 쇠뇌가 튀어나왔다.

    활을 든 병사들도 여럿 보였다.

    에릭 칼마르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말을 탄 기사 한 무리가 달려오고 있었다.

    "끝났다. 실패했어."

    "에릭 대장. 잘난 척은 다 하더니 이게 뭐요?"

    "글쎄. 내가 미쳤었나 보다."

    "으휴. 내가 이런 인간을 믿고 따라왔으니. 어쨌든 아직 살아 있는 목숨이니 발버둥은 쳐 봅시다."

    에릭 칼마르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말에서 내렸다.

    그리고 그의 검을 뽑았다.

    *

    아주 늦지는 않았다.

    말을 타고 달려온 우리들은 아슬아슬하게 영주성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영지군과 경비대가 필사적으로 노력한 덕분에 영주성까지 도달한 적들은 얼마 되지 않았다.

    30명 정도.

    하나같이 실전에 익숙한 용병들이었다.

    게다가 손을 쓰는 것이 독하기 짝이 없는 자들이었다 .

    덕분에 영지군도 경비대도 피해가 막심했다.

    전형적인 전쟁 용병들.

    그 중에서도 질이 안 좋은 자들임이 분명했다.

    나는 말에서 내려서 적들을 향해 걸어갔다.

    기분이 안 좋았다.

    우왕좌왕하다가 고용주를 잃을 뻔 했다.

    받을 것은 선불로 받아놓고 고용주를 잃는다니 상상도 하기 싫다.

    받은 것을 다 토해낼 뻔 했다고!

    나는 펄션을 꺼내서 오른손에 잡았다.

    나 홀로 적 용병들을 향해 다가가자

    이게 무슨 짓인지 의아해하는 기색이 그들 사이에서 잠깐 나타났다.

    그러나 나는 그들에게 이게 무엇인지 말로 설명해 주고 싶지 않았다.

    나는 행동으로 설명을 해 주었다.

    펄션으로 적들을 내리친 것이다.

    펄션은 길이는 1m정도가 되는 외날도다.

    원래는 얇게 만드는 무기지만 고릴라의 펄션에 감명을 받은 나는 도신을 꽤나 두껍게 만든 변종 펄션을 만들었다.

    이것은 내 손에서 도끼 못지 않은 위력을 발휘했다.

    내리치는 펄션을 막으려는 용병의 검을 쪼개고 그의 어깨도 쪼갰다.

    쓰러지는 용병을 잡고 앞으로 걸어갔다.

    연달아 내려치는 도검과 도끼가 방패 대신 내민 용병의 몸을 난자했다.

    내 펄션은 그들의 팔을 노렸다.

    용병의 몸에 도가 박힐 때 그 도를 잡은 팔을 후려쳤다.

    용병의 몸이 검이 찔릴 때 그 검을 잡은 팔을 후려쳤다.

    그 도를, 그 검을 잡은 채 팔이 떨어졌다.

    피를 뿜으며,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서는 그들을 따라갔다.

    오른쪽 방향의 용병이 검을 찔러오는 순간

    검을 찌르는 방향으로 몸을 펴며 펄션으로 그의 목을 찔렀다.

    지금까지 방패로 사용했던 용병은 왼쪽으로 쓰러지고

    목을 찔린 용병은 오른쪽으로 쓰러졌다.

    주춤 뒤로 물러서는 가까운 곳의 용병을 바라보며

    멀리 뒤에 있는 용병을 향해 비도를 던졌다.

    순식간에 12개의 비도가 오른쪽 상완에서 날아갔다.

    비도를 막아낸 용병은 없었다.

    조정줄이 끊어진 꼭두각시 인형처럼 12명의 용병이 동시에 무너졌다.

    네 호흡 사이에 16명의 용병이 땅바닥에 누웠다.

    펄션을 허공에 튕기며 도신에 묻은 피를 털어버렸다.

    그리고 다시 적을 향했다.

    이번에는 한달음에 적들 사이로 뛰어들었다 .

    아주 어리게 보이는 용병 하나가 반사적으로 내민 검을 겨드랑이 사이로 흘리며 그의 팔을 겨드랑이에 끼웠다.

    그대로 한바퀴 돌면서 적들의 목을, 머리를, 어깨를 쳤다.

    그리고 겨드랑이로 잡아놓은 적의 등판을 찌르고 놓아주었다.

    그는 그대로 엎어졌다.

    그제서야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가 검을 들고 내게 달려들었다.

    실력은 나쁘지 않았다.

    그의 검이 내 가슴을 노리고 찔러온 순간,

    펄션으로 검을 대며 원 모양으로 흔들었다 .

    검이 펄션의 힘에 밀려서 같이 돌아가자마자

    펄션으로 가볍게 밀면서 손목을 그어버렸다.

    검이 손에서 떨어지는 순간

    펄션을 다시 원 모양으로 흔들면서 손목을 쳤다.

    손목이 떨어지며 뒤로 물러서는 적에게

    펄션을 던져버렸다.

    내 가슴을 덜컥하게 했던 용병대의 우두머리는

    펄션을 목에 받은 채 뒤로 넘어갔다.

    내 싸움은 거기까지였다.

    남아 있는 용병들은 영지군의 몫이었다.

    영주성에서 화살이 날아오고,

    기사들이 뛰어들었음에도 손을 들고 엎드린 용병은 몇 명 되지 않았다.

    생포한 용병들은 죽은 용병대장이 칼마르의 성을 가진 자임을 증언했다.

    그리고 마스터 요한은 그가 에릭 칼마르라는 사실을 확인해 주었다.

    우리가 알기로 그는 글렌 공작에게 고용된 자였다.

    나는 글렌 공작이 이 일을 어떻게 변명할지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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