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회차 기사가 살아가는 법-27화 (27/248)

27. 용병 사냥.

빙고!

술집과 창고를 뒤지고 관련자들을 심문한지 세 번 만에 목표를 찾아냈다.

붉은 점이 깜박거리는 곳은 술집 옆에 있는 평범한 가정집이었다.

경비대가 이미 쓸고 지나간 곳은 술집.

붉은 점이 깜박거리는 곳은 술집 옆옆옆의 가정집.

어쩌면 이런 식으로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은 했다.

일반적인 도시나 시골 영지와 다른 칼마르 시의 특징 때문이다.

만약 칼마르 시가 평범한 도시였다면 술집에 숨어 있든 술집 옆에 숨어 있든 상관없이 무조건 색출된다고 보면 된다.

도시의 토박이가 아닌 자가, 그것도 갑자기 나타난 수상한 남자들이 경비대의 눈을 피해서 숨어 있다니 그런 것이 가능할리가 있나.

지켜보는 눈이 몇 개인데.

그러나 이곳 칼마르 시는 손꼽히는 상업도시.

그것도 강과 바다를 낀 항구 도시에 물류 중심지다.

낯선 무리의 등장이 월간 이벤트까지는 아니지만 주간 이벤트 정도는 되는 보통의 도시와 달리 칼마르 시는 무시로 드나드는 자들을 세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항구도시만 아니어도 어느 정도는 통제가 가능했을테지만,

제국에서도 손꼽아 주는 항구를 끼고 있는 이상 낯선 자들에 대한 통제를 포기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배에 누가 얼마나 타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속이려면 얼마든지 속일 수도 있고 말이다.

게다가 끝도 없이 늘어선 술집과 환락가도 문제다.

규모가 큰 곳이야 경비대에서 관리한다지만,

자잘한 곳까지 손을 대기에는 숫자도 많고, 생기고 없어지고 하는 유동성이 지나칠 정도로 심하다.

심지어 방 하나 얻어두고 개인 영업하는 여자들까지 감안한다면 항구를 지배하는 폭력 조직조차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요'를 연발하는 것이 이해가 가기는 한다.

하지만 나는 예외다.

내게는 미니맵이 있으니까.

문제는 자연스럽게 술집 옆의 가정집을 수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촉이 좋다라는 평판은 내가 하는 일에 도움이 되겠지만 예지 비스무레한 신비라도 가지고 있다고 오해받으면 아주 많이 귀찮아질 것이 뻔하니까.

"이봐. 콧수염. 경비대에서 이미 탈탈 털고 지나갔다는 것은 나도 알아. 내가 그걸 몰라서 자네에게 물어봤을까?"

"조사관 나으리께서 시의회에서 나오셨다는 것은 알겠습니다만. 그렇다고 모르는 것을 지어서 말할 수도 없는 것이지요. 붉은 드라멘인지 뭔지 하는 용병단에 있던 말단들이 몇 명 여기서 마시기는 했지만 그것 뿐입니다. 그 뒤로 그 놈들은 보지도 못 했습니다."

술집을 지키는 기도의 우두머리쯤 되는 콧수염은 예의바른 태도로 틱틱댔다.

경비대와 의회 간의 알력이 이런 곳에서까지 영향을 미치는 걸까하고 잠시 의문을 가질 정도였다.

아무래도 유흥가는 경비대의 나와바리니까 말이다.

시의회에서 나온 조사관이 경비대가 놓쳐버린 무엇인가를 발견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상이 되기는 한다.

이곳에 조사를 나왔던 경비대원도, 앞에서 콧수염을 말고 있는 조폭도 아주 재미없게 되겠지.

그렇다고 내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을 수는 없잖아?

"여기는 그냥 술집이군. 따로 숙박시설도 없고."

"그렇지요. 우리는 포주가 아닙니다. 남자가 가오가 있지 어떻게 여자 장사를 합니까?"

"그래? 그럼 저 여자들은 뭐지?"

내 턱은 술집의 테이블에 앉아서 웃고 떠들고 있는 여자들을 가리켰다.

화장도 진하고 예쁘게 차려 입은 옷도 저급은 아니다. 포주에게 착취당하는 여자로 보이지는 않는다.

표정도 어둡지 않고 말이지.

그래도 대낮부터 술집에서 남자 손님과 동석한 여자들이라니.

설마 남자 손님이 자기 아내를 데려왔을 리는 없잖아?

아내와 낮술이라니 믿을 수 없는 일이지.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는 알겠는데 그런 것 아닙니다. 여기서 영업권을 사서 장사하는 여자들입니다. 세금까지 제대로 내고 있지요."

"영업권?"

"술집에 들어와서 테이블에 앉으려면 영업권을 사야 합니다. 그 이후는 알아서 하기 나름이지요."

"알아서 한다라."

"뭐, 손님과 말상대를 해주면서 한 잔 얻어먹을 수도 있고, 개인적으로 만날 수도 있고, 뭐 그런 겁니다. 우리쪽에다가 매출을 올려주니까 나쁠 것이 없지요. 게다가 저 여자들에게 우리는 손 못댑니다. 경비대에서 관리하니까요."

"그럼 말이지."

"뭐가 궁금하신 겁니까?"

"여기는 숙박시설이 없잖아. 그러면 저 여자들은 어디로 가는 거지?"

"그런 것을 제가 어떻게 압니까?"

콧수염은 굳어진 표정에는 더 이상 말하기 싫다는 감정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러나 나는 저기 붉은 점이 깜박이는 곳으로 자연스럽게 가야 한단 말이다.

나는 자연스럽게 콧수염의 검지 손가락을 잡았다.

이게 뭐하는 것인지 당황스러워하는 콧수염의 얼굴을 봤다.

그리고 천천히 압력을 가했다.

"비명을 지르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재미가 있을까 없을까."

콧수염의 얼굴이 붉다 못해 터질 것만 같았다.

그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나는 조금 더 세게 콧수염의 손가락을 눌렀다.

드디어 콧수염의 뒤틀린 입가의 경련이 더 이상 비명을 참을 수 없는 상황까지 몰렸음을 알려 줄 때,

그제서야 나는 콧수염의 손가락을 놓아주었다.

"으깨지지는 않았을 거야. 그 정도로 심하게 잡지는 않았으니까."

여상한 내 목소리에 콧수염은 고개를 숙이고 벌벌 떨었다.

"이봐. 내가 몰라서 물었을까? 여자들에게 강제로 방을 빌려주는 놈들이 너희들이잖아. 뭘 모른 척 해? 월세도 꽤나 바가지라며?"

콧수염은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에 단골로 출근하는 여자들 중에서 어제, 오늘 결근한 여자의 명단을 불러봐."

콧수염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제서야 내가 뭘 원하는지 눈치챈 그는, 설마 하는 기색으로 눈동자를 굴렸다.

음. 이해해. 당장이라도 경비대로 달려가고 싶겠지.

그렇지만 나도 직접 듣고 싶은 것이 있어서 그렇게는 안 되겠어.

우리는 콧수염을 앞세우고 술집을 나섰다.

슬쩍 보니까 사환 하나가 술집에서 나와서 경비대 방향으로 뛰기 시작했다.

눈치가 빠른 녀석이었다.

사업체를 하나 운영하다보니 쓸만한 인력만 보면 눈이 돌아간다니까.

기억해 둬야겠다.

이틀 연속 술집에 나오지 않은 여자는 둘이었다.

그리고 그들 중 한 명이 머무는 곳이 바로 내가 원하던 장소였다.

술집에서 옆옆옆에 있는 가정집.

아무래도 나중에 경비대에서 난리가 날 것 같다.

몇 녀석이 단단히 깨질 듯.

나는 징이 박힌 가죽 장갑을 끼고, 강철로 된 완갑을 점검했다.

이번에는 죽이면 안 되니까 때려 잡아볼 생각이었다.

함께 온 용병들은 탈출로를 막았다.

다행히도 탈출로는 복잡하지 않았다.

골목의 양쪽 끝을 막으면 끝이었으니까.

방 하나짜리인 여자의 집도 단순한 구조였다.

골목길에 바로 연결된 방문과 창 하나가 그녀의 공간과 외부를 연결하는 통로였다.

다른 곳으로 도망칠 만한 구멍은 없었다.

나는 주콥과 콧수염을 양 옆에 세우고 여자의 방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내 고개짓에 콧수염은 고함을 질렀다.

"밀리! 왜 오늘도 안 나온 거야? 단골이 너를 찾아오라고 난리를 쳐서 왔잖아!"

잠시 후 안에서 여자가 맞고함을 질렀다.

"꺼져. 벤. 아파! 나 아프다고. 손님인지 지랄인지는 나가 죽으라고 해!"

"젠장. 목소리를 들으니까 쌩쌩하구만. 먼저 갈 테니까 어서 꾸미고 나와. 너무 늦으면 피차 곤란하다고!"

콧수염, 그러니까 벤은 내 손짓에 뒤로 물러서면서 고함을 질렀다.

나는 그의 고함 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문을 박살내며 안으로 뛰어들었다.

역시나 적은 신경을 곤두세운 채 대기하고 있었다.

내 옆구리를 향해 오른쪽에서 검이 찔러왔다.

짧은 창이 정면에서 나를 노렸다.

나는 몸을 비틀어 오른쪽으로 회전하며 손날로 적의 관자놀이를 가격했다.

퍽!

비틀.

단숨에 쓰러지지 않다니 맷집 하나는 좋은 놈이었다.

그러나 한 대 더 때릴 필요까지는 없어 보였다.

이미 맛이 간 눈동자를 보건데 정신은 이미 안드로메다까지 날아간 후였으니까.

문제는 이제 내  등 뒤에 있게 된 놈이었다.

끊어서 갈기듯 연달아 내지른 짧은 창의 창끝이 내 뒤통수에서 등까지 연달아 노리고 달려들었다.

머리를 옆으로 기울이자마자 오싹한 기운이 귓가를 스치고 지나갔다.

재빠르게 몸을 돌리며 옆으로 이동하는 그 순간에도 창끝은 목에서 등까지 집요하게 따라 붙었다.

"상단주님!"

주콥의 외침과 함께 단검이 연달아 공간을 꿰뚫었다.

나를 향해 창을 내지르던 자는 다급하게 팔로 얼굴을 가리며 뒤로 물러섰다.

단검 하나가 그의 완갑에 매달려 대롱거렸다.

나는 이미 창을 든 자를 향해 몸을 돌린 후였다.

내 눈이 얼굴을 가린 완갑 너머, 적의 눈과 맞부딪쳤다.

아직 중년도 지나지 않은 얼굴이었지만 그의 눈은 나이가 많이 들어 보였다.

늙은 영혼을 가진 자였다.

우리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내 옆구리를 노렸던 적은 그제서야 옆으로 쓰러졌다.

거품까지 물고 정신을 잃은 것이 깨어나려면 한참은 멀었겠다.

나는 천천히 숨을 들이켰다.

"오늘은 떠날 예정이었는데 아쉽군."

"아직 살아 있는 부하들이 있는데 떠난다고?"

"그 놈들이 무슨 부하라고. 드라멘 사내들도 아닌데."

"검은 늑대 그라프도 두고 떠날 생각이었다고는 믿기 힘든데."

용병대장, 부대장, 그라프.

이 3명이 드라멘 출신이다.

아직까지 살아남은 드라멘 출신의 용병들은 이들 3명이 전부다.

"그라프는 빼내주기로 했는데 은신처가 습격을 당한 것을 보니 약속이 지켜지지 않을 모양이군."

용병대장의 말은 으르렁거리는 것 같았다.

그의 말이 의미하는 것은 명백했다.

내통자가 있다는 소리다.

그것도 꽤나 고위급.

경비대일까?

"내 궁금증을 도지게 하는 소리만 하는데 나중에 듣기로 하고 일단 무기를 버리고 엎드리도록. 아프지 않게 묶어줄테니까."

"농담이 심한 경비대 친구로구만."

"난 경비대가 아니야."

"음?"

"시의회의 의뢰를 받았지."

"음. 역시 그랬나. 다들 불쌍한 용병의 돈을 떼어먹느라고 난리구만. 믿을 놈 하나 없다는 말이 와 닿는군."

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예고도 없이 창이 슥 들이밀어졌다.

말하다 말고 공격을 하다니 역시 용병은 양아치라는 말이 틀리지 않는다.

내 목을 노린 창끝은 미묘하게 흔들리면서 내가 어디로 움직이든지 따라올 거라는 의도를 숨기지 않았다.

그러나 내게는 별 위협이 되지 않았다.

움직이는 창끝의 흠집까지 보이는 판인데 그것에 찔릴 수나 있을까?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창끝을 손으로 쳐내며 한걸음, 두걸음, 세걸음 적에게 다가갔다.

적 역시 내가 다가간 만큼 뒤로 물러나며 창을 연달아 찔러댔다.

그러나 창끝은 내 손에 튕기며 점점 밖으로 휘돌릴 뿐이었다.

영업용으로 쓰는 여자의 방.

좁은 곳이다.

남자 둘이 무기를 휘두르며 싸울 수 있는 장소가 아니다.

그래서 한 명은 1m가 조금 넘는 짧은 창을 들고 찌르기만 해댔고 다른 한 명은 아예 빈손으로 주먹질을 하는 중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이제 한계에 다다랐다.

창대의 끝을 부드럽게 밖으로 쳐내던 나는 적의 등이 벽에 닿는 것을 봤다.

그 순간 적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좁은 방에서의 공방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내 주먹이 연달아 적의 가슴을 두드렸고,

적은 피를 토하며 앞으로 무너졌다.

죽이지는 않았다.

나는 이 자에게서 들어야 할 것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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