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산적이 습격해 왔다.
산적들은 파웰 상단이 야영할 장소에서 멀리 떨어진 들판에 매복한 채 해가 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며칠 전 에단이 산채에 들이닥쳤을 때 산적 두목인 알란은 몹시 당황했다.
에단에 대해서는 얼굴을 아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아무래도 상두인 브란돈과 자주 다니는 사람이다보니 얼굴은 익숙한 것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산채로 곧장 왔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산채의 위치가 발각이 된 것인가?
파웰 상단이 산채의 위치를 알면 언제든 보복할 수 있는데?
그러나 알란의 걱정이 무색하게 에단은 파웰 상단 소속으로 온 것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패트슨 남작의 부하임을 알리며 파웰 상단이 자신과 패트슨 남작과의 사이를 알아냈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파웰 상단은 어디까지 알아낸 것일까?
그것에 대해서는 에단도 알지 못했다. 아니, 겁을 먹고 도망치는데 온통 신경이 쓸려서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란은 판단을 해야 했다.
이번에는 평소처럼 통행세를 받고 통과시키는 것이 아니라 야습을 하려고 준비 중이라는 사실을 알아냈을까?
소금길을 관리하는 영주들 중 하나인 패트슨 남작이 산적까지 만들어서 이중으로 벌어먹고 있다는 사실은?
패트슨 남작이 소규모의 상행을 산적에 의한 약탈로 포장해서 몇 번이고 묻어버렸던 것은?
알란은 답을 얻을 수 없는 의문에도 불구하고 결론을 내렸다. '
공격이다.
기다리지 말고 가서 급습을 하자.
기다리다가는 어떤 변수가 끼어들지 모르니까 서두르자.
결론을 내고 곧장 움직였다. 만약을 대비해 패트슨 남작에게 연락을 보내기는 했지만 답변을 기다리지도 않고 곧장 움직인 것이다.
파웰 상단은 알란의 예측대로 이동하는 중이었다. 덕분에 벌판에서 미리 자리를 잡고 야습을 준비할 수 있었다.
급하게 달려올 때는 파웰 상단이 뭐든 대비를 하기 전에 가야 한다는 일념으로 아무 생각없이 왔지만 막상 파웰 상단을 눈 앞에 두니 머리가 복잡했다.
통행세를 받고 통과시킬 때와 달리 야습을 할 거라고 생각하니 탐욕보다는 불안이 앞서기 시작한 것이다.
파웰 상단의 장거리 상행은 규모가 커서 그만큼 지키는 용병도 많고, 상인들 역시 무기를 들면 한 사람 몫은 충분히 한다.
자신이 거느린 산적들로 과연 파웰 상단을 처리하는 것이 가능한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지를 때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패터슨 남작은 지금 많은 자금을 필요로 했다. 그러니 저 암염은 알란 자신이 확보해야 했다.
게다가 이제는 칼마르의 목줄을 죌 필요가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었다. 암염 운송 같은 칼마르의 큰 산업에 피해를 줄 필요가 있다. 제대로 해낸다면 큰 공을 세우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와서 공격을 철회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그래. 지를 때는 질러야지.
알란은 자신의 결심을 다시 확인했다.
밤이 지나고 여명이 밝아오기 전, 가장 어두울 때.
파수꾼이 경계심을 잃고 살짝 부주의해질 때.
알란과 그가 이끄는 산적들이 파웰 상단의 장거리 상행을 덮쳤다.
야영장에는 짐마차를 벽으로 삼아 임시로 만들어진 성채가 사람들을 보호했다.
잠자는 자들은 사각으로 둘러싼 짐마차들 안에서 휴식을 취했고, 경계를 서는 자들은 짐마차 위에서, 또는 뒤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벽 안과 밖 곳곳에는 모닥불을 피워놓았다. 어둠 속에서 접근하는 자들이 가까이 오면 몸을 드러낼 수 밖에 없게 한 것이다.
기습이 아니라면 접근도 쉽지 않을 정도로 잘 구성된 기지였다.
그곳을 향해 산적들은 천천히 기어갔다.
충분히 가까이 접근해서 파수꾼들의 얼굴까지 구분할 정도가 되었을 때 공격을 시작했다.
시작은 화살이었다.
파수꾼을 향해 화살이 날아가고 산적들은 입을 다문 채 달리기 시작했다.
파수꾼들이 경보를 외치고 용병들이 튀어나와서 방어를 하기 전에 짐마차에 붙어야 했다.
일단 난전이 벌어지면 성공이라고 할 수 있다.
혼란과 공포로 상단의 사람들이 두려움에 빠져 도망치도록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아무래도 상단 사람들의 숫자가 더 많기 때문이다.
난전은 두렵지 않았다.
자다가 깨서 칼 한 자루 들고 나온다고 해서 제대로 싸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갑옷을 걸치지 않은 자는 너무 쉽게 부상을 입는다. 싸우려는 의지가 있어도 우왕좌왕 하다가 이리저리 휩쓸려 죽기 십상이다.
더구나 여기는 군대가 아니다. 모두가 각각 제 멋대로 옷을 입고 있다. 그러니 어둠 속에서 적과 나를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준비가 되어 있지 않고 거기다 숫자까지 많다면 서로 싸우기 십상이다.
밤에 기습을 당한 자들은 무력할 수 밖에 없다.
알란은 그렇게 생각했다
"적습이다!"
"적이다!"
삑! 삑! 삑1
화살이 날라오고 경계를 서던 용병이 몇 명 쓰러졌지만, 멀쩡히 움직이는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갑옷이나 방패에 화살을 달고 신호용 호루라기를 불면서 뛰어다니는 자들은 습격이 올 것을 알고 준비한 것처럼 대응이 빨랐다.
상단을 호위하던 용병들이 선잠을 자다가 뛰쳐나오고 상인들 역시 무기를 들고 짐마차에 올랐다. 모닥불에서 타고 있던 나무토막들을 사방으로 던져서 주변을 밝혔다.
산적들은 혼란과 공포를 안겨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당하는 쪽이 된 기분이었다. 공격에 대한 대응이 너무 빨라서 야습을 알고 기다리고 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그 의문은 금방 해답을 얻었다.
이 놈들 갑옷을 입고 있다!
알란은 가슴이 콱 막히는 것 같았다.
상단의 누군가가 미리 잘 단속하고 있어서 경보가 있자마자 곧장 튀어나오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갑옷까지 제대로 갖춰 입고 나온다고?
갑옷은 입으려면 시간이 걸린다. 다른 사람의 도움을 필요로 할 때도 있다. 그런데 눈 앞의 용병이나 상인들은 다들 갑옷을 입고 있었다.
야습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의미다.
알란은 이번 일이 실패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짐마차 위에 올라간 상인들은 활과 쇠뇌를 쏘았고, 용병들은 짐마차를 의지해서 산적과 싸웠다.
곳곳에서 쇠가 부딪치는 소리가 나고 비명이 울렸다.
처음에는 비등비등하게 싸우는 것 같았다.
그러나 금방 한쪽이 기울어져 버렸다.
산적의 수가 너무 적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생각처럼 상단쪽 사람들이 혼란에 빠지지 않아서 몸을 사린 점도 있었다.
불과 백여 명에 지나지 않는 숫자로 항전할 의지를 가진 수백에 달하는 상단 사람들을 제압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더구나 상인들이 쏘아내는 화살도 위협적이었다. 방패를 갖지 않고 있던 산적들이 화살에 맞아 연달아 쓰러졌다.
싸움이 시작되고 얼마 안 되어 여명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어둠이 사라지자 싸움의 양상이 어떤지 모두의 눈에 명확하게 들어왔다.
숱한 산적들이 짐마차 앞에 쓰러져 있었다. 짐마차를 뚫고 들어오려던 산적들이 노력한 보람도 없이 목숨을 잃은 것이다.
일부의 산적들은 짐마차와 약간의 거리를 두고 눈치를 보고 있었다.
사람 키의 2배는 되는 짐마차의 높이는 그대로 목책이나 다름없었다. 어둠이 보호할 때는 멋모르고 짐마차에 붙어서 싸웠지만 지금 그렇게 했다가는 공성전을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사다리조차 없는 산적들이 저 짐마차를 돌파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산적은 병사가 아니다. 명령이 내려진다고 해서 죽을 자리라도 돌격해 들어가는 그런 존재가 아니었다.
알란 역시 그런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지금은 도망을 쳐야 할 때였다. 그러나 그것이 가능할지 의문이었다.
일단의 기마대가 살아남은 산적들을 향해 짓쳐 들어오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
나는 미니맵에서 붉은 점이 잔뜩 모여 있던 곳으로 주콥과 그의 용병들을 이끌었다. 멀리서 산적들을 확인한 후 그들이 습격을 위해 떠날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미명이 밝아올 때 남아 있는 산적들을 휩쓸었다.
상단 습격을 위해 산적들이 떠난 자리에는 산적들이 타고 온 말과 식량, 그리고 그것을 지키기 위한 산적 몇 명이 남아 있었다. 그 중에는 에단과 그의 고향 친구도 있었다.
일방적인 전투였다.
나는 산적들을 단호하게 처리했다.
포로를 잡을 상황이 아니니 그대로 죽여 버린 것이다.
지나친 행위는 아니다.
해적은 잡히면 무조건 목을 매다는 것이 원칙이다. 교수형에서 벗어나는 해적은 특별한 예외에 속한다.
산적 역시 토벌 당하면 목을 매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광산을 가진 영주가 광산 인부로 부리는 경우가 있기도 하지만 차라리 사형에 처하는 것이 자비를 베푸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가질 정도로 열악한 환경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도둑질을 해도 초범이면 반쯤 죽을 정도의 채찍형이고 누범이면 사형일 정도로 혹형이 일반화된 세상이다.
처음에는 이것을 이해하지 못해서 멍청할 정도로 마음이 약한 병신 취급을 받기도 했지.
나는 굴러가는 머리통을 보며 지난 날의 자신을 반성했다.
그리고 칼에 묻은 피를 털어낸 후 벌벌 떨고 있는 에단에게 고개를 돌렸다.
에단의 고향친구는 도망치다가 말을 탄 용병에게 일격에 참살 당한 후였다.
말을 타고 도망치는 사람의 옆을 지나가면서 칼을 휘두르면 머리를 자르기 딱 좋은 높이다.
에단의 고향친구가 머리를 잘린 것은 제대로 주변을 살피지도 않고 무조건 뛰어서 도망친 그의 탓이라고 할 수 있겠다.
"4일 전에 칼마르로 떠난 사람이 이 곳에서 산적놈들과 뭐하고 있나? 산적에게 잡혀서 끌려다닌건가?"
나의 조롱 섞인 질문에 에단은 답변을 하지 않았다. 옆에 있던 산적의 피를 뒤집어쓴 에단은 반쯤 넋이 나간 것 같았다. 정신이 들려면 시간이 필요할 듯 했다.
"이 놈, 중요한 증인이니까 꽁꽁 묶어서 끌고 오도록. 시간 없으니까 몇 명이 말만 정리해서 끌고 오고 나머지는 돌아간다."
나는 인원을 조금 남겨서 전장 정리를 하도록 지시하고 곧장 상단이 야영하는 곳으로 향했다.
말을 타면 금방인 곳이라서 너무 늦지 않게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대로 산적들을 들이쳤다.
짐마차 주변에 남아 있는 산적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 쓰러진 채 신음을 흘리고 있거나 죽어가고 있었다.
남아 있는 산적의 대부분은 짐마차에서 좀 떨어진 거리에서 눈치를 보고 있었다.
어둠이 가시고 기습의 우위가 사라졌음이 명백했기에 두목인 알란의 명령을 기다리며 시간을 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그들을 향해 말을 탄 용병들이 돌격해 들어왔다.
그리고 그 선두에는 내가 있었다.
10명도 안 되는 인원이지만 어차피 남은 산적의 숫자도 70명이나 좀 넘을까 제대로 싸울 상황은 아니었다.
한 번의 돌격으로 70명은 50명으로 줄었다.
남은 자들은 싸울 의지를 잃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머저리들아! 멈춰! 모이라고! 저 놈들은 토벌대가 아니야! 우리를 추격하지 않는다고! 이렇게 도망치면 다 죽어!"
알란의 명령은 절규가 됐지만 따르는 자들은 아무도 없었다. 다들 상단의 용병으로부터, 말을 탄 사신으로부터 멀어지겠다는 일념뿐이었다.
*
그리고 고함을 지르는 덩치는 내 시선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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