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나, 날뛰다.
브람은 방패를 앞으로 내밀며 견제하는 경비병을 향해 몸을 던졌다. 그리고 충격에 휘청거리는 경비병을 방패 삼아 자신의 거대한 검을 창처럼 앞으로 찔렀다. 손에 익숙한 감각이 느껴지자마자 검을 회수하며 크게 휘둘렀다.
단숨에 2명의 경비병이 목숨을 잃었다.
브람의 앞에서 열을 지어서 길을 막고 있던 경비대의 진형에 크게 구멍이 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구멍을 중심으로 경비대의 진형이 크게 흔들렸다. 몸으로 방패를 밀어붙이며 개싸움을 벌이는 브람의 부하들 때문이었다.
상업 도시의 경비병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경찰에 가깝다.
도둑을 잡고 질서를 유지하고 불량배를 관리한다. 언제나 압도적인 전력으로 범법자를 상대하는 것에 익숙하다. 목숨을 걸고 적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위압하거나 제한된 폭력을 휘두르는 것이다.
그리고 예상외의 경우에는 기사가 나선다.
그래서 전쟁이 벌어지면 시에서 용병을 추가로 고용하는 것이다. 전쟁에는 경찰이 아니라 군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이 자리에서 벌어지는 것은 불량배 소탕전이 아니라 전투에 가까웠다. 아니, 전쟁에서 흔히 벌어지는 소규모 교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부상을 입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칫하면 죽는 것이다.
처음에 생각했던 것처럼 상대방을 압도적인 전력으로 찍어 누를 수 없음이 명백해졌다.
죽음을 불사하며 저항을 하고, 심지어 기사조차 상대할 만한 전력이 상대방에게 있음을 모두가 목격한 이상 '아 이건 좀' 하며 몸을 사리는 것이 당연해졌다.
상인들이 동원한 사병들은 이미 겁을 집어먹었고, 시의 경비병조차 눈치를 보는 자가 한둘이 아니었다.
그런 상황에서 브람과 그의 부하들이 돌격을 한 것이다.
서로 대치하는 집단 사이의 백병전이라는 것은 힘싸움에 가깝다.
방패를 사이에 두고 힘대힘으로 밀고 밀린다.
중간중간 검과 창으로 찌르고 그 와중에 쓰러지는 자들은 밟히거나 뒤로 빼낸다.
꽤 오랜 시간 동안 그러다가 힘에 밀리거나 기세에 밀리거나 숫자에 밀린 쪽이 확 밀리면서 무너진다.
그게 기본적인 모양새다.
그런데 브람의 일격은 경비대의 진형에 상당히 큰 상처를 냈다. 마치 기사의 마상돌격과 같은 위력이었다.
그 바람에 방패를 든 앞 열이 엉망이 됐고, 난전이 벌어졌다. 좀 더 실력이 좋고, 무장이 좋고, 깡이 좋은 쪽이 이기는 싸움이 되어 버렸다.
부상을 도외시하며 미친 듯이 날뛰는 밀염상의 무리는 당혹감에 빠진 경비병들을 정신없이 몰아쳤다.
"이런! 뭐 이리 갑자기."
"도와드리지요. 휴고 경."
"부끄럽지만 부탁드리오."
휴고는 순식간에 난장판으로 변해 버린 현장을 향해 말을 몰았다. 건물을 포위하고 있던 다른 경비대와 기사들이 이동하는 것을 보았지만 불안했다.
이대로 방치했다가는 당장이라도 어디가 뚫려버려도 이상하지 않을 판이었다.
다른 길목을 막고 있던 경비병들이 달려와서 포위한 후 저 밀염상 놈들을 짓이겨 버릴 때까지 저 놈들을 막아야 했다.
특히, 저 큰 칼 들고 날뛰는 주름진 놈부터 말이다.
*
나는 휴고의 뒤를 따라 적들을 향해 움직였다.
무장은 아쉬웠다.
이런 일이 생길 줄 알았으면 전투용 해머나 던지는 손도끼 정도는 챙겨왔을텐데. 그래도 난전이라면 널린 것이 무기가 될 테니 어떻게든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언제나 휴대하고 다니는 짧은 검을 뽑아 들었다.
1m가 조금 안 되는 길이.
사람을 찔러서 죽이기에는 충분히 길다.
적이 눈앞에 있었다.
불과 수십 명이 어우러진 전투였지만 분위기는 치열했다.
아직도 방패를 맞대고 힘싸움을 하는 자들도 남아 있고, 서로 간에 격렬하게 검격을 나누는 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슬슬 눈치를 부며 몸을 사리는 자 역시 적지 않은 수였다. 몸을 사리는 자들은 거개가 경비병이었다. 그것이 밀염상들의 수가 상대적으로 적음에도 비등비등하게 싸울 수 있는 이유였다.
나는 걸리적거리는 경비병들을 슬며시 밀어내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다가 밀염상이 걸리면 검으로 푹 찌르고 지나갔다.
너무 자연스럽고 긴장감이 없어서 찔린 자들조차 고통을 느끼고서야 자신이 공격을 당했음을 깨닫곤 했다.
물론 더 이상의 전투는 불가능이었다.
자연과 하나가 되면 새가 머리에 앉고 야생 동물이 그 무릎에서 잠이 든다고 한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못하고 바위나 나무처럼 인식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비슷한 일이 잠깐이지만 전투의 와중에 일어난 것이다.
흥분과 공포로 가득한 곳에서, 서로간의 힘을 있는 대로 짜내어 생명을 걸고 맞부딪치는 곳에서 존재감을 죽인 채 조용히 걷고 있는 존재는 유령이나 다름없었다.
등을 찔리고, 옆구리를 찔리고, 목을 찔린 자들이 나뒹굴었다. 난전으로 혼란했던 일부가 순식간에 정리가 되어버렸다.
전장의 공기가 흔들렸다.
*
크리스토퍼는 브람과 대치 중인 기사에게 한 방을 먹일 생각으로 호흡을 고르고 있었다. 경비대에서 순찰이나 도는 기사의 실력이란 뻔해서 일단 저 둘이 부딪치기만 하면 빈틈이 생기리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면 단숨에 가하는 일격으로 또 한 명의 기사를 쓰러뜨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무엇인가가 그의 감각을 거슬렸다.
그는 재빠르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직 포위는 안됐고, 지원병은 오는 중이고, 브람의 부하들도 열심히 싸우고 있는데? 뭐지? 뭔가 이상한데?
아! 숫자가, 소음이 줄었다!
크리스토퍼는 브람의 부하들이 여전히 악귀처럼 싸우고 있지만 잠깐 사이에 그 숫자가 확 줄었음을 눈치챘다. 자신의 주변은 아직 그대로였지만 왼쪽에 있던 자들 중 많은 수가 더 이상 서 있지 않았다.
뭐지? 뭐지?
필사적인 원인을 찾아 헤매는 크리스토퍼의 눈에 쓰러지는 브람의 부하가 보였다.
경비병이 아닌, 평범한 복장의 사내가 그 옆을 지나면서 찔러넣은 칼을 자연스럽게 회수하고 다시 부드럽게 움직였다. 만약 브람의 부하가 쓰러지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면 눈치채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 튀는 느낌이 없는 자였다.
크리스토퍼는 자신의 전투 망치를 강하게 쥐었다.
저걸 방치하면 다 죽는다.
설사 지원병이 오더라도 탈출이 불가능하리라는 불길한 예감에 뒤도 돌아볼 것 없이 튀어나갔다.
*
역시, 크리스토퍼.
눈치가 좋은 자였다.
저 정도의 감각도 없다면 숲에서는 순식간에 죽어나간다.
매복할 장소가 사방에 널려 있으니까.
나는 쇄도해오는 크리스토퍼를 보며 거리를 가늠했다. 한 방을 좋아하는 놈이니 한 방으로 대접해주면 되리라.
숲 속에서 며칠 동안 숨바꼭질을 한 사이라지만 원한은 없었다.
서로의 입장에서 최선을 다한 것이니 딱히 뭐라고 할 생각도 없었다.
그래도 그냥 보내줄 수는 없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고, 앞으로도 일어나지 않을 일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한솥밥 먹었던 놈들에 대한 의리가 있으니까.
저기서 발악하는 브람과 달리 돈을 내던 고객도 아니었고 말이다.
맷돼지가 달려오듯 엄청난 속도로 달려든 크리스토퍼는 무시무시한 속도로 전투 망치를 휘둘렀다.
맞으면 박살이 나겠다는 느낌이 팍팍 드는 기세였다. 인간이라면 절대로 막을 수 없겠다는 공포에 몸을 피할 수 밖에 없게 되는 그런 공격이었다.
깡!
대장장이가 모루에 내리치는 망치소리의 수십 배는 넘을 것 같은 소리가 전장 한복판에서 울려퍼졌다.
"윽!"
전투 망치를 휘두른 크리스토퍼가 오히려 신음을 토했다. 망치 자루를 잡은 손에 가해진 충격은 잠깐이나마 손을 마비시킬 정도였다.
나는 짧은 검으로 전투 망치를 막아냈다. 그냥 막으려면 저 무식하게 큰 전투망치에 내 검이고 내 뼈고 가리지 않고 그냥 부러져 나갈 수도 있으니 검의 면을 손바닥으로 받치면서 망치머리의 일격을 받아낸 것이다.
물론 검은 박살이 났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손도 박살이 났어야겠지만 내 손바닥은 멀쩡했다. 오히려 전투 망치의 자루를 잡고 잡아당겼다.
가벼웠다.
잡는 힘? 별 거 없었다.
확실히 힘은 내가 훨씬 셌다.
아무리 충격으로 일시적이나마 손이 마비되었다고는 하지만 크리스토퍼는 어이없을 정도로 간단하게 무기를 빼앗겼다.
뭐 이런 힘이!
그것이 크리스토퍼의 마지막 생각이었다.
나는 크리스토퍼의 전투 망치를 빼앗자마자 그대로 휘둘러서 크리스토퍼의 머리를 가격했다.
핼맷을 쓰고 있었다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핼맷은 망치의 모양대로 구부러졌고, 크리스토퍼의 머리도 비슷한 꼴이 되었다. 크리스토퍼는 지금까지 내 검에 구멍이 났던 자들처럼 바닥에 널부러졌다.
그때였다.
그제야 브람이 기다리고 있었던 구원자들이 도착했다.
브람이 운영하는 배의 선원들이 브람이 위험한 상황에 빠졌음을 눈치채고 구출하려고 달려왔다..
상인과 선원과 해적 사이의 어디메쯤에 위치하는 그들은 탈출하려던 브람의 부하들과 다를 바가 없는 자들이었다.
난폭하고 거친 자들인 것이다.
나는 그들이 몰려오는 길목을 향해 움직였다.
탈취한 전투 망치의 손맛이 마음에 든 만큼 앞을 가로막는 자들을 뜨겁게 환영해 줄 생각이었다.
나는 새로 도착한 자들을 향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브람 상단의 동료들이 도움을 요청하는 신호를 본 선원들은 미친 듯이 달려왔다. 그리고 그들은 브람 상단의 건물 근처에 오자마자 몇 배는 되는 숫자의 경비병들에게 몰이 당하는 상단의 동료들을 목격했다.
아직까지는 버티고 있는 모습이었지만 얼마나 더 오래 버틸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다.
그것이 선원들을 더 격발시켰다.
그들은 흉흉한 기세를 북돋으며 휘파람을 불고 고함을 질렀다. 누구라도 그 앞에 서면 위축될 수 밖에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나는 태연하게 그들을 막아 섰다.
사람 네다섯은 편하게 오고 갈 길목의 한가운데서 적의 무기로 적을 박살낼 참이었다.
그럴 수 있으리라는 감각이 나를 고양시켰다.
불안함은 없었다.
내 손에 들린 전투 망치가 적을 향했다.
그리고 회전을 했다.
저 커다란 전투 망치가, 저 무거운 전투 망치가 무게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모습으로 휘둘러진다.
공기를 찢는 소리가 망치머리에서 날카롭게 울려퍼진다.
커다란 원을 그리며 걸리적 거리는 모든 것을 박살낸다.
이것은 차라리 재해였다.
선원들은 갑옷을 입지 않는다.
선상 백병전이 벌어질 때조차 갑옷을 입지 않고 싸우는 경우가 많다.
갑옷을 입어야 몸을 보호할 수 있다는 것을 몰라서 안 입는 것이 아니다
갑옷을 입고 바다에 빠지면 아주 드문 예외를 제하고는 물에 빠져 죽기 때문에 갑옷을 안 입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선원들에게 습관처럼 되었다.
그리고 재앙이 되었다.
아니, 어쩌면 갑옷을 입었어도 별 차이는 없었을지 모르겠다.
이 무지막지한 전투 망치의 폭력 아래서는 모든 것이 공평하게 박살이 났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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