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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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3)

“점심은 밀면으로 하자.”

강현수의 말에.

송하나가 승리자의 미소를 지었고.

유카는 살짝 풀이 죽었다.

하지만.

“그리고 한정식은 저녁에 먹자.”

이어지는 강현수의 말에 유카의 표정이 다시 밝아졌다.

송하나는 어차피 자기가 이긴 건데 뭐가 좋으냐는 표정을 지었고.

유카는 둘 다 이긴 거지.

뭘 혼자만 이겼냐는 표정을 지었다.

두 여자 모두 말은 하지 않았지만.

눈빛과 표정만으로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한편 강현수는?

‘또 이러네.’

그런 송하나와 유카의 모습을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진짜 내가 모르는 줄 아나.’

강현수가 무슨 눈치 없는 소년만화나 라이트노벨 주인공도 아니고.

저렇게 대놓고 두 여자가 자신의 양옆에서 기 싸움을 벌이는데.

그 사실을 모르고 싶어도 모를 수가 없었다.

원인이 뭔지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 상황이 싫지는 않았다.

‘이 정도면 엄청 평화로운 거지.’

목숨을 건 싸움을 쉼 없이 해 왔다.

그런 강현수에게 있어서 이 정도 물밑 싸움은.

그저 귀여운 수준이 불과했다.

‘사실 유카를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하기도 했고.’

그런데 다시 만나는 걸 넘어.

아예 아틀란티스에서 지구로 넘어올 수 있을 줄도 몰랐다.

다시 만나서 반가웠고.

그렇게 만나게 된 유카와 일부러 거리를 두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뭐, 심한 수준도 아니고.’

정말 송하나와 유카가 감정의 골이 생길 정도로 다퉜다면?

강현수가 나섰겠지만.

지금은 그냥 귀여운 수준의 기 싸움에 불과하기에.

굳이 뭐라고 할 생각도 없었고.

나설 생각도 없었다.

지금은?

그저 이 평화롭고 행복한 시간을 즐기기에도 시간이 부족했으니까 말이다.

강현수, 송하나, 유카 일행이 다시금 즐거운 경주 관광을 이어 나갔다.

매일매일 똑같은 것 같으면서도 색다른 하루가 반복되었다.

강현수는 지금의 행복에 만족했고.

약간 불만이 있기는 했지만.

그건 송하나와 유카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치열한 전쟁과 위험을 겪어 본 사람일수록.

더욱더 일상적인 행복과 평화의 소중함을 잘 아는 법이었고.

강현수, 송하나, 유카 세 사람은?

그 누구보다도 지금의 평화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끼고 있었다.

* * *

강현수에게 점령당한 마계는 총 72개.

전쟁을 치르는 과정에서 수많은 마족과 몬스터들이 목숨을 잃었지만.

그래도 살아남은 마족과 몬스터도 꽤 많았다.

특히 마계 귀족이 아닌 일반 마족들은?

상당히 많은 숫자가 살아남을 수 있었다.

애초에 인구가 많기도 했고.

강현수가 마계 귀족의 경우 우선적으로 제거해 소환수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내 세상이라고 생각했는데.’

마왕 푸르푸르가 얼굴을 잔뜩 찡그렸다.

72명의 마왕 중 유일하게 강현수의 권속이 되어 목숨을 부지한 푸르푸르.

강현수가 모든 마왕을 제거하면?

자신이 대마왕이 되어 72개의 마계를 온전히 지배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경쟁자가 너무 유능했다.

‘케르논.’

강현수에게 가장 먼저 투항한 마족.

마계 공작이었지만.

강현수가 힘을 실어 줘서.

현재는 마왕 푸르푸르와 대등한 힘을 지닌 존재가 되었다.

‘정말 마신이 되어 버렸구나.’

마왕 푸르푸르는 손짓 한 번으로 마계 귀족을 마왕으로 만들어 버린 강현수의 만행(?)에 경악했다.

강현수에게 항복한 유일한 마왕.

그게 마왕 푸르푸르의 최대 장점이었다.

그런데.

마신의 힘을 손에 넣은 강현수에게 있어서는.

유일하게 살아남은 마왕이라는 신분이 별다른 메리트가 없었다.

마계 귀족을 마왕으로 만들어 버렸듯이.

마음만 먹으면.

일반 마족이나 다른 마계 귀족도 얼마든지 마왕으로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마왕 푸르푸르 입장에서는 마계를 둘로 나누어 다스리는 것도 짜증 나는데.

다른 경쟁자가 추가로 생길지 모른다는 걱정까지 해야 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불안하게 생각하던 일이.

현실이 되어 버렸다.

“마족답지 않게 전투가 아니라 다른 쪽으로 머리가 잘 돌아가네.”

강현수의 칭찬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하급 마족 하나가 바닥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박으며 환희로 가득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찮은 인간 따위에게 복종한다는 굴욕감 따위는 없었다.

마족들에게 있어 강현수는?

새롭게 탄생한 마신이었다.

마신의 칭찬을 받았으니.

마족으로서는?

감격할 수밖에 없었다.

“상을 주마.”

강현수가 그 말과 함께 손을 뻗었고.

그와 동시에.

콰콰콰콰콰!

하급 마족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강대한 마기가 줄기줄기 뿜어져 나왔다.

육체의 그릇을 키우는 작업 따위는 필요 없었다.

강현수가 마기를 하사하며 육체의 그릇도 함께 늘려 놨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너는 마계의 세 번째 마왕이다.”

“축복을 내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신이시여! 영원한 충성을 바치겠나이다!”

하급 마족에서 마왕이 된 존재가 다시금 바닥에 머리를 조아리며 충성 맹세를 했다.

사실 충성 맹세 같은 건 의미가 없었다.

강현수가 원하면 언제든 다시 하급 마족으로 돌아갈 수도 있고.

더 강한 힘을 가질 수도 있으니까.

그러나.

‘역시 의욕이 넘치는 게 보기 좋다니까.’

마왕 푸르푸르처럼 마지못해 충성하지 않고.

저렇게 알아서 기면 얼마나 좋겠는가?

“푸르푸르.”

“예, 마신이시여.”

“네가 관리하고 있던 마계의 절반을 저 녀석에게 넘겨라.”

“알겠나이다.”

마왕 푸르푸르가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힘겹게 대답했다.

마음 같아서는 고작 하급 마족에서 마왕으로 재탄생한 존재를 찢어 죽이고 싶었다.

그렇지만.

이미 자신과 대등한 힘을 가진 존재가 되었고.

강현수가 직접 만든 마왕인 만큼.

감히 적대할 수가 없었다.

“그러게 있을 때 관리 좀 잘하지 그랬냐?”

강현수의 타박에 마왕 푸르푸르의 얼굴에 절박함이 서렸다.

애초에 마족은 강인한 육체 능력과 마기를 가지고 있었고.

성질 자체가 맹수처럼 포악하고 사납다.

또한 약육강식의 마인드가 기본 장착된 종족이다.

그렇기에 인간과 대등한 지능을 지니고 있지만.

신분은 철저하게 전투 능력으로만 정해졌다.

농사 실력이 뛰어나다거나, 몬스터나 마물들을 사육하는 능력이 뛰어나다거나, 옷이나 집을 짓는 기술이 좋거나, 상처 치료 능력이 뛰어나도.

전투 능력이 떨어지면.

서열은 최하위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힘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차원.

그곳이 바로 마계였다.

그러나 지배자가 강현수로 바뀐 이 후.

마계에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인구가 많이 줄어든 마계를 부흥시키기 위해.

농사, 몬스터와 마물 사육, 옷이나 집 짓는 기술, 치료 능력 등등.

전투 능력이 아닌 다른 쪽에 능력을 가진 마족들이 우대받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아무리 강현수가 명령을 내려도.

힘이 없는 이상.

다른 마족들보다 상위 서열로 인정받기는 힘들었다.

철저하게 힘의 논리에 따르는 게 마족의 본능이었고.

이건 강현수가 창조의 힘을 사용해 마족이라는 종의 본질을 바꾸지 않는 이상.

절대 바뀔 수 없는 진리였다.

그러나.

‘괜히 그런 쓸데없는 데 힘을 쓸 필요는 없지.’

오히려 더 손쉬운 해결책이 있었다.

바로 포상.

강현수는 전투가 아니라 식량 생산이나 몬스터와 마물 사육처럼 일상생활과 마족들의 인구수를 안정적으로 늘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자들에게.

마기를 하사했다.

뛰어난 능력을 가진 자는?

마계 귀족으로 만들어 주었고.

그중에서 특출 난 공을 세운 녀석의 경우는?

지금처럼 마왕으로 만들어 주기도 했다.

‘뭐, 사실 이건 본보기지.’

일반 마족들 입장에서는?

마계 귀족도 감지덕지다.

그러나.

‘기왕이면 꿈은 크게 가지는 게 좋지.’

그래서 능력만 있으면 마왕도 될 수 있는 발판을 깔아 주었다.

‘이미 흐름이 변하기도 했고.’

전쟁이 끝난 상황.

호전적인 마족들은 그럼에도 스스로의 무력을 갈고닦는 데 집중했지만.

강현수가 그 판을 깨 버렸다.

스스로의 무력을 갈고닦지 않아도.

다른 능력을 갈고닦아도.

강해질 수 있는.

상위 서열의 마족이 될 수 있는 길을 열어 준 것이다.

그러자.

마족들은 더 이상 무력에 집중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능력을 발전시키는 데 열을 올렸다.

스스로의 노력으로 강해져서 서열을 올리는 것보다.

공을 세운 후 마신의 축복을 받아 강해진 후 서열을 올리는 게 더 손쉬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더 눈이 돌아가겠지.’

공을 세우면?

언감생심 영원히 닿을 수 없다고 여겼던 마왕의 자리까지 차지할 수 있다는 게 증명된 셈이니까 말이다.

‘그나저나 이 녀석은 영 쓸모가 없네.’

유일하게 살아남은 마왕 푸르푸르.

죽이기도 뭐해서 그냥 살려 뒀다.

그런데 마왕 푸르푸르의 머릿속에는 전투밖에 든 게 없었다.

‘기후를 다루는 능력이 있으면 그걸 잘 써먹을 생각을 해야지.’

마왕 푸르푸르의 권능은 먹구름과 뇌전.

뇌전이야 그렇다고 쳐도.

먹구름을 다스리는 권능은?

농사를 지을 때 비를 내리게 하거나.

먹구름을 밀어내 해를 드러내거나.

홍수 발생을 막는 등.

그 쓰임새가 다양했다.

한데 마왕 푸르푸르는?

그냥 스스로를 대마왕이라고 부르며 새로운 마왕이 된 케르논에 대한 질투심만 불태울 뿐.

삶의 방식이 이전과 전혀 달라진 게 없었다.

‘그나마 케르논은 노력이라도 열심히 하는데 말이야.’

케르논의 경우는 마족과 용종 몬스터의 혼혈로, 최하급 마족이라는 밑바닥에서 마계 공작까지 성장한 전적이 있어서 그런지.

눈치가 아주 빨랐고.

강현수가 원하는 걸 손쉽게 파악했다.

상사의 눈치를 살피는 데 도가 튼 부하 직원 같달까?

그래서 케르논은 인재를 적극적으로 등용하고 힘을 실어 주는 등.

강현수의 지시를 이행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고.

그만큼 성과도 있었다.

이번에 강현수의 눈에 뜨여 세 번째 마왕이 된 하급 마족 역시.

케르논의 휘하에 있던 녀석이었다.

‘내가 많은 걸 바란 것도 아니고.’

그냥 케르논 정도만 했다면.

봐줬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도 못한다.

‘그냥 잘라야겠다.’

결국 강현수는 마왕 푸르푸르의 강등을 결정했다.

그나마 가지고 있는 권능이 쓸 만해서 기회를 줬는데.

‘그 기회를 살리지를 못하니.’

거기다 상태를 보아하니.

고작 하급 마족이 자신과 대등한 존재인 마왕이 되었다는 것에 강하게 분노할 뿐.

자신이 문제가 뭐인지 전혀 모르는 것처럼 보였다.

‘태생 자체가 최고위 마족이어서 그런가.’

마왕 푸르푸르는?

태어날 때부터 최고위 마족의 혈통이었고.

빠르게 힘을 키워 마왕의 자리를 차지했다.

거기다 오랜 시간을 약육강식의 세상에서 마왕으로 살아와서 그런지.

강함이 최고라는 마족 특유의 고정관념에서 일절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윗대가리가 그 모양인데, 휘하 마족들이 바뀔 리가 없지.’

마왕 푸르푸르는 강현수의 지시에 따라 옛 관습에 젖어 있는 휘하 마족들을 계몽해야 했는데.

오히려 마왕 푸르푸르 본인부터가 왜 이런 짓을 해야 하는지.

그냥 원래대로 살면 그만이지.

굳이 이런 귀찮은 짓을 해 가며 동족인 마족들의 수를 늘려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품고 있었다.

그러니 강현수의 말에 절대 복종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이렇게 태업 아닌 태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차원이 발전해야 내 권능이 강해져.’

괜히 가이아 시스템이 강현수에게 점령한 차원이 발전하면 창조의 권능을 추가 지급해 줬던 게 아니다.

지배하는 차원을 발전시키는 게.

좀 더 정확히 더 많은 숫자의 생명체들이 번성하는 게.

창조의 권능을 늘릴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상하복명도 잘못하고 눈치도 없고 충성심도 없는 놈이니.’

굳이 더 이상 마왕 자리를 유지시켜 줄 필요가 없었다.

“마왕 푸르푸르의 신분을 대공으로 격하한다.”

강현수의 선고와 함께.

마왕 푸르푸르가 품고 있던 막대한 양의 마기가 증발하듯 사라졌다.

“히이이익!”

마왕 푸르푸르의 얼굴에 강한 절망감이 피어올랐다.

그러나 감히 강현수에게 항의할 생각을 하지는 못했다.

‘늦게라도 정신 차리는 게 좋을 텐데.’

그래야 대공 자리라도 유지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강현수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못했고.

계속해서 뻘짓을 하던 마왕 푸르푸르는?

결국 계속해서 계급이 내려가다가.

나중에는 마계 귀족이 아닌 일반 마족으로 강등당해 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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