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레벨 플레이어-361화 (361/365)

에필로그 (2)

유카는 지구가 좋았다.

수인족과 타 차원 출신 플레이어의 혼혈.

수인족에게도, 원주민 인간에게도, 타 차원 출신 플레이어에게도.

유카는 이방인에 불과했다.

지금이야 수인족의 영웅이니 어쩌니 떠들고.

원주민 인간들과 아틀란티스에 정착한 타 차원 출신 플레이어들도 어떻게든 유카를 자신들의 편으로 끌어들이려고 애쓰지만.

‘내가 정작 힘들어할 때는 아무런 도움도 안 줬으면서.’

유카가 가장 괴롭고 힘들 때.

유일하게 손을 내밀어 줬던 존재는?

강현수뿐이었다.

그렇기에 유카는 다른 사람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아니, 좀 더 냉정하게 말해 무감각했다.

자신에게 말을 걸어도.

친한 척을 해도.

유카의 입장에서는?

그저 귀찮은 날파리가 앵앵거리는 느낌밖에 안 들었다.

인간이 아닌 수인족 진영에 서게 된 것도.

강현수와 친분이 있는 투황의 권유 때문일 뿐.

특별히 수인족이라는 종족이나, 견인족이라는 일족에 애착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사실 투황도 유카의 입장에서는 다른 날파리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는 존재였지만.

‘그래도 현수 씨한테 소중한 사람이니까.’

친하게 지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뭐, 투황이 유카를 크게 귀찮게 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아오! 또 죽었어!”

그래도.

‘조만간 집 하나 얻게 해서 쫓아내야겠어.’

강현수가 얻어 준 집은 넓었고.

방도 많았다.

그래서 방 하나를 차지하는 건 상관없지만.

게임을 하며 시끄럽게 떠드는 건?

청력이 인간보다 월등히 뛰어난 견인족 혼혈 유카에게 꽤 큰 곤욕이었다.

유카는 게임 폐인의 길에 들어선 투황에 대한 신경을 끄고.

옷장을 열었다.

그리고 고심 끝에 하늘하늘한 원피스를 고른 후.

화장을 하고.

집 밖으로 나갔다.

강현수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투황의 경우야 게임에 빠져 집에만 있었지만.

유카는 아니었다.

강현수와 함께 지구의 이곳저곳을 여행하고 있었다.

대한민국만 해도 가 볼 곳이 엄청 많았고.

‘다 떨어지면 다른 나라로 가 보면 되니까.’

이동 시간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강현수의 공간 이동 스킬이면?

순식간에 새로운 여행지로 이동할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오늘은 경주에 가 보자고 해야지.’

유카는 지금 이 시간이 너무너무 행복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잠들기 전까지 항상 강현수와 함께할 수 있으니까.

강현수가 없던.

아틀란티스에서의 삭막한 삶과는 비교도 하기조차 힘든 행복감이 휘몰아쳤다.

띵동!

강현수의 집에 도착한 유카가 벨을 눌렀고.

“어서 와.”

강현수가 환하게 웃으며 유카를 반겼다.

“히히히, 네.”

강현수의 웃음을 보고 절로 기분이 좋아진 유카의 얼굴에도 환한 미소가 번졌다.

그때.

“얼른 가자.”

송하나가 강현수의 오른팔에 팔짱을 끼며 말했고.

그와 동시에 기쁨으로 가득 찬 유카의 얼굴이 떨떠름한 표정이 피어올랐다.

‘왜 자꾸 끼는 거야.’

송하나.

강현수를 제외한 모든 인물이 날파리로 보이는 유카였지만.

송하나는 예외였다.

그저 시끄럽게 왱왱거리는 날파리가 아니라.

강현수와 자신 사이에 끼어들어 훼방을 놓는 여우 같은 년.

그게 송하나에 대한 유카의 평가였다.

그렇지만.

대놓고 송하나에게 날을 세울 수도 없었다.

송하나는?

강현수에게 있어서 투황보다 먼저 만난 소중한 동료였고.

실력도 만만치 않았으며.

결정적으로.

‘현수 씨도 송하나에게 마음이 있으니까.’

단순한 동료가 아니라.

이성으로서.

남자인 강현수와 여자인 송하나가 서로에게 사랑하는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 정도는?

유카도 알고 있었다.

애초에 눈치 없는 투황도 알고 있는 사실을 유카가 모를 리가 없었다.

지구에 정착한다고 했을 때 대놓고 타박을 받기도 했고.

마음 같아서는.

‘현수 씨 곁에 얼씬도 못 하게 만들고 싶어.’

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애초에 물리적으로 싸울 수도 없다.

송하나와 유카 모두 강현수의 휘하 지휘관이었고.

강현수가 서로 다투지 말라는 명령을 내려놓은 상태니까.

사실 굳이 그런 명령이 아니더라도.

유카는 송하나에게 물리적으로 위해를 가할 생각이 없었다.

쉽게 당해 주지도 않겠지만.

설사 성공한다고 해도.

‘분명히 현수 씨한테 미움받을 거야.’

혼나는 건 상관없다.

그렇지만.

송하나라는 존재 때문에.

강현수가 자신을 미워하고 싫어하게 되는 건 원치 않았다.

자칫 잘못하면?

영원히 강현수 곁에 있을 수 없게 될지도 모르니까.

결국 엄청 짜증 나기는 했지만.

유카는 송하나라는 존재가 강현수 곁에 있는 걸 넓은 마음으로 용인(?)해 주기로 했다.

‘그래도 본처 자리는 내 거야.’

유카는 지구 출신 플레이어와 아틀란티스 차원 원주민 견인족의 혼혈.

그렇지만 평생을 아틀란티스에서 살아왔고.

당연히 사고방식이나 상식 자체가 지구 기준이 아닌 아틀란티스에 맞춰져 있었다.

지구에서는 일부일처가 기본이지만.

아틀란티스에서는 능력만 있으면 일부다처는 물론 일처다부도 얼마든지 가능했다.

또 처첩 제도도 있었다.

그렇기에 유카는 송하나에게 아량을 베풀어 첩의 자리를 주거나.

정 안 되면.

통 크게 두 번째 부인 자리 정도를 주기로 결정했다.

문제는?

‘송하나 저년이 주제도 모르고 자꾸 본처 자리를 탐낸다는 거지.’

지금 상황에서는 뭔가 송하나가 본처 포지션이고.

유카 자신이 첩이나 두 번째 부인 포지션 느낌이었다.

‘절대 안 져.’

사실 유카는 강현수의 곁에 있을 수 있다면.

두 번째 부인이든.

첩이든.

신분 자체는 크게 상관이 없었다.

그러나 유카도 사람이기에.

욕심이 있었다.

당연히 두 번째 부인이나 첩보다는.

본처인 첫 번째 부인이 되고 싶었다.

“얼른 가요.”

유카가 강현수의 왼팔에 팔짱을 끼며 말했다.

송하나와 유카를 양옆에 끼게 된 강현수는 ‘역시 오늘도 이렇게 되나?’ 하는 표정을 지으며 경주로 공간 이동 스킬을 사용했다.

경주에 도착한 세 사람은 편안하게 관광을 즐겼다.

석굴암도 가 보고, 첨성대도 가 보고, 공원이나 궁원도 갔다.

강현수와 송하나 그리고 유카는 어디를 가나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한국인으로 보이는 흑발의 미녀와 외국인으로 보이는 보랏빛 머리카락의 미녀가 남자 하나를 두고 양쪽에서 팔짱을 끼고 움직이고 있으니.

시선이 쏠리지 않는 게 비정상이었다.

그러나 강현수도, 송하나도, 유카도 다른 사람들의 시선은 크게 의식하지 않았다.

그저 편하게 관광을 하고.

맛있는 음식들을 먹으며.

오랜만에 찾아온 휴식을 편안하게 즐길 뿐이었다.

강현수는 물론이고.

송하나와 유카 역시 그간 너무 쉼 없이 달려왔다.

그렇기에 최후의 결전이 끝난 후 찾아온 평화와 휴식이.

너무나도 달콤하게 느껴졌다.

“주피도 같이 왔으면 더 재미있었을 텐데.”

강현수가 투황을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설마 지구에 와서 관광이 아닌 게임에 푹 빠질 줄은 강현수도 예상하지 못했다.

‘뭐, 나쁠 건 없지.’

강현수로서도 투황이 지구에 머무르는 건.

대환영이었다.

‘어차피 투황이 아틀란티스에서도 딱히 할 일이 없기도 하고.’

처음 목표였던 토인족의 인식 개선에도 성공했다.

투황이 게임에 빠진 건 의외였지만.

그간 치열했던 삶에 대한 보상으로 평화로운 휴식과 여유를 즐긴다는 측면에서는.

나쁠 게 하나도 없었다.

‘게임이든 뭐든.’

투황이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면서 그간 쌓인 스트레스와 부담감을 풀면 그만이다.

‘뭐, 여행은 나중에도 올 수 있으니까.’

투황이 게임을 충분히 즐기고 나면?

지금처럼 다시 여행을 다니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예전 아틀란티스에서도 수많은 지역을 돌아다니기는 했지만.

‘그건 여행이 아니었으니까.’

시간이 흐르면?

지구만이 아니라 아틀란티스를 여행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강현수가 힘겨운 여정 끝에 찾아온 평화와 여유를 만끽하는 동안.

파지지직!

송하나와 유카는 보이지 않는 기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강현수가 눈치를 챌 정도로 노골적이지는 않았지만.

물밑 싸움은 상당히 치열했다.

거기다 유카가 송하나를 못마땅하는 것 이상으로.

송하나도 유카가 못마땅했다.

‘설마 지구에 정착할 줄이야.’

송하나는 유카를 가엽고 안타깝게 생각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그렇지만.

‘이건 선을 넘은 거지.’

아틀란티스에서 강현수에게 달라붙는 것도 마음에 안 들었지만.

기분이 나빴지만.

애써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지구로 돌아와서는.

완전히 신경을 끄고 지냈다.

그랬기에 그 후 다시 만난 유카가.

설마 평생을 살아온 고향인 아틀란티스를 버리고 지구에 정착하겠다고 할 줄은 몰랐다.

거기다.

‘너무 노골적이잖아.’

유카는 지구로 온 이후로.

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절대 강현수와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다.

아마 강현수가 가족들과 사는 게 아니라 혼자 살고 있었다면?

‘자기 집 같은 건 필요 없으니까 현수 집에서 같이 살면 안 되겠냐고 했을 게 분명해.’

단순히 곁에 붙어 있기만 하는 거라면?

송하나도 용인해 줄 수 있다.

그러나 유카는 틈만 나면 강현수에게 주인에게 재롱부리는 강아지처럼 애교를 부리고 스킨십을 했다.

‘아무리 견인족 혼혈이라도 그렇지.’

유카는 개가 아니라 사람이었고.

여자였다.

그것도 아름다운 얼굴과 매력적인 몸매를 가진.

거기다 진짜 개처럼.

순수하게 주인이 좋아서 애교를 부리는 것도 아니었다.

유카는 자신의 여자로서의 매력을 어필하기 위해.

강현수를 꼬시기 위한 목적으로 애교를 부리고 있었다.

거기다.

긴 생머리, 웨이브 펌, 올림머리, 땋은 머리, 포니테일, 트윈테일 등등.

온갖 헤어스타일을 선보였다.

어디 그뿐인가?

화장도 다양한 컨셉을 선보였고.

패션도 마찬가지였다.

강현수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는 유카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송하나는 자기도 모르게 강한 위기감을 느꼈다.

애초에 송하나는 헤어스타일이나 화장 또는 패션에 크게 신경을 쓰는 타입이 아니었다.

지구에 있을 때도 그랬고.

아틀란티스에서도 마찬가지.

다시 지구로 복귀했을 때도.

강현수에게 예쁘게 보이고 싶은 마음에 화장도 하고 예쁜 옷도 골라 입긴 했지만.

유카만큼 적극적이지는 않았다.

사실 그럴 필요도 없었다.

서로 사귀자는 말을 한 적은 없지만.

사실상 강현수와 송하나는 연인이나 마찬가지였다.

매주 연인처럼 데이트를 하고.

강현수 가족들과도 한 가족처럼 지냈다.

아니, 강현수의 가족들은 사실상 송하나를 며느리처럼 대하고 있다.

또한 강현수 역시 아틀란티스에서의 경험 때문인지.

누군가에게 쉽게 틈을 보여 주거나.

가볍게 친분을 쌓는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벽을 치는 스타일에 가까웠다.

아틀란티스에서의 치열했던 삶과 지구에서의 치열했던 삶.

그런 삶을 살아온 강현수를 누가 진정으로 이해하고 공감해 줄 수 있겠는가?

오직 송하나밖에 없었다.

그러니 그간 송하나는 위기감을 느낀 적도 없었고.

느낄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유카가 지구로 넘어온 이후 상황은 급변했다.

송하나보다는 못하지만.

유카는 강현수의 삶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공감해 줄 수 있는 여자였고.

치열한 혈전을 함께했고.

적지 않은 시간을 함께 보낸 친구이자 전우였다.

거기다 송하나에게는 없는 적극성까지 있으니.

유카의 등장 이후 송하나의 경계심은 극도로 강해졌고.

송하나는 절대 강현수와 유카가 단둘만 있게 하지 않았다.

항상 함께했고.

그간 소홀하게 생각했던 헤어스타일, 화장, 패션에도 신경을 썼다.

유카의 존재가 송하나에게 있어 큰 자극이 된 것이다.

하지만 송하나가 이렇게 나오자.

유카도 당연히 더 불이 붙었다.

그 결과 두 사람은.

강현수가 눈을 뜨고 잠들기 전까지 항상 셋이 함께 있는 경지에 이르렀고.

송하나와 유카는 강현수에게 걸리지 않는 한도 내에서 치열한 물밑 싸움을 벌였다.

“현수야, 우리 점심은 밀면 먹으러 가자.”

강현수가 면 요리를 좋아하는 걸 아는 송하나가 선수를 쳤고.

“전 한정식이 좋을 것 같은데?”

유카 역시 한식을 좋아하는 강현수를 저격해 반격에 나섰다.

송하나와 유카의 시선이 강현수에게 쏠리자.

강현수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