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왕 벨리알 (5)
마왕 벨리알은 철저하게 마왕 푸르푸르만을 노렸다.
인형과 인간 들이 아무리 강해도 자신의 상대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여기서 자신에게 위협이 될 수 있는 존재는 오직 마왕 푸르푸르뿐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일 대 다수의 전투에서 가장 강한 적이자 적의 수장을 노리는 건 너무나 당연한 처사였다.
그런데.
푸우욱!
핏빛 오러를 머금은 검이 마왕 벨리알의 몸을 뒤덮고 있던 지옥의 겁화를 뚫고 작은 상처를 입혔다.
“큭!”
마왕 벨리알의 표정이 사납게 일그러졌다.
고통스러워서가 아니었다. 수치스러워서였다.
자신의 몸에 상처를 입힌 상대가 마왕으로 만든 인형이 아닌 하찮은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고작 인간 따위가!”
마왕 벨리알이 자신을 공격한 인간을 단숨이 찢어 죽이려 했지만.
슈욱!
그 인간은 가볍게 사라지더니, 다른 곳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마왕 푸르푸르를 선두로 인형들과 다른 인간들이 공격을 가해 왔다.
‘인형과 인간 따위가.’
마왕 벨리알이 마기를 끌어올려.
화르르르륵!
인형과 인간 들을 단숨에 태워 버리려 했다.
슈욱!
그러나 그 순간 모든 인형과 인간 들이 모습을 감추더니.
마왕 벨리알의 권능인 지옥의 겁화가 닿지 않는 곳에서 다시금 모습을 드러냈다.
‘쥐새끼 같은 놈들.’
마왕 벨리알이 이를 뿌득뿌득 갈았다.
그와 동시에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다.
인형과 인간에 불과하다고 무시했지만.
날파리 같은 존재라고 가볍게 생각했지만.
그건 아니었다.
저 인형과 인간 들은 단순한 날파리가 아니라.
자신에게 위협적인 타격을 줄 수 있는, 맹독을 품은 벌 떼였다.
마음 같아서는 자신의 신경을 박박 긁는 벌 떼를 먼저 쓸어버리고 싶었지만.
계속해서 발동하는 공간 이동 능력이 꽤 성가셨다.
마기를 풀어 공간 이동을 억제해 보려고 해도 절대 통하지 않았다.
‘어차피 저놈만 잡으면 다 끝나는 일이야.’
마왕 벨리알이 마왕 푸르푸르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인형과 인간 들은 어차피 저놈의 수족.’
마왕 푸르푸르만 쓰러트리면, 이 지겨운 술래잡기도 그 끝을 맞이하리라.
그리고 마왕 푸르푸르는 절대 자신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화르르르륵!
전신에 지옥의 겁화를 두른 마왕 벨리알이.
투우웅!
전력을 다해 마왕 푸르푸르를 향해 달려들었다.
꽈아앙! 꽈아앙! 꽈아앙!
다시금 치열한 접전이 이어졌다.
마왕 푸르푸르는 죽을힘을 다해 버티고 또 버텼다.
그러나 승급을 통해 한 단계 성장한 마왕 벨리알과 강현수를 만난 이후 더 성장하기는커녕 창조의 권능을 빼앗겨 더 약하진 마왕 푸르푸르의 싸움은.
이미 그 결과가 정해져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제 끝장이다!”
마왕 푸르푸르의 마기가 거의 바닥을 드러냈다.
단순히 마기만 바닥난 게 아니라, 뿔이 부러지고 날개가 찢겨 나갈 정도의 적지 않은 부상을 입었다.
평범한 상처라면 마왕 그레모리의 권능으로 손쉽게 상처를 치료할 수 있겠지만.
마왕 벨리알의 권능 지옥의 겁화에 당한 상처는 마왕 그레모리의 권능인 치유로도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화르르륵!
뜨거운 화염에 휩싸인 마왕 벨리알의 손톱이 마왕 푸르푸르의 심장을 꿰뚫기 직전.
슈욱!
다시금 마왕 푸르푸르의 몸이 사라졌다.
그러나 마왕 벨리알은 개의치 않았다.
아무리 도망쳐 봐야, 손실된 마기가 회복되는 것도 아니었고 손상된 육체가 치유되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마왕 벨리알은 자신의 승리를 확신했다.
마왕 푸르푸르를 상대하느라 보유하고 있던 마기의 1/4가량을 소모했지만.
‘그런 건 이제 신경 쓸 필요 없어.’
소모한 마기는 마왕 푸르푸르가 점령한 차원들에서 회복하면 그만이고.
마왕 푸르푸르를 쓰러트리면, 마왕 벨리알은 더 강해질 수 있다.
“죽어라.”
마왕 벨리알이 마왕 푸르푸르를 향해.
화르르륵!
지옥의 겁화를 쏟아 냈다.
주변에서 인형과 인간 들이 벌 떼처럼 달려들었지만, 방어에 전념하며 무시했다.
마왕 푸르푸르만 쓰러트리면, 인형과 인간 들 따위는 금방 정리할 수 있었으니까.
그때.
콰콰콰콰콰콰!
위협적인 타격을 줄 수 있는 맹독을 품은 독침 수준이 아니라, 일격에 자신의 숨통을 끊을 수 있는 치명적인 공격이 날아들었다.
휘익!
핏빛 오러를 머금은 칼날이 마왕 벨리알의 몸을 휘감고 있던 지옥의 겁화를 뚫고.
푸욱!
마왕 벨리알의 가슴에 박혀 들었다.
“커억!”
마왕 벨리알은 마기를 아낌없이 쏟아부어 권능을 최대치로 강화했다.
퍼어어어엉!
자신을 공격하던 인간이 살짝 뒤로 밀려 났다.
“이게 무슨? 어떻게 이런 일이?”
마왕 벨리알이 경악한 표정으로 자신을 공격한 인간을 바라봤다.
고작 인간.
방금 전까지 흔하디흔한 벌 떼 중 일부로 인식했던 하찮은 인간이.
전력을 다해 쏟아 낸 자신의 권능을 막아 냈다.
그것도 가볍게 뒤로 밀리는 수준의 충격만으로.
특히 방금 전 자신의 권능을 가볍게 꿰뚫으며 날아든 공격에서 담긴 힘은.
그간 마왕 푸르푸르가 날렸던 공격을 압도적으로 넘어선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아쉽네.”
강현수가 마왕 벨리알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성공만 하면 손쉽게 마왕 벨리알을 처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아쉽게도 실패했다.
그렇지만.
‘치명상을 입힌 것도 꽤 큰 성과지.’
거기다.
‘애초에 운에 기댄 공격이기도 했고.’
마왕 푸르푸르였다면 마왕 벨리알에게 이렇게 가까이 접근하기도 힘들었을 거다.
강현수가 힘을 숨겼기에, 인간이기에 방심했다가 한 방 먹은 것뿐.
그러나 아무리 방심했다고 해도.
‘마왕 벨리알이 바보도 아니고.’
자신의 목숨을 위협할 수 있는 힘을 품고 있는 공격을 인간이 날렸다는 이유로 무시할 리가 없었다.
‘뭐, 애초 계획은 지구전이었으니까.’
첫 번째 공격으로 숨통을 끊지 못했다고 다급해질 필요는 없었다.
“인간이었다니!”
마왕 벨리알이 경악한 표정으로 강현수를 바라봤다.
마계는 약육강식의 세계.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는 게 당연한 세상이다.
설사 마계가 아니더라도.
아무리 하찮은 인간이라도.
자신과 대등한 힘을 지닌 자가 약자인 마왕 푸르푸르 따위의 수하일 리가 없었다.
“마왕 푸르푸르가 아니라, 인간이었어! 인간이 나를 궁지로 몰아넣은 적이었어.”
마왕 벨리알은 꽤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그렇지만 행동은 굼뜨지 않았다.
화르르르륵!
곧바로 목표를 마왕 푸르푸르에서 강현수로 변경해 맹공을 날렸다.
꽈아아아앙!
마왕 벨리알의 칠흑빛 화염과 강현수의 핏빛 오러가 충돌했다.
마왕 푸르푸르였다면 그대로 밀렸겠지만, 강현수는 팽팽하게 버텼다.
그리고.
“하압!”
송하나를 필두로 휘하 지휘관들과 소환수들의 맹공이 펼쳐졌다.
마기가 고갈되고 적지 않은 부상을 입은 마왕 푸르푸르 역시 전투에 합류했다.
강현수를 필두로 한 휘하 지휘관들과 소환수들의 합공.
하지만.
“내가 인간 따위에게 질 것 같으냐!”
화르르르륵!
마왕 벨리알은 오히려 더욱더 어두운 칠흑빛 화염을 뿜어내며.
꽈아아아앙!
더 거칠게 날뛰기 시작했다.
‘강하다.’
마왕 벨리알의 공격을 정면에서 막아 내고 있던 강현수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그간 수많은 마왕들을 상대해 왔지만, 마왕 벨리알은 말 그대로 격이 달랐다.
휘하 지휘관들과 소환수들의 공격이 마왕 벨리알의 권능 지옥의 겁화에 녹아내린다.
마왕 푸르푸르가 상처 입은 몸을 이끌고 남은 마기를 모조리 끌어모아 최선을 다해 맹공을 퍼붓지만.
“마왕이 인간에게 고개를 숙이다니! 네놈은 마족의 수치다!”
오히려.
퍼어어엉!
마왕 푸르푸르가 더 큰 부상을 입고 힘없이 밀려났다.
지옥의 겁화에 휩싸여 날뛰는 마왕 벨리알의 위용은.
말 그대로 무시무시했다.
강현수가 온갖 방어 스킬과 그간 늘어난 스텟을 통해 상대하려고 해도.
모든 것을 불태워 버리는 지옥의 겁화에서 흘러나온 열기를 온전히 막아 내기는 힘들었다.
그렇지만.
씨익!
강현수의 입가에는 더욱더 환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만큼 강해지기는 했지만.’
마왕 벨리알의 몸에 있던 마기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소모되고 있었다.
‘승급을 하더니 한 번에 뿜어낼 수 있는 출력이 엄청나게 높아졌군.’
그게 성장이 멈춘 마왕 푸르푸르와 계속해서 성장해 나간 마왕 벨리알의 차이였다.
하지만 출력이 높아진 만큼.
‘연비는 떨어질 수밖에 없지.’
마왕 벨리알은 고성능 스포츠카나 마찬가지였다.
마왕 푸르푸르를 상대할 때는 연비를 적절히 소모하며, 적당히 액셀을 밟아도 마왕 푸르푸프 정도는 손쉽게 압도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강현수를 상대로는 그럴 수가 없었고.
그렇기에 액셀을 끝까지 밟아 자신이 낼 수 있는 최고의 속도를 계속해서 갱신해 나갔다.
하지만 그 결과 연료 게이지인 마기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증발해 나갔다.
뿌득! 뿌득!
마왕 벨리알의 근육이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오르고.
우득! 우득!
전신의 뼈가 한계라는 듯 삐걱거렸다.
마치 한계속도를 넘은 스포츠카의 타이어가 빠르게 마모되고 차체가 삐걱거리듯.
마왕 벨리알의 성장한 육체 역시 한계치를 넘어선 대가를 치르고 있었다.
‘역시 똑똑하단 말이지.’
강현수는 왜 마왕 벨리알이 마기를 미친 듯이 소모하며 육체의 한계를 넘어선 힘을 사용하면서까지 맹공을 가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게 지금 마왕 벨리알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니까.’
처음부터 만전이라면 모를까, 마기를 너무 많이 소모했다.
거기다 자신과 대등한 강자인 강현수를 상대하면서.
마왕 푸르푸르와 마왕 출신 소환수들, 송하나를 비롯한 휘하 지휘관들까지 상대해야 하는 상황.
이대로 무난하게 전투가 이어지면?
마왕 벨리알의 패배는 확정적이었다.
맹공을 펼치는 과정에서 크고 작은 부상을 입고 마기가 고갈되어, 죽거나 사로잡힐 게 뻔했다.
그렇기에 마왕 벨리알은 강현수를 쓰러트리는 것에 자신의 목숨을 걸었다.
마기가 완전히 바닥나기 전에.
육체가 한계를 견디지 못하고 자멸하기 전에.
강현수의 숨통을 끊으면 마왕 벨리알의 승리였고.
그때까지 버티면?
강현수의 승리였다.
‘거기다 숨겨 놓은 한 수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강현수는 차분히 방어에 전념했다.
마왕 벨리알에게는 시간제한이 있지만, 강현수에게 시간제한 따위는 없다.
오히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휘하 소환수들이 수급해 주는 경험치로 인해.
아주 조금이기는 하지만, 강현수는 계속 강해지고 있었다.
마기나 마력도 부족함이 없었다.
정 부족하면, 소환수의 일부를 소멸시켜 마기나 마력을 회수해도 그만이었다.
반면 마왕 벨리알의 경우.
마기도 마기지만 육체가 먼저 한계를 맞이해, 더욱 심하게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이대로 조금만 더 시간을 끌면 무너지겠다는 확신이 든 순간.
화르르르륵!
마왕 벨리알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던 지옥의 겁화가 더욱 화려하게 불타오르며.
삐걱거리던 마왕 벨리알의 육신이 더욱 강한 힘을 발휘했다.
“죽여 주마, 인간!”
마왕 벨리알이 월등히 빠른 속도와 힘으로 강현수를 향해 칼날 같은 손톱을 휘둘렀다.
‘체력이 일정 퍼센트 이하로 떨어지면 신체 능력이 상승하고 권능이 강화되는 버프인가?’
그런 종류인 것 같은데, 성장 폭이 어마어마하게 컸다.
아마 이게 마왕 벨리알이 숨겨 왔던 한 수였던 모양이다.
‘대책 없이 마기를 소모하고 육체의 손상을 감수하며 덤벼든 게 아니었구나.’
오히려 이 한 번의 틈을 노리기 위해.
맹공을 펼치며 휘하 지휘관들과 소환수들을 밀어내고 강현수와의 거리를 좁힌 것이리라.
그렇지만.
‘너만 숨겨 놓은 한 수가 있는 게 아니거든.’
강현수가 스킬 한계 돌파를 사용했다.
그 순간.
우득! 우득!
야수화 스킬의 위력이 늘어난 게 느껴진다.
콰콰콰콰콰!
뱀피릭 오러가 더욱 찬란한 핏빛을 뿜어낸다.
그 외에도 괴력, 융합, 스킬 증폭 등등 스킬들의 위력이 일제히 증가했다.
꽈아아앙!
강현수의 손에 들린 탐식의 검이 마왕 벨리알의 손톱을 후려쳤고.
콰지직!
지옥의 겁화에 휩싸여 있던 마왕 벨리알의 손톱에 크고 작은 금이 갔다.
“크윽!”
강현수의 반격에 밀려 난 마왕 벨리알이.
“으아아아아!”
다시금 강현수에게 달려들었다.
신체 능력이 강화되는 권능에도 분명 한계가 있을 터.
그리고 그건 강현수도 마찬가지였다.
고작 10분.
한계 돌파를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고작 10분이 전부였다.
‘그 정도면 충분하지.’
강현수가 미소를 지으며 마왕 벨리알을 향해 탐식의 검을 휘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