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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 벨리알 (4)

마왕 벨리알은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렇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적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런 빌어먹을 놈.’

마왕 벨리알은 결국 먼저 움직이기로 결정했다.

이대로 시간이 지나면.

아무것도 없는 죽음의 땅에서 가만히 있는 자신은 더 이상 강해지지 못한다.

그러나 수많은 차원을 점령한 적은?

계속해서 강해질 수 있다.

그러니 마왕 벨리알의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이 먼저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불리해지는 것은.

적이 아니라 자신이었으니까.

마왕 벨리알이 차원 게이트를 활성화시켰다.

파지지직!

차원 게이트를 넘어가자 황량한 죽음의 땅이 마왕 벨리알을 반겨 왔다.

그런데.

‘차원의 지배권이 넘어오지 않는다.’

그 말은 이곳을 점령한 마왕의 권속들이 이 차원 어딘가에 남아 있다는 뜻이었다.

‘찾아내서 모조리 찢어 죽여 주마.’

마왕 벨리알이 눈에 불을 켜고 차원 이곳저곳을 뒤졌다.

그러나 아무리 열심히 움직여도 이곳을 점령한 마왕의 권속을 찾을 수가 없었다.

제아무리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다고 해도 마왕 벨리알의 몸은 하나였다.

권속들이 없는 이상 차원 전역을 홀로 뒤지는 건, 엄청난 시간이 소모될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이곳을 점령한 마왕의 군세가 계속 이동한다면?

영원히 찾을 수 없는 술래잡기를 하게 될지도 몰랐다.

‘이 쥐새끼 같은 놈이!’

자신이 직접 상대가 점령한 차원으로 넘어가면, 당연히 맞상대를 하러 올 줄 알았다.

그런데 이렇게 나오다니?

‘네놈의 본진이 털려도 이렇게 가만히 있을 수 있나 보자.’

마왕 벨리알이 이를 뿌득뿌득 갈았다.

이곳은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차원이었지만.

수많은 마족과 몬스터 그리고 인간 들이 살아가는 차원으로 가면?

그 쥐새끼 같은 놈도 모습을 드러낼 수밖에 없으리라.

만약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럼 그 차원에 있는 마족과 몬스터 그리고 인간 들을 도륙해 힘을 키울 수 있었으니까.

파지지직!

마왕 벨리알이 다시금 차원 게이트를 열었고, 이동을 시작했다.

* * *

‘드디어 움직이네.’

그간 차분히 힘을 쌓아 온 강현수는 마왕 벨리알이 자신이 지배하는 차원을 활보하고 다니는 걸 알아차렸다.

가이아 시스템 덕분이었다.

[마왕 벨리알이 스나이즈 차원을 침공하였습니다.]

‘각 차원에 소환수들을 적당히 분배해 놨으니까, 차원 지배권이 빼앗길 걱정 같은 건 할 필요 없어.’

마왕 벨리알이 고작 차원 하나 점령하겠다고.

몇 달에서 몇 년, 운이 없다면 몇십 년을 허비할 수 있는 일에 매달릴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현재 마왕 벨리알은.

강현수의 예상대로 계속해서 창조의 권능과 마기를 소모하며 차원을 넘나들고 있었다.

운 나쁘게 소환수들이 마왕 벨리알과 조우할 수도 있지만.

‘그럼 역소환하면 그만이야.’

강현수는 지배권을 유지할 만한 숫자의 소환수들을 각 차원의 여러 곳에 분산해 놨다.

살아 있는 생명체라면.

아무도 없는 곳에서 견뎌야 하는 고독.

식량 및 식수 보급, 생필품의 부재 등으로 난리가 나겠지만.

‘소환수한테는 그런 게 필요 없지.’

유지 비용도 안 든다.

거기다 필요할 때는 언제든지 소환해서 써먹으면 그만이었다.

‘그렇지만, 이제 슬슬 잡을 준비를 해야지.’

마왕 벨리알은 인간과 몬스터는 물론, 자신의 동족이자 권속인 마족들까지 모조리 잡아먹은 상태.

‘아마 승급을 했을 거고, 마왕 푸르푸르보다 강하겠지.’

그래도 질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마왕 벨리알이 강해진 만큼.

강현수도 수많은 창조의 권능을 흡수했고, 더 강해졌으니까.

그렇지만.

‘기왕이면 최소한의 피해로 잡는 게 좋지.’

마왕 그레모리와의 결전 때처럼 소환수의 대다수를 소모한 후 승리하는 건 사양이다.

‘손해는 아니지만.’

얻을 수 있는 이득이 적어지니까 말이다.

‘그럼 이제 슬슬 마왕 벨리알을 잡을 준비를 해야겠군.’

강현수가 차분히 그간 쌓아 올린 것들을 점검했다.

* * *

“으아아아!”

마왕 벨리알이 분노 어린 함성을 터트렸다.

벌써 몇 개의 차원을 넘었는지 모른다.

그런데도 살아 있는 생명체라고는 단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다.

대체 언제까지 이런 술래잡기를 해야 한다는 말인가?

‘얼마 안 남았어.’

마왕 벨리알이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자신이 모든 것을 멸절시켜 버린 차원이 서서히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단지 걱정되는 건?

‘차원 게이트를 여느라 마기가 영구적으로 조금씩 소모되고 있어.’

차원 게이트를 열기 위해서는 창조의 권능이 필요하고.

창조의 권능을 사용하면, 마기의 영구적인 손실은 필연적이다.

‘마기를 보충할 방법을 찾아야 해.’

처음에는 그리 큰 소모량이 아니었지만.

차원 게이트를 열 때마다 점점 마기의 소모량이 늘어났다.

‘큰 문제는 아니야.’

마왕 벨리알의 보유한 마기는 절대적이었고.

그저 티끌보다 조금 더 큰 마기가 영구적으로 줄어들었을 뿐이다.

마족, 인간, 몬스터 들을 찾아내 학살하면 가볍게 채울 수 있는 마기에 불과했지만.

어쨌든 자신이 약해지고 있다는 사실에, 자신이 적의 의도대로 놀아나고 있다는 사실에 점점 더 기분이 나빠졌다.

파지지직!

마왕 벨리알이 다시금 차원 게이트를 열었고, 몸을 날렸다.

막 차원 게이트를 빠져나온 마왕 벨리알이 주변을 둘러봤다.

역시 아무것도 없는 죽은 자들의 차원이었다.

그런데.

‘마기?’

적지 않은 마기가 감지되었다.

‘운이 좋구나.’

차원의 지배력을 잃지 않기 위해 배치해 놓은 적의 마족들이 마침 자신의 근처에 있었던 모양이다.

마왕 벨리알이 재빨리 그곳으로 향했다.

‘놈들을 도륙하고 줄어든 마기를 복구한다.’

차원의 지배권까지 획득하면?

금상첨화였다.

‘멍청한 놈들.’

마기가 뭉쳐진 곳에 있는 놈들은 마왕 벨리알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했는지 가만히 있었다.

슈우우우욱!

무서운 속도로 날아간 마왕 벨리알이 공격을 가하려는 순간.

적지 않은 마기를 뿜어내던 존재들이 말끔하게 사라졌고.

꽈아아아아아앙!

찬란한 섬광과 강력한 폭발이 마왕 벨리알의 몸을 뒤덮었다.

꽈아아앙! 꽈아아앙! 꽈아아앙!

폭발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연달아 일어났다.

‘이게 무슨 장난질이지?’

거대한 버섯구름 수십 개가 피어오를 정도의 엄청난 폭발이었지만.

너무나 당연하게도 마왕 벨리알의 몸에는, 티끌만 한 상처도 없었다.

그저 마기가 개미 눈물만큼 소진되었을 뿐이었다.

그때 사방에서 강력한 마기와 마력을 가진 존재들이 감지되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마왕 벨리알에게 익숙한 마왕 푸르푸르의 마기도 포함되어 있었다.

* * *

‘실험 결과는 성공적이네.’

지구에서는 오랜 시간 연구 중이던 방사능 없는 핵무기 개발에 성공했다.

강현수는 이에 대한 테스트 상대로 마왕 벨리알을 선택했다.

실험의 목적도 있었고.

마왕 벨리알의 화를 돋우려는 목적도 있었으며.

벨리알의 마기를 소모시키려는 목적도 있었다.

‘뭐, 실제로 소모한 양은 얼마 안 되겠지만.’

그래도 마왕 벨리알을 사냥하는 데 아주 약간이라도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강현수가 정한 마왕 벨리알의 사냥 방식은 철저한 지구전이었으니까.

‘이 차원에는 나와 소환수들을 빼면 아무것도 없어.’

그 말은, 마왕 벨리알이 소모한 마기를 보충할 방법이 제로라는 소리다.

소환수들을 처리하면서 미약한 마기를 얻을 수는 있겠지만.

그게 소환수를 처리하는 데 소모한 마기보다 클 수는 없으리라.

‘내가 그렇게 만들 거니까.’

이번 전투에 참가하는 건.

강현수, 마왕 출신 소환수들, 마왕 푸르푸르, 스킬 레플리카를 공유받은 송하나를 포함한 열 명의 지휘관들이 전부였다.

이들을 제외한 휘하 지휘관들과 다른 소환수들은?

‘냉정하게 말해서 큰 도움이 안 돼.’

오히려 전투 중 마왕 벨리알에게 잡아먹혀 마기를 보충해 주는 수단이 될 가능성이 농후했다.

강현수 입장에서는 오히려 그 시간에 몬스터 오토 사냥에 참가해.

‘내 레벨을 지속적으로 올려 주는 게 나아.’

강현수가 마왕 벨리알을 주시하며.

-사냥을 시작한다.

휘하 지휘관들과 소환수들에게 공격 명령을 내렸다.

파지지지직!

화르르르륵!

콰콰콰콰콰!

온갖 권능과 공격 스킬의 파도가 마왕 벨리알을 향해 날아들었다.

“푸르푸르! 오늘 네놈의 숨통을 끊어 주마!”

마왕 벨리알 역시 강하게 전의를 다졌다.

‘마왕 푸르푸르를 살려 두니 쓸모가 많네.’

현재 마왕 벨리알은 마왕 푸르푸르가 지금까지 자신을 괴롭힌 범인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꽈아아아아앙!

마왕 벨리알이 온갖 권능과 공격 스킬의 포화를 맨몸을 받아 내며.

화르르륵!

자신의 권능인 모든 것을 태워 버리는 지옥의 겁화를 뿜어냈다.

꽈아앙! 꽈아앙! 꽈아앙!

“이 인형들은 뭐냐?”

마왕 출신 소환수들을 발견한 마왕 벨리알이 마왕 푸르푸르를 향해 비웃음을 날렸다.

“저 인간들은 또 뭐고?”

파지지직!

마왕 푸르푸르는 마왕 벨리알의 말에 대답하는 대신 자신의 권능인 뇌전을 토해 냈다.

퍼어엉!

가볍게 마왕 푸르푸르의 공격을 막아 낸 마왕 벨리알의 입가에 자신만만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큭큭큭! 마왕 푸르푸르, 고작이게 다냐? 이런 인형과 인간 들 따위를 동원해서 나를 이기겠다고?”

마왕 출신 소환수들이 품고 있는 힘은 살아 있을 때보다 강했다.

그러나 그래 봐야 고작 마왕 하나에서 둘 정도의 힘을 품고 있었고, 대부분이 하위 서열 마왕이었다.

또한 송하나를 비롯한 휘하 지휘관들의 전력 역시 만만치 않았지만, 그래 봐야 인간일 뿐.

인간들 모두를 합쳐 봐야 마왕 둘에서 셋 정도의 전력에 불과했다.

그건 마왕 벨리알에게 별다른 위협이 되지 못했다.

승급을 하기 전의 자신이었다면, 분명 일방적으로 당했을 정도로 강력한 전력이었지만.

이미 한계를 초월해 한 단계 높은 격을 지닌 존재로 성장한 현재의 마왕 벨리알에게는.

충분히 이길 수 있는, 보잘것없는 전력에 불과했다.

“그간 도망 다닌 이유가 있었구나. 이런 조무래기들을 키우는 데 공을 들이느니, 차라리 본신의 힘을 강화하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마왕 푸르푸르.”

마왕 벨리알이 마왕 푸르푸르를 조롱했지만.

파지지지직!

마왕 푸르푸르는 대답 대신 공격을 선택했다.

“아무리 발악해도 네놈은 나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얌전히 내 먹잇감이 되어라!”

마왕 벨리알이 마왕 푸르푸르를 향해 돌진했고.

그와 함께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다.

꽈아앙! 꽈아앙! 꽈아앙!

대지가 갈라지고, 하늘이 진동한다.

마왕 푸르푸르가 메인 탱커였고.

마왕 출신 소환수들과 송하나를 포함한 지휘관들이 딜러의 포지션을 맡아서 맹공을 가했다.

강현수 역시 송하나를 포함한 지휘관들의 틈에 섞여 마왕 벨리알에게 적당한 수준의 공격을 가했다.

‘다행히 보는 눈이 없는 놈이네.’

강현수는 창조의 권능을 사용해 자신의 힘을 철저하게 감췄다.

또한 소환수 및 휘하 지휘관 들과의 연결 고리도 숨겼다.

그렇지만 마왕 벨리알은, 강현수가 지금까지 상대해 본 마왕들 중 가장 강력한 존재였다.

그래서 살짝 걱정했는데.

‘굳이 걱정할 필요가 없겠어.’

물론 마왕 벨리알이 힘을 숨긴 강현수를 주목하지 않는 이유는, 마왕 푸르푸르가 멀쩡히 살아 있다는 점이 컸다.

‘마왕 벨리알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지.’

인형들과 인간들 그리고 마왕으로 이루어진 적.

마왕 벨리알은 당연히 자신과 같은 마왕이자 고귀한 격을 가진 마왕 푸르푸르가 이 무리를 이끄는 군주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강현수는 차분히 때를 기다렸다.

‘마왕 푸르푸르가 순식간에 죽임을 당할 정도로 약한 놈도 아니고.’

당분간은 고기 방패 역할을 충실히 해낼 수 있었다.

또 위급한 순간이 오면?

‘일인원수부 소환 스킬을 써서 이동시키면 그만이지.’

강현수의 직업 스킬인 일인원수부 소환과 역소환은.

휘하 지휘관과 소환수 들에게 있어서 사실상 공간 이동 스킬과 동일한 효과를 발휘한다.

강현수가 곁에 있어야 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쿨타임이 없다는 장점도 있지.’

이건 마왕 벨리알 같은 강자와의 전투에서 실로 엄청난 이점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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