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원의 구원자
‘정말 팍팍 퍼 주네.’
그것도 이렇게 대놓고 말이다.
‘명분만 만들면 된다는 거 같은데.’
강현수가 뭔가 보상을 받을 만한 업적을 이룩하면.
‘가이아 시스템이 법칙을 어기지 않는 한도 내에서 최고의 보상을 준다.’
강현수에게는 나쁠 게 전혀 없는, 오직 이득만이 가득한 호의였다.
‘그나저나 세 번째 마왕은 도대체 어떤 놈이야?’
기왕이면 최대한 빨리 만나고 싶었다.
현재의 강현수는 딱히 강해질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제67마계의 몬스터들이 있기는 했지만.
‘그거 잡아서 어느 세월에 강해지냐고.’
아무리 생존력과 번식력이 좋은 몬스터들이라도.
어느 정도는 개체 수 보존을 해 줘야 명맥을 이어 갈 수 있다.
‘이번처럼 먼저 쳐들어갈 수는 없나?’
이대로 시간이 흘러가면, 강현수가 강해지는 속도보다 마왕들이 강해지는 속도가 더 빨라진다.
그런 만큼 지금은 오히려 선공을 하는 게 더 유리했다.
‘창조의 권능을 사용하면 가능할 것도 같은데.’
강현수는 타 차원을 침공한 전력이 있는 마왕 그레모리, 마왕 단탈리온, 마왕 암두시아스를 소환수로 보유하고 있었다.
마왕들이 타 차원을 침공했던 방법을 참고하면.
‘가능할 수도 있어.’
문제는.
‘괜한 민폐를 끼칠 수도 있는데.’
마계로 쳐들어가면 그건 다행이다.
그렇지만 엉뚱하게 아군 차원으로 들어가 가이아 시스템의 방호를 엉망진창으로 만들면?
일이 꼬여 버린다.
설사 마계 침공에 성공한다고 해도.
‘제1마계 같은 곳으로 넘어가 버리면 곤란한데.’
서열 1위의 마왕 바알이 지금까지 조용히 있지는 않았을 테고.
아마 다른 마왕들을 잔뜩 잡아먹었거나.
수많은 차원을 점령해 힘을 키웠을 수도 있다.
‘기왕이면 하위 서열 마계로 가면 좋겠는데.’
위험 부담이 너무 컸고.
창조의 권능이 얼마나 소모될지도 감이 잡히지 않았다.
자칫 잘못하면 괜히 창조의 권능만 소모하는 꼴이 될 수도 있었다.
‘일단 시도라도 해 봐?’
강현수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U–EX랭크 퀘스트가 발동했습니다.]
[마왕의 침공에 고통받고 있는 차원 세이버를 구원하십시오.]
[조건 - 마왕군이 전멸하거나 차원 세이버의 점령을 포기해야 합니다.]
[보상 – 차원 세이버의 지배권과 창조의 권능]
[U-EX랭크 퀘스트 ‘차원 세이버를 구원하라’를 수락하시겠습니까?]
[예.] [아니오.]
“하!”
강현수의 눈앞에 난생처음 보는 퀘스트가 떠올랐다.
‘괜히 퍼 준 게 아니었구나.’
강현수가 강해져야 제대로 써먹을 수 있으니까.
이렇게 과할 정도로 퍼 준 거였다.
‘나쁘지 않아.’
침공받는 아군 차원을 구원하면?
경험치도 팍팍 올릴 수 있고.
어쩌면 새로운 업적을 줄지도 모른다.
‘보다 안전하게 마왕을 잡을 수 있어.’
막말로 위험하면, 세이버 차원의 인류에게 조금 미안하기는 하지만.
‘퀘스트를 포기하고 지구로 귀환할 수도 있지.’
어차피 눈앞의 퀘스트는 성공 시 보상만 있고.
‘실패했을 때의 페널티는 없으니까.’
결정을 내린 강현수가 예를 선택했다.
파지지지직!
그 순간 강현수의 눈앞에 사람 한 명이 겨우 들어갈 만한 차원 게이트가 열렸다.
‘친절하기도 하셔라.’
강현수가 눈앞에 생겨난 작은 차원 게이트 속으로 몸을 날렸다.
* * *
크와아아악!
몬스터가 성난 포효와 함께 앞발을 휘둘렀고.
콰지지직!
돌과 나무를 쌓아 겨우겨우 보수해 놓았던 방어진이 무참히 박살 났다.
‘이제 끝장인가?’
더 이상 버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몇 달간 밤낮으로 몬스터의 공격을 막아 낸 플레이어들의 체력과 마력은 이미 며칠 전에 바닥났다.
강화 스킬과 보호 스킬로 만들어진 방어진에 기대서.
어떻게든 악으로 깡으로 버티고 있었는데.
‘더 이상은 무리야.’
방어진이 박살 났고 싸울 힘도 없다.
이제 남은 건, 몬스터들의 공격에 무참히 잡아먹히는 것뿐.
파지지직!
그때 그의 눈앞에 작은 차원 게이트가 열렸다.
“빌어먹을 가지가지 하네.”
입에서 절로 욕설이 터져 나왔다.
필드에 널린 몬스터도 감당하지 못해 죽을 위기다.
그런데 새로운 차원 게이트까지 열리다니?
그 말은.
‘어차피 이거 막아도 죽는다는 소리잖아.’
물론 막을 힘도 없지만.
그래도 억울했다.
너무너무 억울했다.
그간 괜히 죽을힘을 다해 버텨 왔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애써 버티고 있던 눈에서 희망이 사라졌다.
그간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며 함께 버티던 동료들의 눈에도 포기와 절망이라는 감정이 피어올랐다.
오늘 자신들은, 이 자리에서 죽으리라.
그때.
“개판이네.”
단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낯선 언어가 귓가를 울렸다.
‘마족인가?’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상관없었다.
차원 게이트에서 나온 게 몬스터든 마족이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어차피 자신들은 죽을 텐데.
그때.
콰콰콰콰콰!
강력한 마력의 파동과 함께.
캬아아악!
크우우웅!
몬스터들의 비명이 터져 나왔고.
“어?”
눈앞에 있던 몬스터들이 말끔하게 쓸려 나갔다.
그제야 고개를 들자.
낯선 복장을 한 검은 머리카락에 검은 눈동자를 가진 ‘인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세이버 차원이 처한 현재 상황을 간단하게 설명해 줄 수 있나?”
상대의 말에.
“어, 그게, 그러니까.”
그는 횡설수설하며 자신이 알고 있는 상황을 설명했다.
* * *
‘쉽게 말해 나라가 망했다는 거네.’
세이버 차원으로 넘어온 강현수는 함락당하기 직전인 인간들의 근거지로 몰려들어 오는 몬스터들을 말끔하게 정리했다.
그리고 세이버 차원의 상황을 물었다.
결과는 처참했다.
‘여기도 중세 정도의 문명 수준인가 보네.’
하고 있는 복장이나 무기, 시설물의 수준이 딱 그 정도였다.
거기다 왕국 어쩌고까지 했으니까.
“다른 나라의 상황을 알고 있나?”
“모릅니다. 왕국이 멸망한 후 생존자들을 모아 겨우겨우 버티고 있었던지라.”
“주변에 다른 생존자들이 있는지는?”
“그게 저도 잘…….”
방금 강현수가 구해 준 생존자 집단의 리더로 보이는 이는 그다지 아는 정보가 없었다.
‘뭐, 그럴 수도 있지.’
피골이 상접한 걸 보니.
그간 제대로 먹지도 마시지도 못한 모양이다.
또 입고 있는 옷가지나 병기도 해지고 낡았다.
“받아라.”
강현수가 아공간에서 식량와 생필품을 꺼내 나눠 줬다.
“근처의 몬스터를 정리해 주마. 최대한 버티며 생존해라.”
세이버 차원을, 피해를 최소화하며 정리해야 했다.
‘어차피 내 차원이 될 거니까.’
거기다 아론 차원의 구원자처럼.
‘세이버 차원의 구원자 같은 칭호를 줄 확률도 높고.’
그럼 세이버 차원이 빠르게 발전할수록 강현수가 가진 창조의 권능도 강해진다.
‘머릿수가 많으면 발전도 더 빠르겠지.’
아무리 물적 자원을 퍼부어도.
인적자원이 없으면 발전에 한계가 있다.
“아, 예. 감사합니다.”
상대가 고개를 꾸벅하며 인사를 했지만.
강현수의 관심사는 사방에 득실거리는 몬스터들이었다.
‘끝도 없네.’
제67마계에 서식하는 몬스터들과는 그 숫자 자체가 비교하기 힘들 정도였다.
‘일단 청소부터.’
강현수가 송하나를 비롯한 휘하 지휘관들을 소환했다.
슈슈슈슉!
“어? 현수야?”
“주군, 여기는 도대체?”
갑작스럽게 강현수에게 소환되어 온 송하나 일행이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여기는 세이버라는 다른 차원이야. 현재 마왕군의 침공을 받고 있고. 내가 퀘스트를 받았는데…….”
강현수가 대략 상황을 설명하자 송하나 일행의 얼굴이 환해졌다.
몬스터가 확 쪼그라들어 사냥을 제대로 하지 못했던 건 강현수만이 아니었다.
휘하 지휘관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럼 다 쓸어버리면 되겠군요.”
“사람은 구조하고 몬스터나 마족은 모조리 쓸어버리겠습니다.”
휘하 지휘관들이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탈것을 주지.”
강현수 소환수들을 소환했고.
각 지휘관들에게 마룡을 한 마리씩 탈것으로 배치해 주었다.
“부채꼴로 퍼져 나가면서 몬스터들을 정리하고 사람들을 구조한다. 상대하기 힘든 마계 귀족이 등장하면 곧바로 알리도록.”
“알겠습니다.”
강현수의 지시에 지휘관들이 마룡의 머리 위에 올라탔고.
캬우우우웅!
마룡들이 힘찬 포효와 함께 날갯짓을 하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알아서 잘하겠지.’
휘하 지휘관들은 각 직급에 맞게 군단과 사단 병력의 소환수들을 이끌고 있다.
갑자기 공작급 마계 귀족이 등장하는 게 아닌 이상은.
모든 적을 순조롭게 쓸어버릴 수 있을 터였다.
“너희도 가라.”
강현수가 마왕 그레모리, 마왕 단탈리온, 마왕 암두시아스를 포함한 마계 귀족 출신 소환수들에게도 지시를 내렸다.
“예, 주군!”
강현수 휘하에 있던 병력이 부채꼴로 흩어지며 무자비한 속도로 몬스터들을 분쇄해 나갔다.
‘그럼 나도 움직여 볼까.’
강현수는 마계 대공인 마룡족 로드의 머리 위에 올라탔다.
“가자.”
캬우우우우웅!
강현수를 머리 위에 태운 대공급 마룡이 포효를 하며 하늘로 날아올랐고.
그와 동시에 차원 세이버를 구원하기 위한 대대적인 몬스터 토벌 작전이 실행되었다.
* * *
콰콰콰콰콰!
마룡의 입에서 뿜어져 나온 브레스가 몬스터들을 쓸어버렸다.
휘익!
강현수가 휘두른 핏빛 오러가.
서거거걱!
잘 익은 벼를 수확하는 농부처럼 몬스터들의 목을 베어 나갔다.
그게 끝이 아니다.
쿵! 쿵! 쿵!
강현수의 소환수들이 무자비한 속도로 몬스터들을 쓸어버리고 있었다.
마계 귀족과 마족 출신의 소환수들이 부채꼴로 펼쳐져 포위망을 구성하며 몬스터들을 학살했고.
몬스터 출신 소환수들은, 굳건한 벽이 되어 적 몬스터들이 도망칠 퇴로를 막았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후략……
레벨이 미친 듯이 올라갔다.
‘진짜 끝이 없네.’
잡아도 잡아도 몬스터는 계속 나왔다.
반면.
‘생존자의 숫자가 너무 적어.’
가뭄에 콩 나듯이 고작 몇백 명 규모의 생존자들이 보이는 게 전부였다.
아쉽기는 했지만, 강현수는 부지런히 몬스터를 사냥하며 이동했다.
그러던 강현수의 눈에.
‘마족?’
족히 몇십만은 되어 보이는 마족의 대군이 눈에 들어왔다.
‘마계 귀족도 있네.’
거기다.
‘인간들도 있잖아.’
그 숫자가 족히 몇백만 명은 되어 보였다.
‘왜 그렇게 생존자들의 숫자가 적나 했더니.’
마족들이 생포해서 관리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놈들도 인간 농장을 만들려는 속셈이겠지.’
마족들의 생각이야 뻔했다.
‘일단 생존자들부터 보호해야겠는데.’
마족들이 인질로 잡을 수도 있고.
전투 여파에 휘말려 사상자가 나올 수도 있었다.
‘가장 적합한 놈이.’
마계 공작 이라비쿠.
움직이는 성벽으로 불리며.
‘일정 수준 이하의 공격을 무효화시키는 권능을 가지고 있지.’
생존자들을 보호하기에 딱 알맞은 능력이었다.
‘일인원수부 소환.’
강현수가 마계 공작 이라비쿠를 소환했다.
“부르셨습니까, 주군.”
다른 곳에서 전투를 치르던 와중에 소환된 마계 공작 이라비쿠가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마족에게 포위되어 있는 인간들을 보호할 수 있나?”
강현수의 물음에.
“물론이옵니다.”
마계 공작 이라비쿠가 공손히 대답했다.
소환수가 되며 그 격이 하락했다고는 하지만.
명색이 마계 공작이었고.
또 방어와 보호는 마계 공작 이라비쿠의 특기였다.
더군다나 저기 있는 마족들 중 가장 강한 자가 고작 해야 마계 백작급.
그럼 마계 공작 이라비쿠의 권능으로 인간들을 완벽하게 보호할 수 있었다.
“그럼 가라.”
강현수의 지시가 떨어지기 무섭게.
마계 공작 이라비쿠가 마족들에게 포위되어 있는 인간들의 머리 위로 이동한 후, 자신의 권능을 사용했다.
위이이잉!
검푸른 장막이 펼쳐져 인간들을 뒤덮었고.
그 모습을 목격한 순간.
콰콰콰콰콰!
강현수가 마족의 대군을 향해 핏빛 오러가 가득 담긴 검을 휘둘렀다.
꽈아아아앙!
커다란 폭음과 함께 마족의 대군 중 일부가 순식간에 쓸려 나갔다.
“모두 죽여라.”
강현수의 지시와 함께.
크아아아앙!
마룡족의 로드를 시작으로.
강현수의 소환수들이 마족의 대군을 향해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