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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의 군주 (2)

* * *

‘갑자기 왜 계약이 해제된 거지?’

루브투스는 자신과 연결되어 있던 마계 백작과의 계약이 끊어지자 적잖이 당황했다.

그리고 그건, 그의 동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계약이 갑자기 끊어졌어!”

“너도 그래?”

“나도 그런데?”

루브투스를 비롯한 마족의 계약자들은 불안함에 몸을 떨었다.

“혹시 그분들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거 아닐까?”

“그럴 수도 있어. 다른 차원을 침공하는 전쟁이 진행 중이라고 했으니까.”

“괜히 우리한테까지 불똥이 튀는 거 아니야?”

루브투스의 동료들이 긴장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쓸데없는 걱정은 하지 마. 마왕 암두시아스 님이 어떤 분이신데.”

루브투스가 동료들을 다독였다.

이 자리에 모여 있는 이들은 모두 동족들의 뒤통수를 거하게 치고 마족에게 붙은 인류의 배신자들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다.

저항하던 이들은 모두 죽었고, 미리 줄을 잘 섰던 자신들은 살아남았으니까.

거기다 단순히 살아남은 것만이 아니다.

인류의 배신자들은 차원 아론에서 일국의 왕을 능가하는 절대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마족들이 내린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거나 심기를 거스르면.

아무 잘못이 없어도 팔다리가 날아가고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지만.

인간 농장에 가는 것보다는 나았다.

인류의 배신자들은 같은 인간들 중에서는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최고의 폭군이었다.

농장에 속해 있는 인간들을 죽이는 게 아니라면, 그들을 대상으로 원하는 건 뭐든 할 수 있었다.

원래 세상이었다면, 범죄자로 평생을 감옥에서 썩든가 사형당할 법한 범죄를 무제한으로 저지를 수 있다.

반란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가이아 시스템으로 인해 각성한 플레이어로서의 힘을 잃고, 초인에서 평범한 인간으로 영락한 인간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마족과의 계약으로 강력한 힘을 손에 넣은 인류의 배신자들을 이길 수 없었다.

인류의 배신자들에게 주어진 임무는 단 하나.

살아남은 인간들의 숫자를 최대한 늘리고.

그들을 최대한 고통스럽게 만들라는 것이었다.

이에 인류의 배신자들은 온갖 비인간적인 짓거리를 하며 살아남은 이들을 쥐어짰다.

물론 어느 정도의 조정은 필요했다.

집단 자살 사건이 벌어지기라도 하면 큰 질책을 받거나.

자신들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으니까.

“농장 놈들이 알아차리면 큰일인데. 어떻게 하지?”

“그러게 말이야. 우리가 힘을 잃은 걸 알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

마족의 계약자들이 갑자기 끊어진 계약에 당황한 이유는 그들 역시 플레이어로서의 힘을 잃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마족과의 계약을 통해 얻은 힘으로 초인의 육체를 유지할 수 있었는데.

마족과의 계약이 사라진 이상, 그들의 육체 능력 역시 평범한 인간과 다를 바가 없었다.

지금까지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반항하려면 해 보라는 듯 농장의 인간들을 괴롭혔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럴 수가 없었다.

그동안은 욱하고 덤벼드는 놈이 나오면, 오히려 유희거리가 생겼다고 즐거워했지만.

지금 그런 일이 벌어지면.

끝장이었다.

인류의 배신자들은 고작해야 3만이 조금 넘는 숫자에 불과했다.

3백만이 반란을 일으켜도 불안할 판인데.

3억이나 되는 숫자가 반란을 일으키면 절대 감당할 수 없었다.

인류의 배신자들에게 달라붙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추종자들이 있기는 하지만.

추종자들을 합쳐 봐야 1백만 남짓이었다.

“괜히 불안한 티 내지 말고 평소처럼 해. 금방 해결될 테니까.”

루브투스가 동료들에게 말했다.

“그렇겠지?”

“그래.”

루브투스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렇지만 사실은 루브투스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인간 농장에서 사육되는 가축들의 저항 의지가 거의 말살된 상태이기는 하지만, 완벽하지는 않았다.

물리적인 저항은 하루에도 수십 번도 넘게 일어나는 상황이다.

마족의 계약자들과 그 추종자들은 마이너스한 감정을 최대한 많이 생성시키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자신들이 그만큼의 마이너스한 감정을 토해 내야 하는 상황이기에.

마족의 계약자들과 그 추종자들은 농장의 인간들이 최대한 고통스럽고 괴롭게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니 물리적인 저항이 없을 수가 없었다.

보통은 추종자들이 제압하지만, 일이 커지면 마족의 계약자들이 직접 나서는데.

지금은 절대 나설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마족님들이 오시고 우리와 계약을 맺어 주실 거다. 그때까지만 조심하면 그만이야.”

루브투스가 애써 불안감을 지우며 말했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상황은 루브투스를 비롯한 인류의 배신자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았다.

“와아아아아아!”

커다란 함성과 함께.

“저 새끼들 힘을 잃었어! 모조리 죽여!”

살기 어린 외침이 사방에서 들려왔기 때문이다.

“이런 젠장!”

루브투스의 얼굴이 굳어졌다.

최소한 며칠은 버틸 줄 알았는데, 고작 몇 시간도 버티지 못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지?”

“일단 튀어.”

마족이 준 힘을 잃은 이상 그들은 평범한 인간에 불과했고.

광기에 휩싸인 농장의 인간들 손에 붙잡히는 순간.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였다.

거기다 강한 원한까지 있으니, 곱게 죽지도 못할 게 분명했다.

* * *

“와아아아아아!”

“죽여라! 죽여라!”

“곱게 죽이지 마! 최대한 잔인하게 죽여!”

수십만에 달하는 군중이 광기 어린 외침을 토해 내고 있었다.

이런 광경은 이곳에서만 벌어지고 있는 게 아니었다.

비슷한 일이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강현수가 마왕 암두시아스에게 물었다.

“인간 농장에서 반란이 일어난 모양입니다. 마족의 계약자들과 추종자들이 패배한 것 같군요. 사실 당연한 일입니다. 마족이 죽으면 계약도 끊어지니까요.”

“아아.”

강현수는 대번에 어떤 상황이 벌어졌는지 이해했다.

아틀란티스에서 마족의 계약자들을 상대해 본 경험이 꽤 많았기 때문이다.

‘굳이 내가 징벌할 필요도 없었네.’

아론 차원의 원주민들이 알아서 인류의 배신자들을 처단한 것이다.

‘나쁘지 않아.’

가축의 삶이 익숙해져서 싸울 의지조차 잊어버린 것보다는 저렇게 분노를 토해 내는 게 더 나아 보였다.

그때 피투성이로 장대에 매달려 있던 인류의 배신자 중 하나가 강현수의 곁에 있던 마왕 암두시아스를 발견했다.

“아, 암두시아스 님! 저희를 구원해 주소서!”

“마왕님이 오셨다! 네놈들은 이제 끝장이야!”

“으하하하하! 이 빌어먹을 가축 놈들!”

인류의 배신자들은 살판이 났다.

“마, 마왕이다!”

“어떻게 하지?”

“싸우자!”

“우리가 어떻게 마왕을 이겨?”

“언제까지 가축으로 살 거야! 차라리 죽더라도 싸워 보자!”

반면 반란을 일으킨 원주민들은 적잖이 당황했다.

싸우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공포에 질려 벌벌 떠는 이들의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심지어 바닥에 납작 엎드려 몸을 벌벌 떠는 이들도 있을 정도였다.

‘저항 의지가 거의 꺾였네.’

수십만에 달하는 군중 중에서 무기를 들고 살기 어린 눈빛으로 마왕 암두시아스를 바라보는 이들의 숫자는 다 합쳐 봐야 다섯이 넘지 않았다.

‘뭐,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겠지.’

오히려 다섯이나 나온 게 용했다.

‘끝까지 저항했던 이들은 이미 다 죽었을 테니까.’

안타깝기는 했지만 이미 벌어진 일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강현수가 가볍게 손을 뻗었다.

그와 동시에 뿜어져 나온 마력이 그 다섯의 몸을 휘감았고.

그 다섯이 강현수와 마왕 암두시아스를 향해 빨려 들어가듯 이동했다.

“으하하하하! 멍청한 가축 놈들! 오늘 일을 두고두고 후회하게 해 주마!”

“어디 가축 주제에 반란을 일으켜!”

인류의 배신자들은 살판이 났고.

“역시 저항하지 않기를 잘했어.”

“저 녀석들은 고통스럽게 죽을 거야.”

군중은 절망 가득한 표정으로 강현수에게 끌려가는 다섯을 불쌍하다는 듯 쳐다봤다.

“어서 죽여라! 마왕!”

“가축으로 사느니 인간으로 죽겠다!”

강현수와 마왕 암두시아스 앞까지 왔음에도 다섯은 의기를 잃지 않았다.

“퉤! 마족인 줄 알았더니 인간이었구나!”

“동족을 배신하고 마족에게 붙은 버러지!”

“인류의 배신자!”

특히 마왕 암두시아스보다 강현수를 더 죽어라 노려봤다.

“마음에 들어.”

강현수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러나 플레이어의 힘을 잃은 그들은 강현수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오히려 자신들을 비웃는다고 생각해 더욱 거친 욕설을 토해 낼 뿐이었다.

“통역 가능한 놈이 있나?”

강현수가 마왕 암두시아스에게 물었다.

아론어를 아는 녀석이 있다면 이중 통역이라도 시킬 생각이었다.

이자들에게 플레이어의 힘을 돌려줄 수도 없고.

고작 대화를 나누기 위해 창조의 권능을 쓰기도 아까워 물어본 것이었다.

“없사옵니다.”

“그럼 전에는 어떻게 대화를 했어?”

“계약을 맺어 의지로 뜻을 전달했사옵니다. 하오나 주군이시라면 굳이 계약을 맺지 않으셔도 의지로 의사를 전달하실 수 있으실 것이옵니다.”

“어떻게 하는 건데?”

강현수의 물음에 마왕 암두시아스가 대략적인 방법을 알려 줬고.

-이렇게 하면 되는 건가?

강현수의 물음과 동시에.

“뭐야?”

“왜 갑자기 머릿속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거야?”

그 다섯이 반응했다.

-간단하게 상황을 설명해 주마.

강현수가 의지로 상황을 설명해 줬다.

“저놈이 당신의 소환수란 말입니까?”

-그렇다.

“또 이렇게 우리를 놀리려는 것이냐!”

믿는 자도 있었고.

안 믿는 자도 있었다.

-알아서 생각하라. 하지만 원한다면 너희들이 저놈들을 처벌할 수 있게 해 주마.

강현수가 인류의 배신자들과 그 추종자들을 가리키며 말하자.

“믿겠습니다!”

“설사 놀리는 거라도 속아 주지.”

다섯의 태도가 돌변했다.

‘원래 앞잡이가 더 미운 법이지.’

지주보다 마름이 무섭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특히 마족은 원래 적이지만, 저들은 자신과 같은 인간인 만큼.

더 증오스러우리라.

“암두시아스.”

“예, 주군.”

“저들과 같은 이들을 찾아 한데 모아 나에게 데리고 와라.”

“알겠나이다.”

“수하들을 붙여 주마.”

강현수가 마왕 암두시아스를 사령관으로 임명한 후, 마족과 인간 출신 소환수들을 적절히 배치해 주었다.

‘인류의 배신자들에 대한 처벌은 알아서 진행할 수 있을 것 같고.’

지도자들만 뽑아 놓으면 그 정도는 할 수 있을 거다.

이미 지금도 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문제는.

‘제대로 돌아가게 만들어야지.’

이대로 아론 차원을 방치해도 어느 정도 돌아가기는 할 거다.

알아서 리더를 뽑고 무너진 문명을 재건하며 살아갈 기반을 마련하리라.

하지만 아론 차원은 너무 처참하게 무너졌다.

식량 역시 그리 넉넉지 않았다.

굶주림 역시 고통 중 하나, 그렇기에 애초에 식량 생산조차 여유롭지 못했다.

‘어느 정도 도움은 줘야지.’

지도자들이 폭정을 저지르지 못하게 하고.

식량과 생필품을 어느 정도 지원해 주는 것.

그 정도만 해도 아론 차원의 재기에 도움이 되리라.

굳이 그렇게 할 필요는 없었지만.

‘할 수 있는데 굳이 안 할 필요도 없지.’

아론 차원은 패배하기는 했으나.

어쨌든 지구와 아틀란티스와 같은 가이아 시스템의 영향을 받는 동맹이었고.

아론 차원이 빠르게 발전한다고 강현수가 딱히 손해 볼 일도 없었다.

* * *

강현수는 지도자들에게 적당히 힘을 실어 주고 경고도 해 뒀다.

그 후 지구에서 대량으로 생산된 식량과 생필품도 지원해 줬다.

그러자.

[칭호 아론의 구원자가 주어집니다.]

칭호가 나왔다.

‘뭐야?’

강현수가 정보를 확인했다.

[아론의 구원자 – U-EX랭크]

-아론 차원이 발전할수록 더 많은 창조의 권능을 얻습니다.

그저 인도적인 차원에서 한 일인데.

그게 꽤 큰 이득이 되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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