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습
“좋네.”
조화는 검과 마법을 함께 썼을 때 생기는 불균형을 해소해 주고, 그 위력을 증폭시켜 주는 스킬이었다.
‘마검사 전용 스킬이네.’
강현수도 탐이 날 정도였지만.
‘굳이 레플리카 한 칸을 차지할 정도는 아니야.’
또 마력의 심장을 대체할 정도도 아니었다.
송하나는 마검사이기에 조화 스킬의 활용도가 극대화되지만.
오러를 사용하는 강현수 입장에서는?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상관없는 스킬이었다.
“3위는 누구지?”
“접니다.”
3위는 도르초프였다.
강현수는 도르초프를 비롯한 다른 휘하 지휘관들이 보상으로 받은 스킬들을 확인했다.
랭크가 EX로 떨어지기는 했지만.
확실히 좋은 스킬들이었다.
그러나 강현수는 뭔가 이상한 점을 느꼈다.
‘스킬 상성이 너무 좋아.’
기여도 보상으로 나온 스킬은 해당 플레이어의 단점을 보완하거나, 장점을 증폭시켜 주는 식이었다.
마치 가이아 시스템이 기여도를 받은 플레이어의 상태창에 맞춰 스킬을 따로 제작하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내 경우에도 사용해 버린 불사의 서의 1회 부활이 영구적으로 적용된 거나 마찬가지인 셈이고.’
또한 앞으로 마왕들을 상대할 때 가장 큰 도움이 될 만한 스킬인 마에 대적하는 자까지.
‘지금까지는 이런 적이 없었는데?’
강현수가 느낀 가이아 시스템은 미리 정해 놓은 코드를 실행하는 프로그램 같았다.
오류가 생기면,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한데 이번에는 뭔가 달랐다.
‘코드를 짜 놓은 프로그래머가 직접 개입한 것 같단 말이지.’
하나 그걸 직접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뭐, 크게 상관은 없겠지.’
강현수는 강제로 자신의 운명을 바꾼 가이아 시스템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과 가이아 시스템이 서로 협력해야 하는 사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었다.
‘정확히는 내가 일방적으로 도움을 받는 거지만.’
강현수가 아틀란티스에서 지구로 이동할 때 힘을 잃지 않은 것으로 증명했듯.
가이아 시스템은 더 이상 강현수에게 제재를 가할 수가 없다.
강현수가 가이아 시스템과 이어져 있기는 하지만, 지금도 원하면 언제든지 연결을 끊을 수 있다.
단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가이아 시스템과 연결을 유지하는 게 성장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지.’
강현수 혼자 몬스터를 사냥하고 창조의 권능을 사용해 강해지는 것보다는.
가이아 시스템의 보조를 받아 성장하는 게 더 적은 권능으로 더 높은 효율을 낼 수 있다.
좀 더 노골적으로 표현하자면.
강현수가 일방적으로 가이아 시스템의 힘을 쪽쪽 빨아먹고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런데 반발은 없어.’
한때 강현수가 가이아 시스템과의 연결을 강제로 끊어 버렸듯.
가이아 시스템도 강현수와의 연결을 강제로 끊어 버릴 수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동안은 정해진 대로 움직이는 무생물이라서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일로 인해, 그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 * *
두 번째 마왕군의 침공을 막아야 한다는 사실이 알려졌기만, 큰 혼란은 없었다.
‘뭐, 첫 번째 침공을 별다른 피해 없이 막아 냈으니까.’
일반인은 물론이고, 플레이어 중에서도 갑자기 떠오른 시스템 메시지를 보고 첫 번째 침공을 막아 냈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이 있을 정도였으니.
첫 번째 침공을 막아 내는 데 동원된 플레이어들 역시 별다른 피해가 없었다.
현대 화기의 무자비한 폭격이 있었고.
그 폭격을 뚫고 나온 마계 귀족들은 강현수와 랭커들이 전부 처리했으니.
일반 고레벨 플레이어들 입장에서는, 위기라고 할 만한 상황이 거의 없었다.
‘아틀란티스랑 차이가 크네.’
차원 전역이 전쟁터가 되었던 아틀란티스와 달리.
지구는 호주, 그것도 사람이 살지 않는 지역에서만 전투가 일어났으니.
물적 피해와 인적 피해 모두 아틀란티스와는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적었다.
‘그렇지만 다음에도 그럴 거라는 보장은 없지.’
첫 번째 침공만 해도.
‘장소 운이 좋았던 거니까.’
거기다 마왕 단탈리온이 마왕 중 최약체라는 점도 있었고 말이다.
‘일단 정보 수집부터 해야겠지.’
마왕 단탈리온을 소환수로 만들었으니, 알아낼 만한 정보가 꽤 많으리라.
한 가지 문제는.
‘마왕 단탈리온이 제71마계의 몬스터와 마족을 다 끌고 왔다는 건데.’
그럼 차원 게이트가 더 이상 몬스터를 토해 내지 않을 거고.
그렇게 되면 플레이어들이 레벨 업을 할 수가 없다.
그리고 그 제약은 계속해서 0레벨 플레이어로 돌아가 무한 레벨 업을 하는 강현수도 피해 갈 수 없었다.
* * *
세계 각국의 정부는 영구적으로 존재해 던전화된 차원 게이트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에 들어갔다.
그 결과.
‘다행히 아예 소멸하지는 않았네.’
기존에 영구적으로 존재했던 던전화된 차원 게이트가 아직 멀쩡히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몬스터가 나오지는 않았지.’
그 이유는 제71마계에 더 이상 남아 있는 몬스터가 없기 때문이리라.
“마왕 암두시아스에 대해 아는 걸 털어놔 봐.”
강현수가 소환수가 된 마왕 단탈리온에게 물었다.
“마왕 암두시아스는…….”
마왕 단탈리온의 입에서 마왕 암두시아스에 대한 정보가 흘러나왔다.
다만 아쉬운 점은.
‘크게 쓸 만한 정보가 없잖아.’
애초에 마왕들에 대해서는 마왕 그레모리를 소환수로 만든 순간부터 꽤 많은 정보를 얻었다.
그럼에도 마왕 단탈리온에게 마왕 암두시아스에 대한 정보를 물어본 건.
혹시 그사이 변경된 점이 있나 해서였다.
그런데 막상 마왕 단탈리온도 아는 게 없었다.
그저.
“아마 저보다는 강할 겁니다. 마왕 암두시아스가 직접 차원 게이트를 넘어 쳐들어오지 못했다는 게 그 증거입니다.”
제71마계의 지배자 마왕 단탈리온이 지구를 침공하지 못했던 이유는?
가이아 시스템의 방호 때문이다.
그러나 그 문제는 지구의 마력 농도를 올리면 해결할 수 있다.
그건 제71마계와 다른 마계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각 마계의 지배자인 마왕들은 마신의 권능을 나눠 받았고.
그중에는 각 마계를 보호하는 방호가 존재했다.
온전히 방호를 뚫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각 마계의 마기 농도를 맞출 필요가 있었다.
쉽게 말해 약자가 힘을 키울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준 것이다.
그런 마신의 배려가 없었다면.
‘서열 1위인 바알이 진작 다른 마왕들을 잡아먹고 새로운 마신이 되었겠지.’
마신 입장에서는 어느 정도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는 판을 깔아 준 것이리라.
뭐, 그래 봤자.
‘상위 서열의 마왕들이 압도적으로 유리한 건 어쩔 수 없었겠지만.’
하위 서열 마왕들이 치고받고 싸워 힘을 키운다고 해도.
상위 서열 마왕들 역시 그동안 놀고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제가 차원 게이트를 넘는 순간, 제71마계의 방호는 사라졌을 겁니다.”
각 차원을 보호하는 방호 시스템의 핵심은 창조의 권능을 지닌 마왕.
마왕 단탈리온이 지구로 넘어온 순간.
제71마계의 방호 시스템은 그대로 소멸했으리라.
“그럼 제71마계는 마왕 암두시아스의 손에 들어갔겠군.”
“예, 하지만 얻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을 겁니다.”
마족과 몬스터가 모조리 사라져 버린 제71마계는 죽음의 땅.
그런 곳을 지배해 봤자, 얻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다음 상대는 마왕 암두시아스가 되겠네.’
지구와 제71마계를 잇는 영구적인 차원 게이트는 아직 건재한 상태.
차원 게이트의 출력상 몬스터밖에 쏟아 내지 못하겠지만.
‘영구적으로 이어진 차원 게이트를 바탕으로 새로운 차원 게이트를 뚫는 건 가능하겠지.’
이미 마왕 단탈리온이 해낸 일이니, 더 상위 서열의 마왕인 암두시아스가 해내지 못할 리가 없었다.
“시간이 흐르면 마왕 암두시아스의 권속들이 지구로 넘어올 것입니다.”
이미 마왕 단탈리온이 넘어올 정도로 지구의 마력 농도가 올라간 상태.
그 상황에서 강현수가 마왕 단탈리온과 그 권속들을 쓰러트렸으니.
최악의 경우는.
‘마왕 암두시아스가 곧바로 차원 게이트를 넘어올 수도 있겠지.’
운이 좋아 지구의 마력 농도가 그 정도로 높아지지 않았다고 해도.
시간이 흐르면 금방 지구의 마력 농도가 상승하리라.
‘이길 자신은 있다.’
서열 56위의 마왕 그레모리와 서열 71위의 마왕 단탈리온을 휘하에 넣은 강현수다.
상대는 서열 67위의 마왕 암두시아스.
전력 차를 생각한다면, 강현수가 지는 게 이상했다.
유일한 변수가 있다면.
‘마왕 암두시아스가 다른 마왕을 잡아먹은 경우인데.’
그래도 그 숫자가 둘 이상이 아니라면.
‘충분히 이길 수 있어.’
결정적으로 강현수 입장에서 마왕 암두시아스라는 존재는.
‘어차피 싸워야 할 적이야.’
지구와 제71마계를 이어 주는 차원 게이트가 소멸했다면 모를까 멀쩡히 존재하고 있었다.
‘그 말은 두 번째 침공의 주인공이 마왕 암두시아스라는 뜻이겠지.’
느긋하게 있을 때가 아니었다.
강현수는 곧바로 세계 각국의 지도자들에게 현 상황에 대해 알리고, 만반의 준비를 갖추도록 지시했다.
* * *
‘빠르네.’
고작 하루.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차원 게이트가 몬스터들을 뿜어내지 않은 시간이었다.
‘마왕 암두시아스가 제71마계로 넘어왔어.’
차원 게이트가 다시 몬스터들을 토해 내고 있는 게 결정적인 확실한 증거였다.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데.’
강현수 입장에서는 차분히 몬스터들을 사냥하며 레벨을 올리고.
마왕 암두시아스가 차원 게이트를 넘어올 때를 기다리면 그만이다.
그렇지만.
‘이번에도 운이 좋을 거라고 장담할 수 없어.’
대도시에 차원 게이트가 열리면?
마왕 단탈리온을 상대할 때와는 비교도 하기 힘들 정도의 참사가 벌어질 게 분명했다.
‘설사 승리하더라도 전쟁터가 된다는 건 엄청난 손해를 가지고 올 수밖에 없지.’
그렇다면.
‘역습을 하면 좋을 것 같기는 한데.’
아틀란티스에 있을 때도, 지구에 있을 때도.
강현수는 항상 마계의 공격을 방어하는 입장이었다.
그렇지만.
‘지금도 굳이 그래야 할 필요가 있을까?’
역습을 한다면, 전장을 지구가 아닌 타 차원으로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거기다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마계에서 현대 병기가 정상 작동한다면?
‘핵무기를 부담 없이 쏟아부을 수 있단 말이지.’
지구에서 핵이 폭발하면.
방사능으로 인해 그 지역 자체가 죽음의 대지가 되고.
바람이나 바다를 타고 방사능에 오염된 물질이 다른 지역으로 퍼질 수도 있다.
그러나 폭발하는 장소가 마계라면?
‘굳이 2차 피해를 신경 쓸 필요가 없지.’
현재 인류가 보유한 핵무기는 1만 개가 넘는다.
‘충분히 가능할 것 같은데.’
아틀란티스와 지구가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은 원인은.
전력이 약하기도 했지만, 역습할 수 있는 방법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강현수에게는 창조의 권능이 있었고.
소환수가 된 마왕 그레모리와 마왕 단탈리온이 있었다.
거기다 지구와 마왕 암두시아스가 있을 것으로 예측되는 제71마계는 서로 연결된 상태.
‘한번 해 보자.’
강현수가 마왕 그레모리와 마왕 단탈리온을 소환했다.
“제71마계로 진입할 수 있는 차원 게이트를 만들 수 있나?”
강현수의 물음에.
“기존의 차원 게이트도 열려 있는 상태고, 제가 제71마계의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으니 가능합니다, 주군.”
마왕 단탈리온의 입에서 긍정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그렇지만 안정적으로 차원 게이트를 열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힘의 소모를 감수하셔야 합니다. 특히 주군과 같은 강자라면 말입니다.”
차원 게이트는 불안정하다.
그 불안정함은 더 강한 힘을 가진 존재일수록 커진다.
“걱정할 것 없어.”
강현수는 지금 당장 차원 게이트를 넘어 제71마계에 갈 생각이 없었다.
그저 방문에 앞서.
“작은 선물을 보내 주려는 것뿐이야.”
핵무기라는 소박한 선물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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