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왕 단탈리온
‘생각보다 일이 잘 풀리네.’
강현수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이번에 벌어졌던 역대급 대규모 침공 사태 이후, 세계 각국의 협조가 원활해졌기 때문이다.
전에는 약간 억지로 끌려간다는 느낌이 있었다면, 지금은 자발적으로 나선달까?
‘나쁘지 않아.’
다음 침공은 마왕 단탈리온이 직접 지구로 넘어올 게 거의 확실했다.
만약 넘어오지 않는다면?
‘나로서는 더 좋을 수밖에 없지.’
마왕 단탈리온의 세력을 각개격파 해서 흡수할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케르논의 보고도 끊겼으니 더 속이 타겠지.’
원래 강현수는 계속해서 케르논을 시켜 마왕 단탈리온에게 거짓 보고를 올릴 생각이었다.
그러나 폭발적으로 늘어난 침공 규모 그리고 리치들의 등장을 보고 생각을 바꿨다.
‘소모되는 마기가 적은 것도 아니고.’
리치들까지 보낸 걸 보면, 애초에 마왕 단탈리온이 케르논을 신뢰하지 않고 있는 게 뻔했기 때문이다.
믿지 않을 정보를 굳이 마기까지 소모해 가며 할 필요는 없었다.
‘저번에도 케르논에게 제대로 된 정보는 거의 주지 않았으니까.’
이번에도 그럴 가능성이 컸다.
‘거기다 자칫 잘못하면 역으로 정보가 누출될 수도 있고.’
케르논이 누군가에게 복종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건 곤란했다.
강현수의 입장에서는.
마왕 단탈리온이 케르논이 전사했거나 배신했다고 생각하는 게 더 편했다.
강현수는 차분히 몬스터들을 사냥하며 스텟을 올리고.
마기를 소모해 소환수들을 강화하며.
마왕 단탈리온과의 마지막 전투를 준비했다.
* * *
2주라는 시간이 평화롭게 흘러갔다.
그러나 평화는 그리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마력 탐지기가 대규모 차원 게이트 사태를 감지했습니다. 그런데 그 규모가 전의 역대급 침공보다 더 강력합니다.
세계 플레이어 협회의 보고에 강현수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 정도라면.’
마왕 단탈리온이 직접 차원 게이트를 넘을 게 확실했다.
“장소는 어디죠?”
-호주입니다. 다행히도 사람이 살지 않는 지역이라 일반인 대피는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호오.”
강현수의 얼굴이 환해졌다.
서울, 뉴욕, 도쿄, 베이징, 파리 같은 대도시였다면?
아무리 일반인들을 대피시켜도 그 피해가 어마어마했으리라.
한데 정말 다행스럽게도 사람이 살지 않는 지역이라니.
인류 입장에서는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지금 바로 움직이겠습니다. 공간 이동 능력자들을 총동원해 병력을 집결시켜 주세요.”
-알겠습니다.
강현수의 지시에 따라 세계 플레이어 협회가 움직였고.
전 세계에 흩어져 있던 최상위 플레이어들과 세계 각국의 대군이 일제히 차원 게이트가 발생할 지역으로 모여들었다.
* * *
‘짜증이 나는군.’
마왕 단탈리온이 자신의 눈앞에 일렁거리는 차원 게이트를 바라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원래는 이런 더러운 기분으로 지구로 넘어갈 필요가 없었다.
본래 지구라는 차원은.
마왕 단탈리온이 마왕 암두시아스의 공격을 잠시 피할 수 있는 장소이자.
막대한 마기를 수급해 강해질 수 있는 차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안에 뭐가 있는지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였다.
“가라.”
마왕 단탈리온이 지시를 내렸고.
마왕군이 차원 게이트를 통해 진군했다.
‘마음 같아서는 가장 마지막에 가고 싶지만.’
그건 최악의 악수가 되리라.
“휴우!”
긴 한숨을 토해 낸 마왕 단탈리온이 수하들과 함께 차원 게이트를 통과했다.
막대한 압력이 전신을 짓누르는 불쾌한 감각을 견디며 마왕 단탈리온이 차원 게이트를 통과했다.
‘모조리 죽여 주마.’
반역자들과 지구의 인간들을 쓸어버린다.
다른 마왕의 권속들이 있다면?
그들 역시 모조리 쓸어버리리라.
화아아악!
밝은 빛무리와 함께 마왕 단탈리온이 차원 게이트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꽈아아아아앙!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막대한 충격이 마왕 단탈리온의 몸을 강타했다.
‘이게 뭐지?’
차원 게이트를 빠져나왔음에도 보이는 건 시뻘건 화염과 연기뿐이었다.
거기다.
꽈아앙! 꽈아앙! 꽈아앙!
커다란 폭발이 쉼 없이 귀를 강타했고.
강력한 충격이 끊임없이 느껴졌다.
‘마기나 마력이 느껴지지 않는데?’
이 공격은 마기나 마력으로 이루어진 게 아니었다.
그런데 이런 엄청난 충격을 주다니?
마왕 단탈리온의 몸을 휘감고 있는 마기를 꿰뚫지는 못했지만, 다른 마족들은 사정이 달랐다.
마왕 단탈리온의 권속들이 차원 게이트를 통과하는 순간 시뻘건 화염과 폭발에 휘말려 산산조각 났다.
그나마 마계 귀족들은 사정이 나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무사하지는 못했다.
하급 마계 귀족들은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고.
고위 마계 귀족들의 경우 무사하기는 했지만, 계속해서 마기를 소모해야 했다.
‘막아야 한다.’
이런 공격을 계속 받으면, 몬스터와 마족 들은 일방적으로 학살당할 뿐이었고.
마계 귀족들은 의미 없이 마기를 계속 소모해야 했다.
‘건방진.’
마왕 단탈리온이 마기를 끌어올렸고.
그와 동시에 칠흑빛 그림자들이 넘실거리며 사방으로 퍼지면서.
콰직! 우드득!
주변의 모든 것을 집어삼켜 나가기 시작했다.
꽈아아아앙!
강력한 폭발이 그림자 속으로 빨려 들어가며 자취를 감췄고.
화르르르륵!
커다란 화염이 칠흑빛 그림자의 파도에 휩쓸려 모습을 감췄다.
-우우우우!
그림자의 파도가 기이한 소리와 함께 넘실거리며 인간, 몬스터, 마족 등등 온갖 종류의 형상으로 변화했다.
칠흑빛 그림자는 마왕 단탈리온의 권능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거짓된 환영으로 만들어진 가짜이자, 막강한 파괴력과 물리력을 가지고 있는 진짜이기도 했다.
칠흑빛 그림자의 파도가 자신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모든 것을 먹어 치우며 무섭게 내달렸다.
그러던 중.
콰콰콰콰콰콰!
찬란하게 피어난 핏빛 오러가.
좌아아악!
칠흑빛 그림자를 일거에 갈라 버렸다.
-캬아아아악!
온갖 다양한 종류의 생명체 형태로 변화하며 날아가던 칠흑빛 그림자가 마치 태양 빛이라도 만난 듯 고통스러운 비명을 토해 내며 소멸했다.
‘저 인간은 뭐지?’
마왕 단탈리온이 굳은 표정으로 자신의 권능을 무효화시킨 인간을 바라봤다.
타악!
그 순간.
칠흑빛 그림자를 갈라 버린 인간이 마왕 단탈리온을 향해 핏빛 오러가 가득 담긴 검을 휘둘렀다.
* * *
강현수는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그 준비는 단순히 플레이어 전력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핵을 날려 버리고 싶은데.’
방사능 때문에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현재 핵의 경우, 마석을 이용해 핵폭발 시 발생하는 방사능 피폭을 해결하는 연구가 한창이었다.
원래는 원자력 발전소 사고 등의 문제가 생겼을 때를 대비하기 위함이었지만.
그 문제가 해결되면, 핵미사일의 방사능 피폭 역시 말끔하게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인류의 무기는 핵만이 아니었다.
그간 수많은 무기들이 개발되었고.
또 몬스터 사체와 마석을 통해 개량되었다.
그와 더불어 인류가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무기들의 화력 역시 만만치 않았다.
인류가 그간 발전시켜 보유하고 있는 무기를 한 장소에 모조리 때려 박으면?
핵폭탄을 능가하는 파괴력을 선보이는 게 가능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그러지 않은 것은 현실적인 문제 때문이었다.
세계 각국의 이해관계도 맞아떨어져야 했고.
차원 게이트 발생 지역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목숨과 재산.
정치적인 비난과 환경 문제 등등.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세계 각국은 강현수의 깃발 아래 반강제로 통합된 상태였고.
마왕이 쳐들어오는 최악의 상황에 정치, 재산, 환경 등의 문제를 따질 때가 아니었다.
‘뭐, 민간인들이 살아가는 지역도 아니라는 점이 컸지.’
민간인 대피까지 함께 이루어졌다면?
이 정도 화력을 쏟아붓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대피 중인 민간인들이 피해를 받을 수도 있었으니까.
그러나 이곳은 허허벌판이었다.
파지지직!
차원 게이트가 서서히 열리고.
-크르르르!
-콰우우웅!
몬스터들이 모습을 드러내자.
“발포.”
군 지휘관들이 명령을 내렸다.
두두두두두!
슈유유유융!
꽈아아아앙!
차원 게이트를 통과해 모습을 드러내는 몬스터들을 향해 현대 병기들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지상에서 하늘에서 바다에서 포와 미사일이 쉼 없이 날아든다.
꽈아아아앙!
핵을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크고 작은 버섯구름이 연달아 터져 나왔고.
지진이 난 것처럼 대지가 흔들리며 강력한 열 폭풍이 느껴졌다.
‘성능 확실하네.’
차원 게이트를 통과한 몬스터와 마족 들이 제대로 된 저항도 하지 못하고 쓸려 나가고 있었다.
강현수는 몬스터와 마족 들이 죽으면서 뿜어낸 사기와 마이너스한 감정을 흡수해 마기 스텟으로 치환했다.
‘당분간 플레이어들은 나설 필요도 없겠어.’
몬스터와 마족 들이 너무 말끔하게 쓸려 나갔다.
그때.
사아아아악!
칠흑빛 그림자가 무서운 속도로 폭발과 화염을 먹어 치우며 그 세력을 키워 나갔다.
‘마왕 단탈리온. 생각보다 빨리 모습을 드러냈군.’
강현수는 마왕 그레모리를 포함해 그간 소환수로 만든 마왕 단탈리온의 수족들을 통해 최대한 많은 정보를 캐냈다.
가장 집중한 것이 마왕 단탈리온의 권능.
마왕 그레모리의 경우.
모든 것을 태워 버리는 화염과 치유의 권능을 가지고 있었고.
마왕 단탈리온의 경우는?
‘환영의 그림자 군세라.’
거짓을 진실로.
진실을 거짓으로.
모든 것을 집어삼킬 수 있고.
모든 것을 토해 낼 수 있다.
권능 자체로만 따지자면, 왜 마왕 서열이 71위밖에 되지 않는지 의문일 정도지만.
‘확실하군.’
강현수의 눈에는 똑똑히 보였다.
그림자의 파도 속에 숨어 있는 진실이.
‘모두 환영에 불과할 뿐.’
현대 병기의 포격을 모조리 먹어 치우는 칠흑빛 그림자의 파도는 실제로 존재하는 게 아니었다.
그저 그렇게 보일 뿐.
그런데 놀라운 일은.
그렇게 보였던 거짓된 현상이 진실로 뒤바뀌어 버렸다는 것이다.
‘환영의 그림자 군세는 보는 자들이 진실이라고 믿어 버리면 정말 그렇게 변하지.’
그게 마왕 단탈리온의 무서운 점이었고.
또 가장 보잘것없는 점이었다.
최고위 마계 귀족인 대공이라도 마왕 단탈리온이 펼치는 환영의 그림자 군세를 꿰뚫어 볼 수는 없다.
그저 무력하게 환영의 그림자에 잡아먹힐 뿐.
그러나 같은 마왕급이라면?
환영의 그림자를 어느 정도 꿰뚫어 볼 수 있었고.
그게 마왕 단탈리온의 서열이 71위인 이유였다.
결정적으로 강현수에게는.
‘너무 잘 보여.’
애초에 강현수의 정신력 스텟이라면, 마왕 단탈리온의 권능인 환영의 그림자 군세를 어느 정도 꿰뚫어 볼 수 있다.
그런데 거기다 비어 버린 레플리카의 자리 하나를 권소희의 고유 스킬인 진실의 눈을 복사하는 데 사용했고.
그 후 스킬 강화를 통해 성장시켰다.
‘아직 S랭크에 불과하지만.’
그 성능만큼은 너무나도 사기적이었다.
마왕들도 온전히 꿰뚫어 볼 수 없다는 환영의 그림자 군세의 실체가 너무 잘 보였고.
환영의 그림자 군세를 유지하는 마기의 흐름 역시 너무 생생하게 느껴졌기 떄문이다.
타악!
강현수가 앞으로 달려 나가.
콰콰콰콰콰콰!
핏빛 오러가 넘실거리는 검을 휘둘렀다.
서걱!
환영의 그림자 군세가 그대로 베어져 나가더니.
화르르륵!
마기로 이루어진 마왕 단탈리온의 권능이 무효화되고.
그 과정에서 증발한 마기가 강현수의 몸으로 흡수되며 환영의 그림자 군세가 그대로 소멸해 버렸다.
이는 강현수가 그간 모아 온 스킬들의 힘이기도 했지만.
환영에 휘둘리지 않은 강현수가 핏빛 오러로 정확히 환영의 그림자 군세와 마왕 단탈리온을 이어 주는 마기의 흐름을 베어 버렸기 때문이다.
돌처럼 굳은 마왕 단탈리온의 표정이 보였다.
‘굳이 기다려 줄 필요는 없지.’
강현수가 대지를 박차며 앞으로 달려 나가.
휘익!
마왕 단탈리온을 향해 핏빛 오러가 가득 담긴 검을 휘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