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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자격

“뭐? 지금 우리를 의심하는 거야?”

“기가 막혀서. 우리가 거짓말이라도 한다는 거야, 지금?”

송중구와 배수영이 더 기가 살아 날뛰었다.

사이가 남보다 못한 사이든 아니든, 좋든 안 좋든.

어쨌든 법적으로는 송중구가 송하나의 친부였고.

배수영은 계모이기는 해도, 새엄마도 어쨌든 엄마는 엄마였다.

그러나 강수혁의 물음은.

두 사람이 송하나의 진짜 부모가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내뱉은 말이 아니었다.

“어떻게 부모가 돼서 자식 걱정은 안 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돈 이야기만 할 수가 있어!”

강수혁 역시 송하나의 과거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다.

그저 아들 강현수와 함께 아틀란티스라는 곳에서 큰 고생을 겪은 상태라는 것만 알았다.

가족과 왕래를 하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고아일 수도 있고, 가족 관계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었기에 굳이 묻지는 않았다.

그저 아틀란티스에서의 힘든 시간 동안 아들인 강현수와 함께해 줘서 고마웠고.

정에 굶주린 것 같아 안타까웠다.

그렇기에 새로운 자식이 생겼다고 생각하고, 자식처럼 대했다.

종종 송하나가 어느 정도 거리를 두기는 했지만.

강수혁과 박영숙은 그녀를 충분히 이해했다.

어차피 조만간 진짜 가족이 될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갑자기 찾아온 송하나의 부모라는 사람들은 부모 자격이 없는 이들이었다.

“그동안 자식이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는지 걱정도 안 돼? 그러고도 부모라는 말을 할 수가 있어?”

강수혁이 분노한 표정으로 물었고.

“왜 하나가 가족들과 연을 끊었는지 알 것 같네요.”

박영숙도 싸늘한 표정으로 송중구와 배수영을 노려봤다.

그러나 그런다고 기가 죽을 송중구와 배수영이 아니었다.

“내가 언제 돈 이야기만 했어! 그리고 하나 걱정은 우리가 알아서 하고 있어! 당신들이 뭔데 남의 자식 걱정을 해!”

“맞아! 죽이든 살리든 우리 자식이야! 당신들이 뭔데 우리한테 이래라저래라야!!”

송중구와 배수영이 삿대질을 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강수혁과 박영숙도 가만히 당하고 있지는 않았다.

“자식은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야! 그리고 당신들! 하나가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기나 해!”

“그걸 우리가 왜 몰라!”

“그럼 뭘 아는데? 최근 6년 동안 하나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 알고 있어?”

“어…….”

강수혁의 말에 송중구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그러나.

“랭커가 되느라 힘들었겠지! 고생했겠지! 그런데 뭐? 당신들이 내 딸이 랭커가 되느라 힘들었든 말든 무슨 상관이야!”

곧 기죽지 않고 목소리를 높였고.

“맞아! 남은 빠져! 이건 가족 일이라고!”

배수영이 맞장구를 쳤다.

그때.

“하나도 우리 가족이고!”

박영숙이 나서서.

“내 딸이에요!”

단호하게 외쳤다.

“이년이 지금 무슨 미친 소리를 하는 거야?”

“하나가 우리 딸이지 왜 당신 딸이야! 당신 미쳤어!”

그러나 송중구와 배수영에게는 개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송하나가 귀찮은 혹일 때는 누구 집 딸이든 상관없었다.

그러나 돈 많은 자산가이자, 자신의 사업을 크게 확장시켜 줄 수 있는 송하나는.

절대 남의 집 딸이 될 수 없었다.

“너 죽고 싶어!”

송중구가 성난 목소리로 손을 들어 올렸다.

당장이라도 손을 휘둘러 박영숙의 뺨을 후려칠 기세였다.

강수혁이 박영숙의 앞을 막아섰고.

“이 연놈들이!”

송중구가 손을 휘둘렀다.

그 순간.

탁!

송중구의 손이 누군가에게 붙잡혔다.

“어? 당신들 뭐야?”

송중구가 당황한 표정으로 외쳤다.

검은 양복을 입은 건장한 체격의 남자가 갑자기 나타나 자신의 손을 잡았기 때문이다.

“이거 안 놔! 당신 죽고 싶어!”

송중구가 난동을 부리며 목소리를 높였지만.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에게 잡힌 팔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저벅저벅.

갑자기 어디서 나타난 건지.

검은 양복을 입은 이들이 순식간에 송중구와 배수영을 포위했다.

“어? 어?”

갑작스러운 상황에 송중구는 적잖이 당황했다.

송중구와 배수영이 강현수의 집을 찾아온 건 구진수에게 받은 정보 때문이었다.

강현수는 송하나의 남자 친구로 보이는 자였다.

이에 송중구와 배수영은 마음이 급해졌다.

그래서 구진수에게 강현수의 약점을 찾거나 만들어 달라는 지시를 내리고 곧바로 강현수의 집으로 찾아왔다.

제대로 행패를 부려 송하나와 강현수의 관계를 끊기 위해서였다.

자신들이 진상짓을 하면 할수록.

송하나와 강현수의 관계는 나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강현수의 부모로 보이는 사람이 나오자 제대로 진상을 피운 것이다.

진짜 돈을 노리고 접근한 거라면 제대로 혼쭐을 낼 생각이었고.

그게 아니라고 해도 서로 사돈 맺을 생각은 감히 하지도 못하게 제대로 모욕을 주고 난장을 피울 계획이었다.

잠시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지금까지는 계획대로 잘 진행되고 있었다.

폭력 사태까지 벌어지면.

송하나와 강현수와 사이가 틀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자기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갔다.

“뒷일은 저희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들어가시죠.”

검은 양복을 입은 건장한 체격의 사내들이 끼어든 것이다.

‘개인 경호원? 자기들이 재벌도 아니고 무슨 경호원까지?’

송중구는 적잖이 당황했다.

그러면서도 혹시 자신이 실수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개인 경호원이 붙을 정도면, 보통 재력을 가진 집안이 아니라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그럼 오히려 사돈을 맺는 게 더 좋은 건가?’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아니야. 사돈을 맺어 봤자 그 집안 돈이 내 돈이 되는 것도 아니고.’

송하나는 호강할지 모르지만, 송중구 자신에게는 떨어질 게 없었다.

거기다 지금도 자신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송하나다.

결혼까지 하면?

애라도 생기면?

송하나의 재산은 온전히 남편과 자식에게 이어질 것이고.

송중구 자신에게는 한 푼도 돌아오지 않는다.

‘플레이어는 위험한 직종이라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결혼을 하지 않고 죽으면 모두 자신의 것이지만.

결혼이라도 하고 애라도 생기면, 모두 그쪽으로 가지 않겠는가?

‘역시 이렇게 하는 게 맞아.’

폭력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지만.

‘이 정도면 충분하지.’

이번 일이 알려지면 송하나의 남자 친구인 강현수는 노발대발할 것이고.

두 사람의 사이는 자연히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만약 그래도 멀어지지 않는다면?

‘한 번 한 짓인데, 두 번 세 번 못 할 건 또 뭐야.’

처음 한두 번은 어찌어찌 이해하고 넘어가도.

그 이상은 납득하기 힘들 것이다.

송중구 자신이 송하나의 친부인 건 하늘이 두 쪽 나도 바뀌지 않는 진실이었으니까.

‘하나 그년이 난리를 치기는 하겠지만.’

크게 두렵지는 않았다.

솔직히 말해 강수혁과 박영숙의 말대로.

송중구는 딸인 송하나에 대해 잘 알지 못했고, 애초에 관심도 없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모르는 건 아니지.’

송중구도 딸 송하나가 마음이 선한 아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 꼴을 당하고도 보복은커녕 영우와 하은이한테 잘해 주지.’

거기다.

‘정에 굶주려 있어.’

그건 송하나가 송영우와 송하은을 대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년이 아무리 지랄을 해 봤자, 뭘 어쩌겠어.’

지금처럼 무시가 이어질 뿐이다.

천천히 관계 개선을 하는 것도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결정적으로.

‘영원히 평행선이 유지될 수도 있고.’

송중구는 그 원인이 강현수라는 존재 때문이라고 확신했다.

‘의지할 곳이 있으니까 그 모양이지.’

아예 싹을 잘라 버려야 한다.

송하나의 인간관계를 단절시키고.

애정을 쏟을 존재를 가족으로 줄여 놔야 한다.

송중구와 배수영은 ‘나가리’겠지만.

‘영우와 하은이는 아니니까.’

아들인 송영우는 멍청할 정도로 정이 많고 순한 놈이었다.

송하나는 절대 송영우를 버리지 못한다.

‘돈은 영우를 통해서 뜯어내면 그만이야.’

마음이 약하고 정이 많은 송영우다.

앞에서 죽는소리 몇 번 하면?

송하나에게 받은 걸 고스란히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아예 송하나가 의지할 싹을 잘라 내는 것.

또 혹시나 송하나에게 생길지도 모르는 남편과 자식의 존재를 삭제시키는 것.

그게 송중구와 배수영의 목적이었다.

아무리 동생과 조카가 예뻐도.

남자에게 미치면, 동생이 눈에 들어오겠는가?

또 조카가 아무리 예뻐도, 자기 자식만 하겠는가?

송영우와 송하은에게 들어올 돈은, 송중구에게 들어올 돈이나 마찬가지였고.

그게 조금이라도 줄어드는 꼴은.

‘절대 볼 수 없지.’

앞으로도 송하나는 자신을 위한 돈줄이 되어 주어야 했다.

달칵!

문이 닫히고.

강수혁과 박영숙이 모습을 감췄다.

“크흠, 이제 이 손 좀 놓지.”

송중구가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일단 이 자리를 벗어나서 구진수에게 연락을 취할 생각이었다.

강현수에 대한 약점을 잡았는지. 혹은 만들었는지.

또 추가로 강현수의 가족에 대해 좀 더 자세한 정보를 캐내라는 지시를 내려야 했다.

개인 경호원까지 두고 있는 걸 보면, 일반인과는 거리가 있어 보였고.

방금 전 말한 것을 보니.

한두 번 진상을 부리는 것으로는 일이 해결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송중구의 팔을 잡은 경호원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거 좀 놓으라니까? 자꾸 이러면 경찰을 부르겠어!”

송중구가 목소리를 높였지만.

뭔가 소리가 건물을 통해 울리는 게 아니라, 한자리에 계속 맴돌았다.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낀 배수영이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경찰을 부르기 위해서였다.

콰직!

그때 검은 양복을 입은 경호원 중 하나가 맨손으로 배수영의 스마트폰을 박살 내 버렸다.

“당신들, 이게 무슨 짓이야!”

배수영이 화가 난 표정으로 목소리를 높였지만.

검은 양복을 입은 경호원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배수영의 양팔을 구속했다.

“이 손 놔! 당신들 깡패야, 뭐야!”

배수영이 고래고래 목소리를 높였다.

집 안으로 들어간 강수혁과 박영숙을 부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런 배수영의 외침은 역시나 밖으로 흘러나가지 못하고 한자리에서 맴돌았다.

그리고.

“주군의 가족께 위해를 끼치려 한 자들 포획.”

방금 전의 생기 넘치는 목소리와 달리.

“최고 등급 경호 매뉴얼 실행 지시받음.”

“흔적 없이 제거.”

마치 기계 같은 음성이 검은 양복을 입은 경호원들의 입에서 흘러나왔고.

“이곳은 곤란.”

“주군 가족들의 눈을 피해야 함.”

“장소 이동.”

그 대화 내용은 소름이 돋을 정도로 끔찍했다.

“이 미친놈들이 뭐라는 거야? 이거 놔! 놓으라고!”

송중구가 분노한 표정으로 몸부림치며 팔다리를 휘둘렀다.

퍼억!

“아악!”

그러나 비명을 지르는 사람은 검은 양복을 입은 경호원들이 아니라, 송중구였다.

“사람 맞아?”

아무리 근육질이라고 해도 어느 정도 눌리는 느낌은 들어야 정상이다.

또 때린 사람이 아플 리도 없다.

그런데.

무슨 쇳덩어리를 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때 송중구의 눈에 상대의 가랑이가 들어왔다.

아무리 단련을 해도 남자인 이상 급소는 어쩔 수 없다.

휘익!

송중구가 전력을 다해 발 차기를 했다.

퍼억!

그러나.

“아아악!”

이번에도 비명을 지르는 사람은 송중구였다.

가랑이 사이에 발 차기를 적중당했음에도.

검은 양복을 입은 경호원은 표정이 조그마한 미동도 없었다.

“사, 사람이 아니잖아?”

방금 전까지는 설마설마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었다.

사람이라면, 저럴 수가 없었다.

“반항이 심함.”

“제압 필요.”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뿌드득!

소름 끼치는 소음과 함께.

발 차기를 날렸던 송중구의 다리가 절대 꺾이지 말아야 하는 방향으로 뒤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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