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인원수부 (4)
‘나쁘지 않네.’
어차피 가이아 시스템에 속박되어 있기도 하고, 제71마계에서의 입지도 그리 좋은 것 같지 않으니.
살아 있는 채로 부리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굳이 소환수로 만들지 않아도 괜찮을 것은데, 네 의견은 어때?
강현수가 마왕 그레모리의 의견을 물었다.
소환수가 되었다고는 하나, 마왕 그레모리는 마족들의 정점에 있던 존재.
그만큼 마족의 생리에 대해 빠삭하게 알고 있었다.
-저도 주군의 의견에 찬성합니다. 애초에 아무리 강해져도 마계에서는 입지가 좋을 수 없는 혈통입니다. 혼자만 살아남았고 그 상황에서 괜한 의심을 받는다면, 설사 마왕 단탈리온의 휘하에 복귀하더라도 좋은 대접을 받기는 힘들 겁니다. 최악의 경우 그냥 처분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네.
고귀한 혈통의 마계 공작이었다면?
같은 혈통의 일족들과 그들이 구성한 세력이 어느 정도 뒷받침을 해 줬겠지만.
케르논 공작에게는 그런 게 없었다.
“절 살려 주실 겁니까?”
케르논 공작이 조심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살려 주지.”
강현수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고.
“휴우!”
케르논 공작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선물도 하나 주지.”
“선물이요? 그게 무슨?”
강현수가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는 케르논 공작을 향해 막대한 마기를 투사했다.
해하려는 게 아니라 도움을 주기 위해서였다.
“어어어?”
케르논 공작의 마기가 급격히 치솟았고.
“승급하면 말해라.”
강현수의 지시에 놀란 표정을 짓던 케르논 공작의 고개를 끄덕였다.
“승급했습니다.”
케르논 공작의 말에 강현수가 마기 투사를 멈췄다.
잠시 후 케르논 공작이 마기를 갈무리하자.
[대공 이상의 마계 귀족의 충성을 받아 내는 믿을 수 없는 업적을 이루셨습니다.]
[칭호 마계 대공의 군주 EX랭크가 주어집니다.]
[대공 이상의 마계 귀족을 휘하에 거두는 믿을 수 없는 업적을 이루셨습니다.]
[칭호 마계 대공을 휘하에 거둔 자 EX랭크가 주어집니다.]
강현수의 업적이 두 개 추가되었다.
‘좋네.’
아크 리치 킹 리몬쉬츠와는 경우가 좀 달랐다.
마기 소모 자체는 오히려 더 컸지만.
2단계도 아니고 고작 1단계 승급시킨 것뿐이기에.
‘가성비가 나쁘지 않아.’
케르논은 마계 공작이 아닌 마계 대공이 되었다.
‘업적도 업적이지만.’
그보다는 소환수가 아닌 휘하 지휘관이라는 사실이 중요했다.
‘힘의 손실이 전혀 없으니까.’
사실상 온전히 마계 대공의 힘을 지닌 휘하 지휘관을 얻게 된 셈이다.
‘소환수가 되어 버린 마계 공작이나 대공에게 투자하는 것보다 가성비가 훨씬 좋아.’
아마 소환수 마계 공작에게 이 정도 마기를 투자했다면?
고작해야 생전의 힘을 회복하는 수준에 그쳤을 것이고.
소환수 마계 대공에게 투자했다면?
‘생전의 힘을 회복하는 것 자체가 무리지.’
그러나 케르논은 살아 있는 존재였고.
그 덕에 적은 마기 투자만으로도 휘하에 마계 대공을 거둘 수 있게 되었다.
배신의 위험은 사실상 없다고 봐야 했다.
‘가이아 시스템이 이중으로 옭아매고 있을 테니까.’
충성 맹세로 인한 구속.
휘하 지휘관이기에 받는 구속.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되고 출신에도 문제가 있는 만큼.
배신 걱정은 접어 놔도 될 것 같았다.
‘그런데 혹시 가능하려나?’
그런 강현수가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마계 대공이 된 케르논을 바라봤다.
혹시 마기를 더 투자하면, 마왕급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하지만.
‘생각은 생각으로 끝내야지.’
마왕은 마계 귀족과는 그 격이 다른 존재다.
또 창조의 권능도 필요했다.
강현수가 가진 마기를 모조리 투자한다면?
어쩌면 케르논을 마왕급으로 만드는 게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굳이 그런 과한 투자를 할 필요는 없지.’
차라리 그 힘을 강현수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게 나았다.
아크 리치 킹 리몬쉬츠를 백작급에서 후작급으로 한 단계만 승급시켰을 때 효율이 가장 좋았던 것처럼.
‘이 녀석도 한 단계 승급이 가장 가성비가 좋아.’
또 창조의 권능을 얻게 되면?
미약하지만 가이아 시스템의 구속에서도 벗어날 가능성이 있었다.
‘뭐, 창조의 권능 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마기를 모아 마왕급이 되는 건 상관없지만.’
아마 그러려면 대공이나 공작급 수십을 잡아먹거나, 마왕을 꺾어야 하리라.
사실상 실현 불가능한 미션이나 마찬가지라는 뜻이었다.
“내가 지시하면 바로바로 거짓 보고를 하고.”
“알겠습니다. 맡겨 주십시오.”
“또 앞으로 내 지시에 따라 동족들과 싸워야 할 때도 있을 거다.”
“마족은 제 동족이 아닙니다. 그리고 싸우는 건 대환영입니다.”
케르논의 두 눈에서 진한 살기가 뚝뚝 흘러내렸다.
제71마계에서 쌓인 게 많아 보였다.
“그러려면 힘이 더 필요하겠지.”
강현수가 케르논을 사령관으로 임명하고 지휘관의 축복까지 내려 줬다.
현재 강현수의 휘하 지휘관 중 마왕 그리모리를 제외하면 가장 강력한 전력인 만큼.
전투력을 더 업그레이드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케르논이 감격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이건 결코 거짓이 아니었다.
용종 몬스터와 최하급 마족의 혼혈.
그런 케르논에게 있어서 혐오와 증오가 아닌 절대적인 믿음과 선의는 단 한 번도 받아 본 적 없는 것이었다.
물론 강현수가 목적이 있어서 그렇게 했음은 알고 있다.
또 가이아 시스템에 얽매여 있기에 이런 힘을 선사했음도 알고 있다.
그러나.
‘마계에서는 그조차도 없었지.’
충성을 맹세해도.
제약을 받아도.
고귀한 혈통을 타고난 마족들은.
항상 케르논을 혐오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봤고.
절대 믿음을 주지 않았으며.
필요함에도 힘을 나눠 주지 않았다.
“믿겠다.”
강현수가 그 말을 끝으로 마틴을 불렀다.
“네가 알고 있는 모든 걸 이 녀석에게 이야기해라.”
“알겠습니다.”
강현수의 지시를 받은 케르논이 공손히 대답했다.
어차피 저항할 수도 없고 운명이 종속된 이상.
최선을 다해 협조할 생각이었다.
‘마족들과는 달라.’
강현수는 자신을 편견 없이 바라보고 있었고, 목적을 가졌다지만 선의로 힘을 나눠 주었다.
또 결정적으로.
그간 자신을 업신여겼던 놈들과 싸울 바탕을 만들어 줬다.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아니, 차고 넘칠 지경이었다.
“그럼 가 보겠습니다.”
케르논이 강현수에게 공손히 고개를 숙인 후 마틴과 함께 떠났다.
‘저 자식, 왜 저렇게 눈이 반짝거려, 부담스럽게.’
강현수는 케르논의 과한 반응에 적잖이 당황했지만.
‘나쁠 건 없지.’
그게 이득이면 이득이지 손해는 아니었다.
‘케르논이 쌓인 게 많았나 본데.’
강현수로서는.
‘그걸 갚아 줄 기회를 최대한 많이 만들어 주마.’
일종의 상부상조였다.
강현수는 마계의 전력을 줄여서 좋고.
케르논은 복수할 수 있어서 좋았으니 말이다.
* * *
제71마계.
‘거짓 보고 같지는 않은데.’
마왕 단탈리온이 미간을 찌푸리며 깊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너무 수상한 점이 많단 말이지.’
첫 번째 의문은 하급 마계 귀족들의 배신이었다.
제71마계에 살아가는 마족들은 모두 마왕 단탈리온의 권속이다.
특히 마계 귀족의 경우, 마왕 단탈리온에게 종속된 존재들이다.
그런 만큼 마왕 단탈리온과 동급의 마왕이 등장하는 상황이 아닌 한 배신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특히 하급 마계 귀족들의 경우.
아무리 승급을 해도 마왕 단탈리온에게 대항할 정도의 힘을 키우기 힘들다.
그러면?
욕심이 나서 상위 서열의 마계 귀족을 공격해 잡아먹었을지언정.
‘주인인 나에게 보고는 해야 할 것인데.’
사고를 치고 선조치 후보고라도 하는 것과 사고를 치고 보고도 안 하는 건 그 차이가 꽤 크다.
전자의 경우는 그래도 마왕 단탈리온에게 복종한다는 뜻이지만.
후자의 경우는 아예 마왕 단탈리온을 무시하는 처사이자 군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이나 다름이 없었다.
두 번째 의문은.
마계 백작 다티, 우쿠르, 스타루드가 첫 번째 보고를 끝으로 연락을 끊었다는 점이었다.
물론 마왕 단탈리온을 배신한 하급 마계 귀족들에게 당했다면 현재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놈들이 쉽게 당할 놈들은 아닌데.’
다티, 우쿠르, 스타루드는 눈치가 빠른 놈들이었다.
특히 다티의 경우.
환영의 장막으로 인해 생존율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으흠.”
머릿속이 복잡했다.
“근심을 가라앉히시지요.”
마계 대공 자바스가 조심스럽게 조언을 했다.
“근심을 가라앉히라?”
“케르논 공작에게서 보고가 올라오지 않았습니까?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좀 더 상세한 보고가 올라올 것입니다.”
“그렇기는 하지.”
케르논 공작의 태생이 천하다고는 하지만, 어찌 되었던 마계 공작이었고 자신의 권속이었다.
그러니 보고가 올라온 만큼 조금 더 기다려 보는 게 좋기는 했다.
그렇지만.
“다른 녀석들은 보고를 올리지 않았단 말이지.”
마왕 단탈리온은 이번 출병의 총사령관으로 케르논 공작을 임명했다.
그러나 크게 신뢰하지는 않았다.
혈통이 천한 탓인지 군주인 자신에 대한 충성심이 너무 약했기 때문이다.
이에 충성심 깊고 혈통이 좋은 마계 귀족들에게 보고를 올리라고 비밀리에 지시를 내렸는데.
‘단 한 놈도 보고를 올린 녀석이 없어.’
물론 전투 중 전사했을 수도 있기는 했지만, 뭔가 꺼림칙했다.
겉으로 보이는 결과는, 작은 문제만 있을 뿐 모든 일이 술술 풀리고 있는 상황인데.
묘한 위화감이 느껴졌다.
“좀 더 기다려 보도록 하지.”
마왕 단탈리온에게는 지구의 상황을 알아볼 방법이 하나 있었다.
가장 먼저 지구로 넘어간 리치.
그놈의 라이프 포스 베슬에는 아직 혼백이 돌아오지 않았다.
그 말은.
‘지구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는 뜻이겠지.’
그놈이라면 지구의 상황을 자세히 알려 줄 수 있으리라.
그동안은 지구에서 잘 활동하고 있는 리치를 굳이 소멸시킬 필요가 없기에 참았지만.
‘케르논 녀석의 보고까지 끊긴다면 확인을 해 봐야겠어.’
마계 공작이 당할 정도면 상황이 결코 녹록지 않다는 뜻이리라.
“다음은 언데드 군단을 투입시켜야겠다.”
언데드 군단의 경우, 절대 보고를 누락할 수 없고.
그런 일이 발생하면, 리치를 소멸시켰다 부활시키는 방법으로 지구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전선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마계 대공 자바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현재 언데드 군단은 마왕 암두시아스를 따르는 마족들의 공격을 막아 내는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그렇기는 하지. 그럼 자작급 이하 리치 몇 정도를 빼내도록. 다음 지구 침공 때 함께 투입시키겠다.”
마왕 단탈리온의 지시에.
“그리하겠나이다.”
마계 대공 자바스가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 * *
‘투황과 연결이 끊기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강현수는 휘하 지휘관들과 스킬 공유를 사용하며 적잖은 아쉬움을 느꼈다.
유카의 경우야 필요 스킬이 너무 많아 어쩔 수 없지만.
투황은 상황이 달랐다.
현재 강현수는 투황의 스킬을 무려 두 개나 레플리카에 활용 중이었고.
그런 만큼 투황과 스킬 공유를 사용하게 되면, 얻을 수 있는 이득이 컸다.
문제는.
‘완전히 틀어막혀 있단 말이지.’
강현수는 창조의 권능을 사용해 비활성화 상태인 지휘관 목록을 활성화시키고, 투황과 유카를 지구로 초대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러기 위해 창조의 권능이 요구하는 대가가 너무 컸다.
‘당분간 성장을 포기하면 시도할 수 있기는 하지만.’
투자하는 대가에 비해 얻는 이득이 너무 적었다.
결정적으로.
‘지구 출신인 내가 넘어온 것만으로 문제가 생겼어.’
애초에 지구가 아닌 아틀란티스 출신인 투황과 유카가 넘어온다면?
‘가이아 시스템의 방호가 무너질 수도 있어.’
상대가 마왕 단탈리온뿐이라면 큰 문제가 아니지만.
‘가이아 시스템의 방호가 무너지면 고위 서열의 마왕들이 지구를 노릴 수 있다.’
그런 상황이 벌어지면?
강현수로서도 문제를 감당할 수 없었다.
송하나
‘잘 지내고 있겠지.’
지구 출신인 송하나는 함께 귀환했고 바로 옆집에 살고 있기도 했지만, 투황과 유카의 경우는…….
솔직히 말해 갑자기 생이별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것도 제대로 된 작별 인사도 하지 못하고 말이다.
‘나중에는 만날 수 있겠지.’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투황과 유카를 만날 생각이었다.
‘그럼 마무리부터 하자.’
강현수는 신중하게 스킬 공유 대상을 선택했다.
도움이 되고 가장 필요한 스킬을 가진 휘하 지휘관 위주로 스킬 공유 대상을 선택했고.
‘비어 버린 레플리카 스킬도 채워 넣어야지.’
아쉬운 점이라면.
그 대상이 아틀란티스 차원의 네임드 플레이어나 랭커 플레이어였던 귀환자들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휘하 지휘관들의 스킬을 살펴보는 것도 일이네.’
강현수는 휘하 플레이어들의 스킬 목록을 꼼꼼히 살폈고.
그중에서 자신과 상성이 가장 좋은 스킬들을 추려 냈다.
물론 그러는 사이에도, 강현수의 레벨은 빠르게 올라가고 있었다.
거기다.
‘하나도 좀 적응했으려나.’
강현수에게 가장 먼저 스킬 공유를 받은 송하나 역시.
무한 레벨 업이 가능해진 만큼.
더욱 성장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 * *
‘엄청나네.’
송하나는 강현수에게 공유받은 레플리카 스킬을 사용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