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의 오판 (2)
“휴우!”
강현수의 입에서 긴 한숨이 터져 나왔다.
드디어 길고 긴 아메리카 대륙 청소가 끝난 것이다.
‘생각보다 피해가 컸어.’
아메리카 차원 게이트 사태의 경우.
아시아 차원 게이트 사태나 유럽 차원 게이트 사태에 비해 그 피해가 월등히 컸다.
그리고 그 피해의 대부분이.
‘중앙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에서 발생했지.’
특히 베네수엘라의 경우는.
남아메리카에서 유일하게 차원 게이트 사태가 발발한 국가임과 동시에 최다 피해가 발생한 국가이기도 했다.
거기다.
‘세계 플레이어 협회를 물어뜯었다는 말이지.’
이건 은혜를 원수로 갚은 격이었다.
베네수엘라의 피해가 커진 이유는.
차원 게이트 발발 사실 자체를 감췄기 때문이다.
뒤늦게 도움을 청한 후에야.
강현수가 직접 가서 마계 귀족과 마족 그리고 몬스터들을 정리했다.
쉽게 말해 베네수엘라가 입은 피해는.
거의 세계 플레이어 협회의 도움을 받기 전에 발생했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거기다 애초에 베네수엘라는.
긴급 개입 조치 가입국은커녕 세계 플레이어 협회 가입국도 아니었다.
쉽게 말해 아무런 관련도 없는데 인류애적인 관점에서 대의적으로 도움을 주었음에도.
감사 인사는커녕 모든 문제를 세계 플레이어 협회의 탓으로 돌린 것이다.
‘이런 놈을 내버려 둘 수는 없지.’
아시아에도 독재국가는 많다.
북한, 중국, 러시아.
셋 모두 국가의 수장이 교체되었다.
그러나 나머지 국가들의 경우는.
내버려 두었다.
그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어느 정도 사리분별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데 베네수엘라의 경우는?
‘제정신이 아닌 걸 넘어 인류의 해악을 끼치는 해충 같은 놈이야.’
계속 저런 개소리를 들어 줄 생각도 없고.
은혜를 원수 갚은 놈을 국가의 수장 자리에 앉혀 놓을 생각도 없었다.
저런 놈이 국가의 수장 자리에 앉아 있는 상황에서 만약 차원 게이트 사태가 재발한다면?
베네수엘라는 국가 자체가 붕괴해 버릴지도 모른다.
그럼 그건 베네수엘라에 살아가는 국민들뿐만 아니라.
‘주변국에도 엄청난 민폐가 되지.’
아무리 생각을 해도.
‘정리를 해야겠어.’
강현수가 베네수엘라로 향했다.
* * *
“내가 괜한 걱정이라고 하지 않았나?”
마도루 대통령이 외교부 장관 앤서니에게 말했다.
“예, 역시 각하의 선견지명이 실로 대단하십니다.”
당당하게 말하기는 했지만, 솔직히 마도루 대통령 역시 살짝 불안하기는 했다.
그런데 미국과 러시아를 포함한 국제사회는 베네수엘라의 공식 발표를 개무시했다.
그냥 어디서 개가 짖나 보다 하고 신경을 꺼 버린 것이다.
그건 세계 플레이어 협회 역시 마찬가지였다.
물론 아메리카 차원 게이트 사태가 종결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별문제는 없었다.
정상적인 국가 원수라면 자국의 공식 발표가 무시당했다며 분노라도 표해야 했지만.
독재자이자, 온전한 정신을 가지지 못한 마도루 대통령 입장에서는 상당히 훌륭한 성과였다.
“국제 여론은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국민들이 그렇게 믿게 만드는 거야.”
자랑하듯 말하는 마도루 대통령의 말에.
‘저 미친놈, 자국민들은 뭐 믿는 줄 아나.’
외교부 장관 앤서니가 마음속으로 욕설을 토해 냈다.
요즘이 어떤 세상인가?
스마트폰 하나면 전 세계 정보를 들여다볼 수 있는 정보화 시대다.
TV나 라디오 방송에만 의존하고 전적으로 믿는 게 아니라.
인터넷이라는 정보의 바다를 통해 더 많은 정보를 습득하는 시대에.
‘저따위 엉터리 발표를 믿는 국민들이 있을 리가 없지.’
집이 없고, 차도 없고, 컴퓨터도 없고, 입을 옷도 없고, 당장 내일 먹을 밥이 없어도.
스마트폰은 있는 게 요즘 세상이다.
의식주와 동급.
아니, 그 이상으로 스마트폰이 중요해진 시대이니만큼.
하이퍼인플레이션을 겪고 있는 베네수엘라에서조차 전 국민의 절반가량이 스마트폰을 보유하고 있었다.
또 애초에 베네수엘라 TV의 국영 방송 시청률은 바닥을 찍은 지 오래였다.
조작하지 않은 마도루 대통령의 지지율과 국가 신뢰도 역시 바닥을 찍은 지 오래.
베네수엘라 국민들이 정부의 발표와 인터넷에서 떠다니는 정보 중 어느 쪽을 믿을지는 이미 정해져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애휴, 누가 저 미친놈을 안 잡아가나.’
외교부 장관 앤서니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을 포함한 정부 인사들 대다수가 마도루 대통령의 측근이었고, 온갖 인맥으로 엮인 사이인 데다.
마도루 대통령이 실각하면 자신도 무사하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외교부 장관 앤서니에게는 아직까지 최후의 양심이라는 게 아주 약간은 남아 있었다.
그때.
“나라를 말아먹은 놈이 헛소리도 아주 기가 막히게 하네.”
마도루 대통령과 외교부 장관 앤서니밖에 없는 자리에서 낯선 언어가 들려왔다.
“누구냐?”
화들짝 놀란 마도루 대통령이 목소리를 높이며 비상 호출 버튼을 누르려고 했다.
집무실 밖에 대기하고 있는 비서와 호위들을 호출하는 버튼이었다.
그런데.
서걱!
작은 소음과 함께.
비상 호출 버튼을 누르려던 마도루 대통령의 오른팔이 말끔하게 잘려 나갔다.
“아아아악!”
마도루 대통령이 도살장에 끌려온 돼지처럼 목청을 높였지만.
집무실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리고.
“이런 미친놈! 감히 내가 누군 줄 알고 이런 짓을 하는…….”
좌악!
성난 목소리로 화를 토해 내던 마도루 대통령의 목이 그대로 날아갔다.
“으흠? 넌 누구지?”
마도루 대통령을 살해한 자가 태연한 표정으로 외교부 장관 앤서니에게 물었다.
그러나 아무리 앤서니가 외교부 장관이라고 해도 별다른 관련도 없는 한국어를 알아들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뭐, 저 쓰레기의 측근이겠지. 그만 가라.”
상대가 자신을 향해 낯선 언어를 중얼거린 후 검을 휘두르려는 듯 보이자.
“저는 베네수엘라의 외교부 장관 앤서니입니다!”
외교부 장관 앤서니가 영어로 다급하게 자기소개를 했다.
“혹시 세계 플레이어 협회에서 오신 겁니까?”
그리고 질문을 던졌다.
“내가 뭐라고 대답할 것 같아?”
낯선 침입자.
강현수가 흥미로운 표정을 지으며 베네수엘라의 외교부 장관 앤서니를 바라보며 물었다.
단, 이번에는 한국어가 아니라 영어를 사용했다.
“세계 플레이어 협회에서 오신 것이 확실하군요. 단순히 마도루 대통령에 대한 징벌이 목적이신 겁니까, 아니면 우리 베네수엘라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으신 겁니까?”
“그런 걸 왜 묻지?”
“이 나라의 운명이 여기서 끝나느냐 아니냐가 결정되니까요. 어차피 죽일 놈인데, 그 정도는 알려 주실 수 있지 않습니까?”
“호오? 살고 싶은 마음이 없나?”
“당연히 살고 싶습니다. 제가 목숨을 소중히 여기지 않았다면 진작 저놈 손에 목이 잘렸을 겁니다.”
외교부 장관 앤서니는 마도루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오히려 조국을 좀먹고 있는 마도루 대통령을 증오했다.
그러나 자신의 목숨을 버려 가며 조국에 충성을 바칠 애국자도 아니었기에.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흐리멍덩한 태도를 유지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이 항상 불편했고.
위태로운 조국에 대한 근심이 항상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하나 눈앞에서 마도루 대통령의 목이 날아가고 자신도 죽을 상황이라고 느껴지자.
그저 궁금했다.
자신의 조국이 국제사회에게 버림받은 것인지.
아니면 최소한의 기회라도 부여받은 것인지 말이다.
“솔직히 말하면 별생각이 없어.”
강현수는 마도루 대통령을 써먹을 생각은 버렸다.
어느 정도 갱생의 여지가 있거나 최소한 정상적인 사고가 가능해야 부려 먹을 수 있다.
마도루 대통령의 경우?
강현수가 원하는 최소치에도 미치지 못했다.
마도루 대통령을 제거한 후의 대안은.
도플갱어가 마도루 대통령의 흉내를 내는 것과 적당히 상황 파악 잘하고 똘똘한 녀석을 부려 먹는 것이었다.
둘 다 임시 땜질에 불과했지만.
‘최소한 상황 판단은 할 줄 알고 사고는 안 칠 테니까.’
베네수엘라가 차원 게이트 사태로 인해 큰 피해를 받는 것 정도는 막을 수 있겠지 싶었다.
“베네수엘라는 세계 최대의 산유국입니다. 아무리 석유의 가치가 하락했다고 해도 살려 두면 당분간은 쓸모가 있을 겁니다.”
“호오?”
강현수가 흥미로운 표정으로 외교부 장관 앤서니를 바라봤다.
“석유 시추 장비도 노후화로 대부분 망가졌고 수출길도 끊기지 않았나? 또 베네수엘라는 석유 시추 및 정제 비용이 상당히 높은 편이잖아.”
“그건 미국의 도움을 받으면 대부분 해결할 수 있습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석유 시추 장비가 노후화된 것도, 수출길이 끊긴 것도.
미국의 도움만 받으면.
아니, 미국이 제재를 중단해 주기만 해도 당장 베네수엘라의 숨통이 어느 정도는 트인다.
“베네수엘라에 단 한 번의 기회를 주십시오.”
외교부 장관 앤서니의 말을 들은 강현수는.
‘제법 쓸만해 보이네.’
외교부 장관이라 국제 정세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는 것 같았고.
애국심도 있어 보였다.
“그 기회를 살릴 자신이 있나?”
“베네수엘라라는 국가와 국민들의 저력을 믿어 주십시오.”
썩 믿음이 가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어차피 최악이니까.’
더 최악으로 떨어질 곳도 없는 나라가 바로 베네수엘라였다.
그러나 어쨌든 명색이 세계 최대 산유국이었고.
‘또 세계 플레이어 협회 비가입국이기도 하지.’
강현수 입장에서는.
베네수엘라라는 국가가 세계 플레이어 협회의 가입국이 됨과 동시에 긴급 개입 조치 동의국이 되기만 하면 큰 문제는 없었다.
강현수가 베네수엘라에 원하는 건.
석유, 경제, 정치가 아닌 플레이어 전력뿐이었으니까 말이다.
‘사실 플레이어 전력도 큰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었고, 전 세계 플레이어 전력을 통합하고 상황에 따라 유기적으로 움직일 수 있게 만들고 싶은 강현수에게 있어서는.
어쨌든 베네수엘라 역시 품고 가야 할 수많은 국가들 중 하나였다.
“좋아, 그럼 어디 한번 해 봐.”
강현수가 그 말과 함께 도플갱어 소환수 하나를 소환해 죽은 마도루 대통령의 기억을 흡수시킨 후 외형까지 복사시켰다.
“히익!”
도플갱어가 마도루 대통령의 모습으로 변하자, 외교부 장관 앤서니가 화들짝 놀랐다.
“이 녀석이 너에게 힘을 실어 줄 거다. 미국, 러시아, 중국도 적당히 협력해 줄 거고. 그러니까 어디 한번 네 조국을 변화시켜 봐.”
“가, 감사합니다.”
죽을 위기에서 빠져나온 앤서니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아, 그리고 권력 이양이 끝나면, 이 녀석은 공식적으로 사형시키든가 해. 국가를 말아먹은 놈은 그만한 대가를 치른다는 반면교사 정도는 해 줘야 하잖아.”
정말 정말 희박한 확률이지만, 강현수는 외교부 장관 앤서니의 개혁이 성공했을 때.
마도루 대통령 같은 놈이 국민의 칭송을 받는 걸 원하지 않았다.
진짜 마도루 대통령은 이미 죽은 놈이지만, 사회적으로는 엄연히 살아 있지 않은가?
강현수는 사회적으로도 마도루 대통령을 매장시킬 생각이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외교부 장관 앤서니가 선선히 대답했다.
그렇지만 속으로는.
‘그게 가능하려나?’ 하는 의문을 품고 있었다.
결국 자신이 권력을 잡으려면, 마도루 대통령의 뒤를 이은 2인자나 후계자 비스무리한 것이 될 수밖에 없다.
그 말은, 마도루 대통령을 사회적으로 사형시키기가 상당히 힘들다는 말이었다.
그렇지만 못 하겠다고 할 수는 없으니 무조건 하겠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가능하기만 하다면.
‘무조건 그렇게 해야지.’
외교부 장관 앤서니 역시 죽은 마도루 대통령에게 쌓인 게 많은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