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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의 오판

‘나약한 인간들도 꽤 도움이 되는군.’

자작급 마계 귀족이자 혈마족의 족장인 드라포우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피어올랐다.

‘고작 지역 하나를 점령했을 뿐인데.’

자작급 마계 귀족이었던 혈마족의 족장 드라포우는 백작급 마계 귀족으로 승급할 수 있었다.

이는 혈마족의 족장 드라포우가 백작으로의 승급을 눈앞에 뒀었던 덕이 컸지만.

지구로 넘어오지 않았다면.

승급을 하는 데 엄청나게 오랜 시간이 걸렸거나, 어쩌면 불가능했을 수도 있다.

‘사방에서 절망의 외침과 절규가 터져 나온다.’

마족인 혈마족의 족장 드라포우로서는 기꺼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역시 지구의 인간들이 나약하기는 하군.’

혈마족의 족장 드라포우는 그간 늘린 마기를 약간 소모해 마왕 단탈리온에게 간단한 약식 보고를 올렸다.

지구의 인간들은 나약하기 그지없다는 단순한 내용이었다.

‘도플갱어 킹 포르든 남작과 바우카 남작이 제대로 꿀을 빨았겠군.’

최소 자신과 같은 백작급, 어쩌면 후작급의 힘을 쌓았을지도 몰랐다.

‘뒤처질 수는 없지.’

보고를 늦춰 마왕에게 미운털이 박힌 녀석들이지만.

앞으로의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만큼 부지런히 힘을 쌓을 필요가 있었다.

또한.

‘최대한 늦게 만나야지.’

괜히 먼저 만나면?

도플갱어 킹 포르든 남작과 바우카 남작에게 자작이었던 자신이 먼저 고개를 숙여야 하는 불상사가 벌어질 수도 있었다.

‘그나저나 이 지구라는 차원은 인간들이 정말 많군.’

혈마족의 족장 드라포우가 알고 있던 인간들에 대한 상식대로라면.

거대 제국의 수도 정도는 되어야 이 정도 숫자의 인간들이 거주한다.

한데 이곳 지구는 족히 수백만에 달하는 인구들이 모여 사는 지역이 엄청나게 많았다.

‘고작 이 작은 땅에 이 정도가 산다면…….’

더 넓은 땅을 점령하면 점령할수록.

학살할 수 있는 인간들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리라.

‘지구라는 차원의 인구가 10억을 넘길 수도 있겠군.’

그게 혈마족의 족장 드라포우의 한계였다.

아마 지구의 인구가 80억에 달한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기쁨의 비명을 질렀으리라.

그러나 혈마족의 족장 드라포우가 그 사실을 알게 될 가능성은 제로였다.

왜냐하면.

“자작급이 아니군. 그사이 승급이라도 한 건가?”

강현수가 혈마족의 족장 드라포우를 찾아냈기 때문이다.

“인간?”

혈마족의 족장 드라포우가 살짝 놀란 표정으로 강현수를 바라봤다.

그간 이곳을 지배하던 인간 플레이어들을 몇 상대했지만.

솔직히 말해 수준 이하였다.

그렇기에 마왕 단탈리온에게 지구 플레이어들의 수준이 바닥이라는 보고까지 했는데.

‘어떻게 된 거지?’

저 인간은 백작급 마계 귀족이 된 자신의 감각에 전혀 감지되지 않았다.

“저 인간을 죽여라.”

혈마족의 족장 드라포우가 수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일단 수하들과 싸우는 모습을 보고 전투력을 가늠해 볼 참이었다.

‘특별한 은신 스킬을 가지고 있는 걸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저 무심한 표정이 마음에 걸렸다.

‘여차하면 도망쳐야지.’

혈마족의 족장 드라포우의 마인드는.

전사라기보다는 모사꾼이나 협잡꾼에 가까웠다.

동족인 혈마족 전사들의 목숨 따위는 일절 신경 쓰지 않았다.

‘뭐야?’

그런데 수하들이 코앞까지 접근했는데도 일절 반응하지 않았다.

‘단순히 은신 능력만 뛰어난 녀석이었나? 아니면 뭔가 다른 방법이…….’

콰콰콰콰콰콰!

생각을 이어 나가던 혈마족의 족장 드라포우의 입이 쩍 하고 벌어졌다.

상대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핏빛 오러가 달려들던 화마족 전사들을 순식간에 삭제시켜 버렸기 때문이다.

오러? 무기? 방어구? 육신?

그 어떤 저항도 없었다.

마치 그림자에 태양 빛이 드리운 것처럼.

허공으로 녹아 버리듯 사라져 버렸다.

‘이런 미친!’

화들짝 놀란 혈마족의 족장 드라포우가 재빨리 몸을 날렸다.

수하인 혈마족 전사들이 시간을 벌어 주는 틈에 몸을 피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녹아 버리듯 소멸해 버린 혈마족 전사들이 시간을 끌어 줄 수 있을 리 없었고.

콰직!

기이한 소음과 함께 도주하던 혈마족의 족장 드라포우의 육신이 산산조각 났다.

‘마계 백작이 된 내가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지만.

생각이 끝까지 이어지기도 전에 혈마족의 족장 드라포우의 숨이 끊어졌다.

‘상황 판단이 빠른 놈이네.’

수하들이 소멸하자마자 도주할 줄은 강현수도 몰랐다.

‘일단 소환수로 만들고.’

강현수가 혈마족의 족장 드라포우와 혈마족 전사들을 상대로 일인사령부 구성을 사용했다.

상대가 강현수이니 제대로 된 저항도 못 하고 전멸한 것이지.

강현수가 아니었다면 이들은 아메리카 대륙 전체를 죽음의 대지로 만들고도 남았을 정도로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정보 수집은 나중에 하고.’

마계 귀족과 마족들은 다 쓸어버렸지만.

아직 몬스터들이 남아 있는 만큼 당분간은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 * *

남아메리카의 국가 중 하나인 베네수엘라는 미친 인플레이션으로 유명했다.

자국 화폐로 기념품과 바구니를 만들어 팔고.

달걀 하나를 사려면 배낭 가득 돈다발을 채워 가도 부족한 나라.

베네수엘라가 그렇게 된 이유는?

무능한 지도자의 탓이 너무 컸다. 그리고 그 무능한 지도자 마도루 대통령은.

“러시아에서 뭐라고 하던가?”

“세계 플레이어 협회 차원에서 지원군을 급파했다는 소식을 전해 왔습니다.”

“하, 역시 내 예상대로군. 러시아는 미국의 개가 되어 버렸어. 공식적으로 발표를 하게. 우리 베네수엘라의 피해가 커진 건 미국의 지배를 받는 세계 플레이어 협회의 농간 때문이라고.”

상당히 후안무치했으며.

“플레이어 갱단들의 상황은?”

“전멸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나라를 좀먹던 악성종양이 사라졌으니 그나마 다행이군.”

“각하, 플레이어 갱단만 전멸한 게 아니라 그 지역에 살던 국민들 대다수가…….”

“그건 그곳을 관리하던 플레이어 갱단들의 잘못이 아닌가? 애초에 그곳의 국민들 역시 우리 정부의 지배를 거부하고 플레이어 갱단의 지배를 자발적으로 받아들였네. 그리니 우리 잘못은 없어. 알겠나?”

자국 국민들의 생사에도 일절 관심이 없었다.

베네수엘라의 대통령 마도루의 관심사는.

“플레이어 갱단들이 쓸려 나갔으니 정부의 영향력이 확대되겠어.”

오직 자신의 독재 권력을 유지하는 것뿐이었다.

“그보다 석유 가격은 계속 떨어지고 있나?”

“예, 대격변 이후 계속 하락하는 추세입니다.”

“대격변 같은 건 도대체 왜 일어나서.”

마도루 대통령이 얼굴을 찌푸렸다.

베네수엘라는 전 세계에서 석유 매장량이 가장 많은 나라다.

소위 말하는 자원의 축복을 받은 땅인 것이다.

그 덕분에 마도루 대통령의 전임자 차메수 대통령은 제대로 꿀을 빨았다.

차메수 대통령이 취임하고 국제 유가가 급등했고.

그 결과, 미국과 대놓고 각을 세워도 큰 문제가 없었다.

국민들의 지지는?

석유를 판 돈으로 대규모 포퓰리즘 정책을 펼치며 얻어 냈다.

문제는 차메수 대통령이 사망하고 후계자인 마도루 대통령이 정권을 잡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국제 유가가 급락했다는 것이다.

당연히 베네수엘라의 경제는 나락으로 떨어져 내렸다.

설상가상으로 전임자 차메수 대통령은 석유를 판 돈으로 포퓰리즘 정책만 펼쳤을 뿐 석유 가격이 하락했을 때를 대비한 안배는 단 하나도 해 놓지 않았다.

오히려 외국계 기업들을 쫓아내고, 외국계 기업들의 베네수엘라 자산을 몰수했다.

제조업, 농업, 금융업, 건설업, 서비스업, 관광업 등등.

제대로 돌아가는 게 하나도 없었다.

거기다 국가의 유일한 돈줄인 석유 생산마저 장비의 노후와 기술 부족으로 생산량이 바닥을 치고 있었다.

마도루 대통령이 제대로 된 정치인이었다면, 뼈를 깎는 고통으로 국가 산업을 재편했겠지만.

그 대신 돈을 찍는 선택을 했고.

결국 하이퍼인플레이션이 발생해 나라가 망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석유 매장량을 가지고 있는 국가가 망하는 비상식적인 일이 발생한 것이다.

그 결과 갱단들이 한 지역을 다스리며 고대 영주처럼 군림하는 막장이 펼쳐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도루 대통령은 정신을 못 차렸다.

현재 마도루 대통령의 유일한 소망은 석유 가격이 급등하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날 수가 없었다.

대격변이 일어나자.

마석이 에너지원으로 각광받으며, 석유 가격이 계속해서 하락하기만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석은 의학, 제조, 건설, 농업 등등 안 들어가는 곳이 없는 만능 소재.

그동안은 에너지로 돌릴 여유분이 그리 많지 않았기에 석유가 어떻게든 에너지원으로서 살아남았지만.

최근 연달아 대규모 차원 게이트 사태가 벌어지며 마석이 대량으로 풀리자.

석유 가격은 급락에 급락을 거듭하는 중이었다.

물론 석유가 에너지원으로서의 가치만 있는 건 아니지만.

석유의 가장 큰 가치가 에너지원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는 상황이니만큼.

앞으로 석유 가격은, 내리면 내렸지 절대 올라갈 일이 없었다.

쉽게 말해 마도루 대통령은 지금 제대로 헛물을 켜고 있었다.

그러나 마도루 대통령 입장에서는 유일한 희망은 유가 상승밖에 없었다.

“각하, 지시하신 내용을 속보로 내보냈습니다. 그런데 세계 플레이어 협회가 가만히 있을까요?”

베네수엘라의 외교부 장관 앤서니는 무척이나 불안했다.

현재 세계 플레이어 협회가 가지는 입지가 어느 정도인지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도루 대통령은 미국의 개라고 지칭했지만.

현 상황을 보면 오히려 세계 플레이어 협회가 미국의 위에 있는 모양새였다.

아니, 단순히 미국만이 아니라 러시아와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와 유럽의 국가들까지 세계 플레이어 협회를 떠받치는 형국이다.

베네수엘라가 미국을 까는 건, 이미 사이가 틀어질 대로 틀어졌기에 큰 타격이 없다.

그러나 세계 플레이어 협회를 까는 건.

사실상 전 세계를 적으로 돌리는 것과 큰 차이가 없었다.

베네수엘라가 미국과 척을 졌을 때도 최소한 러시아와의 관계는 좋게 유지했다.

같은 반미의 기치 아래, 러시아에 석유도 팔고, 지원도 받고, 무기도 샀다.

이번에 세계 플레이어 협회에 도움을 요청한 것도 결국은 러시아 라인을 통해서였다.

그런데 이렇게 뒤통수를 치면, 러시아의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미국과 척을 지는 것도 모자라 러시아까지 척을 지는 건 사실상 자살행위에 가까웠다.

“자기들이 가만히 있지 않으면 뭘 어쩌겠나?”

마도루 대통령은 당당했다.

세계 플레이어 협회는 명색이 세계 평화를 위해 존재하는 단체다.

그런 곳에서 베네수엘라를 공격할 방법이 뭐가 있겠는가?

거기다 애초에 국가 상황이 막장이었기에 솔직히 말해 더 나빠질 일도 없었다.

“그렇습니다.”

결국 외교부 장관 앤서니가 꼬리를 내렸다.

‘내가 저 무식한 놈을 상대로 무슨 소리를 한 건지.’

더 강하게 말했다가는 오히려 자신의 목이 날아갈 것이다.

그때 외교부 차관이 다급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무슨 일인가?”

“세계 플레이어 협회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그런데?”

“차원 게이트 토벌이 다 끝났으니, 뒷수습이라도 잘하라고.”

“뭐?”

외교부 장관 앤서니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그건 마도루 대통령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실 최악의 상황에서 도움을 청하기는 했지만, 큰 기대를 한 건 아니었다.

한데 도움을 요청한 지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 정리를 했다는 말인가?

‘큰일이다.’

순간 외교부 장관 앤서니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세계 플레이어 협회 때문에 문제가 커졌다고 공식적으로 발표를 했는데.’

오히려 세계 플레이어 협회가 개입하는 순간, 사건이 끝나 버렸다.

“제법이군.”

놀란 표정이던 마도루 대통령이 금방 안정을 찾았다.

“저, 괜찮을까요?”

외교부 장관 앤서니의 말에.

“괜찮지 않을 게 뭔가? 오히려 우리 말이 맞다는 방증 아니겠나?”

“예?”

“이렇게 금방 처리할 수 있었으면서 게으름을 피워 피해가 커진 게 아니냐는 말일세.”

사실은 마도루 대통령이 피해 사실을 감추고 뒤늦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지만.

“그, 그렇습니다.”

외교부 장관 앤서니가 할 수 있은 말은 그것뿐이었다.

다만 걱정되는 건.

‘분명 보복이 있을 텐데.’

이미 최악이지만 더한 바닥이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마음속에서 무럭무럭 피어올랐다.

그리고 불안감은?

결코 헛된 기우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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