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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 단탈리온의 오판 (3)

“사, 살았다.”

다리에 힘이 풀린 메이펑이 털썩하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러고 보니.’

이번 작전에 투입되기 전, 강현수가 말했다.

혹시 위험할 수도 있으니 호위를 붙여 주겠다고.

단 그 호위는 목숨이 위험한 위기가 아니면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거라고 했다.

‘평소에는 은신 스킬을 쓰고 있을 테니 눈에 안 보인다고 했었지.’

그저 한 명 정도만 더 공간 이동 시킨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그간 큰 사건이 터질 때마다 있었던 일이기에 알겠다고 대답했고.

습관적으로 그렇게 공간 이동 스킬을 사용해 왔다.

그간 인도 언데드 몬스터 사태, 아시아 차원 게이트 사태, 유럽 차원 게이트 사태를 연달아 겪었지만.

목숨을 잃을 만큼 위기를 느낄 일도 없었고.

보이지 않는 호위의 존재감을 느낄 일도 없었기에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호위가 있었구나.’

이제야 왜 강현수가 은신 스킬을 사용하게 하고, 목숨이 위험한 상황이 아니면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거라고 했는지 알 수 있었다.

‘누가 봐도 괴물이잖아.’

키가 3미터에 달하고 이마에 뿔이 달린 마족이나.

키가 6미터에 달하고 엄니가 솟아오른 오크나.

인간들이 보기에는 둘 다 인류의 적이었다.

아마 둘 중 누가 모습을 드러내든 사람이라면 보는 순간 혼비백산해서 도망치리라.

그렇지만.

‘든든하네.’

6미터의 키를 가진 거대한 오크가 자신의 호위라는 것을 알게 된 메이펑은 마음이 놓였다.

전투력이 덩치에 비례하는 것은 아니지만.

‘오크가 더 커.’

그렇게 무시무시해 보였던, 키가 3미터에 달하는 마족이.

자신을 호위하는 키 6미터의 오크 앞에서 서자.

마치 어른을 앞에 두고 떼를 쓰는 어린아이처럼 작아 보였다.

6미터에 달하는 체구를 가진 오크는 피지컬 자체가 일종의 무기나 마찬가지였다.

저런 괴물이 적이라면 두렵겠지만.

자신을 지켜 주는 호위라면?

이보다 더 마음이 편할 수가 없었다.

단 저 두 괴물이 펼치는 전투는 아이가 어른에게 떼를 쓰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파괴력을 선보였다.

꽈아아아앙!

화마족의 족장이자 마계 자작인 브레미크의 대도와 전 오크 로드이자 마계 자작인 소환수 카쉬쿠의 도끼가 충돌하자.

엄청난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이, 일단 도망치자.’

메이펑은 조심스럽게 몸을 피했다.

저 괴수 대전에 휘말리면 무조건 사망이었다.

기회가 왔을 때, 최대한 멀리 몸을 피해야 했다.

겨우 목숨을 건졌는데, 멍하니 괴수 대전을 구경하다 날아오는 눈먼 오러 파편이나 충격파에 맞아 죽기라도 하면.

그만큼 허무한 죽음이 어디 있겠는가?

메이펑이 휘하 소환수들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몸을 피하는 사이.

화마족의 족장 브레미크 자작과 전 오크 로드이자 마계 자작인 소환수 카쉬쿠의 대결은 점점 치열해졌다.

둘의 전투는 막상막하였다.

원래대로라면 같은 마계 자작이라더라도 소환수인 카쉬쿠의 전투력이 월등히 떨어져야 하지만.

강현수가 그간 마계 귀족급 마족 출신 소환수들에게 꽤 많은 투자를 해 준 덕분에.

카쉬쿠의 전투력은 살아 있을 때보다 더 강해진 상태였다.

거기다 카쉬쿠는.

“이런 미친놈! 같이 죽자는 거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브레미크 자작은 엄연히 살아 있는 생명체였기에, 당연히 목숨을 도외시한 공격을 함부로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카쉬쿠는 강현수의 소환수이자, 소멸해도 스텟만 투자하면 얼마든지 부활할 수 있는 불사의 존재.

그렇기에 승리를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동귀어진의 수를 사용할 수 있었다.

이렇게 되자.

“이익!”

브레미크 자작이 점점 기세에서 밀리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브레미크 자작의 머릿속에 있던 지구라는 차원은.

자신들에게 점령당하기 직전의 나약한 곳이었다.

그런데 막상 와 보니.

마계 자작인 자신이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의 상대가 고작 소환수에 불과했다.

‘저 소환사 인간을 죽여야 하는데.’

그럴 여유가 없었다.

이 오크 로드 소환수를 쓰러트려야 소환사를 공격할 수 있다.

‘어쩔 수 없다.’

브레미크 자작이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그와 동시에.

화르르르륵!

브레미크 자작의 전신을 휘감고 있던 푸른 화염이 더욱 격렬하게 타올랐다.

소수의 선택받은 화마족만이 사용할 수 있는 비기를 시전했기 때문이다.

‘마기가 영구적으로 손실되는 페널티가 있기는 하지만.’

화염의 공격력이 급증한다.

‘어차피 저 오크 로드 소환수를 쓰러트리고 소환사만 제거하면 끝이야.’

그럼 이 지구라는 차원에서 자신을 막을 수 있는 존재는 없었다.

‘손실된 마기는 지구의 인간들을 모조리 쓸어버리면 얼마든지 회복할 수 있다.’

브레미크 자작이 마기의 영구적인 손실까지 감수하며 전투 의지를 불태웠다.

사실 애초에 이대로 가다가는 오크 로드 소환수 카쉬쿠의 공격에 목이 날아갈 판이기에 선택의 여지가 없기도 했다.

‘죽어라!’

푸른 화염이 오크 로드 소환수 카쉬쿠를 향해 날아갔다.

그 순간.

“쿠워어어어억!”

오크 로드 소환수 카쉬쿠가 고함을 터트렸고.

“크윽!”

브레미크 자작의 몸이 휘청거렸다.

전신이 물먹은 솜처럼 무거워졌다.

‘이런 망할.’

브레미크 자작의 얼굴이 형편없이 일그러졌다.

‘오크 로드의 외침.’

아군에게는 버프를, 적군에게는 디버프를 주는 오크 로드의 비기 중 하나.

브레미크 자작이 화마족의 비기를 사용하기 무섭게 오크 로드 소환수 역시 비기를 사용한 것이다.

전투력의 상승도는?

브레미크 자작의 것이 월등히 높다.

그렇지만.

꽈아앙! 꽈아앙! 꽈아앙!

오크 로드의 외침 때문에 일격에 오크 로드 소환수를 쓸어버리려던 계획이 물거품이 되었고.

귀한 마기를 영구적으로 손실했음에도 고작 수세에서 공세로 전환하는 정도의 성과밖에 얻지 못했다.

으드득!

브레미크 자작이 어금니를 악물었다.

어차피 이번 전투는 브레미크 자작의 승리다.

문제가 있다면.

전투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영구 손실되는 마기가 커진단 말이다, 이 빌어먹을 오크 놈아!’

브레미크 자작이 이를 빠득빠득 갈면서 맹공을 펼쳤다.

인간 소환사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이놈을 쓰러트린 후 찾아내 갈가리 찢어 죽이겠다.’

브레미크 자작이 인간 소환사에 대한 분노로 이글거리고 있을 때.

“자작급 정도 되는 건가?”

갑자기 자신의 등 뒤에서 누군가의 태연한 음성이 들려왔다.

‘누구지?’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휘익!

화들짝 놀란 브레미크 자작이 전력을 다해 대도를 휘둘렀다.

그런데.

탁!

“하급 마족 하나 겨우 출입시켰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자작급이라니, 마력 농도 성장이 참 빠르네.”

전력을 다해 휘두른 대도가.

이글거리는 화염이 넘실거리는 대도가.

고작 한 인간의 손에 붙잡혀 옴짝달싹 못 하고 있었다.

“이익!”

전신에 핏줄이 드러날 정도로 힘을 줬지만 대도는 여전히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시간 없다. 그냥 가라.”

인간이 그 말과 함께 대도에 힘을 주자.

푸욱!

브레미크 자작의 손에 들려 있던 대도가 어느새 주인의 심장을 관통했다.

“커억!”

자신의 무기에 심장이 꿰뚫린 브레미크 자작이 허무한 표정을 지었지만.

결과가 뒤바뀌는 일은 없었다.

* * *

‘일정이 살짝 꼬이기는 했지만, 뭐 나쁘지는 않지.’

소환수인 카쉬쿠와 싸우던 마계 귀족을 제거한 강현수가 마기를 흡수하고.

‘일인사령부 구성.’

직업 스킬을 사용해 쓰러트린 마계 귀족을 소환수로 부활시켰다.

‘마계 자작급이 몇이나 왔으려나?’

강현수야 명색이 마계 귀족을 어린아이 손목 꺾듯 손쉽게 제거해 버렸지만.

현재 지구의 플레이어들에게 있어 마계 귀족은 일종의 자연재해에 가까웠다.

그나마 귀환자 출신 랭커라면 어느 정도 상대가 가능하기는 했지만.

‘숫자가 너무 적지.’

그럼?

‘내가 부지런히 움직여야겠네.’

손해만 있는 것은 아니다.

마계 귀족을 쓰러트리면, 막대한 경험치와 마기, 거기다 쓸 만한 소환수까지 얻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마계 귀족이 몇이나 지구로 넘어왔지?”

강현수가 소환수로 부활한 화마족 브레미크에게 물었다.

“저를 포함해 총 아홉입니다.”

“전부 마계 자작인가?”

“그렇습니다.”

“하아!”

절로 한숨이 나왔다.

‘당분간 공간 이동 스킬 보유자들의 스킬 사용을 금지시켜야겠네.’

느리더라도 와이번을 타고 이동하는 식으로 진압하고.

마계 귀족이 나타났다는 정보가 들어오면, 공간 이동 스킬을 사용해 곧바로 이동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저,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강현수가 생각을 정리한 사이, 멀리 몸을 피했던 공간 이동 스킬 보유자 메이펑이 강현수에게 다가와 깍듯이 고개를 숙였다.

“다시 움직일 수 있지?”

“물론입니다. 아, 그리고 호위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이 녀석이 너를 지킬 거다.”

강현수가 그 말과 함께 소환수 카쉬쿠에게 달의 그림자 스킬을 시전했다.

원래 달의 그림자 스킬은 시전자 자신밖에 사용하지 못했고, 타인과의 접촉도 불가능했지만.

창조의 권능을 통해 개량한 덕분에.

‘범용성이 월등히 좋아졌지.’

그래서 소환수에게 시전해 이렇게 비밀 호위로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럼 계속 수고하도록.”

“알겠습니다.”

메이펑의 대답을 들은 강현수가.

캬아아아악!

와이번 소환수를 불러내 등에 올라탔다.

‘부지런히 움직여야지.’

강현수는 와이번 소환수를 타고 원래 목적지를 향해 몸을 날렸다.

* * *

‘이제 하나 남았나?’

강현수가 북아메리카를 종횡무진하는 와중에 계속해서 마계 귀족에 대한 제보가 들어왔다.

그때마다 강현수는 공간 이동 스킬 보유자들을 호출해 마계 귀족들을 정리했다.

그 결과.

지구로 침공해 온 자작급 마계 귀족 여덟을 제거했다.

아직 하나가 남은 상태였지만.

‘급한 불은 끈 것 같은데.’

이제 잔불만 정리하면 될 것 같았다.

강현수가 자작급 마계 귀족을 정리하는 사이.

미국과 케나다의 급한 불도 꺼졌다.

멕시코의 경우는…….

‘정보 체계가 엉망진창이야.’

중앙아메리카 국가들보다는 나았지만.

솔직히 말해 강현수가 보기에는 도토리 키 재기 수준의 차이였다.

그렇지만.

어찌어찌 정리가 되어 가고 있었고.

중앙아메리카 국가들 역시 소환수들이 적절히 몬스터들의 진군을 틀어막으면서, 추가 인명 피해는 터지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놈은 도대체 왜 이렇게 잠잠한 거야?’

지금까지 강현수가 정리한 자작급 마계 귀족들의 경우.

최대한 빨리 성장해야 한다는 생각에 무차별적인 학살을 저질렀고.

그 과정에서 소환수들이 빠르게 소멸하거나 강현수 휘하 지휘관들의 목숨이 위협받았다.

그래서 총 여덟이라는 숫자를 비교적 손쉽게 제거할 수 있었다.

그런데 남은 하나는?

‘아무런 흔적이 없단 말이지.’

이건 엉뚱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자작급 마계 귀족이 할 행동이 아니었다.

경쟁자들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분명히 거하게 사고를 쳐야 하는데.’

하지만 정보가 없는 이상, 강현수로서는 몬스터들을 제거하기 위해 정신없이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때.

-주군, 방금 베네수엘라에서 급한 연락이 왔습니다.

러시아의 실세 적염제 도르초프에게서 연락이 왔다.

-급한 연락? 설마!

-마족이 나타나 엄청난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될 때까지 왜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 거지?

-그게, 세계 플레이어 협회는 미국의 개라서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고.

-이런 미친놈!

베네수엘라의 독재자가 제정신이 아닌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또 북아메리카와 중앙아메리카에 사고가 터졌으니, 어차피 도움을 요청해 봐야 병력 지원을 못 받지 않겠느냐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정치 논리네.

베네수엘라는 오랜 시간 동안 미국과 각을 세워 왔다.

거기다 미국과 세계 플레이어 협회를 한 몸으로 생각했다.

그러니 이런 꼴이 난 것이다.

단지 한 가지 의문이 있다면.

-왜 러시아나 중국에도 도움을 청하지 않은 거지?

-미국에게 굴복했으니, 자신들에게 도움을 주지 않을 걸로 생각한 모양입니다.

적염제 도르초프의 대답을 들은 강현수의 얼굴이 사납게 일그러졌다.

무능하다 무능하다 했어도, 설마 이 정도로 무능할 줄은 몰랐다.

‘지금 당장 이동해야겠네.’

강현수가 소피아를 소환해 베네수엘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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