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플갱어 군단의 침입 (3)
마치 고위 마계 귀족이라도 영접한 것 같은 태도.
아니, 설사 고위 마계 귀족이라고 해도.
직계 권속이 아닌 이상 저런 모습을 보일 리가 없다.
강제로 저런 모습을 만들려고 해도.
‘죽이는 것보다 제압하는 게 더 어려운 법이거늘.’
힘의 격차가 얼마나 압도적이기에, 아무리 대다수가 최하급이라고는 하나 명색이 마족인 저들을 저렇게 만들 수 있단 말인가?
‘못해도 마계 후작급 이상이다.’
어쩌면 마계 공작급이나 마계 대공급일 수도 있었다.
‘지구에 이런 존재가 있었다니.’
사실 처음에 지구에 오고, 두 번의 대규모 침공이 큰 피해 없이 막히는 것을 보고 도플갱어 킹 포르든 남작은 크게 놀랐다.
그렇기에 지구 고위층들로 위장해 최대한 정보를 얻어 내려고 했는데.
설마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이야.
‘어떻게든 마왕님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한다.’
이 사실을 모르고 하위부터 고위까지 마계 귀족들을 순서대로 투입했다가는.
‘지구에 투입되는 족족 잡아먹힐 수도 있어.’
마왕은 현재 지구가 거의 자신의 손아귀에 들어왔다고 판단하고 있으리라.
그런데.
‘현실은 정반대다.’
도플갱어 킹 포르든 남작은 일단은 살아남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살아남아야 기회가 생기고, 제물을 모아야 마계와의 통신 기회가 생긴다.
“제가 졌습니다. 패배를 인정할 테니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최대한 협조하겠습니다.”
도플갱어 킹 포르든 남작은 자존심을 버렸다.
살기 위해 납작 엎드리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러나.
“어디서 수작을 부려. 마왕의 권속인 네놈들이 배신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이미 마족에 대한 정보 파악이 끝난 강현수에게 통할 리 만무했다.
“그제 그만 가라.”
“그게 무슨?”
정보 수집을 위해서라도 자신을 살려 둘 것이라고 생각했던 도플갱어 킹 포르든 남작은.
콰직!
강현수가 가볍게 휘두른 검격에 그대로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일인사령부 구성.’
사아아아아아!
강현수의 소환수로서 되살아났다.
“네놈이 섬겼던 마왕이 누구지?”
“단탈리온입니다.”
“혹시 그동안 다른 마왕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적이 있나?”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왜 지구를 이렇게 다급하게 공격하는 거지?”
“최대한 빨리 지금 있는 곳을 탈출해 지구로 이주하기 위해서입니다.”
“하!”
강현수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강력한 마왕이 지구를 노리는 줄 알고 전전긍긍했는데.
‘정말 두 번째 가정이 맞아떨어질 줄이야.’
현실은 72마왕 중에서 뒤에서 두 번째.
고작 서열 71위의 최약체 마왕이 지구를 노리고 있었다.
‘일단 안심이네.’
56위의 마왕인 그레모리도 쓰러트린 강현수다.
71위의 마왕 단탈리온 정도는?
‘지금 당장 쳐들어온다고 해도 손쉽게 막아 낼 수 있어.’
강현수 입장에서는 큰 짐을 덜게 된 셈이었다.
문제는.
‘그런데도 불안감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단 말이야.’
분명히 뭔가가 있었다.
‘혹시 마왕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 지구를 노리고 있기라도 한 건가?’
어쩌면 정말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지금으로서는 확신할 수가 없었다.
오히려 지금은.
‘혹시 모를 변수가 발생하느니 차라리 단탈리온이 빨리 침공해 오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괜히 마왕 단탈리온이 다른 상위 마왕에게 잡아먹히기라도 하면, 지구를 침공하는 상대가 그 상위 마왕으로 바뀌어 버린다.
“마왕 단탈리온이 왜 지금 있는 곳을 버리고 지구로 이주하려고 하는 거지?”
“상위 마왕의 침공 때문으로 알고 있습니다.”
“혹시 그 상위 마왕이 누군지 알고 있나?”
“송구하오나, 제 베이스가 된 존재에게는 그런 정보가 없었습니다.”
마계 귀족이라고 해도.
‘남작이면 말단 중에 말단이지.’
그래서 그런지 중요한 정보는 그다지 알고 있는 게 없었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이 정도로도 충분하지.’
오히려 더 뽑아낼 정보가 잔뜩 남아 있었다.
지구에 잠입한 도플갱어들의 위장한 정체와 규모 같은 것을 탈탈 털어 낼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네가 지구에 잠입한 도플갱어들의 수장인가?”
“예, 그렇습니다. 하지만 지구로 넘어온 마계 귀족이 저 혼자라고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단 말이지.”
강현수는 일단 최상위 도플갱어들부터 토벌하기로 결정했다.
바이러스를 핑계 삼아 얇은 은판이 들어 있는 테스트기로 도플갱어들의 정체를 감별해 내고 있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느긋하게 기다릴 수는 없지.’
강현수는 일단 도플갱어 킹 포르든 남작의 직계 권속이었던 최상위 도플갱어들부터 토벌하기로 했다.
그 후에는?
‘그놈들의 권속을 토벌하면 끝이야.’
물론 그래도 빠져나가는 놈들이 있기는 하겠지만.
은판이 들어 있는 테스트기를 사용하면, 아무리 수시로 겉모습을 바꾸며 몸을 숨겨도 손쉽게 도플갱어의 정체를 밝혀낼 수 있었다.
‘그래도 교차 검증은 필요하지.’
강현수가 한동안 아공간에 처박아 놓았던 리치 아르타스를 끄집어냈다.
“끄으으윽! 인간, 나는 절대 굴복하지 않는다!”
꽤 오랜 시간 정신적인 고통을 받았을 게 확실함에도 마왕을 향한 리치 아르타스의 충성심은 굳건했다.
얼마 전이었다면 꽤 골치 아파했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네가 모시던 마왕이 단탈리온 맞지?”
“아, 아니다!”
“이놈이 진짜라고 했는데?”
강현수가 소환수가 된 도플갱어 킹 포르든 남작을 가리키자.
“어, 어떻게? 설마 배신을?”
리치 아르타스의 해골 턱뼈가 쩍 하고 벌어졌다.
“아는 얼굴인가 보네. 너도 아는 얼굴 맞지?”
강현수가 소환수가 된 도플갱어 킹 포르든 남작에게 묻자.
“예, 마왕 단탈리안이 투입한 리치입니다.”
“확인 끝났네. 그럼 다시 들어가.”
“자, 잠깐만. 항복하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다시 그곳에 넣지 말아 주…….”
“이미 늦었다.”
강현수가 리치 아르타스를 다시금 아공간에 처박았다.
진작 전향했다면 몰라도 이제 와서 전향한다고 받아 줄 리가 없었다.
더군다나 라이프 포스 베슬마저 마왕에게 있는 노예 신세가 아닌가?
‘일단 토벌부터 시작해야겠네.’
확인을 끝마친 강현수가 몸을 움직였다.
* * *
도플갱어 킹 포르든 남작이 위치와 정체를 알고 있는 도플갱어들이 일거에 소탕당했다.
그 외에도 수많은 도플갱어들이 남아 있었지만.
은판이 들어 있는 테스트기가 전 세계에 보급됨에 따라 몸을 숨기고 있는 도플갱어들 역시 속속 제거당했다.
그런 상황에서 가장 초조함을 느끼고 있는 존재는?
도플갱어 킹 포르든 남작과 함께 지구에 투입되었던 또 다른 도플갱어 킹 바우카 남작이었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건지?’
같은 도플갱어 킹이지만, 포르든 남작은 바우카 남작의 존재를 몰랐다.
반면 바우카 남작은 포르든 남작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포르든 남작이 아시아 차원 게이트 사태를 통해 투입되었다면.
바우카 남작은 유럽 차원 게이트 사태를 통해 투입되었기 때문이다.
‘포르든 남작의 권속들이 속속 제거당하고 있어.’
그건 바우카 남작의 권속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구의 인간들은 뭔가 다르다.’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도플갱어들이 제대로 된 활동을 하기도 전에 모조리 박멸당할 판이었다.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얌전히 몸을 숨기고 지내면, 당장 살아남을 수는 있다.
그러나 점점 조여 오는 포위망에 결국은 완전히 박멸당할 확률이 높았다.
그렇다면?
‘모험을 해 봐야지.’
바우카 남작의 시선이 향한 곳은 세계 최강대국이라고 불리는 미합중국의 대통령이 머물고 있는 백악관이었다.
‘인간들의 나라 중 가장 강력한 나라. 가장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는 나라.’
바우카 남작이 미국 대통령이라는 버틀러라는 인간으로 분하기만 한다면?
‘그간의 피해를 단숨에 만회할 수 있다.’
단 문제가 하나 있다면, 경계 태세가 엄청나게 삼엄하다는 것이다.
거기다.
‘망할 놈의 바이러스 검사.’
백악관에 출입하는 이들은 무조건 바이러스 검사를 해야 했다.
그건 버틀러 대통령도 마찬가지.
처음에는 바이러스 검사 테스트기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한데 그게 아니었다.
‘고작 은 따위로 우리의 정체를 판별해 내다니.’
도플갱어들의 피가 독성을 띠고 있기는 하지만.
사실 은이 검출할 수 있는 독의 숫자는 무척 한정적이고, 사실상 비소가 전부라고 봐도 무방했다.
문제는 제아무리 변신의 달인이라고 해도 피를 바꿀 수는 없다는 것.
‘그러나 임시 방책은 가능하다.’
평범한 인간의 피를 신체에 저장하고 있다가 손가락 끝을 통해 내보내면 된다.
단순히 인간형으로 외형을 복사하는 게 전부인 일반적인 도플갱어들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인간의 형상을 벗어난 존재로도 변신할 수 있는 도플갱어 킹에게는 손쉽게 행할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해 보자.’
도플갱어 킹 바우카 남작이 백악관으로의 잠입을 시도했다.
‘쉽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엄청나게 긴장을 했는데, 바이러스 검사만 통과하니 그 뒤로는 일사천리였다.
도플갱어 킹 바우카 남작은 계속해서 백악관에서 근무하는 인물들의 얼굴로 바꿔 가며 버틀러 대통령의 집무실로 향했다.
모습만 빌렸을 뿐 인간을 죽이지는 않았다.
괜한 소란이 일어나 호위가 강화되는 일은 피해야 했기 때문이다.
‘일단 미국 대통령으로 변한 후 남은 수하들로 미국이라는 나라를 장악한다.’
그럼 자신들의 정체를 감별하는 법을 알아낸 자의 정체를 밝힐 수 있고.
지구의 군사력과 플레이어 전력도 완벽하게 파악이 가능했다.
그리고 잘하면.
‘세계 3차 대전 같은 걸 일으킬 수 있다면 좋겠군.’
전쟁은 피와 살육을 부른다.
수많은 인간들의 죽음과 마이너스한 감정은 마족의 힘이 되는 만큼.
전 세계가 휘말릴 수밖에 없는 수준의 전쟁을 일으킨다면?
도플갱어 킹 바우카 남작은 대공급을 넘어서 마왕에 근접한 강력한 마족으로 성장할 수도 있었다.
‘운이 좋군.’
대통령 집무실까지 무사히 도착하는 데 성공했다.
‘의외로 내부 경계는 그리 강력하지 않아.’
백악관 외부 경계 수준은 말 그대로 철옹성이라는 표현이 부족할 정도로 철저했다.
그러나 백악관 내부는 의외로 널널했다.
플레이어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고, 무장을 한 경호원들도 생각보다 적었다.
‘충분히 성공할 수 있겠어.’
집무실 안에는 현재 버틀러 대통령만 존재한다.
그 말인즉.
‘들어가서 조용히 저리하기만 하면 끝난다는 거지.’
도플갱어 킹 바우카 남작이 미소를 지으며 버틀러 대통령의 집무실 내부로 잠입했다.
‘너무 허술하군.’
도플갱어 킹 바우카 남작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피어올랐다.
집무실 내부에는 버틀러 대통령 혼자였다.
조용히 제거하고 기억을 흡수하기만 하면?
도플갱어 킹 바우카 남작은 지구에서 최강의 군사력을 지닌 국가의 수장이 된다.
‘가능하다면 핵전쟁을 일으켜 봐야겠어.’
수많은 인명을 학살하려면 그냥 전쟁보다 핵전쟁 아니겠는가.
거기다 핵무기를 사용하면, 일반인만이 아니라 초인이라 할 수 있는 플레이어들도 대거 학살할 수 있을 터였다.
‘잘 가라.’
버틀러 대통령의 등 뒤까지 접근한 도플갱어 킹 바우카 남작이 손을 뻗었다.
단숨에 목을 비틀어 버릴 생각이었다.
그런데.
콰직!
“크윽!”
반대로 누군가가 그의 목을 움켜잡았다.
‘비밀 경호가 있었나?’
도플갱어 킹 바우카 남작은 적잖이 당황했다.
인간 플레이어 따위가 자신의 눈을 속일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마기를 끌어 올려 재빨리 반격을 해 보려고 했지만.
우드득!
압도적인 힘에 의해 순식간에 도플갱어 킹 바우카 남작의 목이 부러져 버렸다.
원대한 야망을 가지고 접근한 것치고는 너무도 허무한 죽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