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플갱어 군단의 침입
권소희는 강현수가 도착하기 전까지 도플갱어의 행적을 놓치지 말고 미행해야 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잘해야 해.’
상대가 마족이라는 생각에 적잖이 긴장했지만.
반대로 자신이 뭔가 엄청나게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했다.
‘어디로 가고 있는 거지?’
도플갱어를 조심스럽게 미행하던 권소희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가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는데, 인적이 드문 시외 방향으로 움직였기 때문이다.
‘시외에 있는 던전이라도 가려는 건가? 그게 아니면 동료들과의 접선?’
권소희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미행을 계속했다.
그러던 중.
‘어?’
권소희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인적이 드문 수준이 아니라, 아예 없는 곳에 도착한 도플갱어가 움직임을 멈췄기 때문이다.
그리고 몸을 돌려 정확히 권소희를 바라보더니.
“왜 나를 미행한 거지?”
말을 걸어왔다.
‘들켰어.’
권소희는 적잖이 당황했다.
“순순히 대답하는 게 좋을 텐데.”
“그, 그게, 제가 아는 분이 아닌가 해서.”
“난 너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는데?”
도플갱어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긴장하고 있군. 나를 적대하고 있고.”
“그런 적 없어요.”
“혹시 내가 누군지 알고 있나?”
“몰라요!”
도플갱어의 물음에 권소희가 빽 하고 소리를 지르듯 대답했다.
“뭔가 알고 있군. 자세한 건 내가 직접 알아보지.”
타악!
말을 끝마친 도플갱어가 엄청난 속도로 달려들었다.
‘화염의 분노.’
화들짝 놀란 권소희가 공격 스킬을 사용했다.
화르르륵!
시뻘건 불줄기가 도플갱어를 향해 날아갔지만.
퍼엉!
너무나 허무하게 소멸해 버렸다.
휘익!
도플갱어의 손이 권소희의 머리를 꿰뚫으려는 찰나.
타악!
누군가가 권소희를 공격하던 도플갱어의 손을 붙잡더니.
휘익!
꽈아아앙!
그대로 바닥에 냅다 꽂아 버렸다.
“커억!”
충격을 받은 도플갱어가 비틀거리며 몸을 움직이려고 했지만.
순식간에 달려든 누군가가 도플갱어의 가슴팍을 찍어 눌렀다.
“괜찮아?”
그 누군가는 바로 송하나였다.
“네, 괜찮아요.”
권소희가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대답했다.
“현수는 금방 올 거야.”
“네, 알아요.”
“진정해, 어차피 내가 안 나섰어도 저 녀석들이 나섰을 거니까.”
송하나가 권소희의 곁에 호위로 붙어 있는 도플갱어 소환수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 그러네요.”
사실 권소희의 안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강현수가 붙여 놓은 소환수들이 몸을 숨긴 채 24시간 권소희를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송하나가 제때 도착하지 못했다면?
소환수들이 나섰으리라.
또 송하나가 일찍 도착한 것일 뿐.
현재 이곳으로 장석원, 신창호, 장용철, 서동진, 백정혁, 지우현 같은 대한민국 랭커들이 총출동한 상황이었다.
‘아직 많이 약하네.’
권소희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송하나가 귀환자이기는 하지만 자신보다 늦게 레벨 업을 시작했을 텐데.
어느새 자신과는 비교도 하기 힘들 정도로 강해져 버렸다.
“분해?”
송하나의 물음에.
“저, 그게…….”
권소희가 말꼬리를 흐렸다.
“더 열심히 노력해. 방법은 그거밖에 없어.”
송하나는 권소희의 마음을 이해했다.
‘나도 마찬가지니까.’
그래도 실력이 많이 올라왔기에 이번 유럽 원정에 함께할 수 있기는 했지만.
제대로 된 활약을 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달라질 것이다.
“네, 열심히 노력 할게요, 언니.”
권소희가 눈을 반짝이며 대답했다.
그런 권소희의 모습에 송하나가 피식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도대체 왜 이러시는 겁니까? 저는 평범한 플레이어일 뿐입니다.”
그때 송하나에게 제압당해 있던 도플갱어가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럼 왜 소희를 공격했지?”
송하나의 물음에.
“모르는 사람이 저를 뒤따라오기에 왜 그러는지 이유를 알려고 했을 뿐입니다. 차라리 경찰서로 데리고 가 주십시오.”
도플갱어가 평범한 플레이어 코스프레를 한 채 대답했다.
“지구에 온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을 텐데, 도플갱어라 그런지 확실히 적응이 빠르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도플갱어가 ‘난 정말 아무것도 몰라요.’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냥 포기해. 포기하면 편해.”
“자꾸 이러면 경찰에 신고하겠습니다.”
“여기서 빠져나갈 수 있으면 얼마든지 해 봐.”
송하나의 느긋한 태도에 도플갱어의 표정이 점점 초조해졌다.
그렇지만 압도적인 힘의 차이가 있었기에 도플갱어가 아무리 반항을 해도 도저히 송하나를 뿌리치고 도주할 수 없었다.
“네가 반항할수록, 너만 힘들어지는 거다.”
그 말과 함께.
파직!
송하나의 손에서 푸른 뇌전이 번뜩였다.
* * *
“크아아아악!”
도플갱어가 처절한 비명을 토해 냈다.
그러나 끝까지 평범한 인간 코스프레를 했다.
‘빌어먹을 인간. 이 수모는 곧 몇 곱절로 갚아 주마.’
도플갱어는 상위 개체가 하위 개체에게 지시를 내릴 수 있는 텔레파시 능력을 가지고 있다.
도플갱어는 이미 그분과 붙어 있는 자신의 부하에게 자신의 상황을 알렸다.
‘조금만 버티면 된다.’
그분께서 오시면, 이런 인간들 따위는 손쉽게 쓸어버릴 수 있으리라.
‘어떻게 우리의 정체를 파악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된 이상 이 인간들을 고문하거나 죽여서 기억을 흡수하더라도.
무조건 자신들의 정체를 알아낸 방법을 파악해야 했다.
도플갱어들의 가장 큰 무기는 다름 아닌 변신 능력.
그 변신 능력이 무력화되면 남는 건 전투력밖에 없는데.
안타깝게도 도플갱어들의 전투 능력은 상급이나 최상급 몬스터만도 못한 경우가 허다했다.
‘무조건 알아내야 해.’
타인으로 감쪽같이 변했고 마기도 일절 내보이지 않은 상황에서 정체를 들켰다.
자신들의 정체를 알아낸 방법을 찾아내 제거하지 못하면?
‘끝장이다.’
자신이 실수로 정체를 발각당한 거라면 혼자만 죽으면 그만이다.
하나 그게 아니었다.
아무 짓도 안 했는데 상대가 변신한 자신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이건 이곳 지구에 잠입해 있는 모든 동족들의 안위가 걸려 있는 중차대한 문제였다.
도플갱어는 입을 꾹 다물고 그분과 동료들이 자신을 구하러 와 주기를 기다렸다.
-우리의 정체를 파악했다는 게 너를 제압하고 있는 인간들이냐?
그분의 음성이 도플갱어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
‘오셨다.’
도플갱어의 얼굴이 환해졌다.
도플갱어가 고개를 끄덕였고.
휘익!
그와 동시에 그분이 동료들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전부 다 왔구나.’
그분과 자신이 지시를 내린 부하만이 아니라.
자신이 알고 있는 동료들이 총집합해 있었다.
“지금 저희 길드원에게 뭐 하는 짓이죠?”
그분이 평범한 플레이어인 척 말을 걸었지만.
“저 녀석도 도플갱어야?”
인간 여자들은 그런 것에 일절 관심이 없어 보였다.
“네, 전원 도플갱어예요.”
오히려 너무도 손쉽게 자신들의 정체를 파악했다.
그분과 동료들의 표정이 돌처럼 굳어졌다.
“제압부터 해야겠군.”
그분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동료들이 벌 떼처럼 달려들었다.
그 순간.
콰콰콰콰콰!
하늘에서 핏빛 오러가 비처럼 쏟아졌고.
퍼퍼퍼퍼퍽!
그분과 동료들이 순식간에 피투성이로 변해 바닥을 나뒹굴었다.
* * *
“이게 전부인가?”
강현수가 심드렁한 얼굴로 제압된 도플갱어들을 바라봤다.
마계 귀족급이 있었으면 했는데.
‘고작해야 최상급이 한계인가?’
도플갱어들은 대부분이 중하급이었고 상급이 고작해야 셋.
최상급은 단 한 마리밖에 없었다.
‘기껏 기다려 줬는데, 성과가 없네.’
입맛이 썼다.
강현수는 송하나가 도플갱어를 제압한 직후 도착했다.
그러나 섣불리 다가가지는 않았다.
생포한 도플갱어가 고작해야 중급 마족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저 정도면 알고 있는 것도 별로 없었고, 점조직으로 운영되는 도플갱어의 특성상 이대로 꼬리를 끊어 버릴 수 있었다.
그런 강현수의 머릿속에 떠오른 게 바로 도플갱어가 가진 텔레파시 능력이었다.
이에 강현수는 송하나에게 지시를 내려 도플갱어를 도발하게 했다.
도플갱어들이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판 함정이었다.
‘함정은 제대로 작동했는데.’
고작해야 최상급 도플갱어가 한계였다.
‘어쩔 수 없지.’
일단 이 정도로 만족하고, 더 먹음직스러운 미끼를 뿌려야 했다.
지구에 마계 귀족급 도플갱어가 있다면 절대 뿌리치기 힘든 미끼를 말이다.
‘뭐, 이것도 지구에 마계 귀족급 도플갱어가 없으면 말짱 꽝이기는 하지만.’
현재로서는 이 정도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아, 물론 미끼가 될 당사자의 동의를 받아야 했지만.
-좋아요! 할게요! 꼭 시켜 주세요!
동의는 너무 손쉽게 얻을 수 있었다.
“네가 우두머리냐?”
강현수가 최상급 도플갱어를 바라보며 물었다.
“우리는 플레이어 협회에 정식으로 등록되어 있는 대성길드의 길드원들입니다. 도대체 왜 우리를 핍박하는 겁니까?”
최상급 도플갱어는 끝까지 시치미를 뗐다.
“그사이 중소 길드 하나를 통째로 먹어 치운 모양이네. 아마 너희 같은 놈들이 꽤 많이 있겠지. 아시아 차원 게이트 사태 때 몰래 침입한 거냐?”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군요. 자꾸 이러시면 경찰과 플레이어 협회에 정식으로 고소장을 제출할 수밖에 없습니다.”
“시치미 떼 봐야 너희 정체는 이미 발각됐어. 우리한테는 마족의 정체를 꿰뚫어 볼 수 있는 스킬을 가진 아주아주 특별한 플레이어가 있거든.”
강현수가 그 말과 함께 권소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히히히.”
강현수가 자신을 칭찬하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권소희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비록 전투력으로 인정받지는 못했지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스킬 진실의 눈이 제대로 인정을 받은 것이다.
“마족이라니? 지금 무슨 말을 하시는 겁니까? 증거 있습니까?”
“그래 봤자 소용없다니까.”
“비상 상황이 아님에도 던전이 아닌 곳에서 스킬을 사용하는 건 엄연히 불법입니다. 특히 타인을 공격하는 것 엄청난 중죄입니다. 시비가 있었던 것 사실이지만, 그건 경찰서나 플레이어 협회에서 밝혀야 할 일 아닙니까?”
“경찰이나 플레이어 협회? 그쪽으로 간다고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아?”
강현수가 피식 웃더니 한 곳으로 손짓을 했다.
그 순간 미리 대기하고 있던 대한민국 플레이어 협회장 백정혁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
백정혁이 모습을 드러내자 최상급 도플갱어의 표정이 돌덩이처럼 굳어졌다.
“내가 말했지, 발뺌해도 소용없다고. 일단 즐거운 정보 수집 시간부터 가져 보자고.”
강현수의 말에 도플갱어들의 표정이 하얗게 질려 버렸다.
* * *
‘질긴 놈들.’
강현수는 도플갱어들이 입을 꾹 다물고 있다는 보고에 얼굴을 찌푸렸다.
그러나.
‘애초에 크게 기대를 한 건 아니었으니까.’
마족이라고는 하지만.
‘군대로 치면 일반 마족은 사실상 일반 병졸이나 마찬가지지.’
그렇기에 알고 있는 정보도 그리 많지 않다.
지휘권을 가진 장교라고 할 수 있는 마계 귀족급은 되어야 제대로 된 정보 수집이 가능했다.
‘권소희에 대한 정보를 풀었으니 분명 반응을 보일 거야.’
진실의 눈을 가진 권소희를 일종의 미끼로 사용한 것이다.
그 때문에 마계 귀족급 소환수를 권소희 곁에 24시간 붙여 놓았고.
강현수도 수시로 권소희를 주시해야 했지만.
마계 귀족을 잡기 위해 이 정도 수고는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었다.
그러나 최악의 경우.
‘정보가 전달되지 못했을 수도 있단 말이지.’
이제 그걸 확인해 볼 시간이었다.
‘그동안 시간은 충분히 줬어.’
사실 정확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죽인 후 소환수로 부활시키는 게 가장 확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입을 열지도 않을 놈들을 가둬 둔 건.
텔레파시를 통해 권소희에 대한 정보를 사방으로 흩뿌릴 시간을 준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