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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의 결과 (3)

쿠웅!

강현수가 탄 와이번이 서서히 지상에 착륙했다.

아가트가 선공을 날리기는 했지만, 그 정도는 강현수에게 있어서 애들 장난이나 마찬가지였다.

‘뭐, 몬스터가 공격해 온다고 생각했을 테니, 당연한 반응이기도 하고.’

또 한창 몬스터를 토벌하는 와중 아니겠는가?

고작 이런 작은 오해도 이해하지 못할 강현수가 아니었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오해를 했어요.”

아가트가 예의 바르게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를 했다.

반면 바스티앙의 얼굴은.

입안에 벌레라도 씹고 있는 것처럼 썩어 있었다.

“괜찮습니다. 충분히 오해할 만한 상황이었으니까요.”

강현수가 아가트에게 웃으며 대답한 후, 바스티앙에게 고개를 돌렸다.

“오랜만이네?”

강현수의 말에.

“예, 오랜만에 뵙습니다.”

바스티앙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런데 억지로 입꼬리를 올려서 그런지 미소가 상당히 어색하게 느껴졌다.

“귀환을 선택했을 줄은 몰랐어. 당연히 아틀란티스에 남을 줄 알았는데 말이야.”

“그러게 말입니다. 저도 지구가 그리웠던 모양입니다.”

“그래?”

강현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바스티앙처럼 아틀란티스에 잘 적응한 놈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상당히 의외였다.

“프랑스를 돕기 위해 오신 겁니까?”

“맞아.”

“그럼 계속 토벌을 진행하시는 게 어떠실지?”

바스티앙의 말에 강현수가 피식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나도 그럴 예정이야. 한 가지 절차만 밟고 나서 말이야.”

강현수가 말한 절차는.

당연히 빙혈제 바스티앙을 자신의 휘하에 넣는 것이었다.

“혹시 거절할 생각은 아니지?”

강현수의 물음에.

“아닙니다. 받아 주신다면 저로서는 영광일 따름입니다.”

바스티앙은 순순히 수긍했다.

거절한다고 피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강현수의 휘하에 들게 되면 스텟이 급격하게 상승하니, 단점만 있는 건 아니었다.

‘웬만하면 피하고 싶었지만.’

어차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 만큼.

‘지휘관 임명만 받고 빨리 보내 버리자.’

바스티앙은 잔뜩 긴장한 상태였다.

강현수가 자신뿐만 아니라 아가트에게까지 관심을 보일까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절차가 뭐예요? 좋은 건가요?”

강현수가 아니라 아가트가 먼저 관심을 표명하자 바스티앙은 적잖이 당황했다.

‘이 말괄량이 녀석이.’

쓸데없는 일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

“설명해 드릴까요?”

강현수의 물음에 아가트가 고개를 끄덕이려는 순간.

“네가 신경 쓸 일이 아니야. 넌 가서 몬스터나 잡고 있어.”

바스티앙이 아가트를 막았다.

“호오.”

강현수가 엄청나게 의외라는 듯 바스티앙을 주시했다.

타인의 일에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는 인물이 바스티앙이다.

아틀란티스에서 수십 년을 함께한 전우 중 하나가 전사했을 때도 슬퍼하는 게 아니라.

‘나약해 빠진 놈이라고 한심하게 바라보며 조롱했을 정도지.’

그런 바스티앙이 도대체 무슨 이유로 아가트를 저렇게 신경 쓰는 걸까?

‘사랑에라도 빠진 건가?’

아틀란티스에서 바스티앙의 행적을 떠올려 보면, 누군가와 사랑에 빠진다는 게 상상도 가지 않았지만.

사람 일이라는 건 모르는 거 아니겠는가?

“이게! 너 혼자 좋은 거 독점하려는 거지! 나 안 가! 못 가!”

아가트가 그 말과 함께 꿈쩍도 하지 않자, 바스티앙으로서는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가라니까.”

바스티앙이 아가트를 밀어 냈지만.

전사 계열인 아가트가 버티는데 마법사 계열인 바스티앙이 힘으로 민다고 해서 밀려 날 리가 없었다.

“바스티앙과 꽤 친해 보이시는군요?”

“제가 이거랑 친하다요? 전혀 아닌데요.”

아니라고는 하는데, 엄청나게 친하고 허물없어 보였다.

아니, 솔직히 말해.

‘사이코패스 소리를 듣던 냉혈제 바스티앙이 자신을 저렇게 막 대하는 사람을 아직까지 곁에 둔다는 게 놀라운데.’

아틀란티스였다면.

그렇게 하는 사람도 없었겠지만, 있었다고 해도 금방 차디찬 얼음 조각상으로 변해 생을 마감했으리라.

‘혹시 저런 취향인가?’

한국 드라마에 흔히 나오는 ‘나를 이렇게 막 대한 건 네가 처음이야.’ 같은 거 말이다.

“그냥 피붙이니까 어쩔 수 없이 제가 도와주는 것뿐이에요.”

그때 아가트의 입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 튀어나왔다.

‘피붙이?’

강현수가 입을 쩍 벌렸고.

바스티앙의 얼굴에는 망했다는 감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

“남매인 겁니까?”

“네, 제 친오빠예요.”

“오빠가 있다는 소리는 못 들었는데요?”

아가트는 프랑스의 여신이라고 불리는 인물.

탑급 연예인보다 인기가 많았고 웬만한 개인 정보는 다 까발려져 있었다.

“귀환자잖아요. 오랜만에 돌아왔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신원 복구를 안 하더라고요. 그래서 아직까지도 비공식 랭커예요.”

아가트는 그런 바스티앙의 행적이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하하하.”

강현수가 작은 웃음을 터트렸다.

‘지구가 그리웠던 게 아니라 가족이 그리웠던 거였군.’

바스티앙이 왜 다른 이들을 구하기 위해 움직였는지도 이해할 수 있었고.

또 왜 신원 복구를 하지 않았는지도 알 수 있었다.

‘가족들에게 자신의 과거 행적을 알리고 싶지 않은 거겠지.’

아틀란티스에서 한 사이코패스 짓이 한두 개가 아니니, 무조건 감추고 싶었으리라.

‘평범한 사람 코스프레를 하면서 살고 있었다니.’

강현수 입장에서는 나쁠 게 없었다.

굳이 강제로 지시를 내리지 않아도 알아서 사고 치지 않고 착하게 살겠다는데 나쁠 게 뭐가 있겠는가?

‘지휘관 임명.’

강현수가 바스티앙에게 지휘관 임명 스킬을 시전했고.

[플레이어 강현수가 지휘관 임명 스킬을 사용했습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예] [아니오]

바스티앙이 재빨리 예를 선택했다.

[연대장으로 임명되셨습니다.]

[모든 스텟이 20% 증가합니다.]

스텟이 증가하며 전신에 힘이 넘쳐흘렀다.

그러나 바스티앙에게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었다.

-비밀로 해 주십시오.

바스티앙이 휘하 지휘관이 되자마자 강현수에게 비밀리에 부탁을 했다.

-과거 행적을 가족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건가?

-그렇습니다.

-그렇게 하지.

강현수는 선선히 바스티앙의 부탁을 들어줬다.

굳이 떠벌릴 이유도 없고.

‘괜히 아틀란티스에서의 행적이 밝혀져서 삐뚤어지면 곤란하니까.’

지금처럼 비밀이 지켜지면?

가족들에게 알려질까 두려워서라도 사이코패스 살인마가 아닌 정상인 코스프레를 하며 살아갈 것 아니겠는가?

“휴우!”

강현수가 비밀을 지켜 주겠다고 확답하자, 바스티앙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뭐야? 너, 왜 갑자기 마력이 늘어났어? 도대체 어떻게 한 거야?”

아가트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바스티앙을 노려봤다.

“어, 그게.”

잠시 고민하던 바스티앙이 강현수에게 시선을 돌렸다.

“저분이 해 주신 거지? 뭔지 모르겠지만 저도 해 주세요.”

아가트의 요구에 강현수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호박이 넝쿨째로 굴러 들어오네.’

바스티앙은 아가트의 말에 잠시 머뭇거리다가 결국 입을 다물었다.

아틀란티스에서 바스티앙은 반강제로 강현수의 휘하 지휘관이 되었지만.

막상 강현수의 휘하 플레이어가 되어 나쁜 점은 딱히 없었다.

자유롭게 살인을 할 수 없다는 제약이 생기기는 했지만.

스텟도 늘어나고 위기 상황에서 언제든 도움도 받을 수 있다.

‘아가트는 나랑 다르니까.’

사실상 딱히 손해 볼 게 없었다.

강현수라는 존재에게 생사는 물론 운명 전체가 종속되기는 하지만.

‘어차피 모든 인류는 저자에게 종속되어 있는 거나 마찬가지야.’

시스템의 힘으로 종속되지 않았다고 해서 강현수가 내린 지시를 거스를 수 있는 이가 있을까?

‘불가능하지.’

막강한 권력을 지닌 정치인도.

막대한 부를 지닌 재력가도.

강력한 군사력을 지닌 군벌도.

강현수가 지시를 내리면 무조건 복종할 수밖에 없었다.

‘지구의 군주나 마찬가지인 인물이다.’

어차피 지배받을 수밖에 없다면?

차라리 휘하에 들어가는 게 나은 선택이었다.

강현수라는 이름의 군주는 휘하 지휘관들에게 무척 자비로운 존재였으니까.

‘아틀란티스에서 마왕군과의 전쟁을 제외하면 부르는 일이 거의 없었으니까.’

그나마 거의 없는 부름도 무언가를 빼앗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사하기 위해서였다.

강현수는 자신에게 필요 없는 아이템이나 스킬북을 휘하 지휘관들에게 수시로 뿌렸다.

자신에게는 쓸모가 없지만, 휘하 지휘관들에게는 아닌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강현수 입장에서는.

어차피 자신의 휘하 지휘관들이 강해지는 것이니, 사실상 자기 자신이 강해지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막을 수도 없고 딱히 손해도 없으니.

바스티앙은 굳이 아가트를 막지 않았다.

그 결과 아가트 역시 강현수의 휘하 지휘관이 되었다.

“와, 이거 진짜 좋네요!”

아가트는 늘어난 스텟을 보며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

“그게 끝이 아니다.”

강현수가 그 말과 함께 지휘관의 축복을 내려 주었고.

“우와아아!”

아가트의 입이 쩍 하고 벌어졌다.

“혹시 프랑스 출신 귀환자들과 연락하고 있나?”

강현수가 바스티앙과 아가트에게 물었다.

“따로 연락하는 이는 없습니다.”

바스티앙은 당연히 없었고.

“전 있어요!”

의외로 아가트는 있었다.

“귀환자가 아닌 랭커들도 다 알고 있어요.”

괜히 프랑스의 여신이라고 불리는 게 아니라는 듯 아가트는 상당히 발이 넓었다.

“귀환자들에게 나에 대해 알리도록.”

“이 버프를 나눠 주실 생각이신가요?”

아가트의 물음에 강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유럽의 귀환자 출신 랭커들을 모조리 휘하에 둘 계획이었는데.

바스티앙과 아가트를 만나면서 그 계획이 조금 더 빨라졌을 뿐이다.

“저, 혹시 귀환자가 아닌 랭커는 안 받아 주시는 건가요?”

아가트의 물음에 강현수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지는 않다.”

정말 그럴 생각이었다면, 굳이 아가트를 휘하 지휘관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리라.

강현수가 귀환자 출신 랭커만 꼬집어 말한 것은, 힘들여 설득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일반 랭커들은.

‘휘하에 들어온 귀환자 출신 랭커들이 알아서 포섭하게 하면 그만이니까.’

그렇기에 천천히 휘하에 넣을 계획이었다.

“그럼 제가 알아서 꼬셔 볼게요. 그래도 괜찮죠?”

“물론이다.”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움직여 준다면, 강현수 입장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 * *

프랑스의 차원 게이트 사태는 빠르게 종결되었다.

강현수가 직접 나섰고.

휘하의 공간 이동 스킬 보유자들을 사방으로 흩뿌려 소환수들을 최대한 활용한 덕분이었다.

그 후.

강현수는 아가트의 인맥 덕분에 손쉽게 프랑스 귀환자 출신 랭커들과 일반 랭커들을 휘하에 받아들일 수 있었다.

페널티를 듣고 거절하는 이들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대세에 큰 지장은 없었다.

귀환자 출신 랭커들은 100% 강현수의 휘하로 들어왔고.

일반 랭커들 역시 70% 이상이 강현수의 휘하로 들어왔으니까 말이다.

‘프랑스는 끝났군.’

차원 게이트 사태도 말끔하게 정리했고.

프랑스 국적의 랭커들도 휘하로 받아들였다.

강현수로서는 별다른 수고 없이 손쉽게 목적을 이룬 셈이었다.

문제는.

‘과연 여기서 끝이냐는 건데.’

차원 게이트가 프랑스를 끝으로 더 이상 열리지 않는다면.

최상의 결과다.

어차피 강현수는 원했던 목적을 모두 이뤘다.

‘EU 플레이어 협회와 EU판 긴급 개입 조치가 유명무실하다는 게 명확히 증명됐어.’

거기다 세계 플레이어 협회는 주가를 올리며 활약했고.

‘프랑스 국적의 랭커 85%도 휘하로 거뒀다.’

더군다나 자국의 안위를 지키겠답시고 지원군을 보내지 않았던 다른 EU 가입국들은?

자국에 차원 게이트 사태가 발생하지 않으면 오히려 상당히 난처한 상황에 놓이게 될 판이었다.

하지만.

-주군, 영국에서 지원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헝가리에서 지원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안타깝게도 프랑스 차원 게이트 사태는.

끝이 아닌, 유럽 차원 게이트 사태의 시발점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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