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결과 (2)
강현수는 소피아를 포함한 공간 이동 스킬 보유자들과 함께 프랑스에 도착했다.
하나 한곳으로 모이면 효율이 떨어지는 법.
공간 이동 스킬 보유자들은 당연히 프랑스 이곳저곳으로 분산되어 투입되었다.
그 결과 동시다발적으로 몬스터를 토벌할 수 있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환수들이 투입되지 못한 지역이 꽤 많았다.
그런 지역의 경우는.
‘내가 직접 커버해야지.’
강현수가 와이번 소환수의 등에 올라탄 채 다른 지역을 향해 이동했다.
‘그나저나 도대체 몬스터가 얼마나 남아돌기에 이런 미친 짓을 연달아서 벌이는 거지?’
와이번을 타고 이동하며 빠른 속도로 몬스터를 쓸어버리던 강현수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마왕 그레모리가 말한 세 가지 가정 중 첫 번째 가정은.
아시아에 이어 유럽에서도 대규모 침공이 벌어진 이상 폐기해야 했고.
남은 건 두 번째와 세 번째 가정인데.
강현수는 세 번째 가정에 더 큰 무게를 두고 있었다.
그런 만큼 연속된 대규모 침공에 마음이 심란해질 수밖에 없었다.
강현수와 세계 플레이어 협회의 활약으로 아시아 차원 게이트 사태의 피해를 최소화했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피해를 입은 건 사실이었고.
유럽에서 아시아에서와 같은 차원 게이트 사태가 벌어져도 최소한의 피해로 막아 내기는 하겠지만.
‘사망자가 생기는 건 어쩔 수 없지.’
또한 시설물 피해 역시 어마어마했다.
뭐, 강현수를 비롯한 지구 플레이어들의 성장 속도가 빨라지기는 하지만.
‘기왕이면 조금 느리더라도 아무런 피해 없이 성장하는 게 낫지.’
이런 대규모 침공이 연달아 일어나면.
앞으로 성장 가능성과 역량에 상관없이 급박한 환경에 짓눌려 사망하는 플레이어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
또 일반인들 역시 언제든 플레이어로 각성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씨앗이자, 각자 맡은 역할과 책임이 있는 사회의 구성원이다.
아니, 그런 걸 다 떠나 소중한 인명이 아무런 잘못도 없이.
그저 차원 게이트가 근처에 열렸다는 어이없는 이유로 목숨을 잃는 상황 자체가 너무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다.
그런 허무한 죽음은.
‘최대한 막아 내야지.’
100% 완벽할 수는 없지만, 인류는 차원 게이트를 사전에 탐지할 수 있는 장비를 개발해 운용하고 있었다.
또 중하급 몬스터의 공격을 막아 낼 수 있는 방공호 제작을 포함해.
일반인이 중하급 몬스터를 제거할 수 있는 현대 무기도 존재했다.
국가 간의 힘겨루기나 괜한 자존심 싸움이 없는 상태로.
‘인류의 힘을 하나로 모으기만 하면.’
인명 피해를 최소화하며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 같은 공격이 쉼 없이 쏟아지면 쉽게 장담하기 힘들어.’
강현수는 강했지만, 지구의 플레이어들은?
아직까지는 너무 나약했다.
‘나 혼자서 지구를 지킬 수는 없어.’
다수의 소환수를 거느리고 있고 강력한 힘을 지녔다지만.
혼자서는 한계가 있었다.
강현수가 아무리 강해져도, 수백만이 아니라 수천만의 소환수를 거느리게 되어도.
혼자 힘을 싸운다면.
‘설사 승리하더라도 상상을 초월하는 피해를 받게 될 거야.’
어쩌면 지구의 인류가 괴멸에 가까운 엄청난 피해를 받을 수도 있다.
그건 강현수가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지구가 본연의 온전한 모습을 지킨 상태에서 전쟁에서 승리해야 했고.
모든 것을 건 총력전 끝에 거둔, 상처뿐인 승리가 아니라 압도적인 전력을 동원해 최소한의 피해로 승리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강현수와 지구 플레이어들이 함께 성장할 필요가 있었고.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해.’
현재 마왕군의 지구 침공 속도는 너무 빨랐고, 투자된 전력 역시 상식을 초월하는 수준으로 과했다.
‘두 번째 가정이 맞아떨어진다면, 오히려 좋은 기회가 되겠지만.’
그렇게 상황을 낙관만 할 수는 없다.
‘무조건 세 번째로 가정하고 움직여야 해.’
그래야 최악의 상황이 벌어져도 대비가 가능했다.
‘아무리 휘하에 몬스터들이 많다고 해도, 이런 식의 소모전은 지구에 유리하다.’
현재의 교환비는 실로 압도적이다.
플레이어와 일반인의 전사자가 1이라고 가정하면.
죽은 몬스터들의 숫자는 무려 1만에 달한다.
이건 어디까지나 강현수가 끼어들지 않을 때의 수치였고, 강현수가 끼어들면.
몬스터들의 교환비는 10만을 헤아릴 정도로 늘어난다.
다만 걱정되는 점은.
‘1 대 10만의 교환비로 소모전을 하더라도 아무런 상관이 없을 정도로 강력한 마왕일 수도 있다는 거지.’
결정적으로 주력이라고 할 수 있는 마족의 투입 없이 몬스터만 보내는 게 상당히 걱정스러웠다.
‘차라리 마족들을 대량으로 투입시켜 주면 더 편할 텐데.’
몬스터는 몰라도 마족은 절대 소모품이 될 수 없었다.
아무리 하급이라고 해도 피의 살육을 통해 마기를 급격히 키워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존재이기 때문이다.
‘아니면 마계 귀족이라도 투입시키든지.’
마계 귀족의 등장은 지구 전체에 큰 재앙이 될 수도 있지만.
‘정보 전달만 빠르게 되면, 큰 피해 없이 토벌할 수 있어.’
위치만 파악되면 순식간에 1초 컷을 할 자신이 있었다.
‘이 정도로 대량의 몬스터를 투입할 정도면…….’
마계 귀족도 충분히 투입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리치만 아니면 무조건 좋은 일인데.’
혼백이 라이프 포스 베슬에 존재하는 리치는 아무리 죽여도 소환수로 부활시킬 수 없다.
그러나 다른 마계 귀족은.
제거한 후 얼마든지 소환수로 부활시킬 수 있고, 그럼 지구를 침공한 마왕에 대한 정보를 손쉽게 뽑아낼 수 있었다.
강현수가 이런저런 고민을 하는 사이에도.
콰콰콰콰콰콰콰!
꽈아아아앙!
몬스터의 숫자는 엄청난 속도로 줄어들고 있었다.
강현수가 와이번을 타고 하늘을 가로지르며 핏빛 오러의 그물을 펼쳐 지상의 몬스터들을 일거에 쓸어버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은 프랑스 한정이지만.
얼마든지 유럽 전체로 차원 게이트 사태가 확대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빨리 몬스터들을 쓸어버려야 했다.
‘응?’
한창 몬스터를 토벌하던 강현수의 눈에 한 쌍의 남녀가 눈에 들어왔다.
‘제법인데?’
그 두 사람은 지구 플레이어 수준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만큼의 강함을 보여 주었다.
남성 플레이어가 냉기 스킬을 난사하며 몬스터들의 이동을 저지하고.
장발의 여성 플레이어가 엄청난 힘과 속도로 발이 묶인 몬스터들을 학살했다.
‘아, 그 사람이군.’
여성 플레이어와 안면은 없었지만, 누군지는 알고 있었다.
귀환자가 아님에도 프랑스 공식 랭킹 1위의 자리를 굳건하게 지키고 있는 존재.
프랑스의 여신이라고 불리는 아가트였다.
‘생각보다 강하네.’
과연 한 나라의 공식 랭킹 1위라고 할 만했다.
반면 남성 플레이어에 대한 정보는 사전에 입수된 게 없었다.
그럼 당연히 몰라야겠지만.
‘저 녀석은?’
강현수는 남성 플레이어의 얼굴이 무척이나 눈에 익었다.
그 이유는 바로.
‘빙혈제?’
냉기 스킬을 주력으로 사용하는 원거리 딜러 계열 플레이어.
제의 칭호를 받은 네임드 플레이어로, 귀환 전 강현수의 휘하에 있던 녀석이었다.
‘저 미친놈이 귀환을 선택했을 줄이야.’
칭호 한가운데 혈이 괜히 들어간 게 아니다.
광혈제 이르고와는 좀 결이 다르기는 하지만, 빙혈제 바스티앙 역시 만만찮게 제정신이 아닌 놈으로.
‘사이코패스 짓을 참 많이도 했지.’
그 일화가 일일이 세기도 힘들 정도로 많았다.
‘당연히 아틀란티스에 남았을 줄 알았는데.’
강현수와 빙혈제 바스티앙의 인연은 그리 깊지 않았고.
그렇기에 애초에 휘하 지휘관 목록에서 삭제되었는지 남아 있는지 신경조차 쓰지 않고 있었다.
‘잘됐네.’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에 사이코패스끼가 다분한 녀석이지만.
‘실력만큼은 확실하지.’
못 봤으면 몰라도 직접 목격한 만큼.
‘다시 휘하에 넣어야지.’
빙혈제 바스티앙의 경우, 스스로의 의사 여부와 상관없이 강제로라도 휘하에 넣어야 했다.
워낙 미친 짓을 많이 벌였기에 족쇄를 채우고 제어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방이 지저분하다는 이유로 사람을 죽인 적도 있는 놈이니.’
그 외에도 별 시답잖은 이유로 수많은 살인을 저질렀다.
사실상 인류 공적이나 다름없는 행적을 보였지만.
‘아주 영악하게 행동했지.’
자신에게 해가 될 수 있는 이들은 건드리지 않았고.
힘없고 약한 이들만 건드리는 지능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렇기에 강현수는 빙혈제 바스티앙이 굴복하지 않으면 죽일 생각이었는데.
‘의외로 순순히 복종했지.’
그래서 자신의 허락 없이 살인을 저지르지 말라는 지시를 내리고 휘하에 들였고.
상당히 요긴하게 써먹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야.’
복종하면 거둘 것이고, 저항하면 죽일 것이다.
단지 그것과 별개로.
‘저놈이 일반인들을 구하다니?’
자신을 포장하거나.
이득이 되기에.
또 필요하니까.
한 행동일 게 뻔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상당히 의외였다.
빙혈제 바스티앙은.
‘자신보다 약한 사람을 벌레 취급하는 것으로도 유명했으니까.’
개과천선했다면 가능한 일이겠지만.
‘저놈은 절대 그럴 놈이 아니지.’
그러나 진짜 변했든, 적당한 모양의 가면을 쓰고 있는 것이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강한 힘을 지녔지만.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 같은 존재를 사고 치기 전에 조기에 발견했다는 게 중요했다.
“내려가자.”
-캬아아악!
강현수의 지시에 와이번이 지상으로 하강했다.
“몬스터?”
대도를 든 장발의 여성 플레이어 아가트가 허공을 바라보며 눈을 번쩍였다.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면 당연히 와이번만 보이고 등에 탄 강현수는 보이지가 않았다.
“알아서 죽겠다고 달려들어 주네.”
콰콰콰콰콰!
아가트의 대도에서 보랏빛 오러가 줄기줄기 뿜어져 나왔다.
오러를 날려 일도양단을 해 버릴 작정이었다.
와이번을 공격할 준비를 끝마친 아가트와 달리, 바스티앙은 와이번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겉으로 보이는 외양은 일반적인 와이번과 동일했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기묘한 인공미가 느껴졌다.
일반인들이라면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 수도 있지만.
눈썰미가 남달리 뛰어난 바스티앙의 눈에는 거슬릴 정도로 그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났다.
‘설마?’
바스티앙의 머릿속에 그런 인공미를 가진 몬스터에 대한 정보가 떠올랐다.
“하압!”
아가트가 힘찬 기합과 함께 와이번을 향해 보랏빛 오러가 담긴 대검을 휘두르려는 순간.
“잠깐!”
바스티앙이 다급하게 말려 봤지만.
보랏빛 오러는 이미 대검을 떠나 인공미를 가진 와이번을 향해 쇄도하고 있었다.
“왜 그래?”
아가트가 의아한 눈빛으로 바스티앙에게 물었다.
그 순간.
사라라락!
아가트가 날린 보릿빛 오러가 와이번의 몸에 닿기 전 눈 녹듯 사라져 버렸다.
“망할. 진짜였네.”
바스티앙이 얼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어떻게 와이번이 내 오러를 증발시켰지?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놀란 표정의 아가트가 다시금 오러를 끌어 올려 와이번을 공격할 준비를 했다.
비행형 몬스터는 언제 하늘로 도망칠지 모르기에 조기에 속전속결로 처리해야 했다.
“그만둬.”
그때 바스티앙이 아가트의 손을 막으며 말했다.
“저 와이번을 공격하지 말라고?”
“어.”
“왜?”
“적이 아니니까.”
바스티앙의 말에 아가트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순순히 오러를 거뒀다.
그러는 사이 거리가 점점 가까워졌고.
“와이번 등에 사람이 타고 있어!”
아가트가 놀란 표정으로 외쳤다.
“아, 저 사람이 와이번 탄 영웅이었구나.”
아가트는 동경하던 우상이라도 본 것처럼 눈을 반짝였다.
반면 바스티앙의 경우는 지옥에서 올라온 대악마라도 목격한 사람처럼 절망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