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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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아아아앙!

세 개의 뿔과 붉은 비늘을 가진 상위 용종 몬스터 드레이크가 성난 포효와 함께.

콰콰콰콰콰콰!

화염으로 이루어진 브레스를 뿜어냈다.

꽈아아아앙!

커다란 폭음과 함께 수십 채의 건물이 순식간에 산산조각 났다.

화르르륵!

박살 난 건물이 활활 타올랐고.

성난 불길이 주변으로 옮겨붙으며.

“사람 살려!”

“몬스터다!”

“불이야!”

대혼란을 만들어 냈다.

차원 게이트에서 쏟아져 나온 몬스터들은 무차별적으로 사람들을 학살했고, 도시를 파괴했다.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하는 플레이어들과 프랑스군이 다급하게 달려와 몬스터들을 상대하려고 했지만.

열린 차원 게이트의 숫자가 너무 많았고.

쉼 없이 쏟아져 나오는 몬스터에 비해 플레이어와 군대의 숫자가 너무 적었다.

콰직!

레드 드레이크가 에펠탑을 발톱으로 움켜쥐었고.

끼이이익!

에펠탑을 이루고 있는 강철 구조물들이 비명을 토해 내며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그리고 잠시 후.

꽈아아아앙!

커다란 폭음과 함께 파리의 상징 에펠탑이 처참하게 구겨진 모습으로 바닥을 나뒹굴었다.

3백 미터에 달하는 에펠탑이 무너진 여파는 실로 어마어마했다.

그러나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캬아아아앙!

에펠탑을 박살 낸 레드 드레이크가 다른 건물들을 향해 꼬리를 휘둘렀고.

꽈아아아앙!

레드 드레이크의 꼬리에 적중당한 건물들이 줄줄이 무너져 내렸다.

그때.

콰지지지직!

차가운 냉기를 뿜어내는 얼음창 수백 개가 레드 드레이크를 향해 날아갔다.

퍼버버벅!

-캬우우우!

얼음창에 적중당한 레드 드레이크가 고통스러운 포효를 토해 냈다.

그러나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얼음창이 품고 있던 냉기로 인해 움직임이 둔해진 레드 드레이크를 향해 긴 장발을 휘날리며 한 여성 플레이어가 달려들었고.

콰콰콰콰콰콰!

보랏빛 오러를 잔뜩 머금은 여성 플레이어의 대도가.

서걱!

너무도 말끔하게 레드 드레이크의 목을 베어 버렸다.

“에펠탑이 무너지다니.”

레드 드레이크의 목을 베어 낸 여성 플레이어가 얼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지금 에펠탑을 신경 쓸 때가 아니야. 서두르지 않으면 피해가 더 커진다고.”

전신에서 차가운 냉기를 뿜어내는 남성 플레이어의 말에.

“하긴.”

여성 플레이어가 다음 목표를 향해 몸을 날렸다.

꽈앙! 꽈앙! 꽈앙!

대도를 든 여성 플레이어와 냉기 계열 스킬을 사용하는 남성 플레이어 듀오가 파리에 나타난 고레벨 몬스터들을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정리해 나갔다.

여성 플레이어 아가트.

프랑스 공식 랭킹 1위의 랭커였고.

남성 플레이어 바스티앙.

프랑스 비공식 랭킹 1위의 랭커였다.

공식 랭킹 1위와 비공식 랭킹 1위의 활약에 프랑스 파리를 파괴하던 몬스터들은 빠른 속도로 줄어들었다.

또 아가트와 바스티앙 말고도 프랑스 소속 랭커들이 대거 투입되어 수도 파리를 지키기 위해 싸웠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오를레앙에 대규모 차원 게이트가 열렸습니다!”

“리옹에서도 대규모 차원 게이트가 열렸습니다!”

“리모주에도 대규모 차원 게이트가 열렸습니다!”

“낭트에서도 대규모 차원 게이트가 열렸습니다!”

수도인 파리는 시작에 불과했고.

프랑스 전역에서 연쇄적으로 대규모 차원 게이트가 열리고 있다는 점이었다.

* * *

“피해가 꽤 크기는 하지만 파리는 가까스로 지켜 냈습니다.”

차원게이트부 장관의 보고에도 마크룽 대통령의 표정은 그리 밝지 못했다.

“EU 플레이어 협회에 지원 요청은 했겠죠?”

“네, 물론입니다.”

“그런데 왜 아직까지 오지 않는 겁니까?”

마크룽 대통령이 분노한 표정으로 물었다.

EU 플레이어 협회.

EU판 긴급 개입 조치.

이게 정상적으로 작동했다면, 유럽 전역에서 프랑스를 돕기 위해 플레이어들이 몰려와야 했다.

한데 수도 파리가 엄청난 피해를 입는 동안 그 어떤 나라에서도 지원군을 보내지 않았다.

“그게…….”

차원게이트부 장관이 외교부 장관을 향해 슬쩍 시선을 돌렸다.

이건 외교부 소관이라는 뜻이었다.

외교부 장관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가입국들 모두 신속하게 플레이어를 파견해 주겠다고 답변하기는 했습니다만, 아마 실제로 플레이어를 보내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외교부 장관의 대답을 들은 마크룽 대통령의 얼굴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자국에서 난리가 날까 불안해서 플레이어를 타국으로 못 보내겠다는 거군.”

아시아에서 벌어진 대규모 차원 게이트 사태를 봤을 때.

프랑스의 차원 게이트 사태는 작은 시발점에 불과했다.

아시아의 대한민국과 신한민국에서 시작된 차원 게이트 사태가 중국, 러시아, 일본, 대만, 몽골, 필리핀 등등의 주변국으로 이어졌으니.

아마 유럽에서 벌어진 차원 게이트 사태 역시.

프랑스를 시작으로 영국,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벨기에, 네덜란드 등등 주변으로 번질 확률이 다분히 높았다.

“이 빌어먹을 새끼들이!”

마크룽 대통령의 입에서 절로 욕설이 튀어나왔다.

자기 집에 불이 날지도 모르니까, 남의 집 불을 꺼 주기 위해 움직이기 싫다는 것 아닌가?

완전히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다.

그러나 아시아 차원 게이트 사태의 사례처럼.

가장 먼저 사건이 일어난 나라에 병력을 몰아서 파견해 차원 게이트 사태를 막고.

그 후 사고가 터진 다른 국가로 병력을 몰아주는 식으로 차원 게이트 사태를 막아 내야 더 큰 피해를 막을 수 있다.

지금처럼 자국의 안전을 지키겠다는 마음으로 병력을 움직이지 않으면?

결국 EU에 가입한 모든 나라들이 각자도생을 꾀할 수밖에 없다.

‘그럼 EU 플레이어 협회가 무슨 소용이야.’

EU판 긴급 개입 조치 역시 없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더군다나.

‘확률이 낮기는 하지만, 우리 프랑스만의 일로 끝날 수도 있는데.’

그런 일이 벌어지면?

결국 프랑스만 큰 피해를 보고, 이탈리아까지 동원해 만들어 낸 EU 플레이어 협회와 EU판 긴급 개입 조치가 얼마나 유명무실한 것인지 전 세계에 광고하는 꼴이 되어 버린다.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든 무조건 우리 프랑스로 지원군을 보내는 게 모두가 살길이거늘.’

그 사실을 모르는 EU 가입국 수장들이 너무도 어리석게 느껴졌다.

하나 만약 독일이나 이탈리아에서 차원 게이트 사태가 발생했다면?

과연 마크룽 대통령은 아무런 망설임 없이 타국에 정예 병력을 파견할 수 있었을까?

아마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정예 병력 파견 후 프랑스에서 차원 게이트 사태가 발생한다면?

마크룽 대통령은 엄청난 욕을 먹을 것이다.

만약 시간을 맞추지 못해 프랑스가 상상을 초월한 어마어마한 피해를 입는다면?

무조건 실각이다.

EU 플레이어 협회도 좋고, EU판 긴급 개입 조치도 좋다.

하나 결국 모두 위정자들의 이득을 위해 만들어진 것들이다.

그러니 당연히 이득보다 더 큰 손해가 발생한다면?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아시아 차원 게이트 사태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던 건.

강현수라는 존재가 세계 플레이어 협회 가입국들을 꽉 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당연히 정치적인 이득 따위를 배제하고, 오직 아시아 전체의 안위만을 위해 움직일 수 있었다.

그러나 EU 가입국들의 경우는.

각자의 이득을 먼저 생각하다 보니, 여러 나라가 손익에 상관없이 한 몸처럼 일치단결해 차원 게이트 사태를 해결하는 게 불가능했다.

“저, 그리고 세계 플레이어 협회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외교부 장관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뭐라고 합니까?”

마크룽 대통령이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지원을 요청한다면 곧바로 병력을 파견하겠다고 합니다.”

“긴급 개입 조치에 가입하지 않더라도 말입니까?”

마크룽 대통령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예, 긴급 개입 조치 여부와는 상관없이, 세계 플레이어 협회 가입국인 만큼 도움을 주기 위해 움직이겠다는 뜻을 보내왔습니다.”

“하아…….”

마크룽 대통령의 입에서 허탈함이 가득 담긴 한숨이 터져 나왔다.

프랑스는 세계 플레이어 협회를 견제하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세계 플레이어 협회가 그걸 모를 리가 없을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생기자 곧바로 도움을 주겠다고 한다.

‘어떻게 해야 하지?’

마크룽 대통령은 고민에 빠져들었다.

프랑스는 유럽의 강국이다.

플레이어 전력 역시 만만치 않다.

피해가 크기는 하겠지만, 이번 차원 게이트 사태는.

‘충분히 자력으로 막아 낼 수는 있다.’

하지만.

‘그러면 피해가 너무 커진다.’

또 세계 플레이어 협회가 도움을 주겠다고 했는데 거절했다는 사실이 퍼지기라도 하면?

다음 대선에서 무조건 대패할 수밖에 없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프랑스가 주도해서 만든 것이나 다름없는 EU 플레이어 협회 가입국들이 먼저 배신을 했다.

이런 상황에서 고집을 부려 봤자, 프랑스에도 손해였고 마크룽 대통령에게도 손해였다.

결정적으로.

‘정말 유럽 전역에서 아시아 차원 게이트 사태가 재현된다면?’

무조건 세계 플레이어 협회에 도움을 받아야 했다.

만약 조금이라도 늦는다면, 지원을 받고 싶어도 받을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질 게 불 보듯 뻔했으니까 말이다.

“세계 플레이어 협회에 지원을 요청하시오.”

마크룽 대통령의 지시에 외교부 장관의 얼굴이 환해졌다.

혹시 자존심 때문에 고집을 부려 거절하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기 때문이다.

“당장 연락을 취하겠습니다.”

외교부 장관이 그 말과 함께 황급히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얼마나 도움이 될지.’

국민들이 입을 피해를 줄이기 위해.

자신의 정치적인 입지를 위해.

유럽에서 아시아 차원 게이트 사태가 재현될 것을 대비하기 위해.

세계 플레이어 협회에 지원 요청을 하기는 했지만.

마크룽 대통령은 세계 플레이어 협회가 큰 도움이 되기는 힘들다고 생각했다.

물리적인 거리가 너무 멀었기 때문이다.

‘공간 이동 스킬 보유자들이 있기야 하겠지만.’

그들이 플레이어들을 옮겨 봐야.

‘적으면 몇십 명, 많아 봐야 몇백 명이 고작이겠지.’

랭커 플레이어들로 추려서 보내 준다면 적잖은 도움이 되기는 하겠지만.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숫자가 너무 적어.’

하나 없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고.

시간이 흐르면 수송기를 통해 대규모 병력이 지원될 테니.

‘그걸 기대해야겠지.’

대규모 병력이 도착하면, 프랑스에서 발생한 차원 게이트 사태 정도는 순식간에 정리할 수 있으리라.

그럼 프랑스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또한 프랑스에서 시작된 차원 게이트 사태가 유럽 전체로 퍼진다면?

프랑스가 세계 플레이어 협회 소속 플레이어들이 유럽 전역으로 퍼져 나갈 수 있는 교두보가 되어 줄 것이다.

아메리카나 아시아에서 이동하는 것보다.

‘같은 유럽에서 이동하는 게 훨씬 빠르겠지.’

마크룽 대통령은 생각을 정리하며 앞으로 어떤 외교적 스탠스를 취해야 할지 고민했다.

그때.

“세계 플레이어 협회 지원군이 도착했다고 합니다.”

밖으로 나갔던 외교부 장관이 다급히 회의실로 들어와 말했다.

“생각보다 빠르군.”

아마 세계 플레이어 협회는 프랑스에서 차원 게이트 사태가 발발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지원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해 놓았던 것 같았다.

가까운 거리에 있음에도 자국의 안위를 위해 단 한 명의 플레이어도 파견하지 않은 다른 EU 가입국들과는 천지 차이였다.

‘솔직히 말해 비교하는 것조차 미안해질 정도군.’

회심의 한 수였던 EU 플레이어 협회와 EU 긴급 개입 조치가 한낱 허상에 불과했음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오를레앙에 세계 플레이어 협회의 지원군이 도착했다고 합니다. 병력 규모는…….”

차원게이트부 장관의 말에 마크룽 대통령은 고작 몇십 명 정도 왔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총 2천 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2천 명?”

순간 마크룽 대통령의 머릿속이 멍해졌다.

“예, 확실합니다. 현재 교전 중이며 압도적인 전투력으로 몬스터들을 토벌해 나가고 있다고 합니다.”

“놀랍군.”

보고를 듣고도 믿기 힘들 지경이었다.

‘세계 플레이어 협회의 저력이 대단하군.’

저 정도 대규모 인원을 공간 이동 시킬 수 있는 고랭크 공간 이동 스킬 보유자를 데리고 있을 줄은 몰랐다.

프랑스의 공간 이동 스킬 보유자는?

단 한 명이었고, 한 번에 이동시킬 수 있는 인원도 고작 30명 내외에 불과했다.

그런데.

“리옹에 세계 플레이어 협회의 지원군이 도착했습니다. 병력 규모는 2천 명입니다.”

“리모주에도 세계 플레이어 협회의 지원군이 도착했습니다. 병력 규모는 2천 명입니다.”

연달아 2천 명 규모의 지원군이 도착했다.

‘도대체 고랭크 공간 이동 스킬 보유자가 몇 명이야?’

마크룽 대통령은 당연히 한 명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예상이 너무나도 완벽하게 빗나갔다.

“낭트에도 세계 플레이어 협회의 지원군이 도착했습니다. 병력 규모는…….”

마크룽 대통령은 굳이 듣지 않아도 어떤 보고가 올라올지 알 것 같았다.

“2천 명입니다.”

역시 예상이 맞아떨어졌다.

그 뒤를 이어 다른 지역에서도 세계 플레이어 협회의 지원군이 도착했다는 보고가 올라왔고.

지원 요청을 하고 채 1분도 걸리지 않아 도착한 세계 플레이어 협회의 지원 병력은 그 숫자가 무려 2만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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