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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선택 (4)

‘이 해적 놈들이!’

마크룽 대통령이 얼굴을 찌푸렸다.

선거를 앞두고 있어 시위대를 과격하게 진압할 수 없는 상황.

그렇기에 우회로를 준비해 놓고 있었는데.

그 우회로를 사용하기 직전, 영국이 서서히 줄어들던 시위의 불길에 기름을 콸콸 들이부었다.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어.’

사실 가장 좋은 건 시위 규모가 잦아들기를 기다리는 거였다.

문제는 선거가 코앞이라는 점이었다.

‘지지율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어.’

시간을 끈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영국이 들이부은 대량의 기름으로 인해 제대로 힘을 받은 시위의 불길은.

선거가 끝날 때까지 꺼지지 않으리라.

‘어쩔 수 없어.’

비록 계획이 조금 어긋나기는 했지만.

‘강행해야 한다.’

시위의 불길이 잦아들길 기다려도 선거에서 패배할 게 확실한 상황.

그럼?

어긋난 계획이라도 강제로 밀어붙여야 했다.

프랑스 마크룽 대통령이 이탈리아 대통령 마타렐러에게 전화를 걸었고.

다음 날.

이탈리아 마타렐러 대통령이 EU 플레이어 연합 결성과 EU 가입국 간의 긴급 개입 조치안을 공식적으로 꺼내 들었다.

* * *

‘역시 이렇게 나오나.’

강현수가 스마트폰으로 외신 기사들을 훑어봤다.

온통 이탈리아 마타렐러 대통령의 주장으로 가득 차 있었다.

유럽만의 플레이어 협회.

유럽만의 긴급 개입 조치.

‘제대로 재를 뿌리네.’

아시아 차원 게이트 사태 이후, 유럽의 국민들이 불타올랐다.

그 불길이 조금 사그라들 때쯤 강현수가 영국이라는 기름을 뿌렸다.

그런데.

이탈리아가 나섬으로 인해서.

‘의견이 둘로 갈렸어.’

유럽만의 플레이어 협회와 긴급 개입 조치.

시위 열기가 가장 강력했단 프랑스에서도 시위대가 둘로 갈라졌다.

‘역시 유럽인들은 자존심이 보통이 아니란 말이야.’

프랑스만 의견이 갈린 게 아니다.

독일을 비롯한 타 유럽 국가들의 시위대 역시 의견이 둘로 쪼개졌다.

굳이 유럽만의 플레이어 협회와 긴급 개입 조치를 만들 필요 없이 세계 플레이어 협회의 긴급 개입 조치에 동의하기만 하면 그만이라는 의견.

세계 플레이어 협회의 도움을 받을 필요 없이 유럽 국가들만 똘똘 뭉치면 어떤 위기가 와도 헤쳐 나갈 수 있다는 의견.

두 가지 의견이 정면으로 충돌했다.

강현수 입장에서는.

‘무조건 손해지.’

-우리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는 세계 플레이어 협회 긴급 개입 조치 동의국이 되어야 한다.

-전 세계의 모든 국가가 힘을 합쳐야만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세계 플레이어 협회의 긴급 개입 조치 가입국이 되지 못하면, 위기가 닥쳤을 때 나라가 멸망할지도 모른다.

이런 의견들이 대세였는데.

-유럽 국가들끼리 연합해도 충분히 위기에 대응할 수 있다.

-아메리카나 아시아는 너무 멀다. 그들이 지원을 온다고 해 봐야 뒷북에 불과할 뿐이다.

-아시아 차원 게이트 사태를 보라. 가장 먼저 신한민국에 지원을 간 국가는 중국, 러시아, 일본이다.

-굳이 하나를 고집할 필요는 없다. 세계 플레이어 협회와 EU 플레이어 협회 체계를 공존한다면, 우리는 더 안전해질 수 있다.

-유럽은 강하다. 유럽의 문제는 충분히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이런 의견들이 중구난방으로 등장했다.

‘곤란해.’

EU 플레이어 협회가 성공적으로 정착하면.

‘전 세계가 갈라질 수도 있어.’

EU 플레이어 협회가 나왔다.

그럼 아시아 플레이어 협회, 북아메리카 플레이어 협회, 남아메리카 플레이어 협회, 아프리카 플레이어 협회, 중동 플레이어 협회 등등.

오만 가지 플레이어 협회들이 다 생겨날 수 있다.

또 그렇게 생긴 수많은 협회들은?

서로 협력하기보다는 경쟁하려 할 것이다.

그건 강현수가 원하는 바도 아니었고.

마왕군의 침공에서 지구를 수호하는 데도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부르심을 받고 왔습니다.”

그때 강현수가 호출해 놨던 CIA 부국장 마틴이 도착했다.

“배후는 누구죠?”

이탈리아 역시 유럽의 강국 중 하나로.

독일, 영국, 프랑스를 제외하면 가장 큰 경제력을 가지고 있는 유럽 국가다.

그렇지만.

‘이런 큰일을 사전 합의도 없이 혼자 벌일 수 있을 리가 없지.’

프랑스와 독일 두 나라 모두와 손을 잡았을 확률이 높고.

‘그게 아니더라도 최소한 한 나라와는 손을 잡았겠지.’

이게 강현수의 추측이었다.

그리고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당연히 프랑스였다.

그런 강현수의 추측은.

“프랑스입니다.”

정확히 들어맞았다.

“역시 그렇군요. 독일은 빠진 건가요?”

강현수의 물음에 마틴이 재빨리 입을 열었다.

“네, 현재 독일은 어느 정도 여유가 있는 편입니다. 반면 프랑스의 경우는 대통령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아 여유가 없습니다. 또 시위 열기도 가장 강력한 편이고요.”

“독일은 지켜볼 여유가 있으니 차분히 기다리고, 여유가 없는 프랑스가 나섰다라.”

“거기다 EU 플레이어 협회가 만들어지면 독일보다는 프랑스가 주도권을 쥘 확률이 높습니다.”

“그렇겠죠. 독일과 이탈리아 모두 전범국이니까.”

그래서 이탈리아의 배후가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EU 플레이어 연합이 만들어진다고 해도 이탈리아가 주도권을 쥐기는 힘들다.

그럼에도 총대를 멘다는 건?

누군가가 그 반대급부를 약속했을 확률이 높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EU 플레이어 연합이 만들어지면 그로 인해 가장 큰 이득을 보는 나라.

‘프랑스밖에 없지.’

독일과 프랑스 중 어디를 먼저 방문할까 고민했는데.

이제는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사라져 버렸다.

* * *

‘반응이 나쁘지 않아.’

마크룽 대통령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오랜 앙숙 영국의 트롤 짓으로 일이 꼬였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국민들의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역시 대중은 단순하다는 말이지.’

아시아 차원 게이트 사태가 발발했을 때만 해도, 당장 내일이라도 유럽에 차원 게이트 사태가 벌어질 것처럼 온갖 야단법석을 피웠다.

그런데 막상 별일 없이 조용하자.

점점 그 기세가 수그러들었다.

영국이 세계 플레이어 협회 긴급 개입 조치 동의국이 된 일로 한창 시끄러웠다가도.

EU 플레이어 연합이라는 떡밥에 또 이목이 쏠렸다.

‘이렇게 줏대가 없어서야.’

사실 EU 플레이어 연합과 유럽만의 긴급 개입 조치를 만들자는 의견에 찬성하는 프랑스인들이 쏟아져 나온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프랑스인들 만큼 자국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이들도 드물었다.

또 EU 플레이어 연합이 만들어지면, 프랑스가 주도권을 쥔다는 사실 역시 알고 있었다.

조국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이들은 당연히 마음을 바꾸고 돌아섰다.

‘여론을 동원해서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제대로 일을 벌일 수 있겠어.’

EU는 현존하고 있었고 통화까지 공유하고 있다.

또 나토 연합군 역시 존재했다.

EU 플레이어 협회를 만들고, 긴급 개입 조치를 만드는 건.

솔직히 말해서 일도 아니었다.

‘서둘러야겠어.’

괜히 뭉그적거리면 갈대 같은 국민들의 마음이 또 흔들릴 수 있었다.

‘쐐기를 박아야지.’

시위와 선거 때문에 적잖이 골치를 썩었다.

또 그런 일이 반복되게 할 수는 없었다.

마크룽 대통령에게 국민은 애증의 대상이다.

어리석고 줏대 없는 모습이 답답하게 느껴지다가도.

또 어쩔 때는 그게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그렇기에 정치인 같은 위정자들이 정권을 잡고 권력의 칼을 휘두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국민들이 모두 현명하고 의지가 강했다면.

여론과 환경에 쉽게 흔들리지 않았다면.

정치인들은 쉽게 권력이라는 칼을 휘두를 수 없고, 오히려 국민들의 눈치를 보며 업무에만 열중해야 하리라.

다음 날.

마크룽 대통령은 공식적으로 EU 플레이어 협회 성립을 찬성했다.

그와 동시에 유럽 각국의 나라들이 EU 플레이어 협회와 긴급 개입 조치 찬성 의사를 표했고.

속전속결로 EU 플레이어 협회 제정일이 논의되었다.

불안에 떨고 있는 국민들을 달래야 한다는 명분으로.

EU 가입국 중 하나에 사고가 터지면, 굳이 도움을 요청하지 않더라도 타 EU 가입국의 플레이어 지원 부대를 투입하기로 합의했다.

사실상 세계 플레이어 협회의 긴급 개입 조치와 규모만 다를 뿐 동일한 내용이나 마찬가지였다.

정식으로 EU 플레이어 협회를 만들고 EU 긴급 개입 조치를 실행하기에는 시간이 걸리니, 약식으로 만든 것이다.

국민들을 안심시켜야 한다는 명분으로 말이다.

* * *

‘빠르네.’

강현수는 유럽의 발 빠른 대응에 적잖이 놀랐다.

마크룽 정부와 프랑스 랭커들에 대한 정보 수집과 접촉이 끝나는 즉시 움직일 생각이었는데.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일을 진행시켰다.

‘설마 EU 플레이어 연합을 만들기도 전에 임시 긴급 개입 조치를 발동시킬 줄이야.’

그 덕분에 유럽의 시위 열기는 빠르게 사그라들었다.

강현수로서는 적잖이 낭패를 본 셈이었다.

물론 그래 봤자.

‘달라지는 건 없겠지만.’

유럽 국가들이 똘똘 뭉쳐 EU 플레이어 협회를 만들려고 한다?

상관없었다.

설사 만들었다고 해도 다시 없애 버리거나 세계 플레이어 협회와 중복으로 써먹으면 그만이다.

임시로 EU 긴급 개입 조치 같은 걸 만들었다?

역시 마찬가지로 없애 버리거나 중복으로 세계 플레이어 협회 긴급 개입 조치에도 가입하게 만들면 그만이다.

아무리 저항을 하고 발버둥을 쳐 봐야.

강현수가 결정을 내린 이상 모든 것이 무의미했다.

‘헛수고를 참 열심히도 하네.’

강현수는 다시금 정보 수집에 열을 올렸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는 말처럼.

이번 기회에 유럽 출신 귀환자 랭커들을 모조리 휘하에 넣어 버릴 생각이었다.

* * *

‘좋아, 아주 좋아.’

강현수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마크룽 대통령은 지금 기분이 아주 좋았다.

EU 플레이어 협회를 만들기도 전에 서둘러서 임시 EU판 긴급 개입 조치를 만든 이유는.

당연히 미국이 방해를 할 거라고 예상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현 세계 최강국이다.

여기에 대한민국, 신한민국, 중국, 러시아, 인도, 일본까지 뜻을 함께하고 있는 상황.

고춧가루를 뿌리고자 마음먹는다면.

얼마든 뿌릴 수 있었다.

그렇기에 서둘렀고, 멋지게 성공했다.

거기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추가로 수작을 부리지 않고 있단 말이지.’

-EU가 국제사회의 화합을 깨고 있다.

-전 지구적 단합이 필요하다.

-세계 평화를 위해서는 전 세계 모든 국가가 화합해야 한다.

등등의 언론 플레이를 펼치고 있기는 하지만, 그 정도는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고 별다른 타격도 없었다.

‘군사적이나 경제적 압박도 고려를 하고 있었는데.’

그럴 경우 반박할 준비와 대대적으로 격렬한 언론 플레이어를 할 준비도 끝마쳤다.

그런데 의외로 미국은 군사적이나 경제적 압박을 전혀 하지 않았기에 오히려 의아할 정도였다.

‘군사적으로는 몰라도 경제적으로는 어느 정도 압박을 할 줄 알았는데.’

예상이 빗나갔다.

‘최악의 경우 세계 플레이어 협회 탈퇴라는 강수까지 고려했는데.’

허탈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나쁠 건 없지.’

마크룽 대통령은 미국이 자신의 발 빠른 움직임에 적잖이 당황해 혼란에 빠졌다고 판단했다.

추가로 경제적 압박이 생길 수도 있고, 시간을 들여 천천히 유럽을 고립시킬 수도 있지만.

그 정도는 충분히 극복할 자신이 있었다.

오히려 이번 기회에 유럽에서의 영향력을 확장할 생각에 마크룽 대통령은 기분이 아주 좋았다.

그때.

덜컹!

마크룽 대통령의 집무실 문이 거칠게 열리며 비서실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크, 큰일입니다!”

“무슨 일인가?”

마크룽 대통령이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파리 전역과 그 인근에 대규모 차원 게이트가 감지되었습니다!”

“뭐?”

마크룽 대통령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도대체 몇 개인가?”

“방금 보고가 들어온 바로는 20개가 넘습니다. 문제는 불과 10분 사이에 벌어진 일이고, 지금도 실시간으로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마크룽 대통령의 얼굴이 사납게 일그러졌다.

얼마 전 이런 일이 벌어졌던 사례가 있었다.

그건 바로.

“아시아 차원 게이트 사태. 이런 망할!”

진짜 아시아 차원 게이트 사태가 재현되는 거라면?

이는 파리만의 위기도 아니었고, 프랑스만의 위기도 아니었다.

너무도 당연하게도.

유럽 전체의 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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