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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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쇄를 원하는 자

강현수는 카우르의 사연을 전 세계에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세계인들은 카우르가 일으킨 학살에 경악하면서도.

그녀의 삶을 동정하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강현수는 죽은 카우르가 동정받으라고 사연을 공개한 것이 아니었다.

‘이건 사회 전체가 연대로 책임져야 하는 문제다.’

세상에는 수많은 차별과 부조리가 존재한다.

그러나.

대다수는 자신이 당사자가 아니면 외면한다.

인종차별, 성차별, 지역 차별, 학교 폭력, 가정 폭력, 직장 괴롭힘 등등.

세상에는 수많은 문제들이 있지만.

‘자신의 일이 아니면 외면하지.’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인간은 이기적이고 자신의 이득이 가장 중요한 존재니까.

온갖 차별을 수많은 이들이 목격하지만.

그걸 제지하는 이들은 소수고.

다수는 방관한다.

학교 폭력?

내 일도 아닌데 괜히 끼어들면 나까지 힘들어질 거야.

가정 폭력?

남의 집안일에 끼어들어 봐야 좋은 꼴 못 보지.

직장 괴롭힘?

괜히 나까지 상사한테 찍힐라.

사실 이 모든 문제는.

‘다수가 나서면 해결할 수 있지.’

차별과 폭력을 목격한 이들이 직접 나서서 제지한다면?

그들의 시선이 무서워서라도 누군가를 차별할 수도 없고.

폭력을 휘두를 수도 없다.

카우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미 사라진 계급이다.

차별과 폭력을 목격한 마을 사람들이 카우르의 가족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 줬다면?

다른 플레이어들이 카우르를 무시하고 멸시하는 이들을 제지했다면?

반대로 그런 이들을 무시하고 멸시했다면?

‘이번 일은 일어나지 않았겠지.’

교육의 문제도 있고, 뿌리 깊게 박힌 고정관념도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거지.’

그러나 지금부터는 아니었다.

‘카우르의 일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해.’

누구나 플레이어가 될 수 있고.

플레이어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대학살을 벌일 수 있는 존재다.

그리고.

‘방관자 또한 피해를 받을 수 있지.’

이번 인도의 사태처럼 말이다.

강현수는 카우르의 사연을 전 세계에 널리 퍼트릴 생각이었다.

‘이런다고 차별과 폭력이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누군가는 차별을 저지르거나 폭력을 휘두를 때 한 번쯤 망설이게 될 것이다.

그걸 지켜보는 이들 역시.

대다수는 방관하겠지만.

나서서 도움을 주는 이들의 숫자가 눈곱만큼이라도 늘어나리라.

이걸 단지 인도라는 한 나라의 문제라고 생각하고 외면하는 대신.

그저 운 없이 카우르라는 재앙이 나타났다고 생각하는 대신.

전 세계의 인류가 자신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했다.

‘그러려면 정보의 전달이 최선이지.’

카우르가 일으킨 일만 공론화시키는 것보다는.

‘세계 각국의 사례를 수집하라고 지시해야겠군.’

카우르만큼 큰 파급력을 일으키지 않아서 그렇지.

플레이어로 각성한 후 억눌려 있던 분노가 폭발한 사례는 한두 건이 아닐 것이다.

굳이 플레이어로만 국한할 필요도 없다.

현대사회에는 총포를 비롯해 타인의 목숨을 손쉽게 해칠 수 있는 도구가 넘쳐 나니까.

강현수는 각국의 지도자들에게 그런 사례를 모으고.

그렇게 모인 사례들과 카우르의 대학살을 하나로 엮어 전 세계 곳곳에 대대적으로 퍼트리라는 지시를 내렸다.

미국, 중국, 러시아, 한국, 일본, 인도가 강현수의 지시하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으니.

‘어느 정도 효과가 있겠지.’

강현수는 진심으로.

제2, 제3의 카우르가 나오지 않았으면 했다.

* * *

강현수의 지시로 인해 카우르의 대학살을 포함해 비슷한 사례들이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인터넷의 파급력도 엄청났지만.

세계 각국의 공영방송들이 나서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며.

차별과 폭력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게 인류 전체를 지키는 일이라는 공감대를 확대해 나갔다.

인터넷과 TV가 없는 지역은.

신문이나 라디오 방송을 통해서라도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이런다고 모든 차별과 폭력이 사라지지는 않겠지.’

그러나 사회의 분위기를 바꾸고.

세계인들에게 큰 경종을 울렸다는 점에 의의를 뒀다.

‘지금으로서는 이 정도가 최선이다.’

강현수는 정치인도 아니고, 평화주의자도 아니며, 인권주의자도 아니다.

그저 평범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수준의 도덕성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이런 일을 벌인 건.

마왕군의 침공에 앞서 인류의 전력이 깎여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인류 전체가 똘똘 뭉쳐도 모자랄 판에 서로 싸우면 되겠는가?

‘아마 또다시 이런 일이 반복되겠지만.’

그때도 강현수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런 식으로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것이 전부이리라.

그리고 안타깝지만, 다시금 이런 참상이 일어난다면.

그런 사태를 촉발한 자들도 괴롭겠지만.

가장 고통받는 것은 아무런 죄도 없이 휘말린 이들이 되리라.

* * *

강현수가 한국으로 복귀했다.

“어서 와라.”

어머니가 환한 얼굴로 강현수를 반겼다.

‘최근에 좀 바쁘기는 했지.’

신한민국과 일본에서의 일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지만.

러시아와 인도 사태 때문에 적잖이 집 밖으로 돌아야 했다.

“밥 아직 안 먹었지?”

“네.”

“그럼 얼른 먹자. 너 좋아하는 김치찌개 끓여 놨어. 그동안 밥은 잘 먹고 다녔니?”

어머니가 강현수를 식탁으로 끌어당기며 물으셨다.

“네, 잘 챙겨 먹었어요.”

강현수는 어머니에게 굳이 인도에 갔다는 말을 하지는 않았다.

그저 지방에 있는 던전에 장기간 사냥을 하러 간다고 말씀드렸다.

‘괜히 걱정하시니까.’

현재 지구에서 강현수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존재는 없었지만.

‘대학살이 벌어진 러시아나 인도에 갔다고 말씀드리면 걱정하실 테니까.’

강현수는 오랜만에 가족들과 식사를 했다.

당연히 송하나도 있었다.

“그럼 다녀올게요.”

사냥을 간다는 핑계를 대고 송하나와 집을 나왔다.

“잘 해결한 거지?”

“어.”

“나도 데리고 가지.”

송하나가 아쉽다는 듯 중얼거렸다.

“아직은 무리야.”

“무리 아니거든.”

송하나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강현수를 바라봤다.

“마계 후작급이었어.”

강현수의 말에 송하나가 눈을 크게 떴다.

“그 정도였어?”

“어.”

강현수의 짧은 대답에 송하나가 이를 악물었다.

그간 송하나는 귀환 전의 실력을 회복하기 위해 부지런히 사냥에 열중했다.

2회 차 특전.

강현수의 버프.

휘하 소환수의 도움까지 합쳐져서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강해지고 있는 송하나였지만.

아직까지는 귀환 전의 실력을 모두 회복하지 못했다.

냉정하게 말해 송하나의 실력은.

이제 겨우 마계 자작급에 진입한 상태였다.

뭐, 그것 자체도 엄청나게 강해진 건 맞았지만.

‘금방 따라잡아 주겠어.’

송하나는 절대 이 정도로 만족할 수 없었다.

아틀란티스에 있을 때는 항상 강현수 곁에 송하나가 있었다.

무슨 일을 하든 함께였고, 강현수의 일을 거들어 줄 수 있는 실력자였다.

그런데 지구에 온 이후로는?

‘계속 현수한테 신세만 지고 있어.’

송하나는 강현수에게 도움을 주는 존재가 되고 싶었지, 도움을 받는 존재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 마음만큼은 아틀란티스에서의 첫 만남 이후로 지구로 귀환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변한 적이 없었다.

* * *

대한민국은 현재 단군 이래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다.

대격변 이후 차원 게이트가 생겼고.

차원 게이트를 안정적으로 던전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 결과 안정적으로 마석 생산이 이루어졌고.

마석이 서서히 석유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는 지금의 세상에서는.

천연자원이 부족한 대한민국의 약점이 일정 부분 극복된 상태였다.

어디 그뿐인가?

대한민국의 가장 큰 골칫거리였던 북한 독재 정권이 무너지고 신한민국이 들어섰다.

신한민국은 국가 재건 사업의 대부분을 대한민국의 기업들에게 맡긴 상태였고.

그 결과 대한민국의 건설 경기가 급부상했다.

단순히 건설 경기만 살아난 게 아니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생필품과 식량 판매가 증가하자 경공업, 농업, 어업 할 것 없이 모든 경기가 살아났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신한민국에 돈을 퍼 준다고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대한민국 정부는 신한민국의 부동산 및 천연자원을 담보로 잡아 대량의 차관을 제공한 상태였고.

막말로 신한민국 정부가 차관을 갚지 못하면?

땅과 자원으로 받으면 그만이었기에 크게 문제 될 게 없었다.

거기다 중국과 러시아의 정권이 바뀐 이후.

전과 다르게 중국과 러시아가 대한민국에 엄청나게 호의적으로 나오고 있는 상황이었다.

한한령은 옛일이 되었고.

대한민국 기업들은 중국 내에서 중국인들과 아무런 차별 없이 사업을 벌일 수 있었다.

러시아의 경우.

현재 신한민국과 대한민국을 관통하는 천연가스와 석유 파이프라인 작업에 착수한 상황이었다.

상식적으로 이런 일이 벌어지면, 미국이나 일본과의 관계가 악화될 수도 있었지만.

오히려 미국과 일본과의 관계는 군사 동맹이 더욱 굳건해지고 관세가 줄어들며 경제 동맹 강화로 더 큰 이득을 얻었다.

또 반쯤 통일이나 마찬가지인 상태에서 중국과 러시아가 호의적으로 나오자.

당연한 수순으로 징병제를 폐지하고 모병제를 하자는 이야기가 흘러나왔고.

정부 역시 긍정적인 검토를 시작했다.

말 그대로 대한민국이라는 호랑이 등에 날개를 달아 준 상황이 된 것이다.

먼 훗날 대한민국과 신한민국이 하나로 완전히 합쳐지면.

영토, 자원, 인구.

모든 것이 늘어나게 된다.

북한 리스크가 사라지고 성장할 일만 남은 대한민국에 당연하다는 듯 외국인들의 대대적인 투자가 이어졌고.

그 결과 코스피는 매일매일 역대 최고가를 경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 적잖은 불만을 가진 기업이 하나 있었다.

바로 대한민국 최고의 대기업인 일성 그룹이었다.

* * *

“아직도 제대로 숟가락을 못 올렸어?”

일성 그룹 회장 조성훈의 물음에.

“죄송합니다.”

계열사 사장단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독재국가인 북한이 무너지고 자본주의국가인 신한민국이 들어선 지가 도대체 언제인가? 지금 신한민국에서 얼마나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다들 모르는 건 아니지?”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는 사람들이 일을 그딴 식으로 처리해!”

일성 그룹 회장 조성훈이 노성을 터트렸다.

“우광 그룹을 좀 봐! 신한민국에서 진행되는 사업 중에서 노른자위는 다 그놈들이 차지하고 있잖아! 그런데 우리 일성 그룹은 뭐야? 언제까지 겨우 부스러기만 주워 먹는 데 만족할 거냐고!”

“신한민국 정부가 우광 그룹을 워낙 대놓고 밀어주는지라.”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서 당하기만 할 거야?”

“대한민국 정부 측 인사들을 채근하고는 있는데, 김철우 대통령이 요지부동이라.”

“끄응.”

일성 그룹 회장 조성훈이 얼굴을 찌푸렸다.

‘김철우 그놈이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역대 대한민국의 대통령 중에서 순도 100% 깨끗한 인물이 몇이나 되겠는가?

‘단 한 놈도 없지.’

애초에 그런 인물이면.

대통령은커녕 국회의원에 당선되는 것도 힘들었다.

‘김철우가 미치기라도 했나?’

정치인이라는 놈들은 기업인을 능가하는 능구렁이들이다.

또 뱃속에 온갖 흑심 가득한 놈들이다.

현 대한민국 대통령인 김철우 역시 마찬가지로.

적당히 때가 묻어 있었고.

겉으로는 국민을 위하는 척하지만, 실상 자신의 배를 채우는 게 우선인 놈이다.

그런데 그놈이 뭘 잘못 먹기라도 한 건지.

정말 정말 믿기지 않게도.

투명하고 깨끗한 정치를 하고 있었다.

특히 신한민국 개발에는 단 하나의 비리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태도로 미친 듯한 칼춤을 추고 있었다.

‘국민들이 띄워 주니까 정말 자기가 뭐라도 된 줄 알고 설치는 모양이군.’

현재 김철우 대통령의 지지율은 미쳤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높아진 상태였다.

국민들이 정치인들에 원하는 것이 뭘까?

깨끗한 정치를 하는 것?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것?

인권을 챙기는 것?

약자를 배려하는 복지사회를 만드는 것?

이런저런 요구가 넘쳐 나지만.

가장 중요한 건.

먹고사는 것, 즉 경제다.

현재 대한민국 경기는 최고 호황을 맞이하고 있었고.

일자리와 돈이 넘쳐흘렀으며.

대한민국과 신한민국 경제 모두 급격한 성장세에 접어든 상태.

상황이 이러니 당연히 김철우 대통령의 지지율이 하늘을 뚫을 정도로 치솟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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