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우르 (5)
카우르는 마하라슈트라주에서 대학살을 저지른 후.
곧바로 옆에 붙어 있는 구자라트주, 마디아프라데시주, 차티스가르주, 카르나타카주 등을 공격할 생각이었다.
가깝기도 하고, 영토도 넓고 인구도 많은 주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뭐지?’
갑자기 엄청난 숫자의 플레이어들이 모습을 드러내 대대적인 수색을 시작했다.
‘저건 인간이 아니야.’
확신할 수 있었다.
네크로맨서로 전직한 카우르는 외형 따위에 현혹되지 않았다.
산 자와 죽은 자의 차이는 극명했다.
혼백이 온전히 있는가, 혼이 사라지고 백만 남았는가?
산 자는 온전한 혼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죽은 자는?
백만 존재하고, 그조차도 금방 흩어져 버린다.
그 백을 통해 죽은 자를 부활시켜 부리는 존재가 네크로맨서였고.
그런 네크로맨서의 피조물이 바로 언데드 몬스터였다.
‘언데드 몬스터는 아닌데?’
사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행동 하나하나가 자연스럽고 생동감이 느껴져서 외형적으로는 살아 있는 사람과 구분이 가지 않았다.
‘도대체 누가 만든 존재지?’
카우르는 적잖은 충격을 느꼈다.
언데드 몬스터가 아님에도 백을 다뤄 육체를 부여한다는 것 자체가 기적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강하다.’
그 존재들 하나하나가 엄청나게 강하다는 점이었고.
그런 존재의 숫자가 족히 수만은 넘어 보인다는 점이었다.
‘싸우면 이길 수 있을까?’
고아주와 마하라슈트라주에서 대학살을 벌이며 엄청나게 강해진 카우르였지만.
저 괴물들을 상대로는?
도저히 이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싸우면 십중팔구 패배하리라.
‘싸울까, 말까.’
마음속에서 작은 갈등이 피어올랐다.
‘더 강해진 후에 상대하자.’
갈등을 끝낸 카우르가 결정을 내렸다.
‘그런데 내가 왜 고민한 거지?’
저들은 죽은 자다.
아무리 많은 수를 쓰러트려도.
징벌이 될 수 없으며, 구원도 될 수 없다.
‘고민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어.’
카우르는 저 존재들에게서 최대한 멀리 벗어나 행동하기로 했다.
그래서 목표를 인도 남쪽 끝에 자리한 타밀나두주로 변경했다.
사실 카우르 자신도 몰랐지만.
망설였던 이유는, 여기서 싸우면 이쯤에서 멈출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큰 충격으로 광기에 휩싸여 피와 살육의 네크로맨서로 각성한 카우르는 반쯤 미쳐 버린 상태였다.
그렇기에 온전한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고.
전 세계의 인류를 응징하고 구원하겠다는 정신 나간 계획을 실행에 옮기고 있었다.
그러나 마음 한편에서는.
누군가 자신을 멈춰 줬으면, 말려 줬으면 하는 이율배반적인 감정이 존재했다.
그렇기에 패배할 확률이 월등히 높은 전투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든 것이다.
전투에서 패배하면, 고장 난 자신을 승자가 강제로 멈춰 줄 테니까 말이다.
하나 승리한 건, 반쯤 미쳐 버린 정신이었고.
카우르는 타밀나두주로 이동했다.
이동하는 와중에 자신을 찾는 이들을 수도 없이 만났지만.
리치도 아니고 마족도 아닌 카우르를 제지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 결과 카우르는 큰 문제 없이 타밀나두주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가라.’
타밀나두주에 도착한 카우르는 밴시들에게 명령을 내렸고.
수천 마리의 밴시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일반인들에게 죽음이라는 이름의 구원과 징벌을 선사했다.
그 후에는?
전과 똑같이 죽은 자들이 언데드 몬스터로 부활해 수많은 이들을 학살했다.
그러다 군대나 플레이어가 도착하면?
꽈아아아앙!
적당히 유인해 끌어 들인 후 시체 폭발 스킬을 사용해 정리했다.
구원받는 이들과 징벌받는 이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그에 비례해서 카우르의 마기 역시 급속도로 치솟았다.
카우르가 타밀나두주를 죽음의 대지로 만드는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을 무렵.
‘왔다.’
언데드 몬스터도 아니면서 백을 지닌 존재들이 대거 모습을 드러냈다.
‘빠르네.’
일반적인 교통수단으로는 이렇게 빨리 도착할 수가 없었다.
언데드 몬스터들과 백을 지닌 존재들이 충돌했다.
-구오오오오!
꽈앙!
전투는 일방적이었다.
시체 폭발 스킬의 재료로 사용하기 위해 만든 언데드 몬스터들의 전투력은 고작 최하급 몬스터 수준에 불과했다.
그러니 제대로 된 전투가 벌어질 리 만무했다.
방금 전까지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무차별적인 학살을 벌이던 언데드 몬스터들이.
반대로 무차별적으로 학살당했다.
‘시체 폭발을 사용해 볼까? 아니면 언데드 키메라를 투입해?’
카우르가 고민했다.
시체 폭발이라면, 저 존재들에게도 적잖은 피해를 입힐 수 있으리라.
그렇지만.
‘어차피 저건 살아 있는 존재가 아니야.’
언데드 몬스터는 아니지만, 언데드 몬스터와 동일한 불사의 존재.
그런 만큼 완벽하게 제거하지 못하면 단순히 마기만 낭비하는 꼴이 되어 버린다.
언데드 키메라들 역시 강력한 존재이기는 하지만.
저 백을 지닌 존재들을 상대로 싸워 승리하기에는.
전투력도 부족했고 숫자도 부족했다.
‘피하자.’
도망치기로 결정을 내린 카우르가 마력을 갈무리한 후 조용히 현장을 벗어나기 위해 움직였다.
‘날 공격하지 않아.’
백을 지닌 존재들은 카우르를 공격하지 않았다.
오히려 언데드 몬스터들이 공격하지 않도록 방패 역할을 자처했다.
이런 식으로 보호를 받는 존재는 카우르만이 아니었다.
생존자들은 모두 백만 지닌 존재들의 보호를 받았다.
문제는.
‘은근히 포위하고 있어.’
생존자들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다는 점이었다.
‘의심하는 건가?’
그게 아니면, 단순히 참고인 조사를 위해서 막는 것일 수도 있었다.
‘어떻게 빠져나가지?’
잠시 고민했지만 답은 간단했다.
‘저 녀석들을 이용하자.’
카우르가 언데드 몬스터들에게 집중 공격 명령을 내렸다.
공격 명령의 대상은?
살아남은 또 다른 생존자 무리였다.
카우르가 공격 명령을 내리자.
-구오오오!
언데드 몬스터들이 생존자 무리를 향해 일제히 달려들었다.
상황이 그렇게 변하자.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던, 카우르가 포함된 생존자 무리를 지키던 백만 지닌 존재들이 유지하고 있던 포위망이 약해졌다.
카우르는 조심스럽게 현장을 빠져나갔다.
눈에 띄지는 않았다.
기회가 생기자 다른 생존자들 역시 이 지옥 같은 곳을 벗어나기 위해 도주했기 때문이다.
결국 카우르는 무사히 몸을 뺄 수 있었다.
‘마기를 회수해야 하나?’
안전을 확보한 카우르가 잠시 고민했다.
언데드 몬스터들을 일으키며 소모한 마기는 그리 크지 않다.
그렇지만 회수하지 않으면?
영구적으로 손실된다.
카우르가 갈등하고 있는 순간.
언데드 몬스터들이 소멸하며 만들어진 마기들이 허공으로 치솟았다.
‘뭐지?’
고개를 든 카우르의 눈에 와이번을 타고 있는 인간의 모습이 들어왔다.
허공으로 치솟은 마기는 그 인간에게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나 말고 마기를 다룰 수 있는 존재가 있었다니.’
놀랄 만한 일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혹시 나와 같은 일을 겪은 플레이어인가?’
그럴지도 몰랐지만.
‘저자와 나는 적이야.’
저 플레이어는 백만 지닌 존재들을 만든 이로 보였다.
동일하게 죽은 자를 사역하고, 마기를 가지고 있지만.
‘저자는 인간을 살리려고 한다.’
자신이 이 세상의 인간들을 구원하고 징벌하는 걸 막는 존재.
그럼 결국 자신의 적에 불과했다.
‘지금은 힘들겠지만.’
계속해서 구원과 징벌을 이어 나가면?
저자를 쓰러트릴 힘을 키울 수 있으리라.
* * *
강현수는 타밀나두주에 도착하자마자 언데드 몬스터 퇴치와 생존자 구조 작업을 시작했다.
문제는.
‘리치가 안 보이잖아.’
마기야 잘 갈무리할 수 있다고 쳐도.
해골만 남은 리치의 형상은 감추기가 힘들었다.
‘탐색 스킬로도 감지되는 게 없고.’
현장에 있는 건.
하급 언데드 몬스터거나 아니면 생존자들뿐이었다.
‘벌써 내뺀 건가?’
강현수가 얼굴을 찌푸렸다.
‘아니면 혹시 도플갱어나 인간형 마족인가?’
언데드 계열의 몬스터를 사역한다고.
해당 마족이 100% 리치나 데스 나이트 같은 언데드 계열 마족인 것은 아니다.
‘뭐, 90% 이상은 그렇기는 하지만.’
아닐 확률도 있었다.
인간 사회에서 이 정도까지 잘 숨어 활동한다는 건.
‘도플갱어이거나 아니면 인간과 비슷한 외형을 지닌 마족일 확률이 높다는 거지.’
그게 아니라면?
정말 희박한 확률이지만.
‘플레이어일 수도 있어.’
단순한 악인일 수도 있고, 마족과 계약한 존재일 수도 있으며.
어쩌면 마왕이 가이아 시스템에 개입해 탄생한 존재일 수도 있다.
‘이미 마족이 등장했으니까.’
그런 존재들이 탄생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그럼 육안으로 찾을 방법은 없다.
탐색 스킬로 찾는 것도 불가능하다.
유일한 해결책은?
‘권소희.’
우광 그룹 회장 권영수의 손녀이자.
진실의 눈이라는 고유 스킬을 가지고 있는 플레이어.
‘훨씬 나중에 필요할 줄 알았는데.’
지금 당장 데리고 와서 써먹어야 할 것 같았다.
-사냥 중인가?
강현수가 권소희에게 물었다.
-네, 던전에서 사냥 중이에요.
-진실의 눈 랭크는 얼마나 올렸지?
-B랭크예요.
권소희가 자신감 넘치는 어조로 대답했다.
-잘했다. 열심히 했구나.
-감사합니다, 히히히.
강현수의 칭찬에 권소희가 기분 좋게 웃었다.
‘정말 열심히 했네. F랭크일 때 본 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는데.’
현재 B랭크라는 건.
아무리 패시브 스킬이라는 점을 고려해도 엄청나게 빠른 성장 속도였다.
‘사냥을 부지런히 했다는 뜻이겠지.’
일반인들의 정보는.
진실의 눈으로 봐도 정보가 얼마 떠오르지 않는다.
그럼 당연히 스킬 랭크도 거의 오르지 않는다.
그러나 상대가 플레이어라면?
진실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정보도 많고, 상대적으로 스킬 랭크도 더 빨리 오른다.
-지금 올 수 있나?
-네, 제가 없어도 사냥에 큰 지장은 없어서 가능해요.
파티 사냥 중에 갑자기 이탈하는 건.
플레이어 사회에서 매장당할 수도 있는 행동이었지만.
권소희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어 보였다.
‘우광 그룹 회장 권영수가 붙여 준 플레이어들일 테니까.’
동료라기보다는 돈을 받고 고용된 일종의 사냥 도우미 겸 경호원에 가까웠다.
거기다.
파티의 존재 이유 자체가 권소희의 안전한 레벨 업을 돕고 호위하는 것이니 중간에 이탈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으리라.
‘아마 우광 길드 소속이겠지.’
그럼 권소희가 강현수가 부른다며 사라져도 별다른 문제가 없을 터였다.
-그럼 부르겠다.
-네.
강현수는 대답을 듣는 즉시 권소희를 소환했다.
“안녕하세요.”
강현수를 본 권소희가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를 했다.
“그래, 반갑다. 지금부터 네가 해야 할 일은 이번 사태를 만든 장본인을 찾는 거다. 대상은 마족일 수도 있고 플레이어일 수도 있다.”
“네, 알겠습니다!”
권소희가 힘차게 대답했다.
사람을 보자마자 그에 대한 정보가 떠오르는 권소희로서는.
그저 근처 사람들을 훑어보기만 하면 되는 손쉬운 일이었다.
F랭크일 때는.
한 사람의 정보를 보는 것도 버거웠고.
자신을 중심으로 거리가 1미터 안쪽에 있어야 했다.
그러나 지금은.
50미터 이내에 있는 존재라면, 수백 수천 명의 정보를 한 번에 수집할 수 있었다.
권소희는 강현수과 같이 와이번의 등에 탄 상태로 부지런히 움직이며 진실의 눈을 통해 수많은 이들의 정보를 수집했다.
‘머리가 깨질 것 같아.’
한꺼번에 너무 많은 정보를 받아들이다 보니 두통으로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그렇지만.
‘실망시켜 드릴 수는 없어.’
권소희에게 있어서 강현수라는 존재는.
자신과 할아버지의 목숨을 구해 준 생명의 은인이자.
자신이 플레이어로서 살아갈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해 준 인물이다.
그런 강현수가 내린 첫 번째 임무였다.
‘그간 받기만 하고 돌려드린 것도 없는데.’
무조건 성공하고 싶었다.
첫 임무부터 망치고 싶지는 않았다.
권소희는 사력을 다해 주변의 정보를 수집하고 또 수집했다.
머리가 깨질 것 같았고 속이 울렁거렸지만.
이를 악물고 참아 냈다.
그러나.
“어, 없습니다.”
이번 사건의 범인을 찾아내지 못했다.
“벌써 빠져나간 모양이군.”
“죄송합니다.”
권소희가 꾸벅하고 고개를 숙였다.
“이건 네 잘못이 아니야.”
범인이 먼저 빠져나간 게 어찌 권소희 탓이겠는가?
그리고.
“기회는 금방 올 거야.”
공간 이동 스킬 보유자들이 인도 전역으로 흩어져 이동 중이다.
그럼?
‘사건이 발생하면 몇 초 내에 도착할 수 있다.’
거기다 권소희까지 있으니.
‘무조건 찾아낼 수 있어.’
그동안은 상대의 변칙적인 움직임에 대한 대비가 부족했다.
그러나 지금은.
모든 준비가 끝난 상황이었기에.
‘사고 치기만 해 봐라.’
사건을 벌이는 즉시, 범인을 검거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