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우르 (4)
“이 정도면 자체적으로 제압이 가능한 수준 아닙니까?”
“그러게 말입니다. 호들갑 떨었던 것에 비하면 너무 쉽지 않습니까?”
“고작 저레벨 몬스터일 뿐입니다. 일반인에게는 재앙이지만, 저레벨 플레이어는 물론이고 군인들도 손쉽게 토벌이 가능한 존재죠.”
“굳이 세계 플레이어 협회에 도움을 청할 필요가 있을까요?”
“고아주가 전멸한 사실을 잊으셨습니까?”
“그건 고아주의 플레이어들 실력이 형편없어서 아닙니까?”
애초에 고아주는 인구가 적은 지역이었고.
당연히 플레이어의 수도 적었고 질도 떨어졌다.
“마족이 넘어온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저 정도라면 자체적으로 마족 토벌이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마족을 찾아야 토벌이 가능하지요.”
“그럼 세계 플레이어 협회에는 마족 탐지기라도 있단 말입니까?”
“그건 아니지만, 대대적으로 수색을 하려면 아무래도 세계 플레이어 협회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인도의 플레이어 숫자가 몇 명인 줄은 아십니까? 세계 두 번째입니다. 전 세계 플레이어의 18%가 우리 인도에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 우리 인도에 과연 세계 플레이어 협회의 도움이 필요할까요?”
내각에서 상원과 하원 의원들이 격렬한 토론을 벌였다.
원래는 세계 플레이어 협회에 도움을 요청하자는 의견이 우세했지만.
손쉽게 토벌이 가능하다는 말이 나오자 여론이 뒤바뀐 것이다.
그건 인도 연방 행정부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정도면 굳이 도움을 청하지 않아도 될 것 같기는 한데.”
디모 총리의 말에.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고아주 대학살에 우리가 너무 겁을 집어먹은 듯합니다.”
부총리를 비롯한 장관들의 생각도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우리가 도움을 요청하면 그걸 빌미로 세계 플레이어 협회 연합군 긴급 개입 조치에 동의하라고 압박할지도 모릅니다.”
디모 총리를 포함한 행정부가 망설이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정치 문제 때문이다.
미국, 중국, 러시아는 세계 플레이어 협회에 힘을 실어 주고 있고.
긴급 사태가 발생했을 때 해당 국가의 허락 없이 자의로 개입할 수 있는 긴급 개입 조치를 추진 중이다.
미국, 중국, 러시아, 대한민국, 신한민국, 일본이 이미 가입한 상태였고.
힘없는 약소국들의 가입도 차례로 늘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강대국을 자처하는 인도 입장에서는?
플레이어로 이루어진 연합군이 허락도 없이 자국을 들락날락할 수 있는 권리를 주고 싶지 않았다.
심하면 내정간섭이나 무력시위도 할 수 있는 거 아니겠는가?
설사 들어가더라도.
‘그만큼 얻는 게 있어야 하는데.’
이번 일에 발목을 잡히면 얻는 것도 없이 잃는 것만 수두룩할 수도 있었다.
“일단 보류하지.”
토벌 작전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만큼.
당장 지원 요청을 할 필요는 없다는 게 디모 총리의 판단이었다.
원래 회의의 시작을 알렸던 디모 총리와 행정부가 미적지근하게 나오자.
당연히 내각 회의에서 세계 플레이어 연합에 도움을 요청하자는 의견은 빠르게 힘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게 인도가 저지른 가장 최악의 실수였다.
* * *
마하라슈트라주에서 발생한 언데드 몬스터들의 난동은 순식간에 제압이 끝났다.
“마족을 찾아라!”
“수상해 보이는 인물은 무조건 찾아서 체포해!”
언데드 몬스터들을 모두 퇴치한 플레이어와 군대는 대대적인 수색 작전에 들어갔다.
이번 일을 주도한 것으로 추정되는 마족을 찾기 위해서였다.
가장 먼저 수상하다고 지목된 이들은?
당연히 불가촉천민이었고 그중에는 카우르도 포함되어 있었다.
“저 여자가 수상합니다!”
“이 마을 사람이 아닙니다!”
“불가촉천민으로 보입니다!”
카우르에 대한 제보가 연이어 이어졌고.
플레이어와 군인 들이 카우르를 체포하기 위해 다가왔다.
“험한 꼴 보고 싶지 않으면 순순히 따라오는 게 좋을 거다. 순순히 협조하면 조사 후 무사히 돌려보내 주마.”
군대의 우두머리가 음흉한 눈빛으로 카우르의 위아래를 훑어보며 말했다.
“왜 나를 잡아가는 거지?”
카우르의 반말에 군대의 우두머리가 살짝 눈을 찌푸렸다.
어디 불가촉천민이자 용의자가 자신에게 반말을 한다는 말인가?
“네가 이번 대참사를 일으킨 범인일 가능성이 있으니까. 자꾸 그런 식으로 나오면 정말 네가 범인이 될 수도 있다.”
군대 우두머리의 협박을 들은 카우르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어떻게 알았어?”
카우르의 물음에.
“뭐?”
군대의 우두머리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카우르를 체포하려고 한 건 실적을 채우기 위함이자.
뒤탈이 없는 불가촉천민으로 보였기 때문이었고.
얼굴도 반반하기에 재미 좀 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정말 카우르가 이번 일을 일으킨 범인이라고 생각해서가 아니었다.
“내가 이번 사태를 일으킨 범인인지 어떻게 알았냐고?”
카우르의 말에 군대의 우두머리가 코웃음을 쳤다.
“하, 이제 보니 미친년이었군. 당장 끌고 가.”
군대의 우두머리가 수하들에게 카우르를 체포할 것을 지시했다.
자신이 범인이 맞다는 카우르의 자백을 믿지 않은 것이다.
“자기가 맞혀 놓고 이상한 짓을 하네. 범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왜 나를 체포하는 거야?”
“그걸 몰라서 묻냐? 미친년이 지능도 떨어지는구만.”
군대의 우두머리가 그 말과 함께 음흉한 눈빛으로 카우르의 전신을 위아래로 훑었다.
“역시 그랬구나. 그럼 잘 가.”
“그게 무슨 헛소리…….”
꽈아아아앙!
군대의 우두머리는 말을 다 끝마치지 못했다.
엄청난 폭발과 함께 주변에 있는 시체들이 산산조각 나며 군대 우두머리를 덮쳤기 때문이다.
“아아악!”
심각한 부상을 당한 군대의 우두머리가 비명을 터트렸다.
불행히도 즉사하지 않고 살아남은 것이다.
그러나 살아남은 불행을 겪은 건 군대의 우두머리만이 아니었다.
근처에 있던 플레이어, 일반인, 군인 들의 대다수는 목숨을 잃었지만.
소수는 살아남았고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었다.
“인사까지 해 줬는데 살아남았네.”
카우르는 시체 폭발을 사용했음에도 살아남은 이들을 살폈다.
대부분은 플레이어였지만 저자처럼 일반인도 몇몇 포함되어 있었다.
‘일반인은 키메라 언데드를 만드는 데 별로 도움이 안 되기는 하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카우르가 덤덤한 표정으로 키메라 언데드의 재료 수집을 시작했고.
“으아아아악!”
살아남은 자들의 처절한 비명이 사방으로 터져 나갔다.
* * *
“전멸?”
토벌이 마무리되었다는 소식에 잠시 잠자리에 들었던 디모 총리는 갑작스럽게 올라온 보고에 경악했다.
“예, 전멸입니다.”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인가? 분명히 순조롭게 토벌이 진행되지 않았는가?”
“이걸 보시죠.”
국방부 장관이 가지고 온 건 토벌 작전을 촬영한 화면이었다.
언데드 몬스터 토벌이 순조롭게 끝난 상황에서.
꽈아아아앙!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바닥을 나뒹굴던 시체들이 일제히 폭발했고.
순식간에 대참사가 발생했다.
“이럴 수가.”
“하급 언데드 몬스터들은 이 폭발을 위한 함정이었습니다.”
“고아주가 왜 토벌을 완료했다는 보고를 하고도 멸망했나 했더니.”
“아마도 같은 방법에 당한 것 같습니다.”
“피해 규모는?”
“추산 불가입니다. 일반인은 최소 수천만이 사망했고, 플레이어들 역시 최소 1만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마하라슈트라주는 인구가 1억 2천만이 넘는 곳이다.
그런 곳에서 이런 동시다발적인 대폭발이 일어났으니.
어쩌면 수천만이 아니라 1억에 가까운 인구가 사망했을지도 몰랐다.
“당장 세계 플레이어 협회에 도움을 청하게.”
디모 총리는 더 이상 고집을 부릴 때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정치적 생명 역시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이런 대참사가 일어난 이상.
디모 총리의 정치적 생명은 이미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말이다.
‘세계 플레이어 협회의 도움을 받든 어쩌든 무조건 뒷수습을 해야 한다.’
그조차 하지 못하면?
정치적 생명이 끝장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자신의 목숨이 끝장날 수도 있었다.
* * *
“뭐? 그게 사실이라고? 어떻게 그런 피해를 입을 수 있지?”
강현수는 하도 어이가 없어서 자기도 모르게 반문했다.
-예, 사실입니다. 현재 예상 사망자만 수천만이고 어쩌면 1억까지 늘어날지도 모르겠습니다.
마틴의 보고에 강현수의 얼굴이 사납게 일그러졌다.
“미치겠네. 그놈들은 왜 고아주에서 사고가 터졌을 때 연락을 안 한 거야.”
-자체적으로 해결할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아!”
강현수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터져 나왔다.
마족이 러시아를 한번 휩쓸고 갔음에도 정신을 못 차리는 놈들이 왜 이렇게 많다는 말인가?
“지금 당장 가겠다. 소환수들을 풀어놓을 수도 있으니 조치를 취하도록.”
-그렇게 하겠습니다.
마틴의 대답을 들은 강현수가 통화를 끊고.
소피아를 소환해 인도로 향했다.
‘어디 숨어 있냐?’
강현수는 사건이 벌어졌던 마하라슈트라주에 도착하자마자 매의 눈으로 사건 현장을 수색했다.
문제는?
‘더럽게 넓네.’
사건 현장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넓다는 점이었다.
이 정도 지역에서 강현수 혼자 리치를 찾는 건?
‘사막에서 바늘 찾기나 마찬가지지.’
그래도 해내야 했다.
‘어차피 전적으로 협력하겠다고 했으니까.’
강현수가 사방으로 소환수들을 풀었다.
그간 부지런히 사냥한 덕분에 인간형 소환수의 숫자만 10만에 육박하고 있었다.
‘마족을 찾아라.’
강현수의 지시를 받은 인간형 소환수들이 대대적인 수색 작전에 들어갔다.
그러나.
‘없네.’
마족은커녕 언데드 몬스터 한 마리 찾을 수가 없었다.
시간이 계속 흘러갔고.
강현수와 소환수를 포함해 세계 플레이어 협회 소속 플레이어들이 대거 투입되어 마족 수색에 나섰다.
그중에는 탐지와 추적 스킬을 가진 플레이어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아무리 찾아도 마족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장거리 공간 이동 스킬이라도 가지고 있는 건가?’
그게 아니라면?
물리적으로 이렇게 빨리 사건 현장을 벗어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때.
-큰일입니다. 인도 타밀나두주에 언데드 몬스터들이 나타났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지역에서 언데드 몬스터가 출몰했다.
“당장 가지.”
그러나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타밀나두주로 갈 수 있는 공간 이동 스킬 보유자가 없었다는 점이다.
그럼?
직접 가는 수밖에 없었다.
‘시선은 무시하고 넘어가자.’
사실 마하라슈트라주로 갈 때도 이 방법을 선택했다.
강현수가 와이번을 소환해 탑승한 후 하늘을 가로질러 사건이 벌어진 타밀나두주로 향했다.
그러면서도.
“개미 새끼 한 마리 빠져나가지 못할 정도로 포위망을 철저하게 갖추도록 하세요.”
단단히 지시를 내렸다.
-알겠습니다.
타밀나두주의 크기를 생각하면 사실상 불가능한 지시나 마찬가지였다.
‘이렇게라도 해야지.’
그래야 불가능에 도전하기라도 할 것 아니겠는가?
그나마 다행이라면.
마하라슈트라주와 타밀나두주의 거리가 비교적 가깝다는 점이었다.
뭐, 거대한 인도의 땅덩이를 생각하면 엄청난 거리였지만.
지금의 강현수로서는 더 멀지 않다는 게 고마울 따름이었다.
-인도의 모든 주에 언제든지 갈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 놔.
강현수가 공간 이동 스킬을 보유한 휘하 지휘관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이번에 잡으면 좋겠지만.’
강현수가 도착할 때 모습을 감춰 버린다면?
다시 지루한 술래잡기를 이어 가야 한다.
그때 조금이라도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면?
지금부터라도 미리미리 준비를 해 놔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