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레벨 플레이어-283화 (283/365)
  • 카우르 (2)

    러시아의 일이 마무리된 후.

    강현수는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공간 이동 스킬 보유자들과 소환수들의 오토 사냥 덕에 레벨이 실시간으로 상승하고 있었고.

    세계 플레이어 협회의 권한을 강화하는 일 역시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는 와중에.

    ‘또 몬스터 웨이브인가?’

    인도에서 몬스터 웨이브가 발생했다는 기사를 확인했다.

    ‘저 나라는 하루라도 사고가 안 터지는 날이 없네.’

    인도의 경우.

    아프리카, 중동, 남미 국가들만큼이나 던전 통제력이 떨어졌다.

    그렇지만 항상 어찌어찌 막아 내는 데 성공했다.

    인구수가 많은 만큼 플레이어의 숫자가 어마어마하게 많았고.

    플레이어 숫자가 많다 보니 당연히 랭커와 고레벨 플레이어의 숫자도 많았기 때문이다.

    종종 대처가 늦어 몬스터 필드가 발생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결국 대거 플레이어들을 파견해 몬스터 필드를 정리했다.

    ‘아마 이번에도 마찬가지겠지.’

    그렇지만.

    이런 일이 반복되는 건 곤란했다.

    ‘세계 플레이어 협회의 자체적인 판단으로 각국의 일에 개입이 가능했으면 좋겠는데.’

    아직까지 그건 무리였다.

    주권을 가진 국가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플레이어 다국적군이 허락도 없이 자국에 들어와 몬스터를 때려잡겠다는데 누가 찬성을 하겠는가?

    ‘아직 절박함이 부족해.’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군사적 약소국은.

    문제가 생기자마자 세계 플레이어 협회에 도움을 청한다.

    그러나 인도 같은 경우는.

    문제가 수시로 발생하지만, 자국의 힘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기에.

    ‘일을 질질 끌다가 피해가 커지는 경우가 빈번하지.’

    작게는 인도의 손해고 크게 보면 인류의 손해다.

    거기다 인도의 경우.

    세계 플레이어 협회에 힘을 실어 주기보다는 오히려 경계하는 태도를 취했다.

    ‘아마 이번에도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해결하려고 하겠지.’

    자국민의 피해가 얼마나 늘어나든 상관치 않고 말이다.

    ‘러시아 꼴을 봤으면 좀 정신을 차릴 줄 알았는데.’

    그건 강현수의 착각이었다.

    ‘세계 2위의 군사 대국이 저 꼴이 났는데도 정신을 못 차리는 걸 보면…….’

    직접 크게 데기 전까지는 계속 이 모양 이 꼴일 확률이 높았다.

    ‘그렇다고 그걸 기다릴 수도 없고.’

    현재로서는 미국, 중국, 러시아의 정치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

    중국과 적대적인 사이면서도 러시아와 친하고 미국에도 중립적인 태도를 유지하던 인도다.

    그러나 미국, 중국, 러시아가 강현수의 휘하에 들어오게 되며 사실상 그 뜻을 하나로 모은 만큼.

    ‘미국, 중국, 러시아가 정치적으로 압박을 가하면 오래 버티기는 힘들겠지.’

    중국, 러시아, 일본, 멸망한 북한처럼 독재자가 지배하고 있는 국가라면 오히려 상대하기 편하다.

    강현수가 직접 가서 독재자만 족치면 그만이니까.

    그러나 인도의 경우 수많은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의외로 민주주의가 엄청나게 잘 정착되어 있는 나라지.’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민주주의 국가이자.

    선거 역시 상당히 깨끗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국민들의 투표권 보장을 위해 사활을 걸고 있는 국가이기도 했다.

    투표를 할 수 있는 유권자가 있는 곳이라면?

    사막이든, 밀림이든, 섬이든, 빙하든, 산꼭대기든 무조건 찾아간다.

    차량, 배, 비행기, 헬기 같은 이동 수단을 사용하는 게 불가능하면?

    수십 킬로미터의 사막, 밀림, 산맥을 걸어서라도 가서 투표소를 설치하는 나라가 인도다.

    그것도 고작 한 명의 유권자가 가진 투표권을 보장하기 위해서 말이다.

    ‘군부 쿠데타 같은 것도 없었고.’

    오히려 정치인이 군인과 같이 찍은 사진이나 영상을 선거 홍보에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정치와 군이 분리되었다.

    수많은 문제와 모순을 내포하고 있지만.

    연방제 민주주의 국가로서의 기능은?

    ‘세계에서 손꼽힐 정도로 훌륭한 편이지.’

    그렇기에 독재자도 없고.

    대통령은 얼굴마담이며.

    총리가 실세이기는 하지만.

    ‘일본 총리처럼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것도 아니지.’

    겉으로만 다당제지 사실상 일당독재인 일본과 다르게.

    ‘인도는 진짜 다당제 국가니까.’

    강현수 입장에서는.

    그저 미국, 중국, 러시아를 닦달해 인도를 압박하는 것 말고는 당장 뾰족한 해결책이 없는 상황이었다.

    ‘아틀란티스에서 알고 지내던 인도 플레이어도 없는 상황이니.’

    그러나 당장 급할 건 없는 만큼 차분하게 기다리면 된다고 생각했다.

    강현수가 스마트폰을 내려놨다.

    인도의 몬스터 웨이브 기사는 그저 매달 일어나는 월례 행사 같은 거였으니,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한 건 강현수만이 아니었다.

    미국, 중국, 러시아를 포함한 세계 각국의 정부는 물론, 당사자인 인도 정부 역시 시골 외지에서 일어난 몬스터 웨이브 사태 따위는.

    중앙정부가 직접 나설 필요도 없이 주 정부 차원에서 금세 진압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 * *

    카우르는 죽은 몬스터들을 부활시켜 언데드 몬스터로 만들었다.

    그 후.

    피의 복수를 시작했다.

    자신과 가족들을 괴롭히고 착취하고 성폭행하고 살해했던 이들을 모조리 죽였다.

    일반인이든 플레이어든.

    브라만이든 크샤트리아든 바이샤든 수드라든.

    자신과 같은 불가촉천민이든.

    가리지 않고 모조리 죽였다.

    그렇지만.

    “크윽!”

    가슴속 깊은 곳에 잠들어 있는 분노는 전혀 풀리지 않았다.

    오히려 더 활화산 같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복수를 했지만, 고통 속에 죽어 간 가족들은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

    자신이 당했던 고통스러운 기억이 사라지지도 않는다.

    그건 모두.

    ‘이 저주받을 세상 때문이야.’

    인도라는 나라가 증오스러웠다.

    이 세계가 증오스러웠다.

    어차피 살아갈 의욕도 없고, 살고 싶은 욕구도 없다.

    차라리 죽고 싶은 마음뿐이지만.

    복수를 했다고 혼자 곱게 죽기에는…….

    ‘너무 억울하지.’

    자신을 이렇게 만드는 데 일조한 세상과 방치한 이들.

    그들 모두를 죽여 버리고 싶었다.

    ‘난 힘을 얻었어.’

    토벌대에 죽을 수도 있겠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야.’

    카우르에게는 더 이상 잃을 것도 없었고, 두려운 것도 없었다.

    “언데드 몬스터들을 토벌하자! 총공격!”

    “와아아아아!”

    그때 고아주 정부 소속 플레이어들이 도착했고.

    카우르가 만들어 낸 언데드 몬스터들을 공격했다.

    고아주 정부 소속 플레이어들 중에는 카우르가 아는 얼굴들도 몇몇 포함되어 있었다.

    “큭큭큭!”

    억눌린 웃음소리와 함께 카우르의 입가에 소름 끼치는 미소가 피어올랐다.

    -모조리 죽여라.

    카우르의 지시가 떨어졌고.

    피조물들이 창조주의 명령을 이행하기 위해 움직였다.

    -쿠오오오오!

    -크아아아아!

    “숫자만 많지, 고작 하급 언데드 몬스터일 뿐이야! 모조리 쓸어버려!”

    “와아아아아!”

    언데드 몬스터들과 인도 고아주 정부 소속 플레이어들이 정면으로 충돌했다.

    꽈아아앙!

    커다란 폭음과 함께.

    -캬아아악!

    -키우우욱!

    언데드 몬스터들이 순식간에 쓸려 나갔다.

    “좋아! 이대로 밀어붙여!”

    “숫자가 좀 많기는 하지만, 그래도 1시간 정도면 정리할 수 있겠어.”

    인도 고아주 정부 소속 플레이어들은 의욕이 넘쳐흘렀다.

    고레벨 플레이어들의 말처럼 고작해야 하급 언데드 몬스터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가끔 시독에 당하거나 눈먼 공격에 당해 사망하는 이들이 나오기도 했지만.

    말 그대로 가뭄에 콩 나는 수준에 불과했다.

    즉사하지만 않으면 힐러의 힐을 받아 순식간에 상처를 회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인도 고아주 정부 소속 플레이어들이 빠른 속도로 언데드 몬스터를 정리해 나갔다.

    “이런 녀석들에게 당하다니? 이 지역 플레이어들은 수준이 얼마나 낮았던 거야?”

    “그러게. 괜히 경험치도 못 올리고 돈도 안 벌리는 일에 끌려왔잖아.”

    “뭐, 어쩌겠어. 출동 수당 받고 넘어가야지.”

    인도 고아주 정부 소속 플레이어들은 점점 방심했다.

    그렇지만 방심했다고 해도 실력 차이가 워낙 컸기에.

    전황이 뒤집히는 일 따위는 벌어지지 않았다.

    “어, 저기 사람이 있는데?”

    그때 선두에 있던 인도 고아주 정부 소속 플레이어 하나가 카우르를 발견했다.

    “그러게. 생긴 걸 보니 불가촉천민 같은데?”

    “생긴 건 반반하네. 재미 좀 볼 수 있겠어.”

    “몬스터만 때려잡고 갈 줄 알았더니, 운이 좋네.”

    “그러게 말이야.”

    인도 고아주 정부 소속 플레이어들이 음담패설을 지껄이며 서서히 카우르에게 다가갔다.

    여성 플레이어들도 존재했지만.

    그들은 남성 플레이어들이 나누는 대화에 얼굴을 찌푸릴 뿐.

    남성 플레이어들의 행동을 막을 생각은 없어 보였다.

    “더러워.”

    “그러게. 저런 불결한 걸 어떻게 만질 생각을 하는 거야?”

    여성 플레이어들은 불가촉천민으로 추정되는 여자를 위해 나설 생각도 없었고.

    더럽고 불결하게 생각하는 것 역시.

    성폭행에 대한 혐오가 아니라 불가촉천민에 대한 혐오였다.

    씨익.

    카우르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뭐야? 저년은 왜 웃는 거야?”

    “그러게. 미소가 묘하게 소름 끼치네.”

    “미쳤나 보지.”

    “하긴 언데드 몬스터들에게 죽기 직전이었을 테니 그럴 만도 하지.”

    “미쳤건 정상이건 무슨 상관이야.”

    “그건 그렇지.”

    남성 플레이어들이 순식간에 언데드 몬스터들을 쓸어버리고 카우르를 향해 다가갔다.

    “내가 처음이다.”

    당당하게 선포한 남성 플레이어는 이들 중 가장 계급이 높았고 실력 역시 가장 뛰어났다.

    “정신이 온전했으면 더 재미있을 것 같은데, 뭐 이런 것도 나쁘지 않지.”

    남성 플레이어가 카우르를 향해 손을 뻗는 순간.

    사아아악!

    카우르의 몸에서 칙칙한 칠흑빛 마기가 피어올랐다.

    “이년 플레이어였잖아?”

    “어째서 무사했나 했더니 이유가 있었구나.”

    “조심해. 잘못하면 물린다고.”

    “내 실력 모르냐? 고작 저런 짐승한테 내가 당할 것 같아?”

    카우르의 몸에서 피어오르는 마기를 보고도 남성 플레이어들은 아무런 긴장감도 없었다.

    그러나.

    “어어?”

    “이게 무슨?”

    “말도 안 돼.”

    카우르의 몸에서 피어오른 마기의 농도와 양이 그들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치솟아 오르자.

    남성 플레이어들은 공포로 몸을 떨 수밖에 없었다.

    자신들의 마력으로는 감히 감당할 수조차 없는 수준의 마기에 압도되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들은 귀환자가 아니었고.

    그렇기에 마력과 마기의 차이를 구분할 능력조차도 없었다.

    “잘 가.”

    카우르의 짧은 한마디와 함께.

    퍼어어어어엉!

    플레이어들의 발밑에 있던 박살 난 언데드 몬스터들의 시체가.

    동시다발적으로 폭발했다.

    시체 폭발.

    카우르가 피와 살육의 네크로맨서로 전직한 뒤 얻은 주력 스킬 중 하나.

    마기 소모가 꽤 극심하기는 하지만.

    그 파괴력만큼은 발군이었다.

    족히 수천에 달했던 플레이어들이 제대로 된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모조리 즉사해 버릴 정도로 말이다.

    ‘다 죽은 건 아니네?’

    카우르가 흥미로운 표정을 지으며 전신이 피범벅으로 변해 거친 숨을 내쉬고 있는 플레이어를 바라봤다.

    그 플레이어는 카우르 향해 손을 뻗었던 바로 그 남성 플레이어였다.

    그 외에도 카우르의 근방에는 목숨을 부지한 플레이어들이 소수나마 존재했다.

    ‘근처에 시체가 많지 않았구나.’

    시체가 많지 않았기에 시체 폭발 스킬의 위력이 감소했고.

    그렇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건, 축복이 아닌 저주였다.

    랭커 수준의 힐러가 아니면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부상이 심각했기 때문이다.

    “병……원…….”

    “힐러! 힐러 어딨어!”

    “쿨럭!”

    “나, 나 먼저 좀 살려 줘.”

    살아남은 플레이어들이 도움을 요청했지만.

    그들 주변에 있는 사람은 카우르뿐이었다.

    ‘살아 있는 인간을 재료로 키메라 언데드를 제조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생겼네.’

    평범한 인간은 키메라 언데드 제조의 재료에 적합하지 않다.

    그러나 플레이어는?

    최고의 재료 중 하나였다.

    그러나 사망한 플레이어는 시체가 금방 사라져 버린다.

    그렇지만 살아 있는 플레이어는?

    멀쩡히 신체가 남아 있다.

    ‘저 녀석은 팔이 쓸 만할 것 같고. 저 녀석은 눈이 괜찮겠네.’

    콰직!

    우직!

    카우르는 시체가 사라지는 걸 방지하기 위해 플레이어들의 숨을 붙여 놓은 상태에서 재료 채집을 시작했고.

    “아아아악!”

    “살려 줘!”

    살아남은 플레이어들은.

    차라리 한 번에 죽는 게 백만 배는 나았을 것 같은 고통을 느끼며 하나둘씩 죽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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