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의 대가 (4)
“당신 뭐야?”
“도대체 어떻게 여기 들어온 거지?”
“경호가 얼마나 개판이면!”
“경호원! 당장 저자를 끌어내!”
난리가 났다.
부총리와 장관들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고.
참모들도 크게 경호원을 부르짖었다.
그러나 아무리 목소리를 높여도.
회의실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플레이어인가?”
포틴 대통령이 강현수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렇다.”
강현수의 말을 러시아 플레이어 출신 소환수가 번역했다.
“한국인이군. 이건 러시아의 일이지 한국이 개입할 일이 아니야. 그러니 한국이라는 나라가 지도에서 사라지는 걸 보고 싶지 않다면, 지금이라도 조용히 물러나게.”
포틴 대통령이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으로 강현수에게 강력한 경고를 날렸다.
“너, 아직 상황 파악을 제대로 못 하고 있구나? 그건 네가 나한테 할 말이 아니라, 내가 너한테 해야 할 말이야. 감옥에서 무기수로라도 목숨 부지하고 싶으면, 조용히 물러나. 괜히 소란 피우려고 하면 총살당하는 수가 있으니까.”
강현수의 말에 포틴 대통령이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미국에게 얼마를 받고 있지? 그 보수의 백 배를 지금 즉시 지급하지. 그러니 그만 물러나 주게.”
포틴 대통령이 화를 꾹 눌러 참으며 말했다.
“내가 미국의 꼭두각시 같아?”
강현수가 황당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니, 강현수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알면서 왜 갑자기 미국을 거론한다는 말인가?
‘한국을 지도에서 사라지게 하겠다는 말에 신경을 안 써서 그런가?’
강현수 입장에서는 설사 핵미사일이 발사되더라도 완벽하게 막아 낼 자신이 있어서 그런 거지만.
포틴 대통령 입장에서는 그걸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니 당연히 강현수를 한국어를 쓰고 한국인의 외형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조국인 한국의 안위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매국노로 볼 수밖에 없었고.
포틴 대통령이 봤을 때, 그런 매국노를 파견해 자신에게 위해를 가할 만한 국가는.
미국밖에 없었다.
“부정하고 싶다면 부정해도 상관없네. 그러니 말하게, 얼마를 원하나?”
포틴 대통령은 미국이 만약을 대비해 한국 국적의 아시아인 플레이어를 파견했다고 생각했다.
“감당할 수 있겠어? 날 만족시키려면 러시아를 통째로 팔아서 가져다줘도 부족할 텐데?”
강현수의 말에 포틴 대통령의 얼굴이 사납게 일그러졌다.
“뭐, 순순히 물러날 생각은 없어 보이네.”
직접 찾아와서 스스로 물러나라고 권유하기는 했지만.
‘그럴 리가 없지.’
강현수도 애초에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스스로 물러날 때를 아는 이라면.
‘독재자라고 불리지도 않았겠지.’
위정자들이 권력에서 멀어지는 경우는 강제로 권력을 빼앗길 때뿐이다.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국민을 희생시킨 인물이 내 말 한마디에 개과천선할 리가 없지.’
그럼 남은 건?
강제로 개처럼 끌려가 권좌에서 자의가 아니라 타의로 내려오는 것뿐이었다.
“그럼 내가 알아서 법의 심판대 위에 세워 줄게.”
스윽.
강현수가 포틴 대통령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공간 이동 스킬 보유자를 통해 포틴 대통령과 그 수족들을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로 강제 압송할 계획이었다.
“그건 힘들 것 같군.”
포틴 대통령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덜컹!
회의실의 문이 열리고 일단의 플레이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저놈은 뭐야?”
“각하가 위험하시다!”
상황을 파악한 플레이어들이 강현수를 향해 달려들었다.
‘회의실 내부와 외부를 완벽하게 차단했는데?’
강현수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포틴 대통령을 주시했고.
포틴 대통령의 눈이 시계로 향해 있는 걸 확인했다.
‘정해진 시간이 되면 플레이어들이 회의실 내부를 순찰하는 시스템을 구축해 놨나 보네.’
강현수 같은 존재가 회의실 내부에 잠입할 가능성을 배제해 놓지 않았던 모양이다.
‘하긴.’
북한과 중국이 플레이어 쿠데타로 무너지고.
일본이 수많은 테러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이니.
‘이 정도 대비는 해 놨을 수도 있겠지.’
더군다나 지금은.
정권을 빼앗길 수도 있는 위기 아니겠는가?
‘표정이 변했네.’
조급함이 엿보였던 포틴 대통령의 얼굴이 자신만만하게 변했다.
플레이어들이 들어왔으니, 강현수 정도는 손쉽게 제압이 가능하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착각도 유분수지.’
회의실 내부와 외부의 소통을 막은 건.
그저 조용히 포틴 대통령과 그 심복들을 데리고 가기 위해서였을 뿐.
밖에 있는 플레이어들이 두려워서가 아니었다.
‘데리고 갈 생각도 없는 녀석들까지 제압할 필요성을 못 느끼기도 했고.’
포틴 대통령과 그 심복을 제외한 자들은 그저 잔챙이일 뿐이다.
‘바빠서 나중에 처리하려고 했더니.’
잔챙이들은 나중에 처리하면 그만이라 당장은 방치해 놓을 생각이었는데.
‘이러면 이야기가 다르지.’
자기들이 알아서 지옥 불구덩이에 빠져들고 싶다고 아우성인데 어쩌겠는가?
그냥 데려가야지.
콰콰콰콰콰!
강현수의 손에서 핏빛 오러가 피어올랐고.
사아아악!
그와 동시에 플레이어들이 강현수에게 날렸던 공격 스킬들이 봄 햇살을 만난 눈처럼 녹아내렸다.
그 후에는?
휘익!
강현수가 가볍게 손을 휘둘렀고.
그물처럼 퍼져 나간 핏빛 오러가 날카로운 예기 대신 몽둥이 같은 둔탁함으로 무장한 채.
퍼억! 퍼억!
“커억!”
“아악!”
러시아 플레이어들을 순식간에 때려눕혔다.
순식간에 상황이 정리되자, 고요한 정적이 찾아왔다.
자신감을 회복했던 포틴 대통령과 그 심복들은.
입을 쩍 벌린 상태로 반쯤 넋이 나가 버렸다.
“이제 곱게 가자.”
강현수의 말에.
“러시아의 랭커들이 어찌 이렇게 손쉽게.”
포틴 대통령이 허망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실력이 좀 있어 보이기는 했지.’
러시아의 랭커들이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아무리 랭커라고 해도 강현수 앞에서는 어린아이나 마찬가지인 존재일 뿐.
“자네, 정말 강하군. 원하는 걸 말해 보게. 내 무엇이든지 들어주겠네. 그러니 미국 대신 나를 좀 도와주게.”
포틴 대통령이 다시금 강현수에게 딜을 걸었다.
‘아직도 포기를 못 했네.’
강현수의 표정이 심드렁하게 변했다.
‘이게 정치인들의 본성이기는 하지.’
권력을 절대 포기하지 못한다.
이미 모든 게 끝난 상황에서도, 강제로 끌려 내려오는 순간까지도.
‘포기를 모른단 말이지.’
그러나 포틴 대통령이 포기를 하든 말든 그건 강현수에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강현수는 포틴 대통령과 그 심복들 그리고 러시아 랭커들을 모스크바로 압송하기만 하면 된다.
그럼 뒤처리는?
총리 드리트미와 군사령관 미하엘이 알아서 할 것이다.
강현수가 소환수들을 풀어 포틴 대통령과 그 심복들 그리고 러시아 랭커들을 포박했다.
그때였다.
“역시 사냥개와 대화를 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었군. 버틀러 대통령과 통화를 하게 해 주게.”
포틴 대통령이 표정을 굳히며 강현수에게 요구했다.
‘끈질기네.’
그냥 뒤통수를 한 대 후려쳐서 기절시킬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버틀러와 통화를 하고 현실을 인지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
원한다면 진구평과도 통화를 하게 해 줄 수 있었다.
자신이 빠져나갈 방법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아무리 권력욕이 넘쳐흐르는 독재자라도 포기하지 않겠는가?
“좋아.”
강현수가 스마트폰을 들어 버틀러 대통령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다.
-러시아에서의 일은 잘 끝나셨습니까?
버틀러 대통령이 공손한 태도로 강현수의 전화를 받으며 물었다.
“다 끝나 가. 그보다 포틴 대통령이 자꾸 헛소리를 해서 말이야.”
강현수가 스마트폰을 포틴 대통령 앞으로 가져갔다.
“버틀러 대통령, 플레이어를 동원해 타국의 국가 원수를 납치하는 건 미국이라는 나라가 할 행동이 아니네. 그러니 그만두게. 이번 일이 알려지면 미국의 명예가 추락할 걸세. 또 앞으로의 일에 대해서는 내가 최대한 양보하지. 그러니 날 풀어 주게. 그게 자네에게도 좋은 일 아닌가?”
여기서 포틴 대통령이 체포되고 러시아의 권력이 총리 드리트미와 군사령관 미하엘에게 몰리면?
사실 미국에게도 좋을 건 없다.
아무리 경제력이 바닥이라도.
이번 일로 큰 타격을 입었어도.
러시아는 러시아였다.
미국 입장에서는.
여기서 포틴 대통령이 풀려나서 러시아가 둘로 쪼개지는 게 더 큰 이득이었다.
혼란을 틈타 미국이 볼 수 있는 이득이 어마어마했기 때문이다.
-그렇기는 하지. 그러나 그건 내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네.
“미국 대통령인 자네가 결정할 수 없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그분께서는 러시아의 혼란을 바라지 않으시네. 오히려 빠르게 종결되기를 원하시지. 나는 그저 그분의 뜻을 따를 뿐이네.
“그분이라는 도대체 누구를 말하는 건가?”
포틴 대통령이 혼란으로 가득한 표정으로 물었다.
-자네 앞에 계시지 않은가?
포틴 대통령이 불신 가득한 표정으로 강현수를 바라봤다.
-그분께 감사하게. 그분이 아니었다면, 러시아는 이미 멸망했을 거네.
“지금 무슨……?”
포틴 대통령은 버틀러 대통령의 말을 듣고도 아직 현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뭐, 이 정도면 할 만큼 했지.’
기왕이면 버틀러 대통령과 통화를 하고 다 포기하고 순순히 협조했으면 했는데.
‘역시 독재자의 권력욕을 끊는 건 무리였나 보네.’
강현수는 그냥 말끔하게 포기하기로 했다.
그래서 소피아를 불렀고.
“모스크바로 간다.”
“네, 알겠습니다.”
강현수는 소환수들을 통해 포박한 이들과 함께 모스크바로 이동했다.
모스크바에 도착한 강현수는 포틴 대통령과 그 심복들을 총리 드리트미와 군사령관 미하엘에게 넘겼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총리 드리트미는 깍듯이 허리를 숙였고.
“앞으로 견마지로를 다하겠습니다.”
군사령관 미하엘은 사자성어까지 쓰며 강현수 앞에 넙죽 엎드렸다.
“이럴 수가.”
그 광경을 목격한 포틴 대통령은 완전히 넋이 나가 버렸다.
끝까지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다.
아니, 인정할 수 없었다.
그러나 새로운 러시아의 권력자 총리 드리트미와 군사령관 미하엘이 강현수에게 납작 엎드리는 걸 보자.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살려 주십시오. 앞으로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포틴 대통령은 이런 상황에서도 권력욕을 포기하지 못했다.
“드리트미나 미하엘보다 제가 더 효율적으로 러시아를 통제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제발 기회를 주십시오.”
포틴 대통령이 강현수에게 애걸복걸했다.
“아직도 헛소리를 하네. 알아서 처리해.”
강현수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자리를 떴다.
자신의 권력을 위해 국민들의 피해를 방관한 인물.
수도와 국민들을 버리고 자신만 살겠다고 도망친 인물.
수십 년간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억압하며 권력을 독점한 인물.
강현수는 그런 이에게 새로운 기회를 줄 생각이 없었다.
* * *
“오랜만이네.”
강현수가 적염제 도르초프를 바라보며 말했다.
“네, 정말 오랜만에 뵙습니다.”
“이반과 이고르도 그간 잘 지냈어?”
강현수의 물음에.
“네, 잘 지냈습니다.”
이반 야멜리코넨이 환한 얼굴로 대답했고.
“뭐, 그렇습니다.”
광혈제 이고르는 약간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사실 당연했다.
이반은 강현수에게 큰 은혜를 입은 인물이지만.
이고르는?
강현수에게 얻어터진 기억밖에 없었으니까.
“언제쯤 지구에 도착한 거야? 그리고 왜 그동안 잠잠했던 거야?”
강현수가 궁금했던 점을 물었다.
도르초프, 이반, 이고르.
셋 모두 아틀란티스에서 이름을 떨치던 최상위 네임드 플레이어였고.
당연히 지구에서도 높은 자리에 올랐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세 사람은 강현수의 정보력으로도 파악이 힘들 만큼 조용히 살았다.
미국 CIA와 중국 국안부의 정보력이 러시아에서 큰 힘을 발휘하지는 못한다고 하지만.
세 사람이 일반인도 아니고 플레이어로 살고 있다는 걸 고려하면.
상당히 의아한 일이었다.
“그게…….”
강현수의 물음에 도르초프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그간의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