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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레벨 플레이어-274화 (274/365)

러시아의 오만

하급 마족에 불과했던 리치 아르타스는 짧은 시간 동안 급격히 성장할 수 있었다.

이게 다 몬스터와 러시아 플레이어, 군인 들이 수도 없이 죽어 나가 준 덕분이었다.

뭐, 몬스터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많기는 했지만.

‘그건 중요한 게 아니지.’

마족인 리치 아르타스에게 몬스터라는 존재는?

그저 유용한 도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마기를 다룰 수 있는 마족과 마력을 다루는 몬스터는 격이 다르지 않은가.

‘사실 다른 마족도 마찬가지지만.’

리치 아르타스에게 가장 중요한 건 자기 자신이었다.

다른 마족이 죽어 자신의 양분이 된다면?

기꺼이 웃는 얼굴로 뒤통수에 칼을 꽂아 줄 수 있었다.

-큭큭큭!

리치 아르타스의 입에서 기이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쥐새끼처럼 숨어 있는 건 이제 끝이다.’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족히 몇천만 단위에 달하는 몬스터들의 죽음과 수만에 달하는 인간들의 죽음.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의 향연 덕분에.

하급 마족인 리치 아르타스는 무려 자작급 마계 귀족까지 단시간에 급성장할 수 있었다.

이제는 움직일 때였다.

새로운 차원 게이트의 모습이 끊겼고.

기존의 차원 게이트는 던전으로 변모했다.

필드에서 전투가 벌어지지 않으면?

리치 아르타스도 시체의 사기를 수급할 수가 없다.

물론 모든 차원 게이트가 던전화된 것은 아니다.

그런 만큼 차분히 기다려도 추가적인 승급이 가능할 수도 있다.

단점이 있다면?

‘그건 너무 느리지.’

지금처럼 몸을 숨긴 상태로 마계 자작에서 마계 백작으로 승급하는 데 필요한 마기를 모으려면?

몇 년 수준이 아니라, 몇십 년이 걸릴지도 몰랐다.

리치 아르타스는 그렇게 오랜 시간을 기다릴 생각이 없었다.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

하급 마족이 마계 귀족이 된 것도 기적 같은 일이다.

그러나 상위 마계 귀족이 되는 건?

기적이 일어나도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지금은 가능하지.’

현재 이 차원에 넘어온 존재는 몬스터뿐.

마족은 자신이 유일무이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하나둘 마족들이 넘어오겠지.’

그럼 지금처럼 자신 혼자서 꿀을 빨 수가 없었다.

‘이 차원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를 절망과 공포에 빠트려 죽인다.’

그러면?

단순히 상위 마계 귀족이 되는 수준이 아니라.

‘마계 대공도 가능하다.’

리치 아르타스의 야망이 불타올랐다.

그러나 리치 아르타스는 결코 어리석은 존재가 아니었다.

‘굳이 저놈들과 정면 승부를 할 필요는 없지.’

인간들의 플레이어와 군대는 강하다.

강한 인간들을 학살하면?

더 빠르게 강해질 수도 있지만 그만큼 자신도 위험해진다.

‘괜한 모험을 할 필요는 없지.’

리치 아르타스가 원하는 건?

안전하고 빠르게 마계 백작이 되는 것이지, 위험한 도전과 아슬아슬한 모험을 하면서 힘겹게 마계 백작이 되는 것이 아니었다.

‘어느 나라로 가는 게 좋을까? 러시아, 중국, 인도?’

리치 아르타스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간 단순히 시체의 사기와 마이너스한 감정을 통해 힘만 키운 게 아니었다.

망자의 백을 통해 기억을 잃고.

지구라고 불리는 차원의 정보를 최대한 많이 습득하기 위해 노력했다.

‘러시아가 좋겠군.’

인구는 중국이 많지만.

그만큼 플레이어도 많다.

다른 나라들은?

‘아군이 많지.’

그에 반해 이 러시아라는 나라는?

‘독불장군 느낌이 강하다.’

자존심 때문에 자국의 소란을 타국에 알리지도 않은 나라가 아닌가?

거기다 유일한 동맹국이라고 할 수 있는 같은 공산권 국가인 중국과도 사이가 틀어졌다.

중국에서 벌어진 플레이어 쿠데타로 인한 정권 교체 덕분이었다.

이곳이라면?

‘빠르고 안정적으로 힘을 키울 수 있다.’

리치 아르타스 입장에서 가장 피해야 할 일은.

마계 백작으로 승급하지도 못했는데, 세계 각국의 랭커들이 벌 떼처럼 달려들어 자신을 공격하는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라면?

‘그럴 일 따위는 없겠지.’

자존심 때문에 섣불리 타국에 도움을 요청하지도 않을 것이고.

만약 타국이 긴급 상황이라고 판단하고 제대로 된 합의도 없이 러시아의 국경을 넘는다면?

‘오히려 자국의 영토를 침공당했다며 반격할 놈들이지.’

자존심 강한 바보가 그나마 하나 있던 유일한 친구도 잃었다.

지구촌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전 세계가 하나로 연결되어있는 지구에서.

‘이런 외톨이 국가를 찾기는 쉽지 않지. 최종 목적지는 모스크바다.’

리치 아르타스가 계획과 최종 목적지를 설정했다.

‘마음 같아서는 처음부터 모스크바를 노리고 싶었지만.’

아무리 군대와 플레이어를 동남쪽으로 동원했다고 해도.

자국의 수도이자 인구 천만이 넘는 대도시인 모스크바를 텅 비워 놨을 리가 없었다.

‘저놈들이 움직이기 전에 내가 먼저 도착해야 한다.’

현재 러시아의 주력군과 최상위 플레이어들은 러시아 동남쪽에 머물고 있다.

‘속도전을 벌이면?’

러시아의 플레이어와 군대가 자신의 꽁무니만 쫓아다니게 만들 수 있었다.

수많은 인간들을 학살한다.

그러면?

죽은 인간들의 시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사기.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닥뜨리게 된 상황에서 오는 공포와 절망.

‘그 모든 게 나의 힘이 되는 거지.’

최선을 다해 이동한 러시아의 플레이어와 군대가 도착하면.

‘던전에서 풀려난 몬스터들을 투입해 시간을 벌고 도망치면 그만이야.’

이걸 무한 반복하며 러시아 전역을 초토화시키다 보면?

‘자연스럽게 승급할 수 있겠지.’

리치 아르타스가 은신 스킬을 쓴 상태로.

러시아의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 * *

‘정말 순수하게 자력으로 막아 낼 줄이야.’

강현수는 러시아의 저력에 적잖이 놀랐다.

‘역시 세계 2위의 군사 강국답네.’

군대를 동원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어쨌든 갑작스럽게 늘어난 고레벨 차원 게이트와 레벨 상승 던전을 훌륭히 틀어막았다.

‘러시아가 중국에 도움을 요청했으면 하기는 했는데.’

그랬으면?

강현수가 오토 사냥을 돌릴 수 있는 던전의 수도 자연스럽게 늘어났으리라.

‘뭐, 지금도 충분하기는 하니까.’

러시아에 있는 던전은 나중에 차지해도 그만이기는 했다.

“현수야.”

그때 함께 커피숍에 있던 송하나가 강현수에게 말을 걸었다.

“어, 미안.”

잠시 다른 생각에 정신이 팔려 송하나를 방치해 버렸다.

“이번 일 러시아가 자체적으로 잘 해결했다고 하지 않았어?”

“그랬지.”

강현수의 대답에.

“이것 좀 봐.”

송하나가 뉴스 기사가 떠 있는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몬스터 웨이브?”

기사는 러시아에 몬스터 웨이브가 발생해 적잖은 피해가 발생했다는 내용이었다.

“지금까지 잘하더니 막판에 사고를 쳤나 보네.”

“그래도 규모는 그리 크지 않은 모양이야.”

“그러네. 또 애초에 사고가 터진 지역도 원래 고생하던 곳이 아니고.”

“플레이어 전력을 너무 동쪽에 배치해서 문제가 생겼나 봐.”

“그러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진구평한테 한번 연락해 봐야겠다.”

“러시아가 받아들일까?”

“안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기는 하지.”

사실 강현수 입장에서는.

러시아가 YES를 하든 NO를 하든 큰 상관은 없다.

그냥 가고 싶으면 가고, 가기 싫으면 안 가면 그만이니까.

러시아의 허락 따위?

강현수에게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렇지만.

‘굳이 괜찮다는 놈들 도울 필요는 없지.’

강현수의 소환수 덕분에 대한민국, 신한민국, 중국, 일본, 대만, 몽골이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았다고는 하지만.

완벽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강현수도 사냥을 나갈 때마다.

대한민국, 신한민국, 중국, 일본, 대만, 몽골 중 도움이 필요한 곳으로 간다.

도움이 필요하다고 사정사정하는 녀석들이 여섯 명이나 있는데.

굳이 도움이 필요 없다고 버티는 건방진 녀석을 찾아가서 도울 필요는 없었다.

“그냥 기다려. 정말 다급하면 중국한테 도와 달라고 하겠지.”

송하나의 말에.

“그러려고.”

강현수도 선선히 동의했다.

“여력이 있으니까 고집 피우는 거잖아. 정말 감당하기 힘들어지면, 그때는 자존심이고 뭐고 상관없이 도와 달라고 할걸.”

송하나의 의견은 일리가 있었다.

“아마 그러겠지?”

강현수의 물음에.

“당연하지.”

송하나가 당당하게 대답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강현수와 송하나의 의견이 일치했다.

그러나.

두 사람이 한 가지 간과한 것이 있었다.

그건 바로 정치가.

특히 독재자들은 국가 차원의 이익과 손해보다 독재자 개인의 정치적인 입지와 자존심 그리고 이익과 손해를 더 중요시한다.

* * *

‘예상대로구나.’

리치 아르타스는 언데드 몬스터들을 소환해 인간들의 도시를 공격했다.

그와 동시에 던전을 파괴하고 차원 게이트를 자유롭게 풀어 줬다.

“아아아악!”

“살려 줘!”

수많은 인간들이 고통 속에 죽어 나가며 뿜어내는 마이너스한 감정.

죽은 시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사기.

이 모든 게 리치 아르타스의 힘이 되어 주고 있었다.

그러나 리치 아르타스는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모습은 감추고 언데드 몬스터만을 전면에 내세웠다.

‘자체적인 힘을 보여서 감당 불가능한 수준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하지.’

너무 압도적인 수준의 무위를 선보이면?

러시아가 화들짝 놀라 타국에 도움을 청할 수도 있다.

그건 곤란했다.

어디까지나 러시아의 무력으로 자체 해결이 가능한데.

‘조금 뒤처졌다는 느낌을 받아야지.’

리치 아르타스의 학살이 끝나 갈쯤.

서쪽에서 일단의 플레이어들이 무서운 속도로 달려드는 모습이 보였다.

‘무리하면 저 정도는 쓸어버릴 수 있겠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다.

이 러시아라는 나라에는.

무리하지 않고도 손쉽게 사냥할 수 있는 먹잇감들이 널려 있었으니까 말이다.

‘회수를 시작해 볼까.’

리치 아르타스가 언데드 몬스터들에게 부여했던 마기를 거둬들였다.

그러자.

털썩! 털썩!

언데드 몬스터들이 본래의 모습인 시체로 되돌아갔다.

-저놈들을 죽여라.

리치 아르타스가 던전이 파괴되며 풀려나온 몬스터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캬오오오오!

크아아아앙!

몬스터들이 플레이어들을 향해 덤벼들었다.

‘모두 죽겠지.’

리치 아르타스가 나서지 않는 상태에서 몬스터들이 플레이어들을 감당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러나 상관없었다.

던전에서 풀려나온 몬스터들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리치 아르타스가 무사히 이곳을 빠져나가 다른 도시에서 학살을 자행할 때까지 플레이어들의 발을 묶어 주는 것이었으니까 말이다.

* * *

“해결했나?”

러시아의 독재자 포틴 대통령의 물음에.

“예, 물론입니다!”

각부 장관과 군사령관 그리고 포틴 대통령의 참모 들이 힘차게 대답했다.

“해외 반응은?”

“제대로 된 피해 상황이 알려지지 않은 상태라, 그렇게 소란스럽지는 않습니다.”

“불행 중 다행이군.”

갑작스러운 언데드 몬스터의 출몰과 던전 파괴로 인해.

인구 1백만 명이 살아가는 대도시 크라스노야르스크가 죽음의 도시로 변했다.

이건 해외 반응을 막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내 반응을 막는 것도 중요했다.

그렇지만.

‘언젠가는 퍼져 나갈 수밖에 없겠지.’

인구 1백만이 살아가는 도시가 몬스터들에게 점령당해 엄청난 학살극이 벌어지다니?

망신도 이런 개망신이 없었다.

이번 일이 알려지면?

개헌 국민투표와 종신 집권은 물 건너가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개헌 국민투표 전까지는 어떻게 든 정보를 틀어막아야 한다.’

그리고.

“이런 일이 두 번 다시 벌어져서는 안 되네.”

사고 하나 터진 것도 막기 빠듯한데.

추가 사고가 터지면 곤란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모든 몬스터를 토벌했고. 차원 게이트도 다시 던전화 작업 중입니다.”

“동남쪽에 투입했던 플레이어들도 속속 복귀 중이니,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믿어 보지.”

포틴 대통령은 이번 일을 일종의 사고라고 생각했다.

동남쪽 소요에 너무 많은 플레이어와 군사력을 투입했기에 생긴 사고 말이다.

‘누구를 희생양으로 삼아야 하나?’

아무리 사고라고 해도 인명 피해가 너무 컸다.

당연히 이번 일에 대해 자기 대신 책임질 존재가 필요했다.

“큰일입니다!”

그때 포틴 대통령과 각부 장관, 군사령관 그리고 참모 들이 있는 회의실의 문이 벌컥 열렸다.

“무슨 일인가?”

포틴 대통령이 얼굴을 찌푸리며 물었다.

“노보쿠즈네츠크에 언데드 몬스터들이 나타났습니다!”

비명 같은 외침이 회의실에 울려 퍼지는 순간.

포틴 대통령을 포함한 각부 장관과 군사령관 그리고 참모 들의 얼굴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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