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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족 강림 (2)

그렇지만 성급하게 움직일 생각은 없었다.

리치는 지성이 있는 존재였고.

당연히 욕심에 빠져 이루기 불가능한 목표에 성급히 도전할 정도로 어리석지 않았다.

‘조용히 몸을 숨기고 힘을 키운다.’

뼈다귀로 이루어진 육신으로는.

첩자 노릇을 하거나 정보를 캐는 것은 무리다.

오히려 얌전히 처박혀 있는 게 장수의 지름길이었다.

고작 하급 마족에 불과한 리치 아르타스의 전투력은.

상위종 몬스터에게도 밀릴 정도로 보잘것없었다.

일반적인 마족이었다면?

직접 피의 살육을 저지르지 않으면 힘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언데드인 리치 아르타스는 사정이 달랐다.

수많은 시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사기만 있으면.

굳이 피의 살육을 저지르지 않아도 충분히 힘을 키울 수 있었다.

장소가 좋지 않았다면 꽤 골머리를 썩었겠지만.

이곳은.

‘사방에 사기가 넘쳐흐른다.’

몬스터가 죽어 가며 뿜어내는 사기.

러시아 소속 플레이어와 군인 들이 전사하며 뿜어내는 사기.

이 모든 게 리치 아르타스에게는 최적의 성장 조건이었다.

거기다.

‘몬스터와 플레이어의 시체로 언데드 몬스터를 만들고 사기를 끌어모아 저주를 내리면?’

빠르게 힘을 키울 수 있다.

리치는 마법사이자 소환사인 존재.

지금 당장은 보잘것없지만.

충분한 시간과 사기가 공급되면?

얼마든지 강해질 수 있고, 언데드로 만들어진 군대를 만들 수도 있다.

‘몸을 사려야 한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지만.’

승급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는 없다.

힘겹게 차원 게이트를 넘어온 이상.

단순히 중급 마족이나 상급 마족으로 성장하는 수준에서 만족할 생각은 없었다.

‘시간이 꽤 걸리겠지만.’

무리하지 않고 몸을 숨긴 상태에서 꾸준히 힘을 키운다면?

‘충분히 연속 승급이 가능하다.’

잘하면.

‘마계 귀족으로 승급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거기다 이곳은 고작해야 몬스터들을 상대로 버거워하고 있는 차원.

마계 귀족 정도의 힘만 손에 넣으면.

혼자서 이 차원 전체를 점령해 주인에게 바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해 보였다.

‘흐흐흐흐.’

하급 마족에 불과한 조무래기 리치 한 마리가 야망에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일단은 최대한 얌전히.’

있는 듯 없는 듯.

최소한의 저주만을 사용해 몬스터와 인간 들의 전투를 격렬하게 만들 생각이었다.

* * *

‘몽골이랑 대만이 드디어 받아들였네.’

강현수는 빠르게 힘을 키우고 있었고.

그런 만큼 고레벨 차원 게이트와 레벨이 상승하는 던전의 출현 빈도가 높아졌다.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리고 있었다.

그러나 강현수는 절대 방심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항상 해외 소식에 귀를 열고 있었고.

특히 러시아, 몽골, 대만, 베트남, 필리핀 같은 인접 국가를 향해서는.

미국의 CIA와 중국의 국안부를 이용해 정보를 수집했다.

그 결과.

몽골과 대만이 갑자기 늘어나는 고레벨 차원 게이트와 레벨이 상승하는 던전의 존재로 인해 점점 버거워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그동안은 계속 거절하더니.’

강현수는 미국의 이름을 빌려 몽골과 대만에 지원을 해 주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몽골과 대만이 계속 자국의 힘으로 해결이 강하다며 고집을 부렸다.

그러다 마침내 이번에 백기를 든 것이다.

‘피해는 최대한 막아야지.’

강현수는 힘을 잃지 않은 상태로 지구로 귀환한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다.

다른 플레이어라면 몰라도.

강현수 같은 규격 외의 존재는 힘을 보존하는 게 이득이었다.

부작용이 있기는 하지만 실보다는 득이 훨씬 많았다.

그렇지만.

너무나 당연하게도 부작용에 시달리는 타국들을 방치할 생각 따위는 없었다.

오히려 최대한 도움을 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러시아가 조용하네?’

이번 사태에 영향을 받은 국가는.

대한민국, 신한민국, 중국, 일본, 몽골, 대만으로.

대한민국의 서울을 중심으로 원을 점점 크게 그려 나가면 걸리는 국가들이다.

그리고 그중에는 당연히.

‘러시아의 영토도 포함이 되어 있을 텐데.’

오히려 몽골이나 대만보다 러시아가 더 많은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다.

한데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한창 바쁜 진구평까지 동원해서 중국 이름으로 도움을 주겠다며 은근슬쩍 찔러봤는데.

‘씨알도 안 먹혔지.’

친분을 쌓기는커녕 코웃음을 치며 러시아를 뭐로 보는 거냐며 한 소리 들었다고 한다.

‘뭐, 알아서 잘 해결하고 있으니 그런 소리를 하는 거겠지.’

러시아는 소련의 후신이고.

경제력으로는 몰라도 군사력으로는 여전히 세계 2위의 초강대국이다.

또 미국의 CIA와 중국의 국안부가 정보 수집을 위해 힘을 쓰기 힘든 나라이기도 했다.

‘알아서 할 수 있다는 놈들은 내버려 두자.’

지금 소환수로는.

러시아 말고 대한민국, 신한민국, 중국, 일본, 몽골, 대만을 지원하는 것만으로 빠듯했다.

오토 사냥을 돌리는 소환수를 조금 줄이든가.

강현수가 직접 가서 해결해 주면 그만이기는 하지만.

‘평안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이지.’

러시아가 싫다는데 어쩌겠는가?

거기다.

‘러시아가 군사력이나 플레이어 전력이 부족한 나라도 아니고.’

부족하기는커녕 오히려 세계 최상위권이었다.

‘알아서 하겠다고 했으니까, 스스로 잘하겠지.’

강현수는 자신감 넘치는 러시아를 믿어 보기로 했다.

썩어도 준치 아니겠는가?

* * *

“와, 이제 살겠네.”

“그러게. 군대 지원이 확실히 다르기는 다르네.”

러시아 최상위권 플레이어들은 러시아군이 지원을 온 후로 하루 3시간 쪽잠을 자는 신세에서 겨우 벗어날 수 있었다.

플레이어가 국가의 국력을 나타내는 지표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민간인 신분이고.

역시 각국의 진정한 무력의 상징은 군대 아니겠는가?

러시아군은 세계 2위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엄청난 화력을 보여 줬다.

게릴라전이라면 모를까.

드넓은 평야에서 펼쳐지는 대대적인 화력전은?

플레이어들보다 군대가 확실히 압도적으로 강했다.

뭐, 랭커급 플레이어들이 진심으로 나오면 조금 이야기가 다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체력과 마력의 한계가 존재하는 플레이어와.

막대한 비용과 생산력만 감당할 수 있다면, 거의 무한대로 포격이 가능한 현대의 군 화력은 지구력 자체가 달랐다.

“처음에는 좀 불안했는데 말이야.”

“하긴 나도 미사일이 유턴해서 돌아와 폭발할 때는 식겁했다니까.”

“어디 그것뿐이야? 탱크랑 트럭은 왜 자꾸 퍼지는 거야?”

“포격 정확도가 생각보다 떨어져서 식겁한 적도 많았지.”

러시아군이 처음 투입되었을 때는?

온갖 사고와 실수의 연발이었다.

뭐, 지금도 가끔은 그런다.

그렇지만.

어찌 되었든 러시아군은 실전을 겪으며 점점 전투 숙련도가 올라갔고.

막강한 화력 지원은.

러시아 플레이어들에게 전에 없던 여유를 선물해 주었다.

“그런데 군대 피해가 꽤 큰 거 같던데, 괜찮으려나?”

포격을 뚫고 달려드는 몬스터들을 플레이어들이 모두 쳐 내는 건 결코 쉽지 않았다.

특히 상위 레벨 이상의 몬스터라도 등장하면?

부대 하나가 전멸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어쩔 수 없는 거지. 솔직히 우리도 인명 피해가 없는 건 아니잖아.”

“하긴 그렇지.”

플레이어들이라고 몬스터와의 전투에서 항상 이기기만 하는 건 아니다.

또 아무런 피해도 없이 이기는 것도 아니었다.

플레이어와 몬스터의 병력 교환비는.

1만 대 1에 달할 정도로 압도적으로 우세하기는 하지만.

어쨌든 피해는 피해였고.

가랑비에 옷이 젖어 들어가듯 플레이어들의 사망자 숫자 역시 조금씩 올라가고 있었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싸워야 하는 걸까?”

돈도 많이 받고 일정도 여유로워졌지만.

이들은 군인이 아닌 민간인이었다.

설사 군인이라도 이런 오지에서 임시 가건물에서 먹고 자며 많은 것이 부족한 생활을 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몇 달 정도라면 참을 수 있지만 이 생활이 몇 년 넘게 이어진다면?

상상만으로 끔찍할 수밖에 없었다.

“뭐, 차원 게이트의 던전화 작업이 끝나면 조금 여유로워지지 않을까?”

“계속 새로 생기는데 그게 의미가 있나?”

“외부에서 플레이어 용병이라도 데리고 왔으면 좋겠다.”

러시아 플레이어들의 육체적인 피로는 풀렸지만.

정신적인 피로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그리고.

그런 마이너스한 감정조차도 먹잇감으로 삼는 마족이 이들 근처에 대기 중이었다.

‘감정을 건드리는 저주의 효과가 좋군.’

차원 게이트를 넘어 러시아에 도착한 리치 아르타스는 혹시 정체가 들킬까 싶어.

신체에 물리적인 피해를 주는 저주를 피하고 감정을 건드리는 저주를 주로 사용해 왔다.

그리고 그 효과는 탁월했다.

‘벌써 최상급 수준이 되다니.’

승급을 할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빨리 할 줄은 몰랐다.

거기다.

야금야금 만들어 가는 언데드의 숫자가 벌써 천 기를 돌파했다.

‘마계 귀족도 얼마 남지 않았어.’

비록 최하급 마계 귀족인 준남작 수준이었지만 말이다.

‘섣불리 움직이지 않는다.’

처음에는 마계 귀족급이 되면 바로 본격적인 사냥에 들어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막강한 화력을 자랑하는 인간들의 무기를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플레이어 수준도 만만치가 않고.’

고위 마계 귀족이 이끄는 마족의 대군이 들이닥치면 금방 박살이 나겠지만.

고작 준남작 수준에서 어찌할 레벨은 아니었다.

‘자작까지만 참자.’

고위 마계 귀족인 백작이 되는 건?

지금 속도로도 까마득했지만.

자작 정도라면.

‘금방 도달할 수 있어.’

그때쯤 되면 언데드들의 숫자도 몇만 기 수준은 될 것이다.

‘인간들이 모여 살고 있는 도시들은 이미 파악해 놨다.’

마계 자작 수준이 될 때까지 얌전히 힘을 키운다.

그 후 인간들이 모여 살고 있는 도시를 습격하면?

급격한 성장이 가능했다.

‘마계 백작으로 승급할 때까지 버티면 나의 승리다.’

고위 마계 귀족은?

하급 마족과는 그 격이 달라도 한참 달랐다.

‘이 차원에는 마계 고위 귀족을 막을 녀석은 없다.’

마계 백작이 되기만 하면.

정말 자신 혼자 이 차원 전체를 점령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해 보였다.

* * *

‘시간 참 빠르네.’

강현수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느새 강현수가 지구로 귀환하고 1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상황은 좋아.’

얼마 전 등가교환 스킬을 U-EX랭크로 업그레이드했다.

‘다음은 스텟 고정이지.’

스텟 고정의 랭크가 오르면?

누적 스텟의 양이 더 올라간다.

강현수의 힘이 더 빨리 커지는 것이다.

‘거기다 최근에는 차원 게이트가 늘어나거나 던전 레벨이 오르는 현상도 진정된 것 같고.’

처음에는 미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잠잠했다.

‘내 생각이 틀렸던 건가?’

강현수가 강해졌으니.

차원 게이트는 더 빠르게 늘어나야 했고.

던전 레벨 역시 가파르게 상승해야 했는데.

어째 조용했다.

‘플레이어들의 성장세 때문일 수도 있고.’

차원 게이트가 늘어나고 던전 레벨이 상승한다는 건.

난이도 자체는 올라가지만 그만큼 플레이어들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났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게 아니면. 큰 거 한 방 준비하고 있는 걸 수도 있고.’

아틀란티스에서 벌어졌던 마룡족이 이끄는 용종 몬스터 대군 습격이나.

오크 대군 또는 언데드 대군의 습격 같은 것처럼 말이다.

‘오히려 그래 줬으면 좋겠네.’

지금의 지구가 마계 귀족이 포함된 용종, 오크, 언데드 같은 마족이나 몬스터 대군의 침공을 받으면?

‘초토화되겠지.’

어마어마한 피해를 입을 게 뻔했고.

핵을 쏘더라도 완벽하게 전멸시킬 수 있다는 보장이 없었다.

그러나.

‘지구에는 내가 있지.’

굳이 지구 플레이어들이 나서지 않아도.

현대 화기와 핵이 등장하지 않아도.

그냥 강현수가 가서 가볍게 지르밟으면?

‘손쉽게 제압할 수 있지.’

오히려 강현수에게 있어서는.

좋은 경험치 공급원이자.

소환수 업그레이드의 재료를 제공해 줄 뿐이다.

‘차원 게이트 탐색기도 업그레이드가 끝났다고 하고.’

아틀란티스와 지구는 기술이 다르다.

그 정도 마족 대군을 통과시킬 정도의 차원 게이트라면?

세계 각국이 운영하는 차원 게이트 탐지기를 피할 수 없었다.

‘차라리 얼른 나왔으면 좋겠다.’

그럼?

‘막대한 경험치를 공급받아 단숨에 스텟 고정의 랭크를 올릴 수 있을 텐데.’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직 지구의 마력 농도는 마족 대군이 넘어올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대규모 경험치 공급 이벤트는 이미 당당하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낼 준비를 끝마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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