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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고난 (4)

“그건 너무 과한 숫자가 아닐지.”

기타로 총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왜, 싫어?”

“싫은 건 아니지만.”

“싫으면 모두 철수시킬까?”

강현수의 한마디에.

“아닙니다, 좋습니다.”

무조건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좋다니 다행이네. 일본에 대기하는 동안에는 명령권자를 너로 설정해 놓을 테니까, 알아서 잘 써먹어 봐.”

강현수의 말에.

기타로 총리의 눈이 번뜩였다.

“그게 정말이십니까?”

“내가 일본에 대해 뭘 아는 게 있다고 소환수들을 배치하겠어? 그건 일본 총리대신인 자네가 알아서 해야지.”

강현수가 당연하다는 듯 이야기했고.

그 순간 기타로 총리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일본 내에서만이라고는 하지만.’

무려 2만의 최상위 플레이어들의 무력을 자신의 의지대로 사용할 수 있다면?

‘엄청난 힘이 된다.’

일단 첫 번째로.

호위로 삼아 자신의 안전을 지킬 수 있고.

두 번째로.

자신에게 적대적인 강성 우익 플레이어들을 때려잡을 수 있으며.

세 번째로.

이번 일로 떨어진 지지도를 다시 상승시킬 수 있다.

‘이 정도 전력이라면.’

그간 일본의 골칫거리였던 여러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었다.

일본의 첫 번째 골칫거리는?

쓰레기 던전이었다.

일본의 던전 밀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 덕분에 대격변 이후.

플레이어 전력과 마석 산업으로 엄청난 이득을 보기는 했지만.

문제는?

가성비가 떨어진다는 점이었다.

수익률 최하에 난이도는 최상인 쓰레기 던전은 어느 나라에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일본의 쓰레기 던전 비율이 타국에 비해 월등히 높다는 점이었다.

일본 플레이어 협회 소속 플레이어들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그래서 사설 길드에 세금 감면 혜택과 추가 보상을 쥐여 주며 강제로 정리하고 있기는 하지만.

플레이어들은 그런 금전적인 혜택보다 빠르게 레벨을 올리고.

좋은 아이템과 스킬북을 손에 넣는 걸 더 중시했다.

그 결과.

‘제때 몬스터를 처리하지 못해 몇 차례 몬스터 웨이브가 발생한 적이 있지.’

그럴 때마다 국내에서 욕을 어마어마하게 먹었고.

국제적으로도 엄청난 개망신을 당했다.

그렇지만.

뚜렷한 해결책이 없었기에.

감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금전적 손해 없이 쓰레기 던전을 지속적으로 클리어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금전적 이득과 국민들의 안전보장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럼 더 이상 사설 길드에 끌려다닐 필요가 없다.’

그간 쓰레기 던전 문제로 사설 길드들에게 이리저리 끌려다닌 게 많았는데.

이제는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었다.

일본의 두 번째 골칫거리는?

‘플레이어 야쿠자 조직을 쓸어버릴 수 있어.’

일본의 야쿠자는 시칠리아 마피아, 중국 삼합회와 함께 세계 3대 국제 범죄 조직이라고 불릴 정도로 애초에 그 위세가 대단했다.

그러나 사실상 21세기에 들어서는?

거의 사멸 상태였다.

그건 일본 정부의 강력한 공적 제재 덕분이었다.

그 결과?

소규모 야쿠자 조직은 거의 해산 상태였고.

거대 야쿠자 조직 역시 과거에 비하면 그 세력과 수입이 거의 반의반 토막이 난 상황이었다.

그런데.

대격변과 동시에 등장한 플레이어 야쿠자가 꾸준히 그 세력을 키워 나가고 있었다.

일본은 치안이 좋고 공권력이 강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의외로 또라이들이 많아 강력 범죄가 많이 일어나는 나라였다.

폭주족과 야쿠자 같은 전통적인 폭력 조직도 많았다.

일본 정부 입장에서는?

기껏 다 박멸했던 바퀴벌레 같은 놈들이.

플레이어들을 기반으로 슬슬 살아나기 시작하자 점점 골치가 아파졌다.

일반인 야쿠자는?

경찰이 제압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플레이어 야쿠자는?

‘제압이 불가능하지.’

플레이어를 제압을 하려면?

같은 플레이어가 필요하다.

그럼 일본 플레이어 협회에서 나서야 하는데.

‘실력도 부족하고 인원도 부족해.’

일본 플레이어 협회에 들어온 이들은.

전체적으로 사설 길드 소속에 비해 실력이 떨어졌다.

또 안정적인 수익을 위해 들어온 경향이 강했다.

그런 이들에게 플레이어 야쿠자를 제압하라는 명령을 내리면?

항명하거나 그만두겠다고 협박하기 일쑤였다.

또 애초에 일본 플레이어 협회 소속으로 있는 플레이어의 숫자가 너무 적어서.

기존 임무를 소화하기도 빠듯했다.

결정적으로.

일본은 던전이 너무 많았기에.

몬스터 웨이브 방지를 위해서라도.

플레이어 야쿠자 집단에 강력한 제재를 가할 수가 없었다.

‘필요악 같은 놈들이었지.’

겉으로는 길드라는 간판을 내걸고 있지만.

하는 행동은 범죄자나 마찬가지인 놈들이었다.

그러나 당장 힘도 부족하고.

플레이어 야쿠자들의 무력이 던전 웨이브 방지에 필요하기에 어쩔 수 없이 방치했다.

그렇지만.

‘이제는 뒷일 걱정 없이 쓸어버릴 수 있다.’

2만의 최상위 플레이어 대군이 있는데 무엇이 두렵겠는가?

‘몬스터 웨이브 원천 차단과 플레이어 야쿠자 척결이면.’

떨어진 지지율 따위는?

금방 회복할 수 있었다.

그 외에도 2만의 플레이어 대군이 있으면?

갑작스럽게 발생한 차원 게이트 대응도 월등히 수월해지는 등의 수많은 장점이 있다.

그러나 세상에 장점만 있고 단점이 없는 일은 없다.

‘지지율은 올라가겠지만, 점점 저자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다.’

기타로 총리의 시선이 강현수에게로 향했다.

현재 머릿속의 구상을 실행으로 옮겼는데.

갑자기 강현수가 소환수를 데리고 가겠다고 하면?

일본은 대혼란에 빠지고.

기타로 총리의 정치생명은 끝장난다.

그걸 막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강현수에게 끌려다닐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다.’

기타로 총리가 어금니를 악물었다.

‘애초에 막을 수가 없는 상대야.’

상대는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조차도 납작 엎드리게 만든 인물이다.

큰형님인 미국의 사정이 저런데.

아우인 일본은 어떻겠는가?

지금 기타로 총리가 해야 할 일은?

“일본을 위해 이렇게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시니, 이 은혜를 어찌 모른 척하겠습니다. 평생의 은공으로 모시겠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허리를 꺾으며.

강현수 앞에 넙죽 엎드려 아부하는 것이었다.

‘난 앞으로 친한파다.’

그게 자신이 살길이고.

일본이 살길이라고.

기타로 총리는 굳게 믿었다.

강현수는 다시금 한국으로 돌아갔다.

‘뭐, 알아서 잘하겠지.’

2만의 인간형 소환수라면?

순수한 무력으로 일본 전체를 점령할 수 있는 전력이다.

그런 막강한 전력이 쿠데타 세력도 아니고 정식 정부의 손에 쥐어졌으니.

일본도 곧 안정을 찾을 게 분명했다.

그러나 그건.

강현수의 착각이자.

일본 강성 우익 플레이어들을 과소평과한 결과였다.

* * *

“총리관저를 습격했던 동료들이 모두 플레이어 전용 감옥으로 끌려갔어.”

“지금 총리관저는 철옹성이야.”

“맞아, 미국과 한국의 도움을 받아 플레이어들을 대거 보충했다고 하더군.”

일본 강성 우익 플레이어들의 연합체 ‘욱일애국연합’은 일본 총리관저의 동태를 자세히 알고 있었다.

그 이유는?

일본 정부에 협력하는 플레이어들 중에서도 욱일애국연합에 가입해 있는 동료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동료들이 직접 일을 도모해 보려고 했지만, 미국과 한국 플레이어들 때문에 실패했다고 합니다.”

“이대로 나라를 한국에 팔아먹을 수는 없습니다.”

“맞습니다.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총리의 목을 베어 내고, 우리 일본을 원래대로 되돌려야 합니다.”

일본 강성 우익 플레이어들의 연합체 욱일애국연합은.

단체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옛 일본 제국주의 시절을 그리워하고.

애국심이 넘쳐흐르는 이들이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무식한 놈들이 굳은 신념을 가지는 것이다.

욱일애국연합이 딱 그 모양 그 짝이었다.

일본이 다시 제국주의 시절로 돌아가야 한다는 잘못된 신념과 굳은 애국심은.

욱일애국연합 소속 강성 우익 플레이어들이 물불 가리지 않게 만들었다.

“총리관저를 노릴 수 없다면, 관공소를 노립시다.”

“좋소.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한국에게 매수된 매국노들을 직접 칠 수 없다면, 그 하수인들이라도 잘라 내야지요.”

“흩어져서 움직입니다.”

욱일애국연합 소속 강성 우익 플레이어들이.

과격 테러 단체로 변모하는 순간이었고.

그날 이후.

일본 전역에서 대대적인 테러 사건이 발생했다.

* * *

“이 미친놈들이 도대체 무슨 짓을 벌인 거야!”

기타로 총리는 전국에서 벌어진 테러 사건에 기겁했다.

“당장 모조리 잡아들여!”

“상대는 플레이어들입니다. 인력이 부족합니다.”

“인력은 내가 지원해 준다!”

기타로 총리에게는.

강현수가 지원해 준 2만 기의 소환수가 있었다.

“알겠습니다.”

기타로 총리의 명령에 따라 대대적인 체포령이 진행되었다.

강현수가 지원해 준 2만 기의 소환수 전력은 실로 엄청났고.

기타로 총리는 강현수의 소환수들을 정말 요긴하게 써먹었다.

그러나.

강한 힘으로 찍어 누를수록.

일본 강성 우익 플레이어들의 반발은 더욱 강해졌고.

설상가상.

플레이어 야쿠자 조직들의 반발도 심상치가 않았다.

“정부에서 우리를 말살시킬 모양이다.”

“그러게 말입니다. 큰일입니다, 오야붕.”

“욱일애국연합과 손을 잡아야겠다.”

“그 미친놈들과 말씀이십니까?”

“그럼 이대로 죽을 생각이냐? 거기다 우리는 민심을 잃었지만, 욱일애국연합 놈들은 아니다.”

기타로 총리의 대대적인 플레이어 야쿠자 조직에 대한 탄압은 플레이어 야쿠자들에게 엄청난 위협으로 다가왔다.

정부가 명분과 무력이라는 몽둥이 두 개를 연달아 휘두르니.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다.

그런 플레이어 야쿠자 조직들의 눈에 들어온 단체가 바로 욱일애국연합이었다.

플레이어 야쿠자들은?

시민들에게 절대 호의적인 대상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제대로 된 지지도 지원도 받을 수가 없었다.

오히려 수시로 시민들의 신고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욱일애국연합은 달랐다.

각계각층 일본 우익들의 보이지 않는 지원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길은 욱일애국연합과 손을 잡는 것뿐이다. 진짜 욱일애국연합이 될 필요는 없다. 그저 그런 척하면 되는 거다.”

플레이어 야쿠자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감옥에 들어갈 수도 없고.

조직을 해산하기도 싫다.

그럼?

욱일애국연합과 손을 잡는 수밖에 없었다.

적의 적은 친구라는 논리가 성립한 것이다.

또 이건 욱일애국연합에게도 나쁜 일이 아니었다.

“일본을 좀먹는 야쿠자 놈들과 손을 잡는 건 싫지만.”

“지금은 어쩔 수가 없지.”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할 정도로 다급한 상황이니.”

“야쿠자 놈들은 나중에 나라가 제자리를 찾은 후 쳐내도 충분하지.”

결국 욱일애국연합과 플레이어 야쿠자 조직이 손을 잡았고.

테러 행위는 더욱 자주, 더 과격하게 발생했다.

가장 큰 문제는?

민간인들의 피해가 급증했다는 점이다.

욱일애국연합은 관공소만 노렸지만.

플레이어 야쿠자들은?

조국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민간인들을 대상으로도 온갖 패악질을 저질렀다.

그 결과.

일본은 빠르게 혼란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어 가기 시작했다.

* * *

“어…….”

일본에서 들어온 소식을 들은 강현수는.

순간적으로 할 말을 잃었다.

‘어떻게 나라가 저렇게 순식간에 개판으로 변할 수가 있지?’

애초에 일본에게 2차 세계대전 당시의 배상금을 받는다는 의견은?

강현수가 아니라 미국이 생각해 낸 아이디어였다.

물론 강현수도 어차피 받을 돈 빨리 받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신한민국 재건에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기도 했고.

대한민국 입장에서도.

정부 차원에서 신한민국에 투자할 돈이 필요하기도 했다.

어차피 먼 훗날 대한민국과 신한민국을 하나의 국가로 통일할 생각을 가지고 있는 강현수의 입장에서는.

대한민국이 신한민국에 대한 부채를 최대한 많이 가지고 있는 게 좋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국고를 쓴다면?

국민들이 반대하겠지만.

배상금을 받아 일본 제국주의 시절 고생하신 분들에게 전달해 드리고.

대한민국 정부가 받은 몫으로 신한민국에 투자를 하는 건?

국민들이 반대할 명분도 없었고.

필요도 없었다.

그렇지만 강현수조차도 일본이 이렇게 짧은 시간에 제대로 개판이 날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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