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고난 (3)
“이게 무슨 미친 소리야!”
인터넷 기사를 본 강성 우익 플레이어 요시다의 입에서 분노의 일갈이 터져 나왔다.
“정부가 미친 게 분명해! 이건 마치 대일본 제국이 조선인들에게 꼬리를 말고 납작 엎드린 꼴이지 않은가!”
같은 강성 우익 플레이어 사사키 역시 요시다와 마찬가지로 엄청난 분노를 토해 냈다.
“우리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핵폭탄을 두 번이나 맞은 제2차 세계대전의 피해국이야! 그런데 왜 우리가 조선인들에게 배상을 해야 한다는 말인가!”
“조선인들이 지금처럼 떵떵거리며 살 수 있는 게 다 누구 덕인데!”
“조선인들이 우리 일본에 6조 달러를 가져다 바쳐도 모자랄 판이다! 그런데 오히려 일본이 조선인들에게 6조 달러를 주겠다니! 도저히 제정신으로는 할 수 없는 말이다!”
일본 정부의 발표는?
강성 우익 플레이어들 입장에서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
이들이 일반적인 강성 우익이었다면?
그저 대대적인 시위와 폭동 정도가 할 수 있는 최대치였으리라.
그러나 이들은 평범한 일반인이 아닌.
초인의 힘을 가진 플레이어들이었다.
“기타로 총리의 몸속에 조선인의 피가 흐르고 있는 게 분명하다! 일본인으로 위장한 그 조선 놈의 목을 베어야 한다!”
“대한과 신한으로부터 엄청난 뇌물을 먹었다! 기타로 총리는 나라를 팔아 자기 자신의 부귀영화를 꾀하는 게 분명하다!”
“기타로 총리만이 문제가 아니다! 국회 내각 의원들도 모조리 썩어 빠졌다! 사무라이 정신으로 무장한 우리가 그 역적들을 모조리 베어 내야 한다!”
강성 우익 플레이어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그대로 실행에 옮기기 위해 움직였다.
그러나 일본 정부 역시 북한과 중국의 플레이어 쿠데타 사태를 보고 겪은 것이 있었기에.
당연히 쿠데타에 대한 대비를 해 놓은 상태였다.
일본 정부에 충성하는 플레이어들을 대거 끌어모아 총리 관저와 국회의사당의 호위를 맡긴 것이다.
그 때문에 강성 우익 플레이어들은 총리 관저와 국회의사당을 공격하려다 지키고 있던 플레이어들에게 막혀 도주하거나 체포될 수밖에 없었다.
‘저 멍청한 놈들을 어떻게든 진정시키기는 해야 할 텐데.’
기타로 총리가 얼굴을 찌푸렸다.
기습적으로 일어난 강성 우익 플레이어들의 습격을 한 차례 방어해 내기는 했지만.
그건 고작해야 도쿄에 있는 이들 중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들고일어난 이들을 제압한 것에 불과했다.
‘시간이 흐르면 전국에서 강성 우익 플레이어들이 들고일어날 거야.’
그럼?
오늘 있었던 일은 소소한 사고에 불과할 정도로 엄청난 충돌이 벌어질 게 뻔했다.
거기다 총리와 의원들도 사람이다.
계속 총리 관저나 국회의사당에 틀어박혀 있을 수는 없다.
또한 강성 우익 플레이어들이 자신들의 가족을 노리기라도 하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건 미국의 지시로 벌어진 일이고, 대한민국과 신한민국을 위한 일이다.’
그러니 미합중국, 대한민국, 신한민국이 함께 책임을 져야 했다.
기타로 총리는 세 나라에 순차적으로 도와 달라는 연락을 취했다.
* * *
‘이 꼴통 놈들을 생각 못 했네.’
강현수가 허탈한 웃음을 터트렸다.
우익 단체.
일본 제국주의 시절을 그리워하고 숭상하는 바보들의 모임.
애초에 현재 정권을 잡고 있는 총리와 민자당 자체가 우익이기는 했기에.
그간 우익 단체들.
특히 그중에서도 골수 강성 우익들을 이래저래 잘 써먹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놈들이 적으로 돌아선 상황이지.’
일반인 출신 강성 우익은?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지만.
‘플레이어는 문제가 되지.’
특히 지금 총리 관저와 국회의사당을 지키는 플레이어들조차도 우익이었고.
‘아마 강성 우익들도 섞여 있을 거야.’
일본 정치인들 입장에서는?
더 큰 강성 우익 플레이어 소요가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태에서.
자신들을 지켜 주는 호위 플레이어들도 안심하고 믿기 힘든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미국에서 플레이어를 파견하기는 힘든 상황입니다.”
마틴이 공손한 자세로 말했다.
“그렇겠지.”
그건 대한민국과 신한민국도 마찬가지였다.
명분도 없고 여력도 없다.
거기다 자칫 잘못해 유혈 사태가 발생하면?
일이 엄청나게 커질 수밖에 없다.
“내가 해결하지.”
“감사합니다!”
강현수의 말에 마틴의 얼굴이 환해졌다.
‘괜히 일본이 혼란스러워지면 좋을 게 없어.’
이미 꼬리를 내린 상태고.
6조 달러의 배상을 약속한 상태.
거기다 강현수의 계산법에 따라.
‘3조 달러를 더해서 9조 달러 정도는 받아야지.’
또한 10년 상환이니만큼.
‘이자도 복리로 붙여야 하고.’
일본은 앞으로 두고두고 대한민국과 신한민국의 꿀단지가 되어 주어야 할 운명이다.
그런 일본이 흔들려서야 되겠는가?
‘또 플레이어들 간의 전투가 벌어져서 전력이 상하는 건 피해야지.’
일본이라는 장기짝을 잘 활용하기 위해서는?
일단 일본이라는 장기짝의 상태가 멀쩡해야 한다.
부서지고 깨진 장기짝을 어디에 쓰겠는가?
‘쇠뿔도 단김에 빼는 게 낫지.’
괜히 여유를 부리다가 일본 총리나 의원들이 암살당하는 사태가 나와서는 곤란했다.
“지금 바로 가겠다. 일본에 이야기해 놓도록.”
“직접 말씀이십니까?”
마틴이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아마 강현수가 소환수만 파견할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출장비도 받고 엉뚱한 생각을 못 하게 막을 필요도 있을 것 같아서 말이야. 소피아와 함께 갈 테니, 지금 바로 연락해.”
“알겠습니다.”
마틴의 대답을 들은 강현수가 소피아를 소환했고.
그 후 소피아와 함께 공간 이동 스킬을 사용해 일본으로 향했다.
* * *
‘그분이 찾아올 거라니?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야?’
기타로 총리는 미국에서 전해진 뚱딴지같은 연락을 받고 적잖이 당황했다.
내용은 간단했다.
그분이 찾아갈 테니 맞이할 준비를 해라.
‘장난하는 건 아닐 텐데.’
주일미국대사가 전한 소식도 아니고.
무려 백악관에서 버틀러 대통령 직통으로 온 연락이다.
‘철저한 보안을 보장할 수 있는 한국어 통역을 준비하라고 했지.’
그래서 일단 준비했고.
얌전히 기다렸다.
그렇지만.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
지금 이게 무슨 일인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파악했다는 뜻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더 큰 혼란이 찾아왔다.
‘플레이어 부대의 우두머리가 오는 건가?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래 봐야 고작 플레이어 하나에게 미국 대통령인 버틀러가 그분이라는 극존칭을 쓸 리가 없었다.
“끄으으응.”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안 그래도 최근 벌인 일 때문에 강성 우익들뿐만이 아니라 국민들의 전체적인 여론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나라 살림이 여유로운 것도 아닌데 왜 대한민국과 신한민국에 돈을 퍼 주냐는 여론 때문이었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제대로 된 역사 교육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일본은 핵폭탄을 두 번이나 얻어맞은 피해국이라는 식의 논리를 펼쳐 왔고.
동아시아를 점령했던 일본 제국주의 시절의 향수를 자극하고 미화하는 내용의 교육도 적잖이 해 왔다.
간단하게 말해 일본이 한국을 개화시켜 줬고.
그래서 한국이 저런 번영을 누릴 수 있다는 식으로 말이다.
그렇기에 일본 국민들 입장에서는.
갑작스러운 정부의 태도 변화에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강성 우익도 신경 써야 하고 여론도 신경을 써야 하는데.’
아무리 장시간 일당독재를 했다지만.
일본은 어디까지나 다당제 국가였고.
기타로 총리가 오랜 시간 독재자로 군림했다고 하지만.
일본은 국민 개개인의 투표권을 존중하는 엄연한 민주주의국가였다.
그런 만큼 기타로 총리로서는 여론을 신경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국민들이 정치에 무관심하게 만들었다.
무기력하게 민자당만을 뽑도록 만들었다.
그러기 위해 온갖 수작을 부렸고.
신성한 투표조차도 후보자 이름을 정자로 써야 하는 등의 온갖 꼼수를 부리기는 했지만.
‘이번 일로 기존 지지기반이 모두 등을 돌렸다.’
야당을 지지하던 이들이라도 여당을 지지해 주면 모르겠는데.
‘야당 지지자들조차도 미친 짓이라고 비난하고 있어.’
이러다가는 정말 정권을 빼앗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건?
기타로 총리에게도 좋지 않고.
미국에게도 좋지 않으며.
대한민국과 신한민국에게도 좋지 않다.
‘좋든 싫든 기댈 수 있는 건 미국과 한국뿐이다.’
애초에 미국과 한국에게 고개를 숙이기로 결정한 순간.
국내 여론이 돌아설 것은 각오하는 수밖에 없었다.
‘매국노 소리를 듣더라도 어쩔 수 없어.’
만약 기타로 총리가 일본의 자존심을 지키겠답시고 미국과 한국의 제안을 거절했다면?
그때는 몽둥이가 날아왔을 것이다.
전 세계 여론이 일본을 비난하고.
불매 운동이 일어나고.
일본 수출 물품에 강력한 관세를 매기고.
테러나 게릴라 사태가 발생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일이 벌어지면.
과연 일본 국민들은 기타로 총리를 감싸 줄까?
계속 지지해 줄까?
‘그럴 리가 없지.’
오히려 이번 일의 원흉으로 몰아 매장시키려 했을 것이다.
기타로 총리 입장에서 미국과 한국에게 고개를 숙인 것은.
어디까지나 그게 자신의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편이었기 때문이다.
‘미국과 한국은 무조건 나를 도울 수밖에 없다.’
국내의 민심을 잃어도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 힘.
그건 외세인 미국과 한국밖에 없었다.
“표정이 좋지 않네.”
한창 고민에 빠져 있던 기타로 총리의 귀에 한국어가 들려왔다.
‘저 사람이 버틀러 대통령이 이야기한 그분이군.’
기타로 총리가 재빨리 통역에게 눈짓을 했고.
통역이 재빨리 자신의 할 일을 했다.
“이번 일로 국민들의 반발이 커져서 말입니다. 특히 우익 성향의 플레이어들이 문제입니다.”
“그건 내가 해결해 주지.”
강현수의 말에 기타로 총리가 기대감에 눈을 반짝였다.
‘그래, 이렇게 지원을 해 줘야지.’
기타로 총리 입장에서는?
중국군을 상대로 활약했던 플레이어 부대 병력 중 10~20% 정도만 지원을 해 줘도 충분했다.
200~400명 정도면.
민자당 의원들을 경호하기에 충분했으니까 말이다.
“언제쯤 지원 병력이 올 예정인지?”
“지금이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군.”
일본 총리관저는 지하 1층 지상 5층으로 대지만 1만 4천 평에 달한다.
이런저런 시설들이 있기는 하지만.
꽉꽉 눌러 채운다면?
몇만 명 정도는 충분히 들어가고도 남는다.
그리고 강현수의 소환수는?
‘벌써 10만 마리라. 그동안 꾸준히 사냥에 열중한 보람이 있어.’
총 10만.
인간형 소환수만 따져도 5만을 넘어선 상태였다.
‘역시 몬스터 필드가 효율이 좋기는 좋단 말이지.’
경험치도 팍팍 오르고 돈도 짭짤하고.
강현수 입장에서는 일석이조였다.
‘한 2만 정도면 충분하겠지.’
강현수가 소환수들을 소환했다.
사아아아악!
강현수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마력이 갑옷으로 완전무장 한 플레이어의 모습으로 변했다.
“어어?”
기타로 총리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적잖이 당황했다.
“문을 열어라.”
강현수의 지시에 기타로 총리가 자신도 모르게 문을 열었다.
그와 동시에 강현수의 소환수들이 일본 총리관저를 빠른 속도로 잠식해 나갔다.
“이,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끝도 없이 쏟아져 나오는 소환수들의 향연에 기타로 총리는 반쯤 넋이 나갔다.
그러나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수는 없는 법.
“이 괴물들의 정체가 뭔지?”
기타로 총리가 조심스럽게 강현수에게 물었다.
겉으로 보면 그냥 완전무장 한 플레이어였지만.
강현수의 몸에서 스멀스멀 피어난 칠흑빛 연기가 변한 것이니.
당연히 평범한 플레이어일 수가 없었다.
“내 소환수이자, 네가 요청한 지원군이다. 개체 간에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아무리 약한 녀석이라도 최상위 플레이어급은 될 거다.”
“혹시 중국과의 전쟁에서 활약한 플레이어 부대가?”
“이 녀석들이다.”
강현수의 인정에 기타로 총리의 입이 쩍 하고 벌어졌다.
2천에 달하는 플레이어 부대가 대한민국과 신한민국 소속이라는 사실에 경악했는데.
알고 보니 그게 무려.
‘단 한 사람의 소환수였다니.’
일개 개인이 국가를 능가하는 무력을 가지고 있는 셈이었으니.
기타로 총리의 입장에서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의아한 점은 또 있었다.
“저기 이미 소환수의 숫자가 2천은 훌쩍 넘은 것 같은데.”
“겨우 2천 기로 되겠나. 2만 기를 지원해 주지. 그 정도면 정부 요인들과 그 가족들까지 안전하게 지킬 수 있을 거다.”
“이, 이만?”
기타로 총리의 표정이 창백하게 변했다.
중국의 백만 대군을 상대로 엄청난 무용을 보였던 플레이어 부대가 고작 2천이었다.
그런데 무려 그 열 배에 달하는 2만이라니?
절로 간담이 서늘해졌다.
‘우리 일본을 무력으로 점령할 속셈인가?’
기타로 총리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그런 걱정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