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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고난 (2)

‘그동안은 알릴 필요가 없었지만, 이제는 필요가 생긴 거지.’

강현수가 쓴웃음을 지었다.

전 세계가 자유와 평등을 외치고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명분일 뿐.

국제사회는 어디까지나 자국의 실익에 따라 움직인다.

미국의 이라크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

명분도 명분이지만 실익이 있었기에 시작된 전쟁이었고.

실익이 사라졌기에 종료된 전쟁이다.

몇 년 전부터 중국의 소수민족 탄압 소식이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미국에 이득이 되니까 알려진 거지.’

중국이 충실한 미국 기업들의 공장이자 소비자 역할을 했을 때는 소수민족 탄압이 없었을까?

아니다.

그때도 중국에서는 소수민족을 탄압하고 있었다.

단지 그 사실을 세계 각국에 알리는 게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았기에 무시했을 뿐이다.

그러나 중국을 견제해야 할 필요가 생기자.

그제야 대대적으로 보도하며 중국을 반인륜적인 국가라고, 인권을 무시하는 국가라고 공격한 것이다.

지금도 전 세계에는 수많은 학살과 탄압이 발생한다.

하지만 그게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

‘미국은 굳이 공론화시키지 않지.’

일본이 전범국 시절 저지른 만행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걸 공론화시키는 게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았기에 침묵했을 뿐이다.

반면 지금은?

강현수에게 잘 보여야 하기에.

일본을 두들겨 패서 두둑한 배상금을 뜯어내 신한민국과 대한민국에 줘야 할 필요성이 생겼기에 언론 플레이를 하는 것뿐이다.

강현수 입장에서는?

‘기특하네.’

알아서 기는 미국의 모습에 적잖이 만족했다.

그렇지만 당하는 일본 입장에서는?

아마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진 심정이리라.

* * *

일본 정부는 미국 상원과 하원 의원들을 상대로 대대적인 정치 로비에 들어갔다.

“아, 그런 일이 있었군요. 일본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옛일은 잊고 서로 협력하는 게 중요하지요. 제가 일본을 돕겠습니다.”

“일본은 우리 미국의 영원한 친구입니다. 미국은 친구를 외면하지 않지요. 제가 한번 힘을 써 보겠습니다.”

일본 정부가 접촉한 상원과 하원 의원들은 공화당과 민주당을 가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나섰다.

퍼먹인 돈의 액수가 워낙 막대하기도 했고.

상원과 하원 의원들이 생각하기에.

현 행정부의 태도가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신생국인 신한민국?

초기부터 대대적인 투자를 통해 친미 국가로 만들면 무조건 이득이다.

대한민국?

이미 돈독한 우방이자 친미 국가다.

당연히 도와서 나쁠 건 없었다.

그러나.

그건 반미 국가의 이익을 쪼개서 친미 국가에 줄 때 성립하는 말이다.

일본은 미국의 우방 중 가장 돈독하고 말도 잘 듣는 국가다.

그런데.

‘굳이 일본을 쥐어짜면서까지 신한민국과 대한민국을 도울 필요는 없지.’

‘배상금 규모를 최대한 줄이고 차관 형식으로 지원을 해 줘도 충분할 텐데.’

이건 미국의 여야 의원들이 공동으로 품고 있는 생각이었고.

‘최근 백악관이 너무 폭주하고 있어. 이러다가는 야당에 정권 교체의 빌미를 줄 수도 있다.’

‘일본을 쥐어짜 신한민국과 대한민국을 밀어주는 건 득보다 실이 크다. 정의와 공정이라는 명분을 얻을 수는 있지만, 우리 미국에 아무런 실익이 없어.’

이건 여당 생각이었으며.

‘북한에 미군을 파병할 때부터 알아봤지만, 백악관이 최근 너무 무리수를 두고 있어.’

‘그동안은 결과가 좋으니 넘어갔지만, 이번 기회에 단단히 따져야 한다.’

이건 야당 생각이었다.

여당과 야당 할 것 없이.

최근 중국과의 전쟁 발발 사태나.

일본 쥐어짜기를 보고.

백악관이 너무 폭주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에 여야 의원들은 자신들의 뜻을 하나로 모아 백악관의 폭주를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불가능하네.”

“지금은 백악관의 결정에 힘을 실어 줘야 하네.”

여당과 야당의 당 지도부가 백악관의 편을 들었다.

“어째서입니까?”

“이유를 말씀해 주십시오!”

당연히 여당과 야당의 의원들이 고분고분 당 지도부의 말을 들을 리가 없었다.

그러나.

“이건 톱 시크릿이네. 보안 서약을 해야만 이유를 알려 줄 수 있네.”

“하겠습니다.”

“사실 중국 플레이어들을 무력화시킨 2천의 플레이어 부대는 우리 미국 소속이 아니라, 대한민국과 신한민국의 소속이네.”

보안 서약을 한 후 알게 된 진실(?)을 듣는 순간 순한 양이 될 수밖에 없었다.

중국을 상대로 엄청난 위용을 선보인 플레이어 부대는 이미 유명했다.

중국 플레이어 20만과 중국군 80만.

총 백만 대군을 단 2천의 병력으로 깨부쉈을 때의 충격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또한 상식이 있다면 당연하게도 플레이어 부대의 존재가 핵을 능가하는 전략무기라는 사실을 직감할 수밖에 없다.

그들을 미국 소속이라고 알고 있었을 때는?

자신들의 조국 미국의 위대함에 전율하며 감격했지만.

그들이 대한민국과 신한민국 소속이라면?

두려움이 밀려올 수밖에 없었다.

물론 순순히 믿지 않는 이들도 있었다.

“대한민국과 신한민국에 그 정도 플레이어 전력이 있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럼 내가 자네한테 거짓말이라도 하고 있다는 건가? 그것도 국가 기밀을 가지고?”

“그건 아니겠지만.”

“세상에는 현실적으로 믿기 힘든, 상식을 깨부수는 일 따위가 얼마든지 있네. 특히 귀환자들은 더 그렇지. 정 믿기 힘들다면 필립에게 물어봐도 좋네.”

미국 공식 랭킹 1위를 언급했음에도.

“그럼 직접 확인해 보겠습니다.”

믿지 못하고 확인해 보겠다고 나서는 이들이 속출했다.

그러나 확인하면 뭐 하겠는가?

결과는 정해져 있는 것을.

아무리 믿기 싫더라도.

“정말이었군요.”

현실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대한민국과 신한민국은 플레이어 부대가 미국 소속으로 알려졌음에도 조용히 넘어가 주었네. 그러니 이 정도 보답은 해 줘야 하지 않겠나?”

“그 정도는 해 줘야겠군요.”

플레이어 부대가 미국 소속이 아니라고 공표되는 순간.

미국은 그야말로 국제적인 개망신을 당할 수밖에 없다.

“또 현재의 대한민국과 신한민국은 우리 미합중국의 0순위 혈맹이네. 그런 이들과 일본 같은 나라의 일로 사이가 틀어져서야 쓰겠나?”

“충분히 이해했습니다.”

톱 시크릿을 본 여당과 야당의 의원들은 조용히 꼬리를 말았다.

그러나 진실을 알고 있는 여당과 야당의 당 지도부는 착잡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고작 이 정도로 놀라다니.’

‘역시 그분의 존재를 밝히는 건 무리다.’

강현수라는 초월적인 존재에 대한 정보를 감추기 위해.

소환수 중 일부를 공개했을 뿐인데.

그것만으로도 파장이 너무 컸다.

‘절대 진실이 알려져서는 안 돼.’

‘무조건 감춰야 한다.’

강현수의 존재가 알려지면?

대중은 그 충격을 온전히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당연히 엄청난 혼란이 일어날 것이고.

그건 세계 평화와 단결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다행히 강현수도 자신의 존재를 공개할 생각이 없었기에.

이번 사태를 이런 식으로 무마시킬 수 있었다.

문제는?

진실을 감추기 위해 내보인 위장 정보조차도.

대중이 받아들이기에 너무 충격적이었기에.

톱 시크릿으로 지정해 믿을 만한 상원과 하원의 의원들에게만 공개하는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었다.

* * *

일본은 막대한 자금을 퍼부어 미국 정치권에 로비를 했다.

그러나.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거부해야 합니다! 아무리 미국이라도 우리 일본에게 이런 무리한 요구를 할 수는 없습니다!”

“미국과 사이가 틀어지면 우리 일본은 망합니다!”

“미국도 우리 일본을 쉽게 버릴 수는 없습니다! 배수진을 치고 당당하게 나가야 합니다!”

“맞습니다!”

로비가 실패하자.

일본 국회의 여론은 미국의 요청을 무시하자는 쪽으로 돌아섰다.

평소라면 상상도 못 할 일이었지만.

이번만큼은 상황이 달랐다.

신한민국에게 적당한 수준의 보상은 해 줄 수 있다.

그러나 3조 달러의 배상은 절대 해 줄 수 없었다.

대한민국의 경우.

이미 옛날에 한일청구권협정으로 모든 이해관계가 청산된 상태라고 생각했다.

참의원과 중의원 들이 절대 수용 불가를 외치고 있었지만.

기타로 총리는 섣불리 입을 열지 못했다.

미국 상원 의원이 미국의 톱 시크릿이라며 알려 준 정보 때문이었다.

‘중국을 박살 낸 플레이어 부대가 대한민국과 신한민국 소속이라니? 이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기타로 총리 입장에서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미국 상원 의원이 자신의 정치생명과 보안 서약까지 어기며 전해 준 특급 정보였다.

정보를 전해 준 상원 의원은 절대 이 정보가 퍼져 나가지 말아야 한다고 신신당부했다.

사실 당연했다.

이건 미국의 명예가 달린 일이었으니까 말이다.

‘발설하면 그 친구만 큰일 나는 게 아니야.’

미국이 자국의 명예를 추락시킬 정보를 나불거린 자신과 일본을 가만히 내버려 둘 리가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미국은 절대 양보할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이 기회에 대한민국과 신한민국에 큰 빚을 지워 둘 심산인 것 같았다.

‘빌어먹을 양키 놈들.’

기타로 총리 입장에서는 절로 이가 갈렸다.

미국이 플레이어 초강국이 된 대한민국, 신한민국과의 우애를 돈독히 하는 건 좋다.

그런데 왜 거기에 일본의 돈과 명예를 소비한다는 말인가?

‘거부하면 끝장이다.’

미국이 일본을 희생양으로 점찍은 이상.

배수진을 친다고 물러날 리가 없다.

아마 상당히 강경하게 나올 것이고.

온갖 언론 플레이를 하리라.

그럼?

전범국 일본의 만행이 전 세계에 알려지고.

일본의 명예가 시궁창에 처박혀 버린다.

거기다 플레이어 초강국이 된 대한민국과 신한민국의 눈치도 살펴야 했다.

‘전과는 상황이 달라졌어.’

얼마 전까지 일본 입장에서는?

막말로 남한이나 북한과의 관계가 틀어져도.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일은 제로에 가까웠다.

애초에 북한은 논외였고.

남한과의 관계 악화는 오히려 정치적으로 이용해 먹기 좋은 카드 중 하나였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야.’

중국의 백만 대군을 박살 내 버린 플레이어들의 무력은?

공포 그 자체였다.

‘굳이 전면전이 아니더라도 최상위 플레이어들을 사용할 방법은 차고 넘친다.’

막말로 복면 쓰고 들어와 일본 총리와 의원들을 암살해 버릴 수도 있고.

플레이어들을 선동해 쿠데타를 조장할 수도 있었고.

게릴라를 통한 테러를 할 수도 있었다.

냉정하게 말해 암살과 테러 가능성은 희박하고.

쿠데타를 조장해도 동조하는 이들이 적어 큰 의미는 없겠지만.

‘그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문제다.’

특히 남한은 어느 정도 믿을 수 있어도.

‘북한의 그 미친놈들은 정말 일을 저지를지도 몰라.’

정권이 바뀌기는 했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 일본을 향해서 간악한 쪽바리, 파렴치한, 핵탄으로 일본열도 침몰 같은 정신 나간 소리를 했던 북한이다.

애초에 핵미사일 같은 경우는 실현 가능성이 제로였지만.

암살, 테러, 쿠데타 같은 일은?

얼마든지 실현이 가능하며.

걸리지만 않으면?

북한의 신정부에 타격도 없다.

결정적으로.

‘양키 놈들만 우리 편을 들어 줬어도.’

미국이 일본 대신 대한민국과 신한민국을 선택했다.

그럼?

‘저항해 봤자 더 큰 피해만 입을 뿐이야.’

아무리 생각해도 결론은 하나.

지금은 납작 엎드릴 때라는 것뿐이었다.

“하아!”

기타로 총리의 입에서 긴 한숨이 터져 나왔다.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풀지 않는 선에서.

국회에 모인 의원들을 설득하는 것부터가 큰일이었기 때문이다.

* * *

‘이놈들 화끈하네.’

강현수는 너털거리며 헛웃음을 터트렸다.

오늘 아침 올라온 일본 정부의 공식 발표 기사 때문이었다.

‘제국주의 시절 대한민국과 신한민국에 저지른 잘못을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10년에 걸쳐 총 6조 달러를 배상금으로 내놓겠다라.’

솔직히 강현수로서는?

일본 정부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시간을 끌다가 모르쇠로 일관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예상이 완벽하게 빗나갔다.

‘확실히 눈치가 빨라. 강자한테 납작 엎드리는 법을 잘 안다니까.’

강현수 입장에서는?

진심 어린 사과가 아니라는 게 조금 마음에 들지 않기는 했지만.

‘애초에 진심으로 사과할 놈들도 아니고.’

일단 공식적으로 사과와 배상을 받은 것에 어느 정도 만족했다.

‘부족한 건 앞으로 차차 뜯어고치고. 필요한 건 직접 뜯어 오면 그만이니까.’

신한민국의 인구가 2,500만을 조금 넘는 정도인데 3조 달러를 받았으니.

인구가 5천만이 넘는 대한민국은 6조 달러 정도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어찌 되었든 일본도 인류 연합군의 일원이니만큼.

납작 엎드렸다면?

어느 정도 선처해 줄 용의가 있었다.

그러나.

일본 정부의 발표에 모두가 강현수처럼 만족한 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강렬한 분노와 살의를 느끼는 이들이 있었다.

바로 일본의 강성 우익 플레이어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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