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전 (4)
김철우 대통령은 미국이 함께 싸우자고 강권할 거라고 생각했다.
일단 한국에게 있어서 북한의 일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당장 계엄령을 선포하고 예비군 소집령을 발동할 만한 중차대한 사건이었다.
김철우 대통령은 나름 각오를 하고.
미국과 중국의 충돌을 최대한 방지할 생각이었다.
한국의 6.25 전쟁은.
사실상 소련과 중국으로 대표되는 공산주의 세력과 미국으로 대표되는 자본주의 세력의 대리전이었다.
‘이 땅에서 다시 그런 대리전이 벌어져서는 안 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전쟁을 막아야 한다는 절박함으로 전화를 받은 김철우 대통령에게 있어서.
-미안합니다, 김철우 대통령님. 일이 갑작스럽게 진행돼서 미처 알릴 틈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이 피해를 입을 일은 없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설사 중국과 전쟁이 벌어지더라도 한국이 참전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 오히려 중국을 적당히 달래 주면서 중립적인 태도를 보이는 게 좋을 것 같군요.
저자세에 가까운 버틀러 대통령의 발언은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중립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중국을 적당히 달래 주라고요?”
-한국에게 있어서 중국은 최대 수출 시장 아닙니까? 괜히 전쟁으로 척을 지면 큰 손해일 수밖에 없지요. 그런 위험을 감수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버틀러 대통령의 발언에 김철우 대통령은 머리가 띵해지는 충격을 받았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한국에게 있어서 미국은 가장 중요한 우방이다.
그러나 중국 역시 한국의 가장 큰 고객이다.
그 둘이 다투면?
한국으로서는 입장이 난감해질 수밖에 없다.
중립적인 태도를 취한다?
자칫 잘못하면 미국에도 욕먹고 중국에도 욕먹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할 수 있다.
그렇다고 미국 편을 들면?
중국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고.
중국 편을 들면?
미국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한국 입장에서 미국과 중국의 갈등은 진퇴양난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북한이 관련된 일이고.
미국과 중국 사이의 분위기가 전쟁이 발발하기 직전처럼 흉흉한 상태에서는.
당연히 미국 편을 들 수밖에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미국이 세계 최강 대국이자.
세계 최대의 경제 대국이니까.
1인자와 2인자 중에 선택을 해야 한다면?
당연히 1인자의 편에 서야 하지 않겠는가?
또한 미국과 중국의 국가 신뢰도는 차원이 달랐다.
미국은 믿을 수 있는 우방이자 고객이 될 수 있지만.
중국은 든든한 고객이 될 수는 있어도.
믿을 수 있는 우방이 될 수는 없다.
아니,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언제 한국을 집어삼킬지 모르는 굶주린 맹수에 가까웠다.
그러니 한국 입장에서는 미국과 중국의 충돌을 막는 게 최우선이었고.
최악의 상황이 되면 미국 편을 들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지금 저게 미국 대통령 입에서 나온 말이 맞나?’
버틀러 대통령의 발언은.
한국 대통령 입에서 나와야 하는 말이지 미국 대통령 입에서 나올 말이 아니었다.
‘우리 한국을 떠보는 건가?’
오죽하면 그런 생각까지 들었다.
“아닙니다. 한국은 미국의 혈맹입니다. 전쟁이 발발한다면 당연히 혈맹으로서 미국과 함께 싸울 것입니다.”
이건 일종의 립 서비스이기도 했고.
한국의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다.
-하하하,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그러실 필요는 없습니다. 설사 전쟁이 벌어지더라도 한국은 자국의 영토 방위에 힘쓰기만 하면 됩니다. 여유가 되신다면 군수물자를 판매해 주시는 정도로 도움을 주십시오.
‘이놈이 뭘 잘못 먹었나?’
김철우 대통령은 순간적으로 버틀러 대통령이 미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군수물자를 지원해 달라는 것도 아니고 판매를 해 달라니?
그건 중국과 미국의 전쟁이 발발하면.
6.25 전쟁 당시 일본이 맡았던 포지션을 한국이 맡아 달라는 거 아닌가?
‘도대체 왜 이러는 거지?’
국제사회에 정의는 없다.
정의로운 척을 할 뿐이지.
모두 자국의 국익을 위해서 움직인다.
그런데 미국 대통령이라는 작자가.
자국인 미국의 국익보다 한국의 국익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
‘뭔가 있다.’
한국을 떠보려는 걸로 치기에는 도를 넘어선 발언이다.
‘북한을 온전한 친미 국가로 만들기 위함인가?’
가능성이 가장 높기는 하지만.
‘그러려면 한국의 도움을 받는 게 더 좋을 텐데?’
김철우 대통령은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미국이 한국에 이렇게 엄청난 배려를 해 주며 저자세로 나올 이유가 없었다.
‘그렇다고 왜 이렇게 잘해 주냐고 물어볼 수도 없고.’
김철우 대통령으로서는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궁금한 점이 많으시겠지만, 그건 그분께 들으시지요.
“그분이라뇨?”
김철우 대통령의 눈이 번뜩였다.
미국 대통령 입에서 그분이라는 극존칭이 나올 인물이 도대체 누구라는 말인가?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잠시 후 그분이 찾아가실 테니. 그럼 이만.
그 말과 함께 전화가 끊겼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지? 미국이 저렇게 나오는 이유는 뭐고? 그분은 뭐야?’
머리가 깨질 것 같은 두통이 느껴졌다.
그때.
“혼란스러운가?”
김철우 대통령 옆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린 김철우 대통령의 눈앞에 낯선 청년이 서 있었다.
“당신 누구야? 여기는 어떻게 들어왔지?”
김철우 대통령이 화들짝 놀라 물었다.
“버틀러에게 들었을 텐데?”
“그럼 당신이 그분?”
“이번 일로 한국에 피해가 오는 일은 없을 거다. 그렇게 지시를 내리기도 했고.”
청년의 말을 들은 김철우 대통령의 표정이 굳어졌다.
미국 대통령 이름을 옆집 아는 동생 부르듯 편하게 부르고.
아무렇지도 않게 지시를 내릴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되겠는가?
‘단 한 명도 없지.’
전 세계를 통틀어 그 누구도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그런 일을 벌인 인물이 자신의 눈앞에 있는 청년이었다.
거기다.
‘한국인이라니.’
김철우 대통령으로서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버틀러 대통령에게 한국에 피해가 오지 않도록 하라고 지시를 내리셨다는 말씀이십니까?”
김철우 대통령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20대 청년으로밖에 보이지 않지만.
‘외형만 보고 판단할 상황이 아니지.’
그렇기에 말투도 자동으로 바뀔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 정확히는 그놈이 먼저 한국에 피해가 갈 일은 절대 없을 거라고 이야기를 하더군. 이번 일로 내 도움을 받고 싶어 하는 거 같으니, 당연한 이야기겠지.”
청년의 말에 김철우 대통령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저 청년이 미국이 저자세로 나온 원인이었군.’
미국 대통령이 상식 밖의 발언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눈앞의 청년에게 있다고 생각하자.
‘이걸 어떻게 이용하지?’
갑자기 두통이 가시고.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상대는 한국인이고.
자신은 한국의 대통령이다.
거기다 상대는 애국심이 꽤 높아 보인다.
그럼 이걸 이용해서?
‘내 지지도를 올릴 수 있어.’
어디 그뿐인가?
저자세로 나오는 미국의 태도를 볼 때.
‘미국과 중국의 대립을 잘만 이용하면 막대한 이득을 취할 수 있다.’
직접 참전하는 게 아니라면?
무상으로 전쟁 물자를 지원하는 게 아니라면?
전쟁만큼 막대한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도 없다.
또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국가로 거듭난 북한을 재건하는 과정에 끼어들면?
또다시 막대한 경제적 이득을 취할 수 있다.
김철우 대통령 입장에서는?
지지도도 올리고.
정치적 업적도 세우고.
자신의 주머니도 두둑이 채우고.
한국의 국격도 올리고 국고도 두둑이 채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한국의 안전을 먼저 생각하시다니, 정말 애국자시군요. 대한민국이 귀하에게 정말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김철우 대통령이 환하게 웃으며 청년에게 꾸벅하고 고개를 숙였다.
“엉뚱한 생각하지 마.”
그때 청년이 김철우 대통령에게 말했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어디까지나 국익을 위해서 움직이라는 뜻이야. 엉뚱하게 딴 주머니 찰 생각하지 말고.”
“하하하, 너무 당연한 말씀을 하시는군요. 당연히 그렇게 할 생각입니다. 그보다 도대체 무슨 일을 하시는 분이신지, 제게 알려 주실 수 있을까요?”
김철우 대통령은 일단 상대의 정체부터 파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버틀러 대통령이 왜 저렇게 저자세로 나오는지 알 수 있으며.
‘미국의 약점을 내가 알고 이용할 수 있으면 금상첨화지.’
설사 바로 이용할 수 없다고 해도.
상대에 대한 정보를 얻어 내면.
간접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길이 보이는 법이다.
“내 이름은 강현수다. 귀환자이기도 하지.”
청년.
아니, 강현수의 말에 김철우 대통령이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러나.
강현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게 끝입니까?”
김철우 대통령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름과 귀환자라는 정보만으로는 버틀러 대통령의 저자세를 이해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더 알려 줘야 할 것이라도 있나?”
강현수의 물음에.
“하하하, 아닙니다.”
김철우 대통령은 한발 물러섰다.
‘일단 이름을 안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다.’
나머지는?
조사하면 하나둘 드러날 것이다.
“아무래도 더 알려 줘야 할 모양이군.”
강현수는 김철우 대통령을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애초에 강현수는 특별히 애국심이 특출 난 사람은 아니었다.
그냥 전형적인 대한민국 청년들이 가지고 있는 정도의 애국심을 가진.
평범한 개인에 불과했다.
대한민국이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안정적으로 성장해서.
지금보다 더 살기 좋은 나라가 되었으면 하고 바라고.
전쟁이나 경제적인 위기 없는 평화로운 나라가 되었으면 하는.
그러나 강현수 정도의 존재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에는 엄청난 도움이 된다.
거기다.
대한민국 대다수의 평범한 국민들은.
소위 높으신 분들의 불공정, 부정부패, 무능을 싫어한다.
아니, 사실 대한민국만이 아니라 세계 대다수의 국민들이 모두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건 강현수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현실적으로 분간이 쉽지 않고.
각자의 기준점이 다르며.
징벌하기 힘들다는 게 문제였지만.
강현수에게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초월적인 힘을 지닌 존재.
사실상 지구의 군주라고 해도 무방한 강현수에게 있어서.
이런저런 핑계나 법의 허점을 노린 편법 따위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세계 최강대국의 대통령인 버틀러가 강현수에게 저자세로 나오는 이유?
그건 강현수가 가진 힘을 직접 목격했고.
강현수가 초월적인 존재임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세계 최강대국이라고 불리는 미국의 경제력과 무력도.
강현수가 가진 힘에 비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렇기에 납작 엎드린 것이고.
조금이라도 강현수의 총애를 받기 위해.
강현수는 물론 한국이라는 나라에도 간이고 쓸개고 다 빼 줄 듯이 구는 것이다.
그러나.
‘어설프게 알고 짐작하는 것만큼 위험한 것도 없지.’
그럼 괜히 헛수작을 부릴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잠깐 시간 좀 내줘야겠어.”
강현수의 말에 김철우 대통령이 멈칫거리며 고민하다가.
“음, 알겠습니다.”
결국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고는 비서실에 지시를 내렸다.
‘이런 차이가 있는 거지.’
고민했다는 것 자체가.
거절할 생각도 있었다는 거다.
미국의 버틀러 대통령이었다면?
무조건 수긍했을 것이다.
어차피 자신에게 선택권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테니까.
강현수가 소피아를 소환했고.
“어? 저 사람은 누굽니까? 어떻게 이렇게 갑자기?”
김철우 대통령이 화들짝 놀라 물었지만.
강현수는 무시하고.
소피아의 공간 이동 스킬을 통해 김철우 대통령을 데리고 사라졌다.
적잖은 시간이 흐른 후.
“헉헉헉!”
거친 숨소리와 함께 김철우 대통령이 다시금 집무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앞으로 잘해.”
“네! 잘하겠습니다!”
“소환수 하나 붙여 놓을 테니까, 항상 곁에 두고.”
강현수가 도플갱어 한 기를 소환한 후 김철우 대통령에게 말했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럼 다음에 보자고.”
강현수는 군기가 빠짝 든 김철우 대통령을 뒤로하고 집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