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전 (3)
결정적으로 가장 큰 문제점은.
“한국이 북한을 흡수 통일하면 중국과 러시아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습니다.”
“분명 한국을 물고 늘어질 것이고 최악의 경우 전쟁이 발발할지도 모릅니다.”
중국과 러시아가 한국을 공격하면?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라 미국 역시 한국을 도와 중국 및 러시아와 전쟁을 치러야 한다.
중국과 러시아를 상대로 미국이 전쟁에 참여한다면?
그건 세계 3차 대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이 북한을 흡수 통일하는 건 위험부담이 너무 큽니다.”
“우리 미국 입장에서는 차라리 내전의 승리자에게 적절한 당근을 주고 핵 폐기를 종용하는 게 이득입니다.”
참모들의 대답에 미국 대통령 버틀러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전쟁이 벌어지면 손해라고 생각하나?”
버틀러 대통령의 말에 참모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전쟁.
그 무시무시한 단어를 입에 담은 사람이 다름 아닌 미합중국의 대통령이었던 까닭이다.
“핵전쟁이 벌어지면 인류는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설사 핵전쟁을 피해 국지전을 벌인다고 해도 이라크 전쟁이나 아프가니스탄 전쟁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인명 피해가 발생할 겁니다.”
참모들은 전쟁을 경계했다.
그러나.
“그분이 그러도록 내버려 두리라고 생각하나?”
이어진 버틀러 대통령의 한마디에 표정이 달라졌다.
“그렇군요.”
“전쟁은 더 이상 군대만으로 치르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습니다.”
플레이어.
그들의 등장으로 인해 전쟁은 전과 다른 양상을 띨 수밖에 없었다.
“안 그래도 중국을 한 번쯤 밟아 놓을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하던 차였네. 이번 북한 내전이 좋은 계기가 되겠지.”
다른 때라면 망설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강현수가 아군이 된 시점에서는?
‘지금이 절호의 기회다.’
‘별다른 피해 없이 중국의 콧대를 꺾어 버릴 수 있어.’
전쟁은 절대 안 된다던 참모들의 생각이.
‘지금이 절호의 기회다.’로 바뀌어 버렸다.
“그분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그때 CIA 국장이 모습을 드러내며 말했다.
“어찌하라고 하시던가?”
“북한 내전이 플레이어 반군의 승리로 끝났다고 합니다. 그들에게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국가 성립을 선포함과 동시에 미국에 도움을 청하라고 지시를 내렸으니, 도움을 주라고 하셨습니다.”
“직접 그놈들을 만나 보신 모양이군.”
“그렇습니다.”
“그런데 북한을 한국에 흡수 통일시킬 생각은 아니신가 보군.”
“당장은 아니지만, 나중에는 그럴 생각이 있으신 듯했습니다. 북한의 새로운 국명을 신한민국으로 정했다고 하셨으니. 아마 대한과 신한이 공존하는 체계로 가다가, 신한의 경제가 어느 정도 성장하고 국민 의식과 공감대가 무르익으면 연방제로 가거나. 아니면 신한을 대한에 흡수 통일하실 생각이신 것 같습니다.”
“나쁘지 않은 방법이군.”
대한민국 입장에서는?
당장 흡수 통일하는 것보다 리스크가 월등히 적었다.
유일한 단점은?
새롭게 건국될 신한민국이 훗날 대한민국과의 통일을 거부하고 독자적 노선을 가는 것인데.
‘그분이 계시는 한 그런 일은 있을 수가 없겠지.’
그럼 먼 훗날 둘로 쪼개졌던 남한과 북한은 다시 하나의 나라가 되리라.
“중국과 러시아가 가만히 있지 않겠군.”
특히 무너진 북한 정권에 많은 투자를 했던 중국이 가만히 있지 않으리라.
중국 입장에서는?
그간 계속해서 돈과 자원을 쏟아부으며 침 발라 놨던 우방국 혹은 잠재적 합병 예정국인 북한을.
한국과 미국이 깃털 하나 뽑지 않고 홀라당 집어삼키는 꼴이었으니까 말이다.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세력과는 그 어떤 타협도 불가합니다.”
“북한의 새로운 정권이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선택한 이상 무조건 도와야 합니다.”
“중국에 대한 강력한 경고가 필요합니다.”
참모들이 과격한 의견을 토해 냈다.
강현수의 지시가 떨어졌다는 건.
뒷배를 봐준다는 말이었고.
그럼?
버틀러 대통령의 말대로 이번이 중국의 콧대를 꺾어 놓고, 친미주의 국가의 영역을 확대할 절호의 기회였다.
“당장 북한에 전권대사를 파견하시오. 그와 동시에 대한민국에 주둔 중인 미군을 북한으로 올려보내 중국과 러시아의 국경지대에 배치하고, 제7함대를 대한민국 서해에 주둔시키시오.”
버틀러 대통령이 중국과 러시아로서는 경기를 일으킬 수밖에 없는 발언을 연달아 토해 냈다.
국경 지대 미군 배치.
서해에 제7함대 주둔.
막말로 중국이나 러시아와 전쟁이 벌어져도 이상할 게 없는 엄청나게 자극적인 지시였다.
아마 강현수라는 존재가 없었다면?
제아무리 미국이라도 이렇게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 * *
‘이놈들 엄청 적극적으로 나오네.’
강현수는 미국의 대처를 바라보며 적잖이 놀랐다.
아무리 미국이라고 해도.
중국은 미국과 함께 G2라고 불릴 정도의 신흥 패권국이고.
러시아는 소련 시절부터 유일하게 미국에 대척할 수 있는 국가였다.
그러나 미국의 움직임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막말로 전쟁이라도 불사할 기세였다.
‘어떤 생각인지 대충 짐작이 가네.’
하나 그렇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사실 이 정도 적극적인 조치라면?
북한의 새로운 정권이 미국의 하수인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럴 일은 없지.’
강현수의 눈치를 보느라 절대 그러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북한에 막대한 지원을 하며 강현수의 환심을 사려 할 확률이 높았다.
‘나쁘지 않아.’
전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
70년 넘게 전쟁 중인 국가.
‘이제는 이 타이틀을 내려놓을 때도 됐지.’
휴전이 아니라 종전 선언을 하면 전쟁 중인 국가 타이틀은 단숨에 사라진다.
그 후 서서히 체급을 맞춘 후.
남한과 북한을 통합하면?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 타이틀도 사라진다.
부작용도 적고 말이다.
‘그보다 중국이 어떻게 나올지가 걱정인데. 예상대로네.’
새로운 북한 정권이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국가 이념으로 발표한 것만으로도 기함을 할 일인데.
미국의 전권대사가 새로운 북한 정권과 교섭을 했고.
그 결과.
미군이 중국과 북한의 국경 지대에 자리를 잡았고.
제7함대가 서해에 진출했으니.
중국 입장에서는?
당연히 지랄 발광을 할 수밖에 없었다.
* * *
북한의 내전.
중국은 즉시 개입할 생각이었지만.
내전이 너무 빨리 끝나 버렸다.
플레이어로 이루어진 반군이 평양에 숨어들어 일제히 공격을 시작했고.
불과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평양이 반군의 손에 점령당했다.
그리고 이틀째.
반군 플레이어들이 지방에 주둔하고 있던 북한 인민군 지휘관들을 제거하고 인민군을 장악했다.
중국은 적잖이 당황했지만.
그래도 개입할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미국이 너무 기민하게 움직였다.
마치 플레이어로 이루어진 반군과 미국이 한편이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중국은 비상이 걸렸고.
이번 쿠데타가 미국의 계획과 지원하에 이루어졌다고 생각했다.
“미국이 이런 무리수를 둘 줄은 몰랐습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이건 절대 그냥 넘어갈 수 없습니다.”
“맞습니다. 만약 이번 일을 그냥 넘어가면 미국이 이번에는 본토에서 쿠데타를 지원할지도 모릅니다.”
중국공산당에게 있어.
플레이어 반군에 의한 북한 노동당의 멸망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었다.
주체사상, 3대 세습, 독재, 인권 탄압 등등.
공산주의가 가지고 있는 원래 이념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정신 나간 짓거리를 수도 없이 자행하고.
사실상 시대착오적인 전제 왕조 국가에 가까운 북한 정권이었지만.
그래도 겉으로 내건 간판은 공산주의였다.
그런데 공산주의 정권이 하루아침에 몰락하고.
자본주의를 기반으로 한 민주주의 정권이 들어섰다.
어디 그뿐인가?
북한의 수령의 목까지 날아갔다.
이건 같은 공산주의 국가이며 일당독재 체제이자 독재자의 지배를 받고 있는 중국으로서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왜?
중국이 가지고 있는 북한의 이권도 이권이지만.
북한에서 일어난 일이 중국에서 일어나지 말라는 법도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미군의 북상과 제7함대 서해 주둔은?
미군이 중국의 턱밑에 칼들을 들이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인 형국이었다.
“어떻게든 북한의 공산주의 정권을 복구시켜야 합니다.”
“반란을 저지른 플레이어들에게 피의 보복을 해야 합니다.”
중국공산당 간부들이 열변을 토해 냈다.
그러나 문제는.
“미국은 어떻게 할 겁니까?”
“자칫 잘못하면 전쟁입니다.”
바로 미국이었다.
“그럼 미국이 무서워서 가만히 있자는 말이오?”
“아직은 은인자중하며 때를 기다려야 하오.”
“이미 기다릴 만큼 기다렸소! 이런 모욕을 당하고도 참는다면 그건 굴욕을 넘어선 복종이오!”
“미국은 대국이오! 어찌 소국이 대국에게 대항한단 말이오!”
“지금 우리 중국을 소국이라고 한 것이오!”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말이지 않소!”
중국공산당 간부들이 서로 날 선 대립을 이어 나갔다.
미국과 전쟁을 벌이는 한 있더라도 참아서는 안 된다.
시기상조 다, 조금 더 힘을 키우며 참자.
그러나 전체적인 의견은 참아서는 안 된다가 우세했다.
서로 목소리를 높이던 중국공산당 간부들의 시선이 한 사람에게 쏠렸다.
중국 국가주석 서진핑.
자신들이 아무리 목소리를 높여 봐야.
결정을 내리는 것은 그였다.
서진핑 주석이 어떤 결론을 내리느냐에 따라 중국공산당의 공식 입장이 정해지리라.
“한 번 물러나면 두 번 물러나야 하고. 그러다 보면 영원히 뒷걸음질만 치게 될 거요.”
서진핑 주석의 한마디에.
그날 회의가 결과가 정해졌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중국 공식 대변인이 외신 기자들을 모아 놓고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는 미국의 음모입니다! 미국이 북한의 플레이어들을 충동질해 국가를 전복시킨 겁니다!”
중국 정부 대변인은 외신 기자들 앞에서 목에 피를 토할 기세로 목소리를 높였다.
“미국은 무력을 동원해서 한 국가의 주권을 박탈하고 강제로 병합했습니다! 이건 제국주의의 부활이자! 새로운 식민지의 탄생입니다! 미국은 당장 북한에서 미군을 철수시켜야 합니다!”
“만약 미국이 거부하면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우리 중국 정부는 북한 인민의 자유를 위해 피를 흘릴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피를 흘린다니? 전쟁이라도 하시겠다는 겁니까?”
“제국주의에 신음하는 북한 인민들의 해방을 위해서라면 못 할 것도 없지요.”
중국 정부 대변인이 전쟁을 입에 담았다.
그리고 그날.
세계 각국의 주가가 일제히 동반 폭락했다.
* * *
“진짜 중국이랑 전쟁 나는 거 아니야?”
“그러게.”
“미국이랑 중국 싸움인데 우리한테까지 불똥이 튈까?”
“한미상호방위조약 모르냐? 한국이나 미국 한쪽이 전쟁 나면 다른 한쪽은 자동으로 참전이라고. 더군다나 북한 때문에 벌어진 일이잖아. 이건 절대 남 일이 아니라고.”
“계엄령 떨어지고 예비군 소집되는 거 아니야?”
“충분히 가능성이 있지.”
“이런 씨발.”
“이게 뭔 난리야.”
미군의 북진.
중국의 전쟁 발언.
가장 난리가 난 나라는 바로 한국이었다.
전쟁이 나면?
전쟁터는 한반도가 된다.
또 헌법에 의하면?
북한 땅은 그저 김씨 일가를 비롯한 반군 세력이 강제 점거하고 있었을 뿐.
엄연히 한국의 공식 영토다.
국민들은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가장 혼란스러운 건?
한국 정부였다.
북한에서 내전이 일어난 것만 해도 난리가 날 일인데.
갑자기 북한의 새로운 정권과 미국이 손을 잡은 것이다.
한국 대통령 김철우는 머리가 부서질 것 같은 두통에 시달렸다.
북한 내전 정보를 들었다.
미처 대비도 하기 전에 내전이 종료되었고.
반군이 북한을 장악했다.
그리고 곧바로 미국이 움직였다.
‘진짜 중국 말대로 미국이 계획한 쿠데타 아니야?’
김철우 대통령이 보기에도 미국의 행보는 너무 비정상적으로 빨랐다.
또 미군이 북진하는 중차대한 일이 불과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이루어진 것 또한 의문스러웠다.
‘이런 망할 양키 새끼들. 최소한 미리 귀띔은 해 줘야지.’
김철우 대통령은 미국의 갑작스러운 폭주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러나.
‘이미 호랑이 등에 올라탔어.’
한국은 좋으나 싫으나 미국과 보조를 함께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각하, 백악관에서 버틀러 대통령의 직통전화가 왔습니다.”
으드득!
김철우 대통령이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마음 같아서는 욕이라도 한 바가지 퍼부어 주고 싶었지만.
무조건 참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 오히려 미국이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기를 바라야 했다.
그런데.
미국 대통령 버틀러의 입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내용의 말이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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