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 동맹 (2)
“우리는 그분이 거느린 군대 중 중상 정도의 위치에 지나지 않는다.”
로저는 강현수가 어떤 존재들을 휘하에 두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대공, 공작, 후작, 백작 같은 고위 마계 귀족부터.
신의 칭호와 황, 존, 제, 성 같은 칭호를 가진 최상위 네임드 플레이어까지.
특히 방금 죽인 적을 부활시켜 수하로 삼는 모습은.
경의를 넘어 공포가 느껴질 정도였다.
“이렇게 생각하면 편할 거야. 그분의 휘하에 우리보다 10배 이상 강한 이들이 족히 수만 명은 있다고.”
로저의 말을 들은 마틴은.
‘지금 제정신으로 하는 말인가?’
상식적으로 로저의 말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강현수 플레이어에 대해서는 철저히 조사했다.’
그러나 그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는 강현수 근처에 없었다.
아니, 있을 수가 없었다.
미국 비공식 랭킹 1위.
그보다 10배 이상 강한 이들이 족히 수만 명?
그건.
“지구의 랭커를 다 끌어모아도 그런 전력은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마틴의 말속에는 깊은 불신이 깔려 있었다.
“그야 그렇겠지.”
“그런데 왜 그런 말씀을 하신 겁니까?”
“난 그분의 군대가 플레이어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한 적은 없는데?”
“플레이어가 아니면? 몬스터를 테이밍하는 스킬을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까?”
그러면 대충 말이 되기는 한다.
와이번을 부리기도 했으니까.
그렇지만 그 정도 강력한 몬스터는 등장한 적도 없고.
그렇게 많은 숫자가 존재할 수도 없다.
“테이밍이 아니야. 일종의 소환수지.”
“소환수?”
“그분은 죽은 자를 소환수로 부활시킬 수 있다.”
“소환수? 그럼 강현수 플레이어가 소환사 계열이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군.”
“그게 무슨?”
강현수의 무력은 러시아, 중국, 일본 몬스터 웨이브를 정리하며 대략적으로 알려졌다.
핏빛 오러를 날려 한 번에 수백의 몬스터를 격살하는 존재.
그런데 그런 이의 직업이 소환사라니?
“그분은 아틀란티스에서의 힘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고 하셨다. 그러니 아마 그때 소환수 대군도 가지고 있겠지. 뭐, 진짜 무서운 건 소환수가 아니라 그분의 무력이지만.”
마틴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는 않지만.
‘만약 저 말이 사실이라면?’
강현수라는 개인이 지구 인류 전체의 전력보다 위라고 해도 무방했다.
개인이 가진 무력이.
신에 가까울 정도로 초월적인 마왕을 쓰러트릴 정도로 강력하고.
지구 플레이어들을 다 동원해도 미치지 못할 정도의 강력한 소환수를.
무려 수백만이나 보유하고 있는 존재였으니까.
“솔직히 말씀드려서 저는 로저 님의 말씀을 믿기 힘듭니다.”
만약 로저가 미국 비공식 랭킹 1위가 아니었다면?
당장 정신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으라고 권하리라.
“그렇겠지. 그건 직접 경험해 보지 않으면 믿기 힘든 일이니까. 어차피 당신을 설득할 생각은 없었어.”
마틴은 CIA 부국장.
강현수의 존재는?
그의 권한으로 어찌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그냥 순수하게 보고나 올리라고.”
“그 전에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조니, 코너, 드류, 스테판이 누구입니까?”
필립은 안다.
그러나 나머지는 모른다.
“나와 비슷한 수준의 플레이어들로 그분의 수하였던 자들이지. 그동안은 조용히 살고 싶다고 해서 내버려 뒀지만.”
“로저 님과 비슷한 수준이라고요?”
로저는 미국 비공식 랭킹 1위다.
미 중앙정부의 판단으로는?
전 세계로 따져도 못해도 랭킹 5위 이내.
내심 랭킹 1위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수준의 플레이어가 미국에 그렇게 많이 있었다니?
“내가 알려 줄 수 있는 건 다 알려 줬으니. 다른 건 페이튼에게 물어보라고.”
로저가 그 말과 함께 자리를 떠났고.
‘빌어먹을.’
마틴은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그냥 보고서나 쓰자.’
마틴은 자신의 임무에 충실하기로 했다.
‘뺄 것도 없고 보탤 것도 없어.’
자기가 보고 들은 것만 충실하게 써서 보고서를 올리면 그만이다.
결정은?
‘윗분들이 알아서 하시겠지.’
마틴은 자신의 본분에 충실했다.
* * *
강현수는 다음 날 미국 플레이어들의 방문을 받았다.
익숙한 얼굴도 있었고.
전혀 모르는 얼굴도 있었다.
그중 가장 늦게 도착한 인물이 바로 필립이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필립이라고 합니다.”
“꽤 소란이 있었더군.”
“죄송합니다. 그게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필립은 미국 공식 랭킹 1위이자.
엄청난 유명인이었다.
TV에도 여러 번 출현했고.
미국의 히어로라고 불리며.
어떤 면에서는 미국 대통령을 능가하는 인지도를 가진 인물이다.
그런 이가 갑자기 예정에도 없던 방한을 했으니.
당연히 난리가 날 수밖에 없었다.
“알고 있다.”
“로저, 페이튼, 조니, 드류가 연대장이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혹시 제가 너무 늦은 건 아니겠지요?”
필립의 표정은 꽤 초조해 보였다.
필립의 실력은 로저와 페이튼에 비해 살짝 떨어졌지만.
조니와 드류보다는 뛰어났다.
문제는 그리 큰 차이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렇기에 필립은 초조할 수밖에 없었다.
로저, 페이튼, 조니, 드류가 연대장이 되었는데 자신이 대대장이 되면?
로저와 페이튼을 따라잡기 더 힘들어지고.
조니와 드류에게는 따라잡히는 꼴이 되어버리니까 말이다.
고작 유명세 때문에 조금 늦었을 뿐인데 버프가 밀린다면?
필립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걱정할 필요 없다.”
“다행이군요.”
필립의 얼굴이 환해졌다.
사실 필립이 이렇게 비밀리에 온 건 강현수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서였다.
미국 공식 랭킹 1위 필립이 강현수를 만나면?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될 수밖에 없으니까 말이다.
강현수는 필립에게 지휘관 임명과 지휘관의 축복을 시전해 주었고.
필립을 마지막으로 자신을 찾아온 미국 소속 플레이어들을 모두 휘하에 들였다.
‘미국이 제대로 된 결정을 내렸으면 좋겠는데.’
긍정적인 건?
강현수의 휘하에 들어온 플레이어들 중 일부가 미 중앙정부에 대한 입김이 꽤 강하다는 점이었다.
귀환자이자 랭커.
미 중앙정부 입장에서도 귀하게 여길 수밖에 없는 존재였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정보도.
그들의 무력도 말이다.
‘뭐, 금방 이루어지지는 않겠지.’
강현수는 던전으로 향했다.
지휘관 임명과 지휘관의 축복을 내리느라 꽤 많은 스텟이 소실되었으니.
그걸 다시 복구해야 했다.
강현수는 다시금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갔다.
* * *
강현수는 가끔 송하나와 데이트를 즐기고.
가족들과도 많은 시간을 보냈지만.
평상시에는 부지런히 던전을 돌았다.
그러던 중 드디어 미국에서 연락이 왔다.
“백악관에서 강현수 플레이어를 초대했습니다.”
마틴이 공손히 초대장을 내밀었다.
“나보고 직접 미국으로 오라고?”
강현수가 얼굴을 찌푸렸다.
시간은 금이다.
가족들과 시간도 보내야 하고.
사냥도 해야 하는 강현수의 입장에서.
비행기를 타도 13시간 이상 걸리는 거리를 이동하는 건?
시간 낭비나 다름이 없었다.
거기다 오는 시간도 생각을 해야 했고.
이런저런 절차와 협상까지 생각하면?
‘아무리 짧아도 2~3일은 날리겠지.’
왕복으로 비행기 타고 왔다 갔다 하는 시간만 하루가 넘으니 어쩔 수가 없었다.
“싫은데.”
강현수가 마틴에게 거절 의사를 표했다.
미국이 먼저 접근해 와서.
손에 넣어 주기로 했지만.
사실 강현수 입장에 상호 동맹이니 어쩌니 하는 건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강현수가 미국에게 도움받을 일이 뭐가 있겠는가?
돈?
강현수와 가족들이 편하게 살 정도면 족했고.
그 정도 돈은 강현수가 사냥을 해서 버는 걸로 충분했다.
뭐, 우광 그룹이라는 나름 튼실한 돼지 저금통이 있기도 했고.
권력? 명예?
그런 건 원하면 언제든지 손에 넣을 수 있다.
그저 강한 권력과 명예에는 큰 귀찮음이 따르기에 멀리했을 뿐.
반면 미국은?
강현수의 휘하에 들어오면 강력한 몬스터 웨이브나 마족의 대대적인 침공이 발생했을 때.
‘내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즉, 강현수와 미국의 상호 동맹은?
강현수에게는 별다른 도움이 안 되고.
미국에만 좋은 거였다.
그저 지구의 평화와 침략자들과의 전쟁 승리를 위해.
‘큰 귀찮음을 감수하고 동맹을 맺어 주겠다는데.’
직접 오는 것도 아니고 강현수 보고 찾아오라니?
“지금 백악관이 제대로 상황 파악하고 있는 거 맞나?”
강현수에 대한 제대로 된 정보를 얻었다면?
미국 대통령이 에어포스 원을 타고 한국으로 날아오는 게 맞았다.
“송구합니다. 그렇지만 이미 필립의 갑작스러운 한국행으로 이목이 너무 크게 쏠렸습니다.”
필립만이 문제는 아니었다.
최대한 감추기는 했지만.
타국에서 파악하고 있던 비공식 랭커 로저와 페이튼의 한국행이 알려졌을 확률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대통령까지 갑작스럽게 한국에 온다?
“러시아와 중국이 무조건 강현수 플레이어의 존재를 눈치를 챌 겁니다. 어쩌면 다른 국가들도 알아차릴 수 있고요.”
“음.”
마틴의 말에 강현수가 대충 상황을 이해했다.
그리고 러시아와 중국의 경우는.
‘미국과는 다른 방법으로 접근해야 하기는 하지.’
독재자들이 다스리는 나라는?
‘어떤 비정상적인 짓을 저지를지 모르니까.’
강현수를 포섭하겠답시고 미친 짓을 저지를 수도 있고.
포섭하지 못하면 제거하겠다고 삽질을 할 수도 있다.
강현수가 그런 수작에 당하지는 않겠지만.
‘괜히 가족들한테 해가 될 수도 있어.’
또 독재자들의 삽질에.
지구 플레이어 전력만 엉뚱하게 깎여 나갈 확률이 높았다.
‘언젠가 러시아와 중국도 손에 넣기는 해야겠지만.’
일단은 미국이 우선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뭐? 어떻게?”
“미국 플레이어 협회 소속 특수 스킬 보유자가 어제 한국에 도착했습니다.”
“특수 스킬 보유자?”
“예, 전투 능력은 떨어지지만. 거리에 상관없이 한 번 갔던 장소로 언제든 이동할 수 있는 공간 이동 스킬을 보유하고 있는 플레이어입니다.”
“오호.”
강현수의 눈이 번뜩였다.
‘장거리 공간 이동 게이트 역할을 할 수 있는 플레이어가 있다는 거잖아.’
미국이 그런 플레이어를 보유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몇 명이지?”
“현재 미국 플레이어 협회 소속으로 총 다섯 명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중 한 명이 한국에 온 겁니다.”
“다섯이라.”
진짜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어쩌면 더 많은데.
‘다섯 명이라고 숫자라고 속였을 수도 있지.’
진실은 알 수 없지만.
‘한 명 정도는 포섭할 수 있겠지.’
그럼?
강현수가 걱정하던 사냥터 출퇴근 문제가 완벽하게 해결된다.
“희귀한 스킬 같은데 숫자가 꽤 많군.”
“미국 출신은 한 명도 없습니다. 전부 타국 출신으로 CIA에서 스카웃한 인물들입니다.”
“현명한 선택을 했네.”
공간 이동.
전투력은 낮지만.
플레이어들의 기동력을 최상으로 끌어올려 준다.
특히 미국같이 땅덩어리가 넓은 나라에서는?
‘공간 이동 스킬 보유자의 존재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겠지.’
비행기를 타고 가면 아무리 못해도 몇 시간이 걸릴 거리를.
고작 몇 초로 단축시켜 줄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장거리 공간 이동 스킬 보유자의 존재는?
‘나한테도 꽤 쓸 만하겠어.’
강현수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피어올랐다.
‘미국에게 받을 게 없어서 곤란했는데.’
공간 이동 스킬 보유자 한 명이라면?
충분히 수지맞는 장사인 것 같았다.
‘역시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한다니까.’
미국에 대가 없이 은혜를 베풀어 주려고 마음을 먹으니?
이렇게 알아서 필요한 복덩이가 굴러 들어오지 않겠는가?
“당장 가지.”
“제가 모시겠습니다.”
강현수는 마틴의 안내를 받아 공간 이동 스킬 보유 플레이어를 만났고.
그와 함께 순식간에 미국 워싱턴 D.C.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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