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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 동맹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마틴은 정신이 멍해졌다.
그저 말 한마디만 전했을 뿐이다.
그런데.
‘한국으로 오겠다니?’
그것도 그 콧대 높고 자존심 강한 로저가 말이다.
‘무슨 암호 같은 건가?’
오죽하면 그런 생각까지 들었다.
마틴은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로저는 받지 않았다.
‘이런.’
마틴이 얼굴을 찌푸렸다.
‘페이튼에게라도 연락을 해 봐야 하나?’
필립은 사설 길드의 수장이었기에 마틴과는 안면이 없었다.
그러나 페이튼은 미 중앙정부 소속 비공식 랭커이기에 마틴과는 안면이 있었다.
중앙정부에 그리 친화적인 인물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지금은 연락을 해 볼 수밖에 없었다.
마틴이 전화를 걸었고.
-왜 전화했지?
페이튼의 까칠한 목소리가 들렸다.
“혹시 강현수 플레이어를 알고 계십니까?”
-모른다. 고작 그걸 물어보려고 나한테 전화를 한 건가?
노기까지 느껴지는 페이튼의 음성에 마틴이 얼굴을 찌푸렸다.
“강현수 플레이어가 전보다 더 높은 계급을 얻고 싶다면 서두르는 게 좋을 거라고. 늦으면 계급이 더 낮아질 거라고 했습니다. 혹시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으십니까?”
-뭐? 전보다 더 높은 계급?
“예, 그렇습니다.”
-지금 어느 나라에 있지?
“한국입니다.”
-바로 가지.
익숙한 느낌과 함께 곧 전화가 끊길 것 같다는 위기감이 찾아왔다.
“강현수 플레이어와 아시던 사이였던 겁니까?”
마틴이 다급하게 물었다.
-지금 그분과 함께 있나 보군.
그분이라는 칭호에 마틴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페이튼은 오만한 자였다.
그런 그가 누군가를 그분이라고 높여 부르는 건 처음 봤다.
-충고 하나 하지. 미국을 위해서라도 그분에게 실례를 저지르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뚝.
그 말을 끝으로 페이튼의 전화가 끊어져 버렸다.
‘미국을 위해서라도 실례를 저지르지 말라고?’
마틴은 기가 막혔다.
순간적으로 페이튼이 미쳤거나.
자신을 놀리려고 장난을 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나.
‘그럴 리가 없지.’
미 중앙정부에 친화적이지 않은 인사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적대적인 인물도 아니었고.
결정적으로.
‘허언을 할 만한 인물은 절대 아니지.’
절로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방금 전 강현수 플레이어가 말했던 상호 동맹이 더 이상 헛소리처럼 생각되지 않았다.
저벅저벅.
마틴이 강현수에게 다가가 자리에 앉았다.
“말은 잘 전했나?”
“당신은 도대체 누구십니까?”
“그들이 이야기해 주지 않았나?”
“이야기를 전하니. 그대로 전화를 끊어 버리더군요.”
“급하기는 했나 보군.”
계급을 높여 준다.
그 말이 결정적이었으리라.
‘전에는 고작 대대장이었던 녀석들이니.’
타 차원 출신 플레이어 연합의 수장은 적염제 도르초프였지만.
실질적인 주인은 강현수였고.
타 차원 출신 플레이어 연합 소속 중 최상위 네임드 플레이어들은?
수장인 적염제 도르초프의 휘하 지휘관들이었다.
그들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어차피 그들은 적염제 도르초프의 휘하에 있었고.
그저 그걸 시스템의 힘으로 공고히 하는 대가로.
강력한 버프를 받을 수 있었으니까.
‘적염제 도르초프에게 줬던 직위가 여단장이었지.’
여단장인 적염제 도르초프가 줄 수 있는 직위는?
‘대대장이 최대치.’
당연히 타 차원 출신 플레이어 연합 소속 최상위 네임드 플레이어들은 대대장 직위를 받았다.
그들은 여단장인 적염제 도르초프 휘하 지휘관들이었지만.
적염제 도르초프가 강현수의 휘하 지휘관이었으니.
사실상 강현수의 휘하 지휘관이나 마찬가지였다.
‘한 번 맛을 본 놈들이라면 절대 모른 척할 수가 없겠지.’
지휘관 임명과 지휘관의 축복으로 모든 스텟이 40% 상승했을 터.
‘최상위 플레이어일수록 버프로 인한 효과가 크다.’
40%만 해도 엄청난데.
계급을 더 높여 준다고 했으니.
당연히 열광할 수밖에 없었다.
‘뭐, 특별한 제약을 건 것도 아니었으니까.’
휘하에 있었기에 잘해 주면 잘해 줬지 푸대접한 적도 없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리스크 없는 공짜 버프처럼 느껴졌겠지.’
설사 리스크가 있다고 해도.
그들이 거부할 리가 없었다.
강현수의 이름은 몰랐지만.
척마혈신이라는 플레이어가 어떤 존재인지는 그들 스스로가 그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을 테니까 말이다.
거기다 전에는 한 다리 건너서 강현수의 수하가 되었지만.
지금은?
‘직계약이니까.’
아무리 대우가 좋아도.
한 다리 건너는 하청 계약이 직계약을 이길 수는 없는 법 아니겠는가?
“나에 대해서는 그 녀석들에게 듣는 게 더 좋을 거다. 그럼 이만 가 보도록 하지.”
강현수가 그 말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고.
마틴은 차마 강현수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로저와 페이튼과 계속 연락을 시도하는 한편.
친분이 없는 필립에게도 연락을 취했다.
강현수에 대한 정보를 조금이라도 확보하기 위함이었다.
* * *
다음 날.
강현수는 마틴과 함께 미국의 비공식 랭킹 1위와 2위인 로저와 페이튼을 만날 수 있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한국인이신 줄 알았다면 진작 찾아뵈었을 겁니다.”
로저와 페이튼이 공손히 강현수에게 허리를 숙였고.
마틴의 얼굴은 돌덩이처럼 굳어졌다.
“일단 약속했던 대로 계급부터 올려 주지.”
강현수가 지휘관 임명 스킬을 활용해 로저와 페이튼을 연대장으로 임명했고.
연이어 지휘관의 축복까지 내려 줬다.
“오오오오!”
“역시 엄청나!”
로저와 페이튼의 얼굴이 황홀함으로 물들었다.
순식간에 모든 스텟이 60%까지 늘어난 상황.
급격한 스텟의 상승에 전율이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어디 그뿐인가?
아틀란티스에서는 휘하 수하들에게 중대장, 소대장, 분대장 직위밖에 줄 수가 없었지만.
이제는 휘하의 플레이어들에게 대대장 직위를 줄 수도 있게 되었다.
“감사합니다.”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로저와 페이튼이 다시금 강현수에게 고개를 숙였다.
‘이게 무슨 상황인 건지.’
마틴은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하루 동안 어떻게든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머리를 굴렸고.
상부에도 보고해 대책을 논의했다.
그러나 채 결론이 나기도 전에.
너무도 어처구니없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
‘단순히 버프를 준 게 아니라. 마치 로저 플레이어와 페이튼 플레이어가 강현수 플레이어의 수족이 된 것 같지 않은가?’
미국 비공식 랭킹 1위와 2위.
그런 이들이 강현수의 수하가 된 거라면?
미국은 자국의 전력을 늘리기는커녕 줄어든 상황이 되어 버린다.
‘왜 저렇게 순순히 고개를 숙이는 거지.’
로저와 페이튼은 미국 비공식 랭킹 1위와 2위답게 자존심이 강했다.
미 중앙정부 소속이기는 했지만.
무슨 일이 있어 부려 먹으려면?
명령을 내리는 게 아니라.
미 중앙정부가 간절하게 읍소를 해야 할 정도.
마틴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꼿꼿했던 로저와 페이튼의 목이.
강현수 앞에서 너무나도 부드러워지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상대가 주는 대가가 달콤하다면 거래를 하면 될 일인데. 도대체 왜?’
속이 탔다.
“미국의 귀환자들 중 연락을 취하고 있는 이가 있나?”
그때 강현수가 물었고.
“필립, 조니, 코너가 있습니다.”
“드류, 스테판은 제가 알고 있습니다.”
로저와 페이튼이 재빨리 대답했다.
“그들에게도 연락해라. 나를 찾아오라고.”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런데.”
그때 페이튼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묻고 싶은 게 있나?”
“귀환하신 지 얼마 안 되셨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그렇게 빨리 힘을 회복하신 겁니까?”
“난 귀환하면서 힘을 잃지 않았다.”
강현수의 말에 로저와 페이튼의 입이 쩍 하고 벌어졌다.
“그러니 너희들에게 임명과 버프를 해 줄 수 있었던 거고.”
“아, 그러셨군요.”
“역시 주군이십니다.”
“난 이만 가 보겠다. 다른 녀석들이 도착하면 연락하도록.”
“예, 알겠습니다.”
“미국의 쓸 만한 귀환자들을 모조리 끌어모으겠습니다.”
“그럼.”
강현수가 가볍게 손을 흔들며 모습을 감췄고.
로저와 페이튼은 강현수가 완전히 모습을 감추자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이제 저에게 시간을 조금 내 주실 수 있으십니까?”
마틴이 간절한 눈빛으로 로저와 페이튼을 바라봤다.
“그러지.”
로저가 고개를 끄덕였고.
“난 연락을 먼저 해야 할 것 같아서.”
페이튼은 스마트폰을 흔들고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도대체 강현수 플레이어의 정체가 뭡니까? 그에게 뭘 받으신 겁니까? 그리고 왜 그리 순순히 고개를 숙이시는 겁니까?”
마틴이 궁금해 미칠 것 같은 표정으로 물었다.
“천천히 설명해 주지. 우리가 귀환자라는 사실은 알고 있을 거고. 마왕군이 어떤 존재인지도 알고 있겠지.”
로저의 말에 마틴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구 플레이어들의 힘은 아직 미약해. 마왕군의 침공도 마족이 아니라 몬스터가 쳐들어오는 수준이지. 그러나 제대로 성장한 플레이어와 마족들의 전투력은 수준이 달라.”
“그건 알고 있습니다.”
이미 미 중앙정부는 앞으로의 전투를 어떻게 풀어 갈 것인지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 놓았고.
플레이어들을 체계적으로 성장시키기 위한 준비까지 끝마친 상태였다.
“아니, 자네들은 몰라. 좀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실감을 못 하고 있지.”
“그게 무슨?”
“탱크? 전투기? 미사일? 핵? 그런 게 고위 마계 귀족들에게 통할 것 같나? 몬스터들을 정리하는 일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제대로 된 마계 귀족들에게는 어린애 장난감일 뿐이야. 오히려 인간의 정신을 붕괴시키는 정신계 스킬이나 도플갱어 같은 녀석들에게 당해 버리면 같은 인류를 공격하는 재앙이 될 확률도 크지.”
로저의 말에 마틴은 미 중앙정부도 그 정도는 알고 있고 대책 마련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중이라고 반문하고 싶었다.
거기다 지금 자신은 마왕군의 침공 전쟁이 아니라 강현수 플레이어에 대해 물었다.
그런데 도대체 왜 저런 이야기가 나온다는 말인가?
“내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 모양이군. 그래도 마왕군이 어떤 존재인지는 대충 알겠지?”
“마왕군이 플레이어의 도움 없이는 절대 막을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싶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마틴의 말에 로저가 피식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지구의 플레이어들이 아무리 힘을 키워도 마왕을 막는 건 기적에 가까운 확률일 거다. 마왕은 말 그대로 신에 가까운 초월적인 존재니까.”
“예?”
“아틀란티스도 그랬어. 마왕이 강림하는 순간 모든 전장에서 퇴패했지.”
“그런데 어떻게?”
아틀란티스는 승리했고.
귀환자들은 지구로 돌아왔다.
“그분 때문이지.”
“강현수 플레이어 말입니까?”
“그래, 그분이 홀로 마왕군을 분쇄하고 마왕을 쓰러트렸어. 거기다 그분은 혼자가 아니야.”
“혼자가 아니라면?”
“그분이 와이번 탄 영웅이라고 불렸다지? 그럼 그 와이번은 어디로 갔을까?”
“그건…….”
마틴도 의문이었다.
“그분의 휘하에 단순히 와이번만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그럼?”
“그분은 절대자이자 홀로 수백만의 군대를 거느린 군주시다.”
“수백만의 군대를 거느린 군주?”
마틴은 로저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쉽게 이해할 수가 없었다.
대충은 알아들었다.
지구를 침략하는 적들의 수장이 일반적인 상식을 초월한 강자고.
강현수가 그런 존재를 쓰러트린 자라는 것.
그러나 홀로 수백만의 군대를 거느린 군주라는 말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틀란티스에서 수백만의 수하를 거느리고 있었다고 해도 이곳 지구에서는 무용지물 아닙니까? 혹 귀환자 전부가 강현수 플레이어의 수하라는 겁니까? 아무리 그래도 수백만은 불가능한 일 아닙니까?”
마틴의 말에 로저가 피식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저게 상식적인 생각이다.
그리고 강현수라는 존재는.
‘그 상식을 파괴하는 존재지.’
아무래도 조금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한 듯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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