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레벨 플레이어
미국
미 중앙정보국.
속칭 CIA는 와이번을 탄 영웅을 찾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처음 모습을 드러낸 러시아부터 중국과 일본을 샅샅이 수색했다.
그러나.
“흔적을 전혀 찾을 수가 없습니다.”
“붉은빛 계열 오러를 사용한다는 것만으로는 후보가 너무 많습니다.”
“러시아 SFB 요원들과 중국 국안부 요원들의 견제가 너무 심합니다.”
부하 직원들의 말에 CIA 부국장 마틴이 얼굴을 찌푸렸다.
‘중국인이나 러시아인일 확률이 높기는 한데.’
조사가 쉽지 않았다.
일본은 CIA의 앞마당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애초에 러시아와 중국은 CIA의 영향력을 제대로 발휘하기 힘든 곳이었다.
‘중국인이나 러시아인이라면 선점이 불가능하다.’
이게 객관적인 시선으로 냉정하게 판단한 결과였다.
‘그리고 어쩌면 중국인이나 러시아인이 아닐 수도 있어.’
중국인이었다면?
중국을 먼저 도왔으리라.
또 중국 플레이어들에게 그런 굴욕을 줄 이유도 낮았다.
러시아인일 확률이 가장 높기는 하지만.
‘그런 것 치고는 급한 불만 꺼 버렸단 말이지.’
또 러시아와 중국의 국경 지대를 넘나들며 나라에 상관없이 위험한 곳을 먼저 도왔다.
‘중국인이나 러시아인이 아닐 수도 있어.’
일본인일 확률도 엄청나게 떨어졌다.
‘한국이 의심스러운데.’
한국의 차원 게이트를 정리한 장본인으로 알려진 인물은 일성 길드 소속 비공식 랭커였던 염태성,
그러나.
‘염태성의 실력이 그렇게 압도적이지는 못할 텐데.’
비공식 랭커 염태성은 미국도 주시하고 있을 정도로 실력이 뛰어난 인물이었다.
홀로 13개의 차원 게이트를 순식간에 정리할 정도는 아니지만.
애초에 혼자 한 일도 아니기도 했다.
‘분명히 관련이 있어.’
한국에 나타났던 붉은빛 오러를 사용하던 플레이어와 그에 못지않은 실력을 뽐내던 다수의 플레이어들.
‘그런데 왜 사라졌을까?’
애초에 염태성이 공개적으로 모습을 드러낼 생각이었고.
다수의 플레이어들이 일성 길드 소속이라면?
굳이 모습을 감출 필요가 없었다.
‘감추려면 끝까지 감췄어야 했는데.’
러시아, 중국, 일본에서 모습을 드러낸 와이번 탄 영웅에 대한 관심이 커지자.
그제야 공개적인 행보를 보였다.
‘일성 길드가 그런 식으로 행동할 리가 없는데.’
감추려고 했다면?
민간인 피해가 커지더라도 방관했을 것이고.
나서려고 했다면?
더 화려하게 등장했으리라.
‘와이번 탄 영웅이 염태성일 리는 없고.’
일성 그룹은 와이번 탄 영웅이 염태성일지도 모른다는 식으로 언론 플레이조차 하지 않았다.
그 타이밍에 염태성을 공개해서 일성 그룹이 얻는 이득은?
‘없어.’
그러나 그로 인해 이득을 얻는 인물도?
‘없다.’
하지만 한국의 차원 게이트를 정리한 게 염태성이 아니라면?
한국, 러시아, 중국, 일본의 차원 게이트를 정리한 인물이 동일인이라면?
‘가능성은 낮지만.’
한번 파 볼 만한 가치는 있어 보였다.
“일성 길드를 한번 파 봐.”
“한국인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그래, 그리고 어차피 러시아와 중국에서는 제대로 작전 진행이 불가능하지 않나?”
“알겠습니다.”
CIA 부국장 마틴의 결정에 의해 한국의 일성 길드에 대한 조사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이상기류를 발견할 수 있었다.
* * *
‘뭐지?’
알 수 없는 찝찝함이 느껴졌다.
강현수는 이 찝찝함을 가볍게 넘기지 않았다.
야성의 감각.
투황에게 레플리카를 사용해 얻은 스킬.
‘찝찝함을 느낀 이유는 야성의 감각 스킬 때문일 확률이 높아.’
야성의 감각은 단순히 전투에만 도움을 주는 수준이 아니라.
감을 극도로 예민하게 만들어 준다.
‘뭔가 있어.’
아무 이유도 없이 찝찝함을 느끼지는 않았으리라.
‘적대적인 존재는 아닌 거 같은데.’
상대가 강현수에게 적대적이라면?
찝찝함이 아니라 분노를 느꼈으리라.
강현수가 오감을 모두 열었다.
그러자.
‘미행?’
같은 생명력을 지닌 존재들이 일정 주기로 자신의 곁을 맴도는 걸 확인했다.
‘분명히 일반인인데.’
미행을 하는 이들은 플레이어가 아니었다.
‘그래서 못 느꼈구나.’
미행하는 존재가 플레이어였다면?
마력의 존재 때문에 강현수의 눈을 피할 수 없었으리라.
그러나 오히려 일반인이기에 강현수의 눈을 피할 수 있었다.
‘절대 평범한 사람은 아니야.’
아무리 마력이 없었다고 해도.
미행은 미행이다.
웬만한 전문가가 아니고서는 강현수의 시선을 피할 수가 없었다.
아마 강현수도 야성의 감각으로 찝찝함을 느끼지 못했다면?
알아차리지 못했으리라.
‘왜 날 미행하는 거지?’
강현수가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승화 길드 일 때문인가?’
하지만 승화 길드와 강현수를 연관 짓기 힘들었다.
거기다 고작 기업 측에서 고용한 인물이 이런 미행 실력을 갖추기는 힘들었다.
‘일단 눈에 띄는 행동은 자제해야겠네.’
단 그러면 사냥 속도에 문제가 생긴다.
강현수는 이 문제를 간단하게 해결했다.
건물에 들어가 CCTV가 없는 사각으로 향한 후.
달의 그림자를 사용했고.
도플갱어 하나를 자신의 모습으로 위장시켜 내보냈다.
이제부터 저 도플갱어는 강현수인 척하며 평범한 플레이어 흉내를 낼 것이다.
그사이 마음 편하게 사냥을 하면 그만이었다.
* * *
“평범하다고?”
“예, 그렇습니다.”
강현수를 조사하던 요원의 보고에 마틴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닌가?’
확률이 꽤 높다고 생각했다.
처음 이상 기류를 느낀 건 일성 길드 때문이었다.
일성 길드는 일성 그룹의 자회사.
아무리 일성 길드가 한국 최강의 길드니 뭐니 해 봐야.
결국은 일성 그룹의 수족에 불과하다.
한데 최근 일로 균열이 일어났다.
‘염태성은 일성 그룹의 지시를 받고 움직인 게 아니었어.’
오히려 그 일로 일성 길드와 일성 그룹 간의 불화가 발생했다.
그 말은?
이게 일성 길드의 독단이라는 뜻이었고.
이 일이 벌어지기 전 일성 길드의 길드 마스터 장용철은 강현수라는 인물에 대한 조사를 했고.
또 접촉도 했다.
이유는 일성 그룹 회장이 지시.
‘그런데 무시했단 말이지. 조사도 하고 접촉도 했으면서.’
그걸 시작으로 강현수라는 플레이어의 주변을 파기 시작하자.
수상한 점이 수도 없이 많이 나왔다.
오랜 시간 실종 후 갑자기 모습을 드러냈고.
양팔을 잃은 강현수의 누나 강현아가 멀쩡히 활동하고 있었으며.
반신불수가 되었던 형 강현우도 완치되었다.
또한 플레이어 협회와 우광 그룹과도 연관이 있었다.
췌장암 말기로 시한부 판정을 받았던 권영수가 멀쩡히 움직였고.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던 권영수의 손녀가 멀쩡하게 살아났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승화 길드의 길드 마스터인 하진서가 실종됐지.’
그런데 그 전에 승화 길드에서 강현수의 형 강현우의 행방을 조사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하진서가 강현우와 동문이었다는 점이지.’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그리고 강현우와 하진서는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
‘강현수를 포함해 그 가족에게 접근했던 이들이 모두 우호적인 관계를 맺거나 실종되었어.’
표본이 많지는 않지만.
결코 평범한 건 아니었다.
‘귀환자일 확률이 높기는 한데.’
이상한 점이 너무 많았다.
귀환자라도 특전을 얻을 뿐.
‘스킬 랭크는 초기화되지.’
그런데 어떻게 손실된 신체를 복구할 수 있을 정도로 저런 엄청난 힐 능력을 얻었을까?
또한 힐로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알려진.
‘병도 치료한 것 같고.’
그게 끝이 아니었다.
공식적으로 던전에 들어간 기록이 많지도 않았다.
힐러라면 파티 사냥이 꼭 필요한데.
강현수와 파티 사냥을 한 이가 없었다.
‘수상한 게 너무 많아.’
강현수가 와이번을 탄 영웅일 확률이 엄청나게 올라갔다.
설사 강현수가 와이번을 탄 영웅이 아니라고 해도.
‘무조건 포섭해야 하는 대상이지.’
그가 가진 초월적인 힐 능력만 생각해도 효용성이 엄청났다.
와이번을 탄 영웅일 가능성이 높은 인물.
그게 아니더라도 가치가 있는 인물.
마틴은 자신이 독단으로 판단하고 행동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상부에 보고를 해야겠군.’
하지만 마틴은 확신했다.
보고를 듣는다면?
자신의 조국이 반드시 움직일 것이라고 말이다.
* * *
‘미국이라.’
강현수가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도플갱어에게 대역을 맡긴 강현수는 평소 생활로 돌아갔다.
그렇지만.
자신을 미행한 이들을 방치하지는 않았다.
도플갱어들을 붙여 역으로 미행을 했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 봐야 일반인이다.
일반인이라는 사실을 노려 의외의 성과를 낼 수는 있지만.
‘걸린 순간 게임 끝이지.’
일반인으로는 절대 소환수들의 미행을 파악할 수가 없었다.
거기다 도플갱어들의 미행은 실로 완벽했다.
시시각각 모습을 바꿀 수 있으니.
일반인들에게는 들키고 싶어도 들킬 수가 없었다.
‘나에 대해 꽤 많이 알아낸 것 같네.’
사실 모를 수가 없다.
강현수가 자신을 철저히 감추고 싶었다면?
애초에 누나 강현아와 형 강현우를 치료하지 말아야 했다.
양팔을 잃었던 사람이 멀쩡히 돌아다니고.
5년 동안 반신불수였던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건 제대로 조사만 하면 무조건 드러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할까?’
무작정 모르쇠로 일관할 수도 있었고.
그저 실력 좋은 힐러인 척할 수도 있었다.
아니면 역으로 보고를 올리기 전 미국 CIA 요원들을 제거할 수도 있다.
‘어차피 수중에 넣어야 할 패이기는 한데.’
미국은 세계 최강대국이다.
중국이 급격한 성장을 보이며 따라오기는 했고.
러시아가 오랜 숙적으로 자리해 있기는 했지만.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나 모든 면에서 미국이 중국과 러시아보다 우위에 있었다.
강현수는 아틀란티스에서 최강국이라고 할 수 있는 로크토 제국, 사클란트 제국, 남부 연합 왕국을 모두 손에 넣었고.
그랬기에 아틀란티스의 전력을 하나로 모을 수 있었다.
‘지구에서도 어느 정도 작업은 필요하지.’
특히 단순히 플레이어 전력만 가졌던 아틀란티스의 국가들에 비해.
지구의 국가들은?
현대 병기라는 막강한 무력을 지니고 있었다.
‘미사일 폭격을 하면 잡몹들은 순식간에 정리할 수 있지.’
핵까지 쓴다면?
마계 귀족은 힘들겠지만.
일반 마족들은 가볍게 쓸어버릴 수 있다.
‘이렇게 빨리 움직일 생각은 아니었는데.’
미국이 먼저 손을 내밀었으니.
강현수 입장에서는 잡아 줄 수밖에 없었다.
* * *
‘역시.’
상부는 마틴의 기대를 배신하지 않았다.
무조건 포섭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그 말은?
강현수라는 플레이어에게 제시할 수 있는 조건에 제약이 없어졌다는 사실과도 같았다.
돈? 명예? 권력? 아이템? 스킬북?
어떤 카드든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다.
마틴은 협상 전문가와 함께 직접 강현수를 만나러 가기로 결정했다.
단 철저한 보안을 유지해야 했다.
강현수라는 인물의 정보가 타국에게 넘어가는 걸 막아야 했다.
특히 러시아와 중국에는 말이다.
‘다행히 아직까지 러시아와 중국은 자국을 뒤지느라 정신이 없어.’
어디 그뿐인가?
러시아와 중국은 SFB와 국안부의 앞마당이었지만.
한국은 미국의 앞마당이나 마찬가지였다.
한국과 미국은?
우방국이자 함께 피를 흘리며 전쟁을 치른 혈맹국이었으니까.
물론 어디까지나 미국의 국익을 위해 움직인 결과였고.
우방국이니 혈맹국이니 해도.
주도권은 미국이 확실하게 쥐고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렇기에 마틴은 이번 협상이 꽤 순조롭게 진행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강현수가 바보가 아니라면 미국의 압도적인 지원을 거절할 리가 없었고.
한국 정부는 강현수라는 인물에 대해 제대로 파악조차 못 하고 있는 것 같았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강현수를 만나 대화를 나누는 순간.
마틴이 가지고 있던 자신감은 순식간에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0레벨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