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레벨 플레이어
영속의 저주
‘청와대와 국회에서도 무조건 찾아내라고 난리야.’
강현수는 최근 벌어진 두 개의 차원 게이트 사태를 막아 낸 장본인이다.
그때 보여 준 실력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그렇지만 청와대와 국회에서 당장 찾아내라고 난리를 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한국의 차원 게이트 사태를 막아 낸 인물이 러시아, 중국, 일본 사태를 막아 낸 와이번 탄 영웅과 동일 인물이라면?
당연히 난리가 날 수밖에 없었다.
‘이걸 어떻게 막아.’
백정혁이 아무리 플레이어 협회장이라고 해도.
플레이어 협회를 완벽하게 통제할 수는 없었다.
또 플레이어 협회를 틀어막는다고 끝나는 게 아니었다.
국정원, 경찰, 검찰 등등.
온갖 수사기관에서 수사를 시작했으니까 말이다.
‘어르신이 무조건 막으라고 했는데.’
백정혁이 골머리를 썩고 있을 때.
“이번 차원 게이트 사태를 막아 낸 플레이어의 정체가 밝혀졌답니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백정혁의 귀에 들어왔다.
“그게 정말이야?”
“예, 여기 보십시오!”
부하직원이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일성 길드 소속 비공식 랭커?”
“네, 맞습니다. 자기가 한 일이라고 당당하게 공개했습니다.”
순간적으로 협회장 백정혁의 머리가 복잡해졌다.
‘왜 일성 길드가 나선 거지? 명성 때문인가? 그럴 리가 없을 텐데.’
국내 최강이라고 불리우는 일성 길드다.
고작 명성을 얻겠다고 저렇게 설칠 리가 없다.
거기다 나중에 거짓인 게 드러나면?
명성이 올라기는커녕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혹시?’
백정혁의 머릿속에 한 가지 가정이 떠올랐다.
그때.
위이이잉!
스마트폰이 울렸고.
‘설마?’
백정혁이 조심스럽게 걸려 온 번호를 확인했다.
-일성 길드장 장용철
‘진짜였어?’
놀란 백정혁이 부하 직원에게 나가라고 손짓한 후 전화를 받았다.
“장용철 길드장님이 어쩐 일로 연락을 주신 겁니까?”
-대충 짐작하고 있을 거 아니요. 플레이어 협회 차원에서 우리 길드원이 맞다고 공증이나 해 주시오.
“CCTV나 블랙박스는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국정원까지 나섰는데?”
-그건 우광 그룹에서 알아서 처리했으니 걱정할 필요없소.
“우광 그룹에서요?”
-조만간 우광 그룹 권영수 회장님이 직접 협회장에게 전화할 거요.
“…….”
백정혁은 순간적으로 할 말을 잃었다.
이번 일에 일성 길드와 우광 그룹이 나설만한 이유는 단 하나밖에 없다.
‘귀환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대한민국 최강의 길드와 대기업을 수족처럼 부린다는 말인가?
-그 대머리 영감한테는 알아서 전달해 주시오.
“그렇게 하겠습니다.”
뚝!
전화가 끊기기 무섭게.
-우광 그룹 권영수 회장님
우광 그룹 권영수 회장에게 직통 전화가 왔다.
“예, 회장님.”
-대충 사정은 알고 있을 테니. 서로 합을 한번 맞춰봅시다. 일단 우리 측에서는…….
“그 정도면 완벽하겠군요. 제가 잘 마무리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리겠소.
뚝!
그 말을 끝으로 전화가 끊겼다.
‘잘 부탁한다고?’
우광 그룹 권영수 회장은 누군가에게 지시를 내리는 사람이지 부탁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백정혁과 가끔 우광 길드 일로 통화를 하기는 했지만.
‘협박을 했으면 했지. 부탁을 할 사람이 아닌데.’
아무래도 자신의 짐작이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잘 끝났네.’
강현수가 느긋하게 TV를 바라봤다.
거기에는 일성 길드 소속 비공식 랭커였던 염태성이 환한 얼굴로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붉은빛 계열을 오러를 쓰는 비공식 랭커로.
던전에서 강현수에게 깨졌던 인물이기도 했다.
‘이 정도면 귀찮은 일은 없겠지.’
사실 강현수가 가진 무력이 드러나도 큰 상관은 없었다.
그저 인터넷을 통해 사진과 신상 정보가 공개되어 좀 귀찮아질 뿐이다.
그러나 강현수는 그게 싫었다.
‘나만 귀찮게 하면 다행인데.’
가족들까지 귀찮게 할 수도 있으니까.
또 괜히 욕심 많은 바보들이 헛수작을 부릴 수도 있었고 말이다.
‘때려잡으면 그만이기는 하지만.’
괜한 혼란이 발생할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지구의 전력이 약화될 수도 있었다.
강현수는 욕심 많은 바보들이 자신의 배려를 알아줬으면 했다.
만약 모른다면?
결국 피를 보는 건 그들이 될 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다행히도.
일주일이 넘도록.
욕심 많은 바보들이 강현수를 찾아오는 일은 없었다.
* * *
강현우는 동생인 강현수 덕분에 몸을 완치했다.
그 후 누나인 강현아와 함께 플레이어로서 던전을 돌며 사냥했다.
누나 강현아는 궁수였고.
강현우는 원거리 딜러였다.
화르르륵!
푸른 화염이 강현우의 몸을 휘감았고.
휘익!
몬스터에게 날아갔다.
꽈아아앙!
커다란 폭음과 함께 탱커가 붙잡고 있던 몬스터들의 절반가량이 쓸려나갔다.
슉슉슉!
누나 강현아의 속사가 남은 몬스터들을 쓸어버렸다.
“우와! 남매가 정말 대단하네!”
“그러게 말이야. 스킬 랭크가 얼마나 높은 거야?”
같이 사냥하던 플레이어들이 놀란 표정으로 강현아와 강현우 남매를 바라봤다.
‘다 현수 덕분인데.’
강현아와 강현우 남매가 이렇게 강한 이유는 강현수 덕분이었다.
아이템, 스킬북, 버프.
이 세 가지 조합 덕에 강현아와 강현우 남매는 동 레벨의 플레이어보다 월등히 강했다.
그래서 항상 상위 레벨의 플레이어들과 파티 사냥을 했다.
당연히 레벨이 엄청나게 빨리 올랐다.
이득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월등히 높은 레벨의 몬스터를 사냥하자.
자연스럽게 업적이라는 게 쌓였다.
업적이 쌓이면?
스텟이 상승하고 더 강해진다.
그게 계속해서 반복되었고.
그 결과 강현아와 강현우 남매는 빠른 속도로 강해질 수 있었다.
거기다 남매는 재능이 있었다.
애초에 강현아는 양궁으로 올림픽 금메달을 딸 정도의 실력자였고.
강현우는 한국대학교 의대를 수석으로 졸업한 촉망받는 인재였다.
지구에 있을 때의 강현수가 괜히 열등감을 느낀 게 아니었다.
누나는 운동 천재였고.
형은 공부 천재인데.
강현수만 평범했으니까 말이다.
궁수 플레이어가 된 강현아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고.
마법사 플레이어가 된 강현우는 좋은 머리를 십분 발휘했다.
강현아와 강현우 남매의 뛰어난 실력과 성장 속도를 본 여러 길드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했지만.
두 사람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굳이 길드에 들어갈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이템이나 스킬북을 지원받을 필요도 없었고.
파티원을 구하는 일 역시 손쉬웠다.
강현아와 강현우 남매의 실력이 너무 뛰어났기 때문이다.
모든 게 술술 풀리고 있었지만.
강현아와 강현우 남매는 부모님과 강현수에게 적잖은 부채 의식을 느끼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 빨리 강해져서 부모님에게 진 빚을 갚고.
강현수에게도 합당한 보답을 하고 싶었다.
물론 강현아와 강현우 남매도 강현수가 어떤 존재인지 잘 알고 있었다.
고가의 아이템과 스킬북을 아무 대가 없이 넘겨주고.
모든 스텟을 올려 주는 버프까지 주지 않았겠는가?
어쩌면 강현아와 강현우 남매가 평생을 노력해도 강현수에게 받은 것을 다 갚는 날은 돌아오지 않을지 몰랐다.
그러나 강현아와 강현우 남매의 마음은 그렇지가 않았다.
누나로서 형으로서 동생 강현수에게 짐이 되는 존재가 아니라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되고 싶었다.
그리고 그 계획은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강현아와 강현우 남매의 성장 속도는 일반적인 상식을 벗어난 수준이었다.
건강을 회복한 지 불과 반년도 채 지나지 않아 벌써 300레벨이 넘었으니까 말이다.
강현아와 강현우 남매는 299레벨 한계 돌파 퀘스트를 너무도 손쉽게 통과했다.
이는 강현수의 지원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상식을 초월한 속도였다.
강현아와 강현우는 기뻐했지만.
우연히 이 소식을 듣고 얼굴을 찌푸린 인물이 있었다.
* * *
“강현우 이놈이 이름이 왜 여기 있어?”
승화 길드의 길드 마스터 하진서가 얼굴을 찌푸리며 물었다.
당장 길드의 주력으로 써먹을 만한 인재들을 스카우트하기 위한 명단에서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인물의 이름이 보였기 때문이다.
“아는 사람이십니까?”
“그래.”
“그다지 친한 사이는 아니셨나 보군요. 스카우트를 중지할까요?”
인사팀 직원이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지. 진행해.”
“알겠습니다.”
하진서의 허락에 인사팀 직원이 밝은 표정으로 떠나갔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인사팀 직원이 나간 직후.
하진서의 표정이 돌처럼 굳어졌다.
강현우의 이름은 절대 이곳에 등장할 수 없었다.
그 이유는 하나.
하진서가 자신의 고유 스킬을 사용한 대상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풀 수는 없을 텐데.’
하진서의 고유 스킬 영속의 저주.
영속의 저주는 함부로 쓸 수 없는 스킬이다.
한번 시전할 때마다 영구적으로 마력 스텟의 일부를 소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충분히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스킬이기도 했다.
영구적으로 소모된 마력 스텟이 대상의 신체에 장애를 일으키는 것은 물론 마력의 흐름까지 엉망으로 꼬아 버렸으니까.
마력 스텟의 일부를 영구적으로 소모하는 대신.
적을 확실히 무저항 상태로 만들 수 있는 사기 스킬이었다.
단 상대의 스텟이나 스킬 저항력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었다.
영구적으로 장애가 일어나거나 마력의 흐름이 꼬이는 경우도 있었고.
영향을 받기는 하지만 몇십 초 안에 극복하는 경우도 있었다.
치열한 전투 중에는 몇십 초면?
숨통을 끊기에 충분했다.
하진서는 지금까지 영속의 저주 스킬을 사용해 자신의 경쟁자들을 제거해 왔고.
단 한 번도 실패하지 않았다.
그 결과 대기업인 승화 그룹의 자회사인 승화 길드의 길드 마스터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었다.
강현우는 그렇게 짓밟은 경쟁자 중 하나였다.
사락.
하진서가 강현우에 대해 조사한 자료를 확인했다.
“미친.”
절로 욕이 나올 정도의 엄청난 성장 속도.
‘이게 가능한 일인가?’
강현우는 5년 전에도 엄청난 재능을 가진 플레이어였다.
하진서가 손을 쓰지 않았다면?
아마 무조건 랭커가 되었을 정도로.
하지만 이건?
5년 전의 성장 속도를 가뿐히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으드득!
절로 이가 갈렸다.
이미 잊었다고 생각한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고.
억눌러 놨던 열등감이 다시 활활 타올랐다.
강현우.
이놈은 항상 그랬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무조건 자신의 앞에 있었다.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레지턴트, 플레이어.
그놈 때문에 하진서는 항상 만년 2등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처음으로 강현우에게 영속의 저주를 걸었다.
스킬 랭크가 낮았지만.
강현우 역시 저레벨이었기에 완벽하게 성공했다.
‘다시 걸어?’
그러나 그러면 마력 스텟의 일부가 영구적으로 손실된다.
거기다.
‘저놈도 꽤 강해졌어.’
어쩌면 몇십 초에서 몇 분 정도 지속되다 풀릴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라도 강현우에게 걸린 영속의 저주를 해주했던 이가 또 해주해 줄 수도 있다.
그때 하진서의 머릿속에 아주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죽여 버리면 그만이야.’
5년 전 저레벨 플레이어였던 하진서는 강현우에게 영속의 저주를 걸 수는 있었지만.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해 직접 죽일 재주는 없었다.
그 후에는 그럴 능력이 생겼지만.
죽이는 것보다 비참하게 사는 게 더 낫다고 여겼다.
‘이제는 상황이 다르지.’
하진서의 두 눈이 살의로 불타올랐다.
강현우라는 이름이 두 번 다시 자신의 귀에 들려오지 않도록.
가슴 깊은 곳에 꼭꼭 감춰 놨던 열등감이 두 번 다시 모습을 드러낼 수 없도록.
‘확실하게 죽여 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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